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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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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어느 봄날의 기억
2020년 08월 05일 15시 18분  조회:1607  추천:0  작성자: 살구나무

 <도라지>2020년4호
 
 
 
단편소설
 
 
어느 봄날의 기억 


박명선
 

 
출장차 도꾜에 온 지 한주일이 되던 어느 날,승호는 저녁 약속시간 전에 옛집에 가보려고 일찌감치 전차를 탔다.3년 만에  비지네스로 일본에 다시 온 것이다.
승호가 살던 집은 도꾜에서 멀지 않은 사이다마현 모 시에 있었다.전차에서 내려 시계를 보니 약속시간까지 아직 반시간이 남아있었다.이제 반시간 후면 전철역으로 되돌아와 사사끼와 다나까를 만나야 한다.사사끼와 다나까는 3년 전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된 한 작업장 동료들이다.아침에 사사끼에게 먼저 전화를 하려다가 다나까에게 전화를 했다.다나까와 친밀한 사이는 아니였지만 사사끼에게 깜짝쇼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동료들 중에서 동갑인 다나까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오랜 친구를 만난 듯 무척 반가워하는 다나까에게 귀국해서 취직한 일본독자기업의 용무로 출장을 오게 되였다고 말하고 나서 오늘 저녁 사사끼와 셋이서 식사를 하면 어떤가고 물었다.다나까가 사사끼를 꼭 데리고 오겠다고 흔쾌히 동의하기에 여섯시에 전철역 광장 앞에 있는 불고기점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내가 일본에 다시 왔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이제 만나면 누구인지 알 것이라고 사사끼에게 말해달라고 부탁해놓았다.
옛집 동네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우체국,세븐일레븐,야구훈련장,유치원,과일점,남새점 그리고 곱게 피여난 길가의 벚꽃마저도  3년 전과 여전했다.
그러고 보니 그날도 벚꽃이 화려함을 자랑하던 날이였다.
옹기종기 모여앉은 낮다란 아빠트들 속으로 옛집이 보여왔다.왠지 올 때와는 달리 다시 찾아와서는 안되는 집이기라도 하듯 가슴이 세차게 높뛰였다.
옛집 대문 앞에 당도하자 지난날의 기억이 오버랩되여 머리속에 다시 떠올랐다.

3년 전 화창한 어느 봄날이였다.
우습깡스럽고 어눌하게 말하는 사사끼를 속으로 웃으면서 작업장에 들어선 승호는 동료들에게 아침인사를 건네려다가 주춤 멈춰서버렸다.오늘은 여느 때와 달리 동료들이 한데 모여서 낮은 소리로 수군덕거리고 있었던 것이다.눈빛들이 이상했고 분위기가 석연치 않았다.혹시 자신의 언어나 행동이 동료들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았나 어제 있었던 일들을 곰곰히 되새겨보았지만 딱히 잡히는 곳이라고는 없었다.그렇다고 무슨 일이 있는가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휴식시간만 되면 어린애처럼 졸졸 묻어다니던 사사끼가 오늘은 휴식실 창문가에 앉아 혼자말로 중얼거리고 있었고 항상 웃음 짓던 엔도과장도 퇴근 무렵에 작업장에 한번 들어왔다가 그저 머리만  끄덕여보이고는 나가버렸다.
다들 왜 이럴가?이젠 내가 싫어진 것일가?아니면 스스로 알아서 래일부터라도 출근하지 말라는 암시일가?
불쾌하고 찜찜한 마음으로 퇴근하여 공장 대문을 나오니 방정맞게도 아침부터 공장 뒤켠 나무숲으로 모여들던 까마귀들이 까악까악 소리를 내지르며 머리 우를 날아지나갔다.일본에서는 까마귀를 흉조로 간주하지 않지만 오늘은 왠지 저 까마귀들이 아침부터 불길한 징조를 불러온 듯이 느껴졌다.그러면서도 가끔씩 이런 날도 있겠지,래일이면 모든 것이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오겠지 생각하며 사사끼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집 부근에 이르러 큰길에서 골목으로 금방 굽어들어갔을 때였다.
뒤에서 자동차소리가 들려오기에 옆으로 비켜 자전거를 달리는데 동네집 자동차가 아닌 경찰차 한대가 느린 속도로 옆을 스쳐지나갔다.싸이렌 등불을 켜지 않은 걸 봐선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경찰차는 아닌 듯 싶었다.경찰차가 집앞을 지나가는가 했더니 얼마 가지 않고 길옆에 멈춰서는 것이였다.
순간,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자기를 붙잡으러 온 것 같아 다리힘이 빠지고 자전거 핸들을 잡은 손이 떨렸다.집 대문으로 들어가려던 승호는 정신을 가다듬고 앞으로 자전거를 내몰았다.뒤돌아가면 경찰들이 뒤쫓아와서 검문할 것이고 집에 들어가면 경찰들이 당장 들이닥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였다.
아니나 다를가,조수석에서 거무틱틱하게 생긴 경찰과 뒤좌석에서 서류를 손에 든 경찰이 내리더니 지나가는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목구두 발소리를 요란스레 울리며 집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승호는 전철역 방향으로 정신없이 내달렸다.이대로 경찰들한테 잡힐 수는 없었다.전차를 타고 어딘가 먼 곳이라도 가고 싶었다.
헌데 어디로 갈가?
