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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절망하는 자의 친구 / 김광한
2022년 10월 31일 13시 55분  조회:251  추천:0  작성자: 설야

[중편소설]

절망(絶望)하는 자의 친구

김광한

 

내가 그의 방문을 두드렸을 때는 이미 정오가 지나 있었다. 칠월
중순의 열기가 그의 좁고 냄새나는 방 안에 가득차 화끈거렸고, 부엌에는 반
쯤 타다 깨져 버린 연탄 덩어리가 흉물처럼 널려져 있었다.
"시몬 형제여 ! " -
그의 세례명은 시몬이었다. 시몬은 예수의 제자로서 어부였다.
내가 그를 조용히 불렀을 때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바
깥 문고리가 열쇠로 채워져 있지 않은 걸로 보아, 친구는 방 안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시몬 형제여 ! "
몇 차례 반복해서 불렀으나 역시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좁은 부엌으로 내달린 쪽문을 열고 안을 엿보니, 친구는 때에 절
은, 그리하여 극심한 빈궁을 엿보게 하는, 용수철이 헤어진 천 틈
으로 삐져 나온 침대에 벌렁 누워 천장을 향해 눈을 감고 있었다.
방바닥엔 어지럽게 흩어진 책, 담배 꽁초, 휴지 등이 정신없이
널려 있었고, 벽 쪽에는 대학 졸업식 때 찍은 그의 활짝 웃는 흑백
사진이 빛이 바랜채 채 낡은 사진곽에 박혀 있었다.
방 한가운례 있는 조그만 책상 위에는 그리스도의 고상(苦像)이 쓰러져,
누운 채, 슬프고 가련한 얼굴로 절망한 얼굴의 친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 나는 고상(苦像)을 두 손으로 일으켜 세운 다음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
다. 그 고상은 언젠가 그의 황폐할 대로 황페한 영혼이 침몰 직전
내가 사다 준 것이었다.
숨을 내뿜을 때마다 그의 입에서 역겨운 소주 냄새가 풍겼고, 그
것은 좁은 방 안 구석구석까지 배어 있어 견디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의 조그만 눈가엔 말라붙은 눈꼽이 눈 가장자리를 꼭 죄이고
있었고, 헝클어지고 정돈되지 않은 반백의 긴 머리카락은 절망의
늪을 향해 뻗어 있었다.
그의 아내가 극심한 생활고 때문에 보름 전에 세상을 스스로 하
직하고 만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탄생한 곳과는 인연이 먼 벽제 화장터 근처 들판
에 한줌의 재가 돼 흩뿌려진 것이다.
얼마 전까지 이 공간을 메웠던 사람이, 함께 밥을 먹었었고, 비록
사랑의 함량은 남들보다 덜했지만, 늦게 술취해 들어오는 남편 걱
정을 하며 변덕스럽고 까탈스런 사람에게 질책당할까 봐 염려했으
며, 그의 술주정에 보통 여자처럼 잔소리를 했던, 살을 섞으며 살
았던 아내가 이 공간에서 행방 불명이 된 것이다.
그저 잘나지도 않고, 못나지도 않고, 학식은 없지만 하루 세끼
밥 걱정 하지 않을 정도로 친구를 위해 봉사를 하던 아내, 그
내의 모습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시몬 형제여 ! 친구가 왔네 ! "
그제서야 그는 귀찮은 듯 부시시 눈을 떴다. 평소 같으면 그 목
소리에 술병부터 찾았을 그 친구가 오늘은 달라져 있었던 것이디-,
몹시 피로한 얼굴이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는 모두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안히 쉬게 하리라."
하는 성서의 말씀조차 싫은 피로한 얼굴이었다.


한참 동안 그는 낮선 .사람처럼 나를 응시하다가, 술이 덜 깼을
때처럼 늘 하던 표준말과는 아주 다른 국적 잃은 말을 내게 했
다.
"자네가 누군지 나는 알 수가 없네."
그 모습이 몹시 측은했다.
"나야, 이 사람아."
"왜 왔어 ? "
"자네가 염려가 되어서‥‥‥‥
"염려할 때도 있었나?"
그는 아예 내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아니, 인간 자체를 불신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침대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의 빼빼 마르고 여윈 몸이 종잇장처럼 반짝 들어 올려졌다.
그의 아내가 남기고 간 화장대 위의 꽃병도, 간단한 콜드 크림과
로션도, 밥상 위에 있어야 할 쓰다만 원고지도, 의자도 모두 여기
저기 흩어져 어수선했다.
친구가 덮고 자는 침대 위의 더럽고 때가 낀 이불이 늙은이의
주름살처럼 구겨져 있었고, 책상 위에 늘 함께 있었던 달팽이 모양
의 나무 재떨이엔 담배 꽁초와 담뱃재로 가득차 있었다.
부엌에 달린 쪽마루엔 여기저기 벗어 놓은 그의 고린내나는 양
말짝들이 널려 있었고,안측 의자에는 더러워진 걸레나 다름없는 수건이
길게 걸쳐 있었다.
수건엔 지난 여름 야유회 기념이라고 쓴 글씨가 박혀 있었다. 그
야유회 때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했다.
덧문은 열린 채로 있었다.
방 안은 쓸쓸하고 침침하고 숨이 막힐 듯한 공기로 꽉차 있어서,
나는 그저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이런 광경을 보니 내 마음이 아팠다.
친구에게 뭔가 도움을 줄 수 없는 내 마음은 찢어질 듯했다. 모
두가 정상이 아닌 듯했다.
폐차장과 같았다.
폐차장에서 부서진 자동차를 다시 형태를 망가뜨린 채 분해해
부속품을 여기저기 널려 놓은 듯한 장면 같다고나 할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누가 이 시대의 천재를 이렇게 망쳐 놓았을까? 창조주가 창조의
질서를 계획한 그 바깥의 모습이었다.
그의 얼굴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비쳤다.
한때 그는 어떤 중견 신문사의 편집국장이었다.
우두커니 망연자실하고 있는 내게, 친구가 억지로 몸을 반쯤 침
대에 기대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는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겠지. 그래, 자네가 내게 상투적
으로 쓰는 구원이란 글자는 이미 행방불명이 됐네, 마누라는 죽어
버리고, 애새끼들은 뿔뿔이 제 갈길로 가 버리고, 나만 남은 거야.
송장 같은 꼴이 돼 갖고‥‥‥ 자네는 내 한심한 꼬락서니를 보고
뭔가 말해 줘야겠다고 생각하겠지 ? 아주 그럴듯한 음성으로 소피
스트(궤변)처럼 자네가 읽은 훌륭한 책들의 내용과, 그 구절들을
적당히 인용해서, '절망한 사람들이 마침내 구원받았다. ' 그런 류의
이야기를, 나가이 다가시(永井) 박사의 이야기를, 목사나 신부들처
럼 하고 싶겠지. '이 세상은 살 만한 세상이고, 나보다 더 참담한
상황에 빠졌던 사람들이 역경을 헤치고 마침내 일어싫다. 이럴수록
힘없고 보잘것없는 인간들은 하느넘에게 매달려야 한다고, 그
좋은 예가 구약에 나오는 욥이라고 생각하겠지, 그것이 자네의

