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근
http://www.zoglo.net/blog/piaozhenggen 블로그홈 | 로그인

※ 댓글

  • 등록된 코멘트가 없습니다
<< 4월 2024 >>
 123456
78910111213
14151617181920
21222324252627
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칼럼/단상/수필/기행

봄양기
2013년 11월 05일 21시 04분  조회:1232  추천:1  작성자: 박정근
나어린 풀이 어찌 봄양기의 은혜 다 갚으리오.
―맹교

 
글/ 박정근
 
남들은 락을 보자고 자식을 낳는다지만 황자, 련자, 옥자 나의 어머니는 고생을 하시려고 나를 낳았다. 샘골(지금의 의란진 시골마을)에서 태여나 샘물을 마시며 자라난 어머니는 순박한 성미를 천성으로 타고났다. 마흔이 넘도록 아버지가 조금만 눈을 굴려도 돌아앉아 옷고름으로 눈굽을 찍었다. 마을을 휩쓸던 장질부사로 하루아침새에 두 아들을 잃었을 때에도 조용히 구석에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 이듬해에 세상에 태여났다. 3년재해로 하여 어머니가 못 잡수시면서 나를 설었던탓인지 세상에 태여난 그 시각 나는 울지도 못했다고 했다.

첫돌이 지난지 얼마 안되여 나는 심한 열에 부대끼다가 의식마저 잃었다. 어머니는 나를 안고 어두운 밤길을 헤치며 공사병원으로 장달음을 했다.

얘야, 정신차려라, 응?”
어머니는 애타게 나를 불렀다. 그 애절한 목소리가 나의 넋을 불렀던지 나는 그예 엄마…” 하고 간신히 어머니를 불렀다.

네가 살아났구나, 정근아!”
어머니는 솔뿌리같은 거친 손으로 나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 자애로운 손길에 나는 눈을 떴다.

선생님, 우리 애가 살아났어요!”

그러나 의사들의 표정은 덤덤했다.
어찌 평생 고생하시겠습니까?”

네? 그럼 애 병이…”
어머니의 눈빛은 불안과 공포에 떨었다.

얘가 소아마비에 걸렸습니다.”

소아마비라니요? 그럼… 고칠수 없는… 병이란 말씀인가요?”
어머니는 나한테 병이 생긴것이 마치 자신의 죄라도 되는것처럼 가슴을 치며 울었다.

순박하고 무식한 시골녀인이였던 어머니는 내 몸에 든 “액운”을 쫓으려고 점쟁이로파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앉았다.

전생에 두 아들을 잃은 죄를 지었지만 이 애만은 액운을 면하고 큰사람이 되게 도와주십시오.”

어머니는 나를 위해 모든 죄를 걸머맡으며 애걸하였다. 내가 병신이기는 하지만 앞길이 트일것이라며 점쟁이로파가 “신통”한 “방토(항간에서 굿을 이르는 말.)”까지 가르쳐주는 바람에 어머니는 너무나 기뻐서 련 며칠 밤을 눈 한번 붙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나를 큰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물방아처럼 돌고도는 농사일도 걸쌈스럽게 했다. 그래서는 돈잎을 쥐기만 하면 나를 업고 용한 의사를 찾아 헤맸다.

어머니는 바람만 맞으면 인츰 눈굽이 축축해지더니 점점 눈빛이 게게해졌다. 변변치 못한 나때문에 자나깨나 속을 태우시며 눈물을 많이 흘린탓이였다. 그런것을 모르는 나가 아니였건만 때론 어머니의 아픈 가슴에 못을 박기도 하였다.

그것은 내가 소학교 1학년에 다니던 때의 일이다. 마지막시간이 끝나자 팔남(가명)이가 구럭에 넣은 고무공을 흔들었다.

우리 엄마 사준거야. 누가 차겠니?”
그 말에 애들이 와그르르 팔남이를 에워쌌다.

나두 함께 차자!”

나두!”

애들이 다투어 청을 들었다. 나도 고무공을 얼마나 차고싶었는지 모른다. 나는 부럽게 애들을 바라보았다.

자기한테 와 붙는 애들이 많자 팔남이는 시뚝해서 우쭐렁거렸다.

안돼. 이제 내가 고무공을 차던지거든 먼저 달려가 주어오는 애와 차겠다.”

내가 달으마.”

나두.”

애들이 앞다투어 나서는 바람에 나도 “나두!”하고 소리쳤다.

너두?”