황황해서 내빼다 나니 갈 곳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승호는 비장한 결심을 내리고 자전거를 돌려세웠다.집 골목을 지나면서 곁눈으로 보니 두 경찰이 차에 오르고 있었다.집 골목으로는 되들어갈 수 없었다.경찰들의 눈을 피해 큰길 건너편 작은 골목으로 들어갔다가 한참 후에야  조심스레 집으로 들어왔다.집에 들어서자 아까부터 조여있던 탕개가 풀리면서 두 다리가 삶아놓은 듯 허물어져내렸다.
잡히면 죽이겠나.기껏해서 벌금이나 좀 시키고 중국에 돌려보내겠지.벌금?돈이 없다고 하면 그만이지.내가 사람을 죽였나,도적질을 했나.불법체류로 몇년간 일본에 있었을 뿐이 아닌가.
방금 전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그 어떤 오기가 불끈 치밀어올랐다.
위스키 한병이 구석진 창턱에 그대로 놓여있는 것이 눈에 띄였다.작년 년말 어느 날  저녁,일일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날이 밝으면 자백하러 가려고 위스키를 술병 채로 마시던 장면을 보고 어쩌면 나도 언젠가는 저런 날이 오지 않을가 싶어 세븐일레븐에 달려가서 사다놓은 것이다.드디여  그 주인공처럼 위스키를 마실 날이 오고 만 것인가.이 날이 이렇듯 빨리 찾아올 줄은 생각지 못했다.
펑~
위스키 병마개를 따는 귀맛좋은 소리와 함께 알싸한 위스키 향기가 풍겨왔다.승호는 고개를 젖히고 위스키를 꿀꺽꿀꺽 몇모금 들이켰다.독한 위스키가 덜컹거리는 가슴에 불을 질러놓은 듯 금세 온몸이 활활 타번지는 것 같았다.
누가 밀고한 것이 틀림없었다.엔도과장이나 사사끼는 아닐 것이고 며칠 전 퇴근길에 맥주도 같이 마신 다나까도 아닐  것이다.그리고 50대 중년인 스즈끼와 이가라시도 아닐 것이다.그럼 이시이가 퇴근하자마자 밀고한 것이란 말인가?
이달 로임은 이틀 전에 이미 입금되였으니 래일 당장 공장 일을 때려치운다 해도 아쉬울 게 없었다.이 공장에서 일한지도 2년이 되였으니 미련 따위는 더욱 없었다.그리고 방세는 다음 달 중순에 반년치를 지불하게 되였으니 래일 집주인한테 다른 곳에 이사 갔다고 말하면 그뿐인 것이다.이 집에 있은지도 이젠 2년,불법체류자인 걸 알면서 2년 동안 눈을 감아준 집주인에게 따뜻한 인사말은 꼭 전해야 했다.
위스키를 마셔서인지 속이 갑갑해나면서 집안의 공기마저 뜨겁게 느껴졌다.창문을 열려다가 그만두었다.저녁노을에 곱게 물든  벚꽃풍경이 그림처럼 예쁘고 아름다웠다.이렇게 좋은 날에 산책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밖으로 나가면 경찰들과 맞닥뜨릴 것 같았다.오늘 밤중이나 래일 아침에 경찰들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경찰차에 실려가는 끔찍한 일이 발생하기 전에 빨리 이 집에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한담?
그제야 매형과 철이가 생각났다.그럼 지금 매형네 집에 갈가?아니면 철이네 집에 갈가?아무 집에나 며칠간 얹혀있으면서 다른 집과 일자리를 구해볼가?
철이는 일본어학교에 함께 류학을 왔다가 대학에 진학한 친구인데 지금 닛뽀리에서 살고 있었고, 대학원에 다니는 매형은 가마다에서  살고 있었다.여기서 도꾜 닛뽀리까지는 반시간,가마다까지는 한시간이 걸린다.매형네 집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거리가 멀어서가 아니였다.매형이 내가 지금까지 불법체류하고 있은 걸 알면 래일 당장 자진출국수속을 하고 중국에 돌아가라고 으름장을 놓을 수 있기  때문이였다. 
어스름이 깃들기 시작할 무렵 이 동네를 빠져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혹시 려인숙에서 하루밤 묵을 수도 있으니 려권을 지참해야 하지 않을가?비자연장을 하지 않은 외국인등록증은 어디서나 보여줄 수 없었다.
승호는 옷장 안에 넣어둔 트렁크에서 려권을 꺼내 펼쳐보았다.일본류학비자와 대련 출국도장 그리고 나리다 입국도장만 찍혀있는 새로 발급받은 듯한 려권이다.려권을 가방에 챙겨넣고 옷가지들을 트렁크에 집어넣었다.
평소 집 청소를 하면서 버릴 만한 것은 자주 내다버려서인지 가지고 갈 물건이 별로 없어보였다.랭장고는 메고 갈 수도 없고 텔레비죤과 전기밥가마는 안고 갈 수도 없었다.이불과 요와 베개도 카텐을 뜯어서 싸들고 갈 수는 없었다.랭장고에서 엇저녁에 사두었던 콜라와 쏘세지를 꺼냈다.길에서 요기는 해야 했다.먹다 남은 김치와 닭알은 두고 가자.집주인이 버리고 싶으면 버리고 집에 가져다가 먹고 싶으면 먹어라지.많지는 않지만 주방에 있는 입쌀과 기름과 라면도 두고 가자.그리고 그릇들이며 수저들이며 컵들도 죄다 두고 가자.아,맞다.매형이 사준 세탁기는?세탁기도 두고 갈 수 밖에 없었다.또 뭐가 있더라?화장실 안의 목욕타올이며 샴푸며 두루마리종이들도 그냥 두고 가자.신발장 안의 신발 몇컬레는 집주인이 알아서 처리하라지.전기세,수도세,가스세는 다음 달까지 여액이 충분히 남아있으니 집주인한테 미안할 것도 없었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막상 이대로 떠나자니 보내온 나날들이 그리워났다.