상투적 용어란 걸 나는 슬프게도 잘 알고.있네, 그러나 이제 나는 아무
것도 믿지 않네. 나를 혼자 있게 내버려'두는 것이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 한 방법이란 걸 자네에게 말해 주고 싶네, 자네는 모든 걸
하느님의 뜻으로 돌리겠지만, 나에겐 그런 하느님이란 필요가 없어
졌네. 절망만을 주는 하느님을 나는 원치 않네. 한때 나도 자네처럼
천주의 어린양이 되려고 무척 애썼네, 그러나 어린양은 점차 나를
못생기고 힘없는 숫염소, 비루먹은 숫염소로 만들어졌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나는 그뜻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겠네."


나가이 다가시(永井降) 박사는 일본 전후(戰後), X선을 통해

일본인들에게건강을 준 사람으로, 그 자신 백혈병으로 죽어간 사람이었다. 그는
원자 폭탄으로 가족들이 모두 죽어 버리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하늘에서 말씀이 들려 이 말을 수용하고 죽을 때까지 환자를 치료
했던 사람이다. 그가 들은 그분의 말은 '이 세상이 다하고 역사가
소멸하더라도 이 말씀은 남아 있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너에게 주는 말씀이다. '라는 성서의 말씀이었다.
친구는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제법 긴 꽁초를 신경질
적으로 집어 들고 있었다.
내가 라이터를 켜 주었다.


그의 눈에는 증오인지 분노인지 알 수 없는 눈물이 고였다. 쪽문
틈으로 화려한 빛이 들어왔다.
그는 방바닥에 흩어진 쓰다 만 원고지를 한 뭉치 집어다가 빛구
멍을 아예 막아 버렸다. 그에겐 이제 술도 필요없게 되었다.
술취한 그에게 바가지를 긁던 마누라가 없어졌기 때문에, 술 마
시는 것에서 해방이 되자 이제 그 술은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나는 그에게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내가 할 말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술 한 병 사올까?"
그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귀찮은 듯이 말했다.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부탁 ? "
"그래. 내 부탁은 자네가 집으로 돌아가 주는 거야. 혼자 있고
싶네."
그가 거듭 말했다.
나는 이제 그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유능한 카운슬러도 그의 절망을 위로해 줄 말이 얼른 생
각나지 않았을 것이다.
"가 주게. 이것이 내 부탁이고 나를 위해 주는 일이네."
집에 돌아온 그 밤에 나는 그를 위해 울면서 기도했다.
내 친구를 위하여, 그의 천재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마음 착한
천재의, 천재를 받아 주지 않는 인정머리없는 속물들의 회개를 위
하여, 겸손을 가장해 친구를 멸시한 사람들의 회개를 위하여, 생계
를 담보로 약한 자를 억압하는 가진 자들의 강퍅한 마음이 풀리기
를‥‥‥ 절망하는 사람들의 팅빈 가슴에 한 줄기 소나기 같은 빛을
내려주소서.그 가슴을 채우게 하소서.친구여,제발 죽지 말아 다오.
나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워 기도했다.


또 한 사람 이 세상 어딘가에 그의 영혼이 떠돌, 그의 아내의 한
맺힌 넋을 위하여, 집 나간 그의 아들들을 위하여, 아이들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위하여, 몹쓸 놈이라고 욕설을 퍼웃는 그의 동료들을
위하여 기도를 했다.