팔남이가 어이없다는듯 나를 뚫어지게 보았다. 그제야 나는 어망결에 말이 빗나간줄을 깨달고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넌 걷기나 하니?”

팔남의 말에 애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뭐?…”

나는 그만 울컥 설음이 북받쳤다. 눈물이 두덕두덕 옷자락에 떨어졌다.

“정근아!”
누군가의 목멘 부름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데리러 온 어머니였다.

엄마!”
나는 쌓였던 설음이 콱 쏟아져나와 어머니품에 와락 머리를 묻으며 엉엉 울었다.

엄마, 난 왜 걷지 못하나. 나두 애들처럼 뽈을 차구싶어… 흑…”
그 말은 가뜩이나 쓰리고 아픈 어머니의 심장을 오리오리 찢었다. 어머니의 눈에서도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게 다 이 못난 에미탓이야…”

어머니는 나를 둘쳐업고 학교를 벗어나 사람 없는 한적한 곳에 가서 오래도록 넉두리를 하며 울었다…
글을 읽지 못해 무식하기는 했지만 어머니에게는 재미나는 옛말이며 민요들이 많았다. 어머니는 그게 모두 외할아버지 무릎을 베고 누워 배운것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나를 업고 아침저녁으로 학교로 오갈 때마다 옛말을 들려주셨다. 그래서 저녁이면 나는 선녀의 조끼를 훔쳐입고 무지개를 타고 천궁에 올라가 다리를 고치고 돌아오는 꿈도 꾸었다.

내가 밖에서 가댁질하는 애들을 창문너머로 멍하니 보노라면 어머니는 나를 불러 무릎에 앉히고 민요를 배워주었다.

달아 달아, 둥근 달아…”

어머니가 배워준 민요를 부를 때면 계수나무 찍어다가 초가삼간 번듯이 지어놓고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싶은 엉뚱한 환상에 빠지기도 했다.

봄이면 어머니는 나를 업고 산으로 갔다. 나는 샘물가 풀밭에 앉아 책을 읽고 어머니는 산나물을 캤다. 따뜻한 봄양기가 대지를 어루만지여준다. 연록색 풀싹들이 훈훈한 봄바람에 살랑살랑 춤을 추며 산과 들에 파란 주단을 깔았다. 남먼저 피여난 민들레며 진달래들이 주단우에 꽃을 돋쳤다. 종다리가 지종지종 봄노래 부르고 어데선가 풀벌레들이 찌륵찌륵 울고있다.

은은하고 목가적인 산촌의 봄풍경은 나를 어머니한테서 들은 그 신비한 옛말세계에 잠기게 했다. 어데선가 문득 꽃사슴이 뛰쳐나와 귀를 쫑긋거리며 샘물터에 찾아올것 같았고 저 푸른 하늘에서 칠선녀가 내려와 풀밭에서 뒹굴며 놀것만 같았다.

그렇게 어머니는 나의 동심에 파란 꿈을 심어주었다.

어느해 여름이였다. 내가 어머니 등에 업혀 마을로 들어서는데 팔남의 어머니가 절구통같은 허리에 두팔을 지른채 큰대자로 떡 버티고 우리 앞을 막아섰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워낙 입살이 드세고 성미가 가스러져서 동네에서는 “암펌”으로 통하는 팔남의 엄마였다. 보나마나 낮에 남의 연필을 훔친 팔남이한테 내가 좀 뭐라고 했던것때문이 틀림없었다.

형님, 무슨 일이라도 있소?”

그래도 어머니는 여느때처럼 조용히 물었다.

그놈하구 물어보오. 공부하러 간 애를 왜 울려서 집에 보냈는지.”

팔남의 어머니는 나를 삿대질하며 침방울을 튕겼다.

일이 있으면 집에 들어가 조용히 말하기오.”

어머니는 공연히 동네가 소란스러워질가봐 팔남의 어머니를 잡아끌었다. 그러자 팔남의 어머니는 어머니 손을 홱 뿌리쳤다.

야, 이놈아! 병신 바른게 없다더니…”

뭐? 병신?”

어머니는 갑자기 숨소리가 잦아졌다.

이년아, 병신이며는 어째? 너보고 밥 달라더냐 돈 달라더냐?”

어머니가 살천스럽게 쏘아붙였다. 어머니 입에서 예상치 않은 말이 튀여나오자 팔남의 어머니는 눈이 둥그래졌다.

어머니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리더니 나를 내려놓고 팔남의 어머니한테 바투 다가섰다.

흥! 네년두 인젠 제법 기가 자랐구나.”