일본에 금방 와서 철이와 함께 일본어학교에서 배정해준 기숙사에 1년간 있다가 졸업이 가까워오자 이젠 우리 집에 들어오라는 매형의 권고도 마다하고 공장 아르바이트를 구해놓은 이튿날 이사를 온 집이였다.
그래도 20대 젊은 시절의 추억이 깃든 자취집이 아니런가.
집안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텔레비죤 옆 책상 우에 일본어학교를 다닐 때 쓰던 필기장이 펼쳐진 채로 놓여있었다.필기장에는 사사끼가 그려달라던 전투기 그림이 있었다.
사사끼를 잠간 떠올려보았다.
열흘 전,사사끼와 같이 일하게 된 첫날 점심시간이였다.공장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휴식실에 들어와 테블 우에 엎드려 낮잠을 좀 자려는데 사사끼가 옆에 다가와서 절친한 친구처럼 무람없이 어깨를 툭툭 치더니 호주머니에서 종이장을  꺼내 펼쳐들었다.큰 칼을 든 경찰이 자동차를 막고 있는 그림이였다.저도 모르게 풉 하고 웃음이 나왔다.
“친구가...그려준...그림이다.”
오전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검사할 상자들을 절로 날라다가 품질검사를 하고 나서 이시이의 체크를 받은 상자들을 다시 날라가는 사사끼가 일할 줄도 알고 힘꽤도 있어보였지만 일손이 얼마나 필요했으면 공장에서 저런 자식까지 받아들였을가 반신반의하고 있던 중이였다.
“난...서른살이다...넌...몇살이니?”
나보다 나이는 많았지만 아까부터 누구한테 반말이냐고,내가 몇살이든 알려줄 줄 알았냐고 쏘아붙이려다가 잠자코 있었다.
"여기에...비행기...그려줘."
다른 사람들한테는 감히 다가가지도 못하고 말도 옳바르게 못하는 이 바보천치가 나를 얕잡아보고 하는  수작일가.공장이다 보니 사회하층인들이 많았지만 사사끼와 같은 인간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사끼가 아니꼽고 귀찮았지만 측은한 생각도 들어 그가 건네주는 볼펜으로 자동차 우에 비행기를 대충 그려놓았다.소학교시절 미술써클에 참가한 적이 있어 비행기 정도는 쉬이 그릴 수 있었다.
"와...진짜...비행기...같다."
좋아라고 손벽까지 치며 하나 더 그려달라고 졸라대는 사사끼에게 어이없이 웃어보이면서 경찰 머리 우에 비행기를 하나 더 그려넣었다.
“경찰관이...꿈이였는데...스무살에...교통사고...당했다.”
그래서 친구한테 이런 그림을 그려달라 했냐고 물어보려다가 다른 말을 다시 건네올 것 같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온역 피하 듯 자기를 피한 줄도 모르고 그후부터 사사끼는 내가 화장실에 가도, 물 마시러 가도 내 뒤꽁무니를 따라다녔고 퇴근길에도 같이 자전거를 타고 전철역 앞 큰길까지 와서 “오늘...재밌었다...래일...또...만나.”하고 웃으며 헤여지군 했다.
문구방에서 사왔다며 채색도화지에 큰 비행기를 그려달라던 사사끼,휴식시간에 공장 마당에서 이 비행기를 타고 중국에 놀러 간다며  사람들의 폭소를 자아내던 사사끼,전차에 앉아서도 맞은켠 사람들에게 비행기를 보여준다던 사사끼...이젠 그런 사사끼에게 비행기도 그려주지 못하게 되였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해났다.
먼저 철이한테 전화나 해보려고 하는데 똑똑 집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승호는 와뜰 놀랐다.불안한 시선이 출입문께에 가 꽂혔다.독안에 든 쥐처럼 꼼짝달싹도 못하고 경찰들한테 생포당하게 된 자신이 너무나 가련하고 비참하게 생각되였다.
창문을 뛰여넘고 싶은 충동이 번개처럼 뇌리를 쳐왔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경찰들도 무단침입은 못할 것이라고 스스로 자신을 위안하며 발볌발볌 출입문 쪽으로 다가가 숨을 죽이고 문밖의 동정에 귀를 강구었다.
"사이(崔)상,계세요?"
다시 노크하는 소리와 함께 하라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승호는 놀랐던 가슴을 쓸어내리고 문을 열었다.
"돌아오셨군요.아까 경찰들이 찾아와서 옆집에는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가 묻기에 제가 이사 와서부터 방이 비여있더라고 했어요.언제 이사 왔는가 다시 묻기에 한주일이 된다고 했더니 이 부근에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면 신고하라더군요."
"감사합니다."