바로 한 달 전, 그는 다니던 직장에서 파면을 당했다.
대낮부터 술에 취해 사람에게 덤벼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가 편
집국장으로 온 지 6개월 만이었다‥‥
그의 대듬은 아주 정당한 것이었다. 그의 잘못은 아무것도 없었
다. 그러나 술을 마셨다는 것이 잘못이었다. 개인 회사에서 사장은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해고를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돼있다. 사장의 말은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업자가 되었다. 과거의 예로 보아, 나이 사십이 넘어
직장을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었다.
몇 군데의 술집을 거쳐 집에 돌아온 것은 새벽녂이었다. 그의 비
좁고 깨끗치 못한 방에는 아내와 큰녀석, 작은녀석이 그 시각까지
자는둥 마는둥 각기 다른 생각을 갖고 누워 있었다.
문 쪽을 향해 첫째 아들, 둘째 아들, 맨 끝에 봉제 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그의 부인이 뒤척거리면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
고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질 듯 한 손으로 겨우
부엌 앞에 기대 있다가, 이윽고 쪽문을 발로 걷어찼다.
이때, 그 순간까지 참아왔던 뱃속의 오물들을 토해 냈다.
"윽윽 ! 윽윽 ! "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빨갛고 거무죽죽한 내용물을 뱉어 낸 그
는, 방문을 열고 전등 스위치를 찾았으나 잡힐 리가 없었다.
몸이 중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문지방을 간신히 지나 방 안으로 들어선 그는, 중심을 잃은 몸으
로 비틀거리면서도, 누군가 한 사람 자신을 부축해 줄 것을 은근히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여지없이 어긋나 버렸다. 가족들은 그를 외
면해 버렸던 것이다. 가족들은 눈을 뜨고 있었지만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겨웠기 때문이다.
형광등 스위치는 그의 손이 달려 있는 방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는 그걸 잡으려고 발을 옮겼다.
그러자 잠든 줄 알았던 큰녀석의 입에서 신경질적인 비명이 튀
어나왔다.
"누구야, 이건 ! "
큰 아들은 그의 이마를 밟은 사람이 아버지인 줄 알았지만 짐짓
모른체했다.
"도둑이야 ! 도둑 ! "
큰아들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상대가·아버지인 줄 알자,
"아버지 또 술 취했어 ! "
하며 원망 섞인 푸념을 했다.
이번에 그가 옮긴 곳은 둘째 아들의 이마였다. 작은녀석도 비명을
질렀다.
"누구야 ! 누구 ! "
상대가 아버지인 줄 알자, 이번엔 큰 소리를 질렀다.
"아버진 도대체 뭣하는 사람이에요. 매일 술만 마시고. 지겨워
못살겠어,"
그는 이 말에 무척 화가 났다. 자신을 뭣하는 사람이냐는 말에
분노를 한 것이다.
"이놈들이 이젠 저의 애비도 몰라보네, 불효 막심한 자식,"
큰아들이 눈을 똑바로 뜨고 따졌다.
"불효 막심한 놈으로 만든 게 누군데요? 아버진 그런 말씀할
자격이 없어요."
그는 그 말에 두 녀석의 귀싸대기를 번갈아 되는 대로 훔쳐 갈
겼다.
아이들의 울음소리에,그의 열 살이나 아래인 아내가 이불을 걷어
젖히고 벌떡 일어났다. 그렇잖아도 이때쯤 뭔가 한 마디 해 주고
싶던 참에 구실이 잡힌 것이다.
그녀는 형광등을 켜자마자 악다구니를 쳤다. 아주 상스러운 호칭
을 써가며, 악에 받쳐 소리쳤다,
"야 이 개새끼야. 네가 뭔데 애들한테 손찌검을 해 ! 네가 남편
이냐? 나가 ! 어유, 저 귀신 같은 건 죽지도 않고 또 들어왔네.
귀신도 눈이 삐었지, 저런 걸 안 잡아가고 누굴 잡아간담! "
그녀는 그것으로 성이 차지 않았던지, 곁에 놓여 있던 달팽이 모
양의 나무 재떨이로 그의 이마를 쳤다.
그러자 친구의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친구는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손으로 찍어 형광등 불빛에 비춰 보았다.
"어,피 !"
아내가 던진 재떨이는 15년 전 신혼 여행 때 제주도 기념품 가
게에서 제법 비싸게 주고 사온 것이었다.
그 재떨이가 15년이 지난 후 흉기로 돌변한 것이다.
"어, 피 ! 이것들이 ! "
친구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술김에 합세해서 자기를 해친다는 생
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니, 그들은 가족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미움과 증오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는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미처 구두도 신지 못했다. 그리고 집
에서 몇 미터 떨어져 있지 않은 파출소로 달려갔다.
새벽 두 시가 지난 파출소 안엔 늙은 차석과 방범대원 두 명이
졸고 있었다. 그가 피를 흘리며 들어서자, 그들은 관내에 폭행 사
건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우선 그의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
주었다.
"폭행 사건이로군."
차석이 그에게 물었다.
"누구에게 맞았소? 범인이 누구요?"
술 취해 꼬부라진 목소리로 그가 대꾸했다.
"아주 나쁜 놈들입니다. "
"깡패요 ? "
"깡패는 아니고‥‥‥
"관내에 깡패는 없는것으로 아는데‥‥‥‥ 술 취해 누구와 다퉜소?"
"아닙니다. "
':그럼 누구요? 범인을 찍어야 우리가 조치를 취하지."
"아주 나쁜 놈들입니다. "
"몇 명이오 ? "
"세 명 입니다. "
"집단 폭행이군,"
"그렇습니다. 집단 폭행이죠."
"장소가 어디요 ? "
"요 앞입니다. "
"때린 놈들 그대로 있습니까?"
"있습니다. 도망가진 못할 겁니다. "
"인상 착의는 ? "
"한 명은 여자고, 두 놈은 젊은 놈입니다. 세 명이서 합세해 내
이마를 쳤습니다. "
"뭣하는 사람들이오 ? "
"묻지만 말고 빨리 출동하십시오."
차석이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우리가 뭘 알아야 하지 않소?"
"갑시다. "
"좋소, 갑시다. 당신이 앞장서시오. 김씨, 권총 좀 챙겨 주시오."
김씨는 방범대원이었다. 방범대원이 챙겨 주는 권총을 허리에 차
고 차석이 일어섰다. 차석은 나이가 나이인지라 약간 겁을 먹은 듯
떨고 있었다.
"도망하지 않았을까? 나는 파출소를 지켜야 하는데‥‥‥‥
차석이 말했다. 난폭한 폭행 피의자를 겁내는 말투였다.
"그대로 있을 겁니다. "
"아는 사람입니까 ? "
방범대원이 묻자 차석이 이를 정정했다.
"면식범인가 ? "
"모르는 사람입니다. "
"시비를 했군. 당신이 먼저 시비를 건 거 아냐?"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이유없이 저를 때렸습니다. "
"그럴 리가 있나. 당신이 먼저 시비를 걸었겠지. "미국말"을 하는
투로 봐서‥‥‥‥
"정말입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피해잡니다. "
"술 마시다가 선생께서 옆손님들에게 말참견을 했겠지. 옆자리에
끼어서 깐죽대니까, 그런 거 아냐?"
"제가요. ? "
그때 차석이 말했다.
"김씨가 혼자 다녀와, 우리는 파출소를 지킬 테니까."
"알겠습니 다. "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파출소를 홀로 나온 방범대원은 그가 비
틀거리며 인도하는 대로 따라갔다.
그는 자기 집으로 방범대원을 인도했다.
"자, 들어오십시오."
방범대원은 폭행당한 장소가 포장 마차나 술집이 아니고 가정집
이라는데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그는 형광등이 켜진 자기 방으로 먼저 들어갔다. 그 방엔 아내가
두 아들과 함께 신세 한탄을 하고 있었다.
"어디요 ? "
"여기요."
방범대원이 그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그가 손짓했다.
"바로 저 세 사람입니다. 저 사람들이 나를 이 꼴로 안들었습니
그가 범인을 찍었다.
방범대원이 보아하니 범인이란 사람들이 양순하게 생긴 아녀자와
고등 학교 학생들인 것을 알고 우선 반항할 것 같지 않아 물었다.
"당신들이오? 이 사람 이마에 피를 내게 한 사람들이 ?"
어안이 벙벙해진 세 사람, 아내는 남편이 이제 머리가 돌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남편을 보자 울음부터 터뜨렸다. 이제 볼장 다
봤다고 생각했다.
방범대원과 눈길이 마주친 남편,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처벌해 주십시오, 이런 것들은 아주 혼내 줘야 합니다. 합세해서
구타했습니다. "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의 아내가 얼굴을 묻고 흐느끼고
있었다. 뒤따라 그의 두 아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영문을 모르는 방범대원이 자신의 직무 수행상,
"자, 파출소로 갑시다. "
하고 으름장을 놓다가, 웬일인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의 아내에게 물었다.
"이 사람 누구요 ? "
아내가 대답했다.
"애들 아빠예요. 술에 취해 정신이 나갔나 봐요."
"애들 아빠라면 당신 남편이오?"
"맞아요,"
방범대원은 맥이 탁 풀렸다. 오래간만에 한 건 하려 한 것이 수
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여보, 당신이 이 집의 가장이 아닙니까? 마누라한테 얻어 터
지고 파출소에 와서 신고하는 사람 당신말고 이 세상에 또 있겠
소? 별 싱거운 사람 다 왔네, 어서 잠이나 한숨 자요. 알코올 중
독이로군."
방범대원은 툴툴거리며 파출소로 돌아갔다.