어머니의 기세에 좀 기가 눌리우기는 했지만 팔남의 어머니는 입에 게거품을 물고 어머니한테 덮쳐들었다. 순간 어머니가 콱 밀쳐놓는 바람에 그 육중한 몸을 땅에 쿵 하고 방아를 찧었다. 어머니의 의외의 거동에 동네사람들도 모두 놀랐다.

쯧쯧, 변변찮은걸 키우자니 별 봉변 다 당하는구만.”

글쎄말이요. 양처럼 온순하던 정근에미두 인젠 저렇게 이악스러워졌다니깐.”

사람들이 이렇게 혀를 찼다.

나는 어머니가 남한테 수모를 당하지 않게 하려고 더욱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래서 해마다 우등생으로 되였고 연변교육출판사에서 “문화대혁명”후 처음으로 출판한 《중학생작문선》에 소설 “우리 반장”을 발표했다. 어머니는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내가 밤중에 깨여나보니 아래목에 누우셨던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안방에서 불빛이 새여나왔다. 나는 문틈으로 안방을 들여다보았다. 웬 가죽구두를 안은 어머니가 얼굴에 미소를 띠운채 명상에 잠겨있었다.

년세에 비해 때이르게 흰 머리발이 듬성듬성했고 이마에는 주름살이 얼기설기 그려져다. 게다가 두눈마저 정기를 잃었다. 나때문에 저렇게 빨리 늙으셨구나 하고 생각하니 설음이 쿡 솟아났다.

어머니!”
내가 이렇게 불러서야 어머니는 명상에서 깨여났다.

그새 꼬박 잠이 들었구나. 참 꿈두 별스럽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면서 안고있던 구두를 어루쓸었다.
글세 네가 학생대렬 제일 앞에서 걸어가지 않겠니? 어찌두 씩씩하게 걷는지 땅이 다 쿵쿵 울리더구나. 하두 희한해서 널 막 부르려다가 네가 멈춰설가봐 입을 다물었지. 그리고는 널 따라서 산두 넘구 강두 건느면서 자꾸자꾸 걸었단다.”

어머니의 눈에서는 맑은 이슬이 번뜩이였다.

“근데 이건 누가 신을 구두예요?”

어머니는 나를 한참이나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왜? 넌 그래 평생 못 걷는다구 생각했냐? 난 네가 꼭 걸을 날이 있다고 생각돼서 이 구두를 사서 농짝에 넣은지 몇년이 되는구나. 이 구두를 신구 행진두 하구 장가두 가야지…”

어머니!”

나는 마침내 자기를 억제못하고 흐느끼고말았다.

어머니 등에 업혀 학교로 오가던 길옆에는 진달래꽃이 몇번이나 피고졌던지 세월은 덧없이 흘러 나도 어느새 고중을 졸업했다. 농촌으로, 초소에로, 대학에로 달려가는 친구들을 보면 가슴이 미여졌지만 나때문에 늘 락루하시는 어머니를 위안하려고 애써 그런 내색을 내지 않았다.

어머니, 근심말아요. 대학에 못가면 말라지요. 집에서 자습해서 장편소설을 꽝꽝 써내는 작가로 될거얘요.”

글쎄, 그러면야 오죽 좋겠느냐?”
어릴 때 어머니가 나의 동심에 심어준 파란 꿈은 그때로부터 부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어벌이 크게 중편소설에 달라붙어 밤낮 부지런히 썼다. 어머니는 바느질감을 찾아들고 앉아 나를 지켜주다가는 한밤중이 되면 미시가루를 타주군 했다.

옛다. 이걸 먹으면 글줄이 잘 풀리겠는지.”

어머니, 인젠 그만 주무세요.”

오냐. 이렇게 널 지켜주는게 자는것보다 마음 편하구나.”

어머니가 이러시면 막히던 글줄도 어쩐지 술술 풀려나갔다. 나는 넉달 품을 들여 중편소설 “로인과 산”(후에 단편소설로 줄여 《연변문학》에 발표했음.)을 다 썼다. 그런데 원고를 편집부에 부친 날부터 나는 소설의 운명을 두고 속을 바질바질 태웠다.
어머니도 매일 동구밖에 나가 우체원을 기다렸다.

젊은이, 우리 애 편지가 있는가 보구려.”

없어요.”
날마다 똑같은 대답이였다.

없긴 왜 없겠소. 다시 잘 찾아보라니까.”