하라다가 돌아간 다음에야 40대 초반 녀인이 옆집에 이사 왔는데 누가 물어보면 옆집은 비여있다고 대답해달라고 부탁했다던 집주인의 말이 생각났다.자기의 리익 때문이겠지만 오늘은 집주인이 목숨을 구해준 은인처럼 고마울 수가 없었다.그리고 경찰들 앞에서 자신을 감싸준 하라다도 고맙기 그지없었다.
하라다는 어느 레스토랑 점장인데 이사 온 날 인사를 나누면서 며칠간 조용히 휴식하고 싶다고 했다.집주인과 옆집을 잘 만난 덕분에  그래도 위험한 고비는 무사히 넘긴 셈이였다. 
그나저나 경찰들이 신고를 받고 찾아온 것 만은 틀림없었다.그렇지 않고서야 경찰들이 이 동네에서 다른 집도 아닌 우리 집을 곧바로 찾아올 리가 있겠는가.집에 사람이 없으니 옆집에 물어본 걸 봐서라도 꼭 집을 아는 사람이 밀고한 것이 분명했다.
집을 아는 사람은 매형과 철이,사사끼와 다나까 그리고 이시이일 뿐이다.이시이 밖에 밀고할 사람이 없었다.
트렁크에 넣어가지고 가려다가 집주인이 마셔라고 창턱에 도로 올려놓은 위스키에 눈길이 가자 이시이가 다시 생각났다. 
하라다가 이사 오기 전날인  한주일 전 오후 휴식시간에 이시이가 퇴근길에 사이상의 집에 가서 한잔 하면 어떠냐고 다나까와 사사끼에게 물었다.이시이와 다나까는 승호가 오기 전에 입사한 정사원이고 사사끼는 알바생인데 열흘 전부터 넷이 새로 세워진 작업장에서 같이 일하게 되였다.사사끼는 헤벌쩍 웃으며 어머니에게 청가를 맡겠다며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하고 있었고 다나까는 말없이 안경 너머로 셋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이시이가 술은 자기가 살 테니 중국료리 한가지면 갖춰놓으면 된다기에 마지못해 동의했다.새로 알게 된 동료들과 집에서 술 한잔 못할 리유가 없었던 것이다.
집 부근 세븐일레븐 앞에서 이시이가 운전석에서 내리더니 얼마 안되여 량손에 맥주를 사들고 나왔다.이시이가 셋을 집앞에 부리워놓고 차를 집에 두고 오겠다며 되돌아갔다.이시이가 오는 사이에 사사끼의 부탁 대로 필기장에 전투기를 그려주고 료리도 몇가지를 만들어놓았다. 
"참 맛갈스런 료리들이군.헌데 평소에 비싼 위스키를 마셔?"
술이 둬순배 돌아가자 이시이가 창턱에  놓여있는 위스키를 보며 물었다.
"전번 일요일에 매형이 놀러 오면서 사온 거야.마실려면 마셔."
작년에 사놓은 위스키이지만 승호는 전번 일요일에 매형이 사온 거라고 했다.술이라고는 입에 대지도 않는 매형이 음력설에 놀러 왔을 때도 중국에 돌아가서 친구들과 마시려고 미리 사두었다고 능청스레 둘러댔다.
"난 독한 위스키는 못 마셔.매형이 있어?지금 어디에 있어?"
"도꾜에 있는데 대학원에 다닌다고 말했잖아."
언젠가 이시이가 일본에는 어떻게 왔는가 묻기에 도꾜에서  대학원에 다니는 매형이 신원보증인이 되여 일본어학교에 류학왔다고 말했었다.이시이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랬던가?매형은 지금 누나와 같이 있겠지?"
"아니,누난 중국에 있어.여섯살 난 아들을 데리고 지금 어머니 집에 같이 있어."
"중국에서는 결혼한 녀자가 남편이 외국에 가면 본가집에 들어가 있는구나."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그래."
"그러니깐 어머니를 보살피려고 누나가 일본에 오지 않는 거구나.매형이 혼자서 힘들겠다.매형이 예쁜 일본녀자라도 봐두면 어쩔려구."
이시이의 시까스르는 말에 기분이 언짢아졌다.병환에 계시는 어머니를 보살펴드리려고 누나가 일본에 오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시이가 간섭할 일이 아니잖은가.그리고 가족요청을 하고 싶어 하는 매형의 심정을 내가 모르는 바도 아니다.
이시이와는 더 이상 얘기를 나누지 말아야겠다고 생각되였다.처음 만난 날  어느 학교인가,학교는 다니지 않는가고 이시이가 물어봤을 때도 그저 학비를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만 대답했는데 오늘은 저도 모르게 집안일을 꺼내고 말았다.다른 동료들은 자기 일만 꾸준히 하며 신상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는 듯이 묻지도 않는데 이시이만은 꼭 뭔가를 알아내려는 속셈으로 이것저것 물어보며 끈질기게 달라붙었다.사흘 전에는 학교에서 찾지 않는가고 억지웃음을 빼여물고 중떠보기까지 했다.그래서 다른 작업장에 보내달라고 요즘 엔도과장에게 부탁해보려던 참이였다.
사사끼는 게걸스레 료리를 집어먹고 있었고  다나까는 가만히 앉아서 두 사람의 얘기만 듣고 있었다.
승호는 화제를 돌리려고 다나까를 보며 물었다.
"다나까,넌 몇살에 결혼할 생각이니?"