우리 친구들은 이 말을 전해 듣고 모두 웃었다. 그냥 웃는 것이
아니라 비웃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가 정신병자가 됐다고, 폐인이
됐다고 그를 경멸했다. 그의 불행에 대해 친구들은 쾌재를 불렀다.
남의 불행을 보고 좋아하는 속물들은 지식의 유무를 결코 가리지
않는 법 이다.
그러나 나는 웃지 않았다.
그의 불행에 대해 울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의 불행을 자초했는
가. 무엇이 그의 천재적인 두뇌를 치매화시켰는가.
그가 알코올에 탐닉하고, 따라서 우스꽝스런 행동을 하게 만든
것은, 매사에 점잖고,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 약한 우리
들이었다. 오히려 그는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의 친구 편에
섰던 것이다.
직원들의 불이익에 그는 앞장서서 변호를 했었다. 그것이 그를
파멸케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결국 우리들이 받아들여 주지 않았던 것이다. 나눔의 결여,
사랑의 결점, 그리고 개인의 조그만 안위 같은 것이 그를 정신병자
로 몰았던 것이다. 그는 결코 정신병자가 아니었다.
그가 이 사회에 온전히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의 실력이 속물들
보다 뒤져 있어야 했고, 정치적 경제적 안목이 그저 그런 보통 사
람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는 불행히도 그렇질 못했던 것이다. 적당히 속물적이고, 불의와
타협할 줄 알고,늘 그 가운데 서야만 했다. 그런데 그는 남들보다 앞
섰던 것이다.
종교와 문학과, 그리고 인생에 대해 조금 아는 체를 했던 것이다.
아는 것을 그대로 말했던 것이다.
그가 실업자가 된 후,그의 아내가 자살을 했다. 남편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아이들의 타락은 점점'늪을 향
해 갔기 때문이다. 본드 흡입과 퇴학, 그러자 아내는 절망을 했던
것이다.
아내가 자살했기 때문에 그는 다니던 성당 교우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자살은 죄악이었기 때문이다. 성당 교우들은 자살한 교우의
집에 오길 꺼려한다는 그의 생각 때문이었다. 교우들은 교리에 충
실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영문 모르는 교우들이 연도를 오려 하자, 그는 오히려 거절을 했
다.
"올 필요 없습니다. "
그는 교우들의 형식적이고 규격적인 신앙 생활에 회의를 느꼈던
것이다. 사랑이 결여된 교우들의 태도, 사랑과 나눔보다 교리에 충
실하려는 교우들을 그는 경멸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신앙이란 인간들이 저희들끼리 만들어 놓은 정신적인
위안이라고 생각하게끔 됐다.


그는 영세를 받은 후 일 년 동안 열심히 성당엘 나갔다.
주일 미사는 물론, 새벽 미사에도 빠지지 않았다. 신부의 강론을
종이에 적어, 가능하면 그대로 실천하려 애쓰며 충실한 하느님의
어린양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신앙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영세식날 '시몬'이란 영세명을 선물했고, 대부(代父)
가 되어 주었다. 물론 그의 본명은 성인들의 탄생월에서 딴 것과는
거리가 먼 본명이었다.
그는 세례명을 받고 뛸 듯이 기뻐했다.
"자네는 이제 변 시몬이다. 형제들에게 변 시몬이라고 말해 줘.
축하하네."
그러자 그가 물었다.
"시몬이란 사람이 뭐했던 사람이니 ? 2천 년 전 사람이란 건 알
고 있지만‥‥‥
"예수님의 제자야, 고기 잡던 어부였지."