없다는데두요. 아드님 편질 감췄다가 할머니한테 경을 치려구요?”
사람 좋은 우체원은 이렇게 롱을 하면서 어머니한테 우체가방을 들춰보였다.

달포가 지난후 소설은 퇴고를 당해 돌아왔다. 그동안 간신히 부여잡고 살아오던 그 한가닥 희망마저 물거품이 되고보니 인생을 종친것 같아서 나는 몸부림을 치고싶었다.

그날 나는 난생 처음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절망, 고독, 번뇌… 술기운이 오를수록 그것들이 더욱 집요하게 덮쳐들어 나를 괴롭혔다. 나는 더는 되지도 않을 글을 쓰며 어머니 속을 태우고싶지 않았다. 나는 책상우에 놓여있는 원고뭉치를 갈기갈기 찢어 되는대로 뿌려던졌다. 그리고 또 한줌 쥐고 막 찢으려는 순간이였다.

그 손을 못놓겠느냐?”

문득 들려오는 어머니의 벽력같은 소리에 나는 손을 멈췄다. 머리를 돌려보니 노한 어머니의 얼굴이 뿌연 운무속에 안겨왔다.
“이 못난녀석아, 내 이꼴을 보자구 그 고생을 해온줄 아느냐?”

어머니의 성난 목소리는 몹시 떨렸다.

그날 저녁, 어느때나 되였는지 나는 어머니의 두런두런거리는 혼자말소리에 잠에서 깨여났다. 뜨거운 눈물이 나의 얼굴에 뚝뚝 떨어졌다.

“정근아, 사위스럽게 왜 그런 말을 하느냐? 다 내가 에미구실을 못해 그런거구나. 그렇게 사고싶어하던 사전인가 하는 책을 좀 일찍 사줬더래두 소설이 나왔겠는데… 오늘까지40원을 채웠으니 근심말어라. 그 사전에서 글줄이 풀려나온다지…”

순간 나의 가슴에서는 뜨거운것이 치밀어올라 목구멍을 꽉 막았다. 나는 더는 듣고만 있을수 없었다. 무식한탓에 영웅이 되라거나 나라에 유용한 인재가 되라는 말 대신 기껏해야 “큰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어머니지만 마음속 깊은곳에는 불보다 뜨겁고 숭고한 기대가 숨겨져있었다. 그런데 나는 어머니의 그 마음을 한낫 병신자식을 둔 어머니의 천성적인 사랑으로만 여겨왔던것이다. 자책의 몽둥이는 사정없이 나의 심장을 패주었다…

그후부터 나는 문학공부에 더욱 힘을 냈다. “첫술에 배부르겠느냐”고 늘 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을 명기하고 나는 단편소설부터 시작했다. 퇴고를 당할 때마다 어머니의 위로에 용기를 얻고 또 달라붙군 했다. 그래서 끝내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판한 단편소설집 “불타는 백사장”에 첫 소설 “사랑의 죄인”을 발표했다.

나는 날듯이 기뻤다. 벌써 며칠째 앓아누우신 어머니한테 이 소식을 알리면 금시 자리를 털고 일어날것만 같아서 나는 불편한 걸음을 부지런히 옮겼다.

“어머니!”

“정근이 왔냐?”

내 부름소리에 일어난 어머니는 웬 일인지 두손만 허우적거리며 방향을 잡지 못했다. 나는 웬지 어머니 거동이 사위스러워서 얼른 부척해드렸다.

“어머니, 웬 일이세요?”

“눈앞이 부옇구나.”

“어머니, 눈을 크게 떠보세요. 여기 제 소설이 발표된 책이 있어요.”

“뭐? 소설이 발표됐다구?”

순간 어머니의 눈은 빛을 뿜는듯 했다.

“어디 보자. 네가 쓴 소설이란 말이지.”

“여기 있어요. 어머니!”

“네 소설에 내 손을 짚어다구. 오, 이게라지. 가로줄이냐 내리줄이냐?”

“가…가로 주…줄이예요. 흑…”

“글씨는 무슨 색이냐? 검은 색이라구? 같은 값에 붉은 색이면 좋았겠다.”

“소설은 원래 검은 색으로 찍어요.”

“아무튼 용타, 내 아들아!”

그리고는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후 나는 련속 여러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소설 한편을 발표할 때마다 어머니는 한나이씩 더 젊어지는것 같았다. 여태껏 민요를 즐겨 부르던 어머니는 어느때부터인가 내가 작사한 노래를 자신의 18번으로 바꾸었다.