승호와 동갑인 다나까가 시무룩이 웃었다.
"서른이 되면 결혼하려구.아직 5년이나 있으니 지금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승호보다 두살 이상이고 이미 결혼도 했고 딸애도 두살인 이시이가  다나까에게 말을 건넸다.
"너 사사끼한테 녀자를 소개해주렴."
사사끼가 입안의 음식물들을 사처에 튕기며 으흐흐 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녀자?나도...녀자...사귀고...싶다."
"하하하.너 쉰살이 돼도 녀자가 있겠나?"
사사끼가 갑자기 성난 수사자처럼 눈을 부릅뜨고 이시이를 쏘아보며 언성을 높였다.
“나...고중...때...야구를...했다...전국대회에도...참가했다...녀학생들...다...나를...좋아했다...너...나쁜...사람이다.”
맥주를 여러잔 마신  사사끼가 아주 멀쩡하게 단어를 구사하고 있었다.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하지만 기억상실증은 전혀 없어보였다.
"롱담도 못하냐?"
한풀 꺾였던지 이시이가 사사끼를 외면하고 다나까와 다른 말을 주고받았다.
승호는 멍한 눈길로 사사끼를 쳐다보았다.성낼 줄도 모르는 사람으로만 여겨왔던 사사끼의 사나운 눈빛을 처음 보는 승호였다.사사끼가 보기와는 달리 너무나도 무서웠다.하긴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하지 않는가.
한시간이 지나 술상이 끝났다.집 대문을 나가면서 여기 주소가 어떻게 되던가고 이시이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묻기에 아까 알려주지 않았냐고 면박을 주려다가 주소를 다시 알려주었다.
"주소...알아선...뭘...하자구?"
사사끼가 휘청거리면서 이시이에게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이시이는 여기서 한 정거장,다나까와 사사끼는 서너 정거장을 사이둔 곳에서 살고 있었다.
그럼 집 주소도 알고 내가 불법체류자인 걸 이미 눈치챈 이시이가 밀고한 게 맞단 말인가.
아마 그때  벌써 밀고할 속타산이 있었던 것 같았다.
불법체류자인 내가 너의 밥통을 빼앗았나,나를 밀고하면 후한 상금이라도 타나?
으깨지게 깨문 어금이에서 뿌드득 소리가 났다.
헌데 오늘 아침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은 것일가?
출근카드를 찍고 화장실에 들렸다가 좀 늦게 작업장에 들어서자 이시이가 다나까 그리고 이가라시와 스즈끼에게 귀속말로 뭔가를 소곤거리고 있었다.농촌 할아버지처럼 늙수그레하고 점심밥값이 아까워 너덜너덜해진 헝겁가방에 도시락을 넣어가지고 다니는 이가라시와 반년간 같은 작업장에서 일했고 사사끼를 막내동생처럼 관심해주는 곱사등이인 스즈끼는 젊은 정사원인 이시이에게 잘 보이려고 굽신거리는 반편들이였다.사사끼는 끼이지 못하고 그들 뒤에 우두커니 서서 피곤한지 연신 하품을 해대고 있었다.
이시이가 동료들을 모아놓고 나를 밀고하려고 꾀를 꾸미고 있은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오늘은 리유없이 누군가에게 잔뜩 두들겨맞은 듯이 몸과 마음이 피로했다.
침대에 좀 누워있으려는데 갑작스레 핸드폰이 울려터졌다.승호는 움찔 몸을 떨었다.벨소리가 세번 울리더니 꺼졌다.벨소리가 세번 울리고 꺼지면 중국에서 걸려온 전화이다.
무슨 일이 그렇게 바쁜지 음력설이 지난 후에는 중국에 전화도 하지 못했다.
중국에 인츰  전화를 했다.어머니가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누나의 말에 승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머리를 싸쥐였다.
어머니와 누나와 매형은 내가 일본에서 정상적인 류학생활을 하기를 바라고 있었다.일본어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학통지서를 받은  날 고민 끝에 학업을 포기하기로 했다.매형한테는 대학에 입학했다고,어머니와 누나한테도 어엿한 대학생이 되였다고 자랑을 해놓고  전자부품제조공장에 들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재작년에 매형이 신원보증인과 대학등록금 건으로 찾아왔을 때는 새로 이사 온 아빠트 집주인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있으면 4년간 신원보증인이 되여주겠다고 답복했기에 보증인은 근심 말라고,지금 좋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기에 학비도 근심 말라고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여읜 후 당뇨병합병증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니와 함께 지내면서 이미 결혼한 누나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고중까지는 다녔다.고중을 졸업하고 몇년간 사회에서 떠돌아다니다가 매형 덕분에 일본에 와서 처음엔 대학도 다니고 졸업하면 좋은 회사에 취직도 하려고 했다.하지만 1년간 일본어학교를  다니면서 피땀으로 번 돈을 대학등록금으로 밀어넣자니 마음이 내키지 않아 입학수속을 하지 않았 던것이다.
내가 얼마나 유치하고 어리석었던가!
대학마다 외국인류학생장학금제도가 있기에 등록금은 아까워하지 말라고,불법체류하면서 남들의 비웃음은 절대 사지  말라고 매형이 신신당부했을 때라도 정신을 차리고 입학수속을 했더라면 오늘 경찰들이 집을 찾아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래일 중국에  갔다가  다시 일본에 돌아올 수도 있었을 것이였다.