"고기 잡던 어부?" -
어부란 말에 그는 다소 기분이 언짢은 것 같았다.
"왜 ? "
"그냥."
"그럼 그 시몬말고 다른 시몬으로 하지, 어부였던 사람이 맘에
들지 않으면 "키레네"의 시몬이라고 하지. 골고다 언덕에서 기진맥진
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시몬,그 시몬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지. 자네는 남을 위해 수많은 헌신을 했으니까."
그는 남의 장례식에 웬만하면 참석했다. 그리고 남의 불행에 앞
장서서 위로를 했었다. 그만큼 가진 것은 없었지만 정이 많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가난했는지 모른다.
"고맙다. "
내가 다시 말했다.
"두 개의 십자가, 때로는 자기 이외의 십자가, 세 개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는 사람을 하느님은 더 귀하게 생각한다네. 자네는 그
럴 사람이야. 축복하네."
그 후부터 그는 열심히 성당 일에 참석했다. 나는 그가 다니던
성당의 교우들의 입을 통하여,그가 레지오단에 들어가 봉사 활동을
잘 한다고 들었을 때, 그의 새로운 변신에 새삼 기쁨을 느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나를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의 얼굴에 웬일
인지 기쁜 빛이 사라져 있었고, 수심이 가득했다. 대낮이었는데 입
에서 술냄새가 풍겼다.
그를 근처 다방으로 데려갔다.
"무슨 일 ? "
"있었지."
"회사일? 아니면 신상에 관한? "
"후자 쪽이야. 난 아무래도 다시 돌아가야만 하겠다. "
"다시 돌아가다니 ? "
"내 식대로 살겠어. 남의 집에 들어가 한 식구가 되려고 한 것을
후회하고 있네,"
"남의 집 ? 그게 왜 남의 집인가? 성당이란 바로 자네 집이네.
그분이 자네를 받아들인 거지."
"아닐세. 그분은 안 계시고 객식구들만 잔뜩 있네. 그래서 내 식
대로 산다고 맹세를 했지. 그게 더 인간적이고 정직한 것 같아."
"그럼 성당 생활이나 신앙마저 그만두겠다는 건가?"
"일테면 그렇지."
"일 년 동안 일 주일에 한 번씩 교리 공부한 건 어떻게 하고?
아깝지 않아 ? "
"소설 쓰는 데 참고로 할 거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 누군가 자네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 같
은데‥‥‥‥
"아닐세. 지난 날 자네에게 진 죄의 회개를 위해 다섯 번씩이나
고해 성사를 보았네."
"네게 무슨 죄를 졌다고?"
"술 마시고 자정이 지나 전화를 해서 자네 부인을 괴롭히고,자네
집에 가서 방뇨를 하고‥‥‥‥
"이 사람아, 그런 건 죄도 아냐. 오히려 즐거운 일이지. 나는 누
구보다도 자네를 이해하네. 그래서 대부도 선 것 아닌가. 난 이미
잊어 버리고 있었어.자네가 새롭게 영적으로 태어난 것만으로도 이
세상에서 모든 보속을 다 받았다고 생각하네,"
내 이야기에 그는 침을 한 번 삼키고 말을 꺼냈다.
"노동자들이 모인 장소에서, 양복을 입고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꺼내면 그들이 받아주지 않지.왜냐하면
그건 남의 이야기이니까. 양복을 벗고 노동자의 입장이 되어서 이
야길 하면 그들과 한 패거린 줄 알고 친근감을 느끼게 되지. 나는
실업자 생활을 할 때 그걸 느꼈지. 한때 나는 아파트 경비원을 하
려고 맘먹었네. 자네도 알고 있겠지. 실업자 생활이 얼마나 무서운
줄‥‥‥ 그래서 말이야. 이력서의 학력란에 고졸이라고 썼지.아파트
경비소장이 그 동안 무엇하며 살았느냐고 하기에, 월부책 장사를
했다고 했어, 소장이 다시 물었어. 월부책 장사하기가 힘들지 않느
냐고. 그래서 이렇게 둘러댔지. 친한 사람에게 찾아가 책 사기를
권했을 때,상대방이 핑계를 대고 거절했을 때가 제일 맘이 상했었
다고 그했더니 대번에 소장이 친근감을 갖는 거야. 소장이 하는 말
이, 사실은 자기도 책장사를 한 경험이 있다는 거야. 그가 어느 센
터에 있었고 누구를 아느냐고 묻기에, 을지로 3가 쁘렝탕 백화점 옆
삼층 건물에 있었고, 금성 센터 '이준구'라는 사람을 잘 안다고 둘
러댔지. 이준구는 나의 고등학교 동창이었지"
그러나 그는 거기서 여지없이 거절을 당했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서 갖춰야 할 것 이상을 갖췄기 때문이다. 아파트 경비원이란 외모
가 적당히 늙어야만 하고, 적당히 무식하고, 손마디가 퉁겨져 나와
야 하고, 용모가 준수하지 못해야 하고, 약간의 노예 근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 건 나중에 그를 추천해 준 경비원 윤씨의 입을 통
해서였다.
윤씨는 비번날 친구인 변찬호를 근무하는 아파트에서 꽤 멀리
떨어진 허름한 대폿집으로 데려갔다. 그 대폿집은 아파트 경비원을
비롯해 청소원, 방범대원 등이 단골로 드나드는, 쌍과부집이란 상
호가 붙은 목로 주점이었다.
아파트 근처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주민들에게 발각이 되면
당장 불이익이 올까 봐서였다.
윤씨는 그에게 심각하게 그것 보라는 듯이,
"변씨, 내가 뭐랬어 큰 평수 가진 아파트에 사는 것들은 자기나
남편보다 못난 경비원을 원하거든. 그래야지만 자기들의 자존심을
충족시킬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일테면 약방에 가서 경비원
에게 바카스 한 병만 사오라고 시킬 때, 경비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람을 뭘로 아느냐고 그래 봐. 당장 쫓아내지, 개처럼 고분
고분 말 잘 듣는 착한 그런 경비원을 원하거든. 변씨는 그들에게
너무 사람이 고급스럽게 비쳤던 거야. 변씨도 생각을 해 봐. 졸부
들에겐 졸부들의 근성이 있거든. 그들의 오늘이 있기까지를 남들에
게 과시하고 싶은 거야. 뭔가 우쭐대고 싶고, 객기를 발휘하고 싶은
거야, 그들이 명절날에 용돈에 보태 쓰라고 몇 푼씩 던져 주는 것,
우리들에겐 고맙고 무척 인간적이라고 느낄지 모르나 사실은 그게
아니야. 자기가 데리고 있는 세퍼드에게 고깃덩어리 한 개 던져 준
다고 느끼면서, 그들의 자존심을 충족시키는 거야. 만일에‥‥‥‥
하며 경비원 윤씨는 친구를 딱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만일에 말이야. 내가 던져 준 고깃덩어리를 세퍼드에게 던졌을
때, 세퍼드가 덥석 받아 덕지 않고 그걸 외면한다면 내가 화나지
않겠어. 세퍼드에겐 자존심이 없거든.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꼬리를
흔들지 않는 세퍼드는 원하지 않는 거야. 세퍼드는 세퍼드라야 하
고, 경비원은 경비원이라야 하거든. 경비원이 철학책을 끼고 다닌
다고 생각해 봐. 그들이 가만 있겠나. 경비원이나 세퍼드에겐 인격
을 기대할 수가 없는 거야."
윤씨와 헤어져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부인이 기대에 차 물었다.
남편이 경비원 이상의 학력과 경력, 그리고 인물을 겸비했으니까
경비원쯤이야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잘 됐겠죠."
"안됐어,"
그는 통명스럽게 대답했다.
"안되다니요 ? "
아내가 짜증스럽게 물었다.
"이력서를 잘못 썼나 봐."
"잘못 쓰다니요 ? "
"고졸이라고 했더니 안된다고 하는 거야."
"왜 고졸이 학력이 낮아서 그래요?"
"아냐, 더 낮게 쓸 걸 그랬어."
"중졸이라고 할 걸 그랬죠."
"양심이 있지,"
"양심이 밥 먹여 준답디까?"
아내는 처음에는 남편을 위로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신경질을
냈다. 나중에는 입에 거품까지 물고 밥상머리에 앉아 숟가락을 달
그락거리기까지 했다.
그의 아내는 경비원도 못 하는 남편이 밉살스러졌다. 밉살스러운
경지를 떠나 증오스러웠다. 그녀는 시간이 지나자 남편에게 내놓고
짜증을 부렸다.
"내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아랫마을 방앗간집 아들한테 시집
이나 갈걸. 그 사람에게 갔으면 먹는 것 걱정은 하지 않았을 거야,
허우대 멀쩡하고 대학 출신이라고 갔더니 사람 잡았지. 아이구, 내
팔자야."
하며 그녀는 밥상머리에 앉을 때마다 거품을 물고 그에게 상처 내
는 말을 함부로 했다.
신혼 초엔 남편의 이름은 커녕,그림자조차 얼씬 못하던 그녀였다.
열 살이나 아래인 그녀는 처음 남편의 호칭을 선생님이라고 했고,
그 후에 부장님, 여보란 소리로 된 것은 결혼 십 년이 지나서였다.
아내는 남편이 근무하던 회사의 경리 사원이었던 것이다.
이런 남편이, 10년이 지나자 아내로부터 평가 절하를 받게 된
것이다. 이만저만한 평가 절하가 아니었다. 그는 결혼 생활 10여 년
동안 변변치 못한 직장에서 몇 번씩 쫓겨나기도 했고, 스스로 물러
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는 젊었었다.
그래서 그의 이력서는 한 장으로 부족했다. 그런데 지금 오십줄의
나이에 들어서자, 점차 자신감을 상실해 갔다. 실업자가 되고부터
몸과 육신이 쇠락의 길을 걸어갔고, 모든 것이 까마득하기만 했다.
자신있게 이야기하던 학문에 대한 이론도, 그것이 쓸모없다고 느
끼게 되었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던 사고 방식도, 그리고 종교 자
체도 흥미를 잃어버렸다.