“만물을 키워주는 해빛입니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입니다/ 그 해빛 따사로와 꽃이 피고/ 그 손길 자애로와 행복합니다…

어머니는 그 노래를 부를 때면 얼굴의 주름살이 한오리씩 지워지는것 같았다.

나는 그러는 어머니를 보면서 더욱 악을 쓰고 부지런히 글을 썼다.

1984년에 나는 어머니가 집을 팔아 대주는 학비를 가지고 연변대학 자비생으로 공부를 하다가 그 이듬해에 좋은 정책이 내려온덕에 정식으로 대학시험을 치를수 있게 되였다. 사흘이나 나를 초조히 기다리시던 어머니가 신도 바로 신지 못한채 달려나왔다.

“그래 시험을 잘 봤느냐?”

“네, 어머니.”
나는 신심가득히 말했다.

“아무렴. 내 그럴줄 알았지. 그게 돕는데 장원급제 못할라구?”

“그게라니요?”

어머니의 말에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어머니는 그러는 나의 옷섶을 헤쳐주셨다. 그제서야 나는 나의 옷섶에 까맣고 윤기도는 한가닥의 머리태가 달려있는것을 보았다.

“어머니, 이건…”

“오, 이것 말이냐? 네가 어렸을 때 점쟁이로파가 방토를 일러주는 말이 내 머리에서 제일 고운걸로 백오리를 뽑아서 땋아두었다가 네가 큰일하러 갈 때 옷섶에 매여주라고 하더구나. 그러면 틀림없이 성공한다고.”

“어머니!”
나의 성공을 바라고 자신의 검은 머리를 뽑아 20여년 보관해둔 어머니의 그 뜨거운 마음이 가슴에 안겨와서 나는 그 머리태를 두손에 받쳐든채 어머니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 검은 머리! 원래 어머니의 머리는 모두 이렇게 검고 고왔으련만 지금은 백발이 성성하다. 정녕 어머니는 그 검은 머리를 한오리 한오리 바래워가면서 나를 키우셨다. 하기에 그 오리오리마다에는 천성적인 모성애를 벗어난 어머니의 거룩하고 위대한 사랑이 그대로 고스란히 슴배여있다…

내가 대학에 가던 날 팔남의 어머니가 떡을 해가지고 우리 집에 찾아왔다. 온 동네 사람들이 거지반 축하해주러 왔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도 팔남의 어머니가 반가왔다. 얼마전에 팔남이가 물건을 훔치다가 공안국에 잡혀간후로는 동네에 얼씬하지 않던 팔남의 어머니였다.

팔남의 어머니는 한참이나 무춤거리다가 큰 결심을 내린듯 고패를 뺐다.

“동서…”

나는 팔남의 어머니 목소리도 그렇게 낮을수 있다는걸 처음 알았다.  

“이거 형님이구만. 그러잖아도 형님이 보이지 않아서 섭섭하던참이라오.”

어머니도 결이 삭은듯 무척 반겨주었다.

“동서, 부끄럽소. 난 자식을 낳을줄만 알았지 어떻게 길러야 한다는건 모르고 늙었소. 정말 면목이 없소…”

“원 형님두,  별소릴 다하오.”

“그러니 동서, 그저 마음을 너르게 먹구 전의 일을 싹 잊어주오.”

“아니, 형님이 언제부터 이렇게 옹졸해졌소?”

어머니는 상가롭게 팔남의 어머니를 자기 곁에 잡아 끌어 앉혔다.

“내 동서가 이렇게 너그러울줄 알았다니까. 허허허.”

진정으로 송구스러워하던 팔남의 어머니였으나 나중에는 그 괄괄한 성미를 끝내 감추지 못하고 남자처럼 웃었다.

이젠 어머니가 세상을 뜬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그사이 나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나의 소원대로 어엿한 편집이 되여 일하고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나는 어머니 사랑은 그야말로 두고두고 갚아도 다 갚을수 없는 봄양기같은 은혜라는것을 더 깊이 느끼고있다.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20 “불끈”과 “질끈” 2014-06-18 1 792
19 봄양기 2013-11-05 1 1232
17 존엄있게 산다는건 2013-10-29 0 700
16 음주운전과 나비효과 2013-10-29 0 626
15 사이버시대의 마약 2013-10-29 0 456
14 닉명이라는 이름의 폭력 2013-10-29 1 593
12 “독자우선” 2013-10-29 0 490
11 행복한 고민 2013-10-29 0 499
9 환각과 오유 사이 2013-10-29 0 459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