이제 와서 다시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었다.
오늘은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위급하다는 소식까지 들을 줄은 천만뜻밖이였다.
아들의 근심은 하지 말라고,아들이 중국에 돌아갈 때까지 부디 건강하시라고 자주 문안전화를 드리면서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더 기쁘게 해드렸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가?
이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어머니를,이 못난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실 어머니를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왔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가로등 불빛이 집안으로 비쳐들어오고 있었다.
집에 사람이 있는 걸 알고 부근에 숨어있던 경찰들이 문을 박차고 뛰여들어와 다짜고짜 수갑을 채워서 수용소에 처넣을 것 같아  방전등을 켤 엄두도 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동네집 전등불이 다 꺼진 한밤중에도 전등을 환히 켜놓고 텔레비죤을 보면서 수많은 밤들을 지내왔었는데 오늘은 전등을 켜는 즉시로 동네사람들까지도 경찰들과 같이 달려들 것 같아 숨쉬기마저 가빠졌다.
어떻게 하면 좋을가?래일 자진출국수속하러 갈가?
어쩌면 불법체류하고 있는 나를 이젠 중국에 돌아가라는 하늘의 뜻일지도,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시이가 괘씸하고 밉살스럽다는 생각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네가 밀고하지 않아도 때가 되였으니 중국에 돌아간다고 전화로라도 한바탕 욕설을 퍼부어놓으리라 속으로 윽별렀다.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매형이였다.
"누나한테서 들었다.래일 입국관리국에 가서 재입국수속을 하고 나와 같이 중국에 갔다오자."
이젠 매형한테 불법체류를 하고 있었기에 재입국수속은 할 수 없다고 이실직고해야 했다.
"지금 우리 집에 오거라.집에 와서 얘기하자."
전화기에서 매형의 긴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매형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승호는 트렁크와 가방을 가지고 부랴부랴 집문을 나섰다.택시를 타고 전철역까지 와서야 옆집 하라다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르스름하게 동터오는 새벽,승호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매형과 통화가 끝나자마자 어두운 집에서 나왔는데 집 전등이 환히 켜져있었다.집으로 달려가보았더니 책상 우에 있던 필기장을 손에 쥔 사사끼를 이시이가 가로막고 있었고 이미 얼근해진 스즈끼가 집주인인양 올방자를 틀고 앉아 혼자서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다나까와 이가라시는 보이지 않았다.승호가 들어온 걸 보고 이시이가 사사끼의 손에서 필기장을 와락 빼앗아 발로 마구 짓밟아놓고는 씩씩거리면서 가버렸다.
“나쁜...놈...너를...가만놔두지...않겠다.”
이시이의 뒤통수에 대고 욕하는 사사끼를 스즈끼가 데리고 나갔다.스즈끼의 잔등이 더욱 구부정해 보였고 사사끼는 스즈끼의 배려에 사뭇 감격해하는 듯이 보였다.남의 집문을 쾅 닫고 나가는 그들은 마치 은행에서 저축한 돈을 찾아가는 사람들처럼 당당하기까지 했다.이미 집에 갔으리라 생각했던 사사끼가 집문을 탕탕 두드리고 있었다.
“사사끼!”
승호는 놀라서 눈을 번쩍 떴다.
여기가 어딘가?
창밖을 내다보니 매형네 집이였다.집문을 두드리는 소리는커녕 주위는 파도가 멈춘 바다가처럼 고요했고 옆방에 누운 매형도 일어날 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까짓 필기장을 두고 와서 사사끼의 꿈을 다 꾸는 것일가?그리고 위스키도 두고 와서 스즈끼까지 꿈에 나타난 것일가?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사람도 없는데 누군가가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큰 죄를 짓고 허둥지둥 도망친다는 생각도 들면서 머리속은 헝클어진 삼검불처럼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
승호는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어제와는 다른 아침해가  떠오르면 입국관리국 대문에 절로 발을 들여놓아야 할 것이다.
오전에 자진출국수속을 마친 승호는 집주인과 다나까한테 어머니가 위급하여 중국에 돌아가야 한다고 전화로 작별인사를 하고 나서  이시이한테도 며칠 후 중국에 돌아간다고 전화를 했다.이시이가 그러잖아도 오늘 네가 출근하지 않아서 전화를 하려 했다며 자기도 공장을 그만뒀다고 하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고 물었더니 어제 출근하자 엔도과장이 자기가 선거될 줄 알았던 반장이 다른 사람이 선거되고 래일부터 새 반장이 우리 작업장을 관리한다고 인사발령을 전달하기에 오늘 사표를 냈다며 그동안 고마웠다고 되려 인사를 하는 것이였다.
어제는  그런 일이였었구나!
엔도과장이 퇴근 무렵에 작업장에 들어왔다가 머리만 끄덕여보이고 나간 것은 직원들의 정서에 파동이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였구나.
그러고 보니 각 작업장에는 반장들이 있었지만 새 작업장만은 아직까지 반장이 없었다.
그건 그렇다치고 그럼 이시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밀고했단 말인가?
사사끼는 절대 아닐 것이고 말수도 적고 듬직한 다나까도 결코 아닐 것이다.그렇다면 공장 동료들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집주인도 아닐 것이고 매형과 철이도 아닐 것이다.