한때 그는 매일 새벽 미사에 빠지지 않고 참례했었다. 새벽에 일
어나 종교 방송을 듣는 하루의 일과는 그에게 정신적 건강을 안겨
주었었다. 비록 신심이 두텁지는 않았지만, 새벽 미사는 그의 삶의
활력소를 안겨 주었다. 그러다가 어쩐 일인지 성당에 나갈 주일 아
침이면 술집을 찾았다. 그리하여 아침부터 술에 젖어 주일의 시간은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게 된 것이다.
그는 다방 레지에게 위스키를 한 잔 주문했다. 더 취해 보자는
것이었다.
레지는 별 이상한 손님 다 보겠다는 투로 가재눈을 했다.
"여기가 뭐 술 파는 덴 줄 아세요?"
"왜 ? 술 가져오라는 데 뭐 잘못됐어 ? 위티라는 것도 있잖아.
위스키 차 말이야."
"여긴 술 파는 카페가 아녜요. 다방이에요. 혹시 밤이라면 몰라
도‥‥‥‥
하며 차를 주문할 것을 권했다.
"옛날엔 팔았잖아."
"그건 손님이 젊었을 적 이야기죠. 그런 다방 이젠 다 없어졌어
요. 위스키 마시고 싶으면 카페로 가셔야죠,"
"내 이럴 줄 알고 준비해 왔지."
그는 레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언제 준비했던지 속주머니에서
이홉짜리 소주병을 꺼냈다. 그는 반쯤 남아 있던 소주를 병째 나팔
을 불었다.
곁의 손님이 이상하다는 듯인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내가 걱정이 되어서 물었다.
"그렇게 마셔도 되는 거야?"
"괜찮아. 내게 믿는 것이라곤 이놈밖에 없어.
이 세상에서 제일 정직한 것 같아. 적게 마시면
적게 취하고 많이마시면 많이 취하고‥‥

그의 몸이 투명한 액체가 들어가자 더욱 흐트러졌다.
손님들이 저희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그에게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한결같이 한심하다는 눈초리였다.
나는 그의 손에서 술병을 억지로 빼앗았다. 그러나 빈병이었다.
그가 다소 흥분해서 말했다.
"나는 앞으로 성당이나 교회 같은 곳은 절대 나가지 않을 거야.
모두가 똑같아. 왜냐고? 구(9)원보다 나는 십원이 더 좋으니까. 저희
들끼리 구원이니 영생이니 하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말장난일 뿐이
야. 자네도 생각해 봐. 지금 이 시간 현존하는 그리스도가 어디 있
다고 생각하나.사는 그 동안 순진하게 구원과 육신의 부활 같은 걸
어린애처럼 믿었던 거야.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것들은 전문가들의
자기 합리화에 불과했던 거야."
"전문가 ? "
"전문가라는 말이 이상한가? 교회의 목사나 성당의 신부들 말
이야. 그들은 그런 것들이 없으면 발붙일 데가 없거든. 그래서 신
자들을 끌어들이는 거야. 신자들이 있어야 물질적인 충족을 하게 돼
있거든. 이를테면 신자들이란 도구들이지."
"이 사람아, 그런 불경스런 말이 어디 있나. 함부로 이야기하는
자네의 마음이 몹시황폐해 있네."
내 말에 그는 비웃듯이 말했다.
"성당에서 영성체하는 빵 쪼가리에 그리스도가 있다고 생각하
나? 천만의 말씀이지. 감실(龕室) 안에 그리스도가 있는 줄 알고
그 앞에서 열심히 기도도 했지. 그러나 말일세, 감실 안에는 밀가루
를 반죽한 조그만 빵조각이 몇백 개 모여 있을 뿐이었어. 그것이 예수님이
고 그리스도라고? 그리스도가 빵이 됐단 말인가? 그걸 먹으면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 그걸 먹고 똑
바로 행동을 해야 그리스도의 축복을 받는 것이지. 천주교 신자 좋
아하네. 그리스도를 팔아서 장사하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
아?"
나는 그를 측은하게 쳐다보았다. 왜 그가 그토록 황폐해졌을까.
"영세까지 받은 자네의 입에서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올 수 있
나?"
"영세 ? "
하며 그는 시니컬하게 웃었다.
"물론 자네는 내 몸 속에, 내 영혼을 타락시키는 나쁜 마귀가
침투했다고 생각하겠지. 또 그렇게 확신을 갖겠지. 그러나 보시다
시피 내 영혼은 이렇게 멀쩡하네. 술에 좀 취했을 뿐이야 본래의
나대로 돌아왔을뿐이야. 신(神)을 믿는 작자들의 눈에는 모든 현상
을 신으로 귀결시키려고 하지.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그러나 그
건 자기합리화였을 뿐이야, 자기 모순이었지. 그걸 알았을 때 나는
더 저항감에 빠졌네. 저희들끼리 만든 종교, 저희들끼리 만든 교회
안에 그리스도가 현존한다? 웃기지 마."


그는 나를 가소롭다는 듯이 노려보았다. 그는 종교에 대해 일종의
화풀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일테면 여의도 광장에 백만이 넘는 신도들이 모여 신앙 집회를
한다고 치자. 저희들끼리 박수를 치고 울고불고, 간증을 하고 법석
을 떨 때 만일 말이야. 이상한 구름이 떠 있다고 치자. 그 구름의
모양이 사람을 닮았을 때, 그들은 그리스도가 나타났다고 금방 단
정을 내리는 거야. 우연히 구름 조각이 모여 있는 현상을 갖고 그
들은 감격을 하지. 거길 그리스도가 나타났다고 확신하는 거지, 그
리스도가 생각하면 배꼽이 .빠질 일이지. 그래야만 집회가 성공한다
는 길 영악한 교회의 지도자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거야. 그
리스도가 그 시간에 나타났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 그것이 문제야.
그것은 어디까지나 저희들이 소속한 종교 단체 안에서의 일일 뿐
이야. 찻잔 속에서 회오리 바람이 몰아친다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이
있겠나. 그것이 과연 우리 역사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다고 생각하
나.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할 뿐이야, 마치 노아의 방주 안에 든
사람들처럼 저희들끼리 은혜를 받았다고 야단을 치는데, 그것은 지
독한 자기 모순이네. 그것이 남들에게 무슨 큰의미가 있겠나."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지 말게."
"내가 부정적이라고 ? "
그는 종교에 대한 허구를 간파한 사람처럼 자신의 이론을 늘어
놓았다.
그렇게 많이 취한 것 같지 않았다. 아마 그 동안 술이 깨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인데, 요즘 교회에서 부활이 있다고 생각.
하나? "
그는 내가 마치 범인인 것처럼 나를 노려보았다.
"글쎄 ? "
"부활이란 죽음이 있어야 하는데, 죽음이란 일종의 순교가 아니
겠어, 죽음이란 자네도 알지만 객사나 자연사는 아니지. 순교자. 요
즘 교회에서 순교자가 나오니 ? 물론 정치 상황이 옛날과 많이 달
라졌긴 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지, 그걸 난 얼마 전에 뼈저리게
느꼈네. 있다면 말의 성찬만 늘어놓는 비겁한 종교인들만 있을 뿐
이야. 대통령을 위한 조찬 기도회에 다녀온 목사들이 대우를 받는
종교 집단에 난 환멸을 느꼈네."
그는 말을 마치고 또 다른 주머니에서 소주병을 꺼냈디·. 이번 것
은 종이에 포장된 휴대용이었다.
그는 그것을 빨대를 이용하여 빨아 마셨다. 마치 우유를 마시듯
이. 그는 이미 알코을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알코올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지 않네."
내가 말하자 그는 소주병을 들어 내게 내밀었다. 한 잔 마시라는
거였다. 내가 고개를 흔들자 그는,
"지금의 내 친구는 이놈뿐이야,"
하고 한 모금을 맛있게 들이키더니 목청을 높였다.
"얼마 전에 말이야, 우리 구역에서 모임이 있었네, 구역 모임이란
것 자네도 알지? 신도들 가운데 제법 잘산다는 집에 모여 구역미사를
드렸지. 그런데 그 참석자의 대부분이 물질을 많이 소유한 자들이
었네. 물질이 많다는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그들을 색안경 쓰고 보지 말아, 그들이라고 자비심이 없는
것이 아니니까. 자네가 갖질 못해서 기분이 상했나 본데‥‥‥‥
"아니야. 나는 갖지 못한 것에 아무런 불만이 없네. 물질을 그리
귀하게 생각지도 않고‥‥‥‥
"자네의 판단이 남들에겐 어리석게도 비칠 수가 있네. 자네는 뭔
가 크게 오해를 하고 있어. 자네가 갖고 있는 흑백 논리에서 벗어
나야 하네. 가난한 사람은 모두 정직하고 착하고 겸손하고, 가난의
원인을 나눔에 있다는 생각, 그리고 부자는 모두 헙잡꾼, 도둑놈,
사기꾼이라는 논리를 난 반대하네."
"그 얘길 하자는 게 아니야, 그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의 직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닐세. 그들은 하나같이 회사의 경영자, 부동산 업
자들, 졸부들, 빌딩의 주인들이었어 빌딩도 몇 개씩 소유한 자들이
었네. 구역 모임이 아니라 마치 주식 회사의 주주 총회를 하는 느
낌이었지,물론 자네 말처럼 많이 소유했다고 해서 그들에게 잘못이
있다는 건 아니지. 그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소외되고 병들고 억압
받고 경제적으로 피폐한 형제들이 문제였네, 가진 자들은 그들에게
절대 문호를 개방하지 않는 것일세. 그들에게 돈은 물론 아무것도
빌려 주지 않으려 하네. 왜냐.하면 돌려받을 수가 없으니까. 신부나
목사가 늘 이야기하지, 그리스도는 의인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니라
병든 자를 만나기 위해서 왔다고‥‥‥그러나 그 자리에는 병든 자나
가난한 자, 죄진 자, 보잘것없는 자들은 낄 수가 없는 거야. 그들이
문턱을 높게 만들어 저희들끼리 가진 것의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
해서이지, 가난한 자들은 아예 그런 자리에 끼어들지 않지. 아니,
스스로 포기를 했던 거야.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수치스러뤘던 거
야.'그들은 자기 지위에 맞는 자들과 자리를 함께 하는 것이 즐거
움이 있다고 생각하네, 의사는 건강한 자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역
할밖에 할 수 없는 것이지, 이런 논리라면 그리스도가 뭐 필요가