불현듯 옆집 하라다가 생각났다.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으면 래일부터라도 좋다며 핸드폰번호까지 알려주던 하라다가 한주일간 옆집에 살고 보니 외국인불법체류자인 내가 불편해서 암암리에  배척하고 싶었을가?그래서 어제 내가 집에 들어올 시간에 맞춰 밀고했다가 경찰들이 돌아간 후에 일부러 집을 찾아온 게 아닐가?그저께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문 밖에서 매일 이 시간이면 퇴근하는가고 묻기까지 했었다.그녀의 얼굴에는 진정으로 나를 혐오하는 기색이 력력히 드러나있었다.
어제는 아이러니하게도 귀가중 자전거에 고장이 생겨 자전거방에 들리다나니 평일보다 반시간이나 늦게 집에 도착하게 되였다.만약 어제도 평일처럼 제시간에 집에 들어갔더라면 어떻게 되였을가?
내가 집에 들어온 걸 확인하고 나서 전화를 해도 늦지 않았을 걸,내가 경찰들에게 잡혀가는 걸 직접 보았더라면 속이 후련했을 걸 하고 그녀는 지금 후회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내가 왜서 하라다는 생각도 못했을가?
밀고자가 누구였는지 이젠 알만 했다.
하라다가 아니라면 누구란 말인가!
누구였든 이미 다 끝나버린 일이였다.누가 밀고하지 않아도 어머니가 위급하다면 오늘 자진출국수속을 했을 것이였다.쇠창살 신세를 면한 것만 해도 다행이였다.
다시 생각해보니 누구를 의심할 자격도 없었다.모든 것이 바보 짓을 한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체념하고 하라다에게 전화를 하려던 승호는 철이한테 매형과 같이 저녁식사를 하자고 전화를 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대형기업들의 통역아르바이트를 해서 두툼한 보수를 받고 있는 철이이다.중국에 가면 할 일이 많을 거라고 위안해주는 철이의 말을 듣고 그동안 공장에서 수걱수걱 일만 하면서 휴일에도 사복경찰들이 있음직한 공중장소에는 나다니지도 못하고 살아온 자신이 철이보다 여러 방면에서 뒤떨어졌음을 뼈저리게 늬우쳤다.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불법체류자라고 주말 아르바이트만 하는 일본인 학생들보다도 낮은 시급을 받은 것이 원통하기만 했다.
일본에서 좋은 인생수업을 받고 중국에 돌아간다고,중국에 돌아가면 더 이상 후회없는 삶을 살 것이라고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드디여  출국날이 다가왔다.
나리다공항에서 탑승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오른 승호는 검은 출국도장이 찍힌 려권을 보면서 긴 한숨을 쏟아냈다.
“며칠 전 새벽에는 사사끼라고 웨치고 엇저녁에는 누구한테 음성메세지를 남기는 것 같던데 너 혹시 무슨 일이 있은 게 아니냐?”
엇저녁에 화장실에 들어가 사사끼한테 여러번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아서 래일 중국에 돌아간다고 메세지를 남겼 던것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매형의 물음에 승호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경찰들이 집을 찾아온 사실을 매형이 알면서 넌지시 물어보는 것 같았다.경찰들의 이야기는 끝까지 비밀에 붙여두어야 했다.매형 뿐만 아니라 누나도 어머니도 절대 알아서는 안되는 일이였다.
승호는 웃으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고 대답하고는 려권을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들어섰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이젠 사용하지도 못할 핸드폰을 그만 꺼버린다는 걸 깜빡 잊고 있었다.
"신호가 인차 끊길 거다.너를 잘 아는 일본녀자일지도 모르니 빨리 받거라."
매형이 웃으며 하는 말에 혹시 옆집 하라다가 아닐가고 화면을 보니 사사끼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오후 1시  비행기라 했더니 어쩌면 때마침 전화가 걸려왔을가?
일본을 영영 떠나는 나에게 전화라도 해주는 사람은 사사끼 밖에 없구나 싶은 생각에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승호는 제꺽 통화버튼을 눌렀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전화였다.
"사사끼구나.나 지금 나리다공항이야.엇저녁에 전화를 하니 받지 않아서 래일 오후 1시 비행기로 중국에 돌아간다고 메세지를 넣었다...나인 줄 알고 받지 않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반장이 선거된 날 스즈끼상이 이시이가 그만둘 거라고,내가 불법체류자라고 가만히 알려주더라구?..."
비행기가 속력을 가하더니 하늘을 향해 솟구쳐올랐다.
“모시모시...”
핸드폰에서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게 웬 일인가?그럼 스즈끼가 밀고했단 말인가?
반년간 같은 작업장에서 일해오면서 아무런 알륵도 없었던  스즈끼가 사사끼에게 내가 불법체류자라고 알려준 저의는 알 수 없었다.이시이가 아니였다면 하라다라고 짐작했는데 스즈끼라니?전화내용을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니 경찰관이 꿈이였다던 사사끼일 가능성도 있어보였다.그럼 그 날 스즈끼한테서 내가 불법체류자임을 알아차린 사사끼가 휴식실 창문가에 앉아서 혼자말로 중얼거리고 있은 것은 나를 밀고하려고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은 것이란 말인가?
이젠 그만 잊자고 했던 악몽 같은 지난날이 다시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다.
도대체 누구일가?
내려다보이던  풍경들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로도 한참을,승호는 멍하니 기창 밖만 응시할 뿐이였다.