있겠나, 의사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기껏해야 못생긴 여자의 얼굴
이나 성형해 주고 화냥기 있는 여자들의 성적 쾌감을 높이기 위한
이쁜이 수술이나 해 주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라면 그 의사는, 아니
그리스도는 중산층의 가진 자들의 편에 서는 중산층 그리스도에
불과하네."
그는 남아 있는 소주곽의 소주를 홀짝 들이켰다.
"그래서 그들은 구억 모임에 참석치 않는 거야. 거칠어진 손, 못
배워서 문자 쓰는 것에 빈곤한 형제, 그들은 성서에서만 나타날 뿐
이야. 정작 주인공들은 한 사람도 참석치 않고, 객꾼들만 모여서
그들의 세상을 구가하기 위한 기도를 올릴 뿐이야, 미사를 마치고
마당에서 신부와 악수를 나누고, 덕담을 하고, 건강을 묻고, 웃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라고 생각하나, 그들에겐 의사가
필요도 없어. 정작 의사가 필요한 사람들은, 의사를 찾지 않고 마
당에서 도망치듯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네, 자네 솔직히 말해 보게.
가진 자들, 권력 있는 자들의 구억 모임 현장에 그리스도가 나타난
다고 생각하나. 만일 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하자. 그들에게 너희
들이 가진 것 모두 다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고 나를 따라오너라,
그래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면 그들이 따라온다고 생각하나.
그들은 기대가 불확실한 내일보다 오늘의 즐거움과 부(富)를 원하지.
아마도 한 명도 따라가지 않을 걸세, 어떻게 얻은 재물인데. 그 재
물을 얻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남들의 눈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게 했는데, 그 재물을 두고 따라갈 것 같은가. 어림도
없지, 그리스도는 그 재물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대상에 불과하
네, 그들은 자기들이 부자로 있을 때만 그리스도를 찾는 거야. 그
리스도가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하지. 그들은 가난한 것에
대해 겁을 내지. 그것뿐이 아니라 가난한 자조차 싫어하네. 그들은
처음엔 얌전히 저희들끼리 기도를 하고, 마치 무슨 큰 신앙 체험이
나 한 것처럼 조작한 신앙 체험을 이야기하지, 일테면 아이들이 중
병에 걸렸는데, 매일 새벽 기도를 하니까 꿈에 그리스도가 나타나
일어나거라 했더니 병이 말끔히 씻겨졌다는 허황된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하지, 그들은 오늘의 부를 가져오게 한 하느님을 찬미하지,
자신들은 마치 하느님에게 특별히 선발된 선민이란 인식을 갖고
가난뱅이들에게 군림하지. 자신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고,
가난뱅이들은 하느님에게 버림받았다는 우쭐한 생각을 하지, 가난
뱅이들과 만나는 것을 자연 꺼리게 된다네. 가난뱅이들에게 자신들
의 자녀가, 자신이 소유한 부가 오염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기 때문
이네. 그들은 그들이 소유한 호화 주택과 자동차와 부동산과 어느
지역에 땅을 사놓으면 투자 가치가 높을 것인가 토의를 벌이네. 그
것도 싫증이 나면 배우자의 출신 학교 자랑, 처가 쪽의 권세 자랑,
애새끼 삼류 대학에 입학한 자랑, 그것으로 대충 마감을 한다네,
이런 식이야. 이런 자리에 햇볕에 얼굴이 그슬린 생선 장사 아줌마
나, 파출부나, 공사판의 잡부로 있는 신자가 불쑥 나타나 보게. 그
들은 자신들의 자리에 이런 자들이 나타나길 원치 않지. 물론 그들
은 이런 자들 앞에 결코 나타나지도 않겠지만, 그들에게는 부자들의
전매 특허가 된 종교 현장에는 나타나지 않을 걸세. 나 역시 마찬
가지네. 나는 그런 자리에 결코 나타나지 않을 걸세."
그는 점점 진지하게 자기의 종교적 이론을 전개해 나갔다. 나는
그의 생각의 깊이에 탄복을 했다. 그렇다고 그의 이야기들이 반드시
옳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그의 이론이 정연한 것만은 인정해
야만 했다.
많은 양의 술을 마셨지만, 그의 정신은 의외로 말짱한 것 같았다.
내가 물었다.
"그럼 자네가 생각하는 현존하는 그리스도는 어디 있다고 생각
하나? "
그는 담배 한 모금을 깊숙이 빨았다. 그리고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뭔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자네는 내 생각이 초신자(初信者)가 갖는 의례적인 회의라고
느낄지 모르네, 그러나 나는 이 문제를 놓고 무척 많은 시간 동안
고민을 했었지, 그러다가 마침내 결론을 내렸어."
"그 결론은 ? "
"떠나야겠다는 생각이지. 그래서 떠난 거야."
그는 울먹이는 음성으로 말했다. 무척 실망과 분노에 찬 얼굴이
었다.
"그리스도는 말일세. 예배당에서 목사가 침을'튀기며 설교할 때
그곳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네..그것은 오직 성직자들의
성직을 수행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네. 하나의 예식에 지나지 않
네. 신부가 집전하는 미사 때, 빵을 나눌 때 그 빵 조각에 들어 있
다고도 생각지 않네. 나는 해방 신학이니 민중 신학이니 익명의 그
리스도 같은 종교적인 이론을 모르고 있네, 알 필요도 없고, 다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만 이야기할 뿐이