두달 후,승호는 중국 연해 모 도시에 있는 일본독자기업에 취직하였다.당시는 중국에 진출한 일본기업들에서 일본어에 능숙한 젊은이들을 긴급히 수요하던 시기였다.비록 대학은 나오지 못했지만 스물다섯살 젊은 나이에 일본류학경험도 있는 승호는 몇년간의 꾸준한  노력을 거쳐 회사의 엘리트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3년이 지난 2000년대초 어느 봄날,일본에 출장가게 되였던 것이다.

집 대문이 조금 열려져있었다.대문에 걸어놓은 우체통에 하라다가 아닌 다른 이름이,담장 벽에 걸어놓은 우체통에도 최가 아닌 다른  이름이 적혀있었다.옛집 주방에서 환기를 시켜놓고 물고기를 굽는 냄새가 어렴풋이 풍겨오고 옆집에서도 젊은 부부간이 도란도란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려왔다.하라다가 다른 곳에 이사 간 모양이였다.승호는 가방에 넣은 선물함을 만지작거렸다.가방 안에는 하라다에게 선물로 드리려고 중국에서 사가지고 온 우롱(乌龙)차가 들어있었다.하라다가 우롱차를 즐겨 마신다고 했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여섯시가 되였다.이젠 그만 전철역으로 되돌아가야 했다.승호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살며시 대문을  닫아놓고 집앞을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전철역으로 향했다.그 날 저녁처럼 하라다에게 인사도 하지 못한 채로.
2년간 살면서 한번도 들어가보지 못한 불고기점,지나면서 군침만 꼴깍 넘기군 했던 불고기점,언젠가는 꼭 들어가보려고 마음 먹었던 전철역 앞 불고기점에서 사사끼를 다시 만나게 되였다.
"사사끼,오랜만이다."
"어...어...설마...사이상...맞아?"
깜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진 사사끼,여전히 말도 어눌하게 하는 사사끼는 그동안 몸보양을 잘해왔는지 피둥피둥 살까지 쪄있었다.저도 모르게 허구픈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래,나다."
승호는 사사끼의 어깨를 가볍게 쥐여박고 아직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얼떨떨해 서있는 사사끼와 옆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는 다나까에게 명함장을 건네주었다.
"오늘은 참 좋은 날이구나.자,건배!"
3년 만에 동료들과 다시 모인 술상이였다.
"이시이는 잘 보내고 있어?"
"지금 부인과 같이 마트를 경영하고 있어."
꿈인지 생시인지 다나까와 얘기를 주고받는 승호를 별나라에서  날아온 우주인처럼 신기하게 쳐다보면서 사사끼는 쑥스럽게 웃고만 있었다.
"다나까상이...지금...우리...작업장...반장이다."
"축하한다.스즈끼는 잘 있겠지?"
이젠 스즈끼를 물어볼 차례가 되였다.스즈끼가 아니면 사사끼 밖에 밀고할 사람이 없었다. 
스즈끼라는 말에 사사끼의 얼굴이 구워진 불고기처럼 지지벌개졌다.
"잔등...때문에...나오지...못한다...그 땐...미안했다."
"무슨 일 있었어?"
아직 밀고사건에 대해선 모르고 있는 다나까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어머니가 위급해서 중국에 돌아간다고 이전에 말했잖아."
사사끼가 손을 후들후들 떨며 다시 입을 벌렸다. 
"내가...경찰에...신고해서...잡혀간...게...아니였니?"
과연 네놈이였구나.다른 사람도 아닌 멍청한 녀석한테 밀고당했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고 기가 막혔다.
다나까가 매서운 눈길로 사사끼를 흘겨보았다.그 서슬에 사사끼는 고개를 푹 수그려뜨리고 있었다.
"지나간 말을 하자고 만난 게 아니다."
사사끼한테서 승인을 받았으면 족한 것이다.승호는 웃으면서 다나까와 사사끼에게 다시 맥주를 권했다.
“이번엔...일본에...오래...있겠지?"
"며칠 후 중국에 돌아간다."
공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여덟시가 되였다.사사끼의 핸드폰이 울리기에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다나까가  볼일이 있다며 작별인사를 하고 자리를 피해주었다.
단둘이 남은 절호의 기회에 사사끼를 어두운 골목에라도 끌고들어가 한바탕 두들겨패줄 수도 있었다.하지만 이번에 사사끼를 만난 것은 분풀이나 추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였다.마지막으로 한번 만나는 것으로 이전의 불법체류자 신분이 아닌 떳떳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사사끼와 더 이상 하고 싶은 말이 없었다.아무 말도 없이 먼저 전차에 오른 승호에게 사사끼가 서운한 듯이 전차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어보이고  있었다.
출국날 오후,우에노에서 스카이라이나로 나리다공항에 도착하여 탑승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을 때 아침에 통화를 했던  다나까한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오늘 출근길에 사사끼가 전차에서 치한현행범으로 체포되였다는 것이였다.
승호는 멀거니 기창 밖을 내다보았다.
어제날 불법체류자를 밀고했던 사사끼가 오늘날 경찰에 잡혀갈 줄은 상상도 못했다.안쓰러운 생각은 들지 않았다.그렇다고 통쾌한 기분도,홀가분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
하늘도 화창한 어느 봄날,비행기는 다시 구름 너머 저켠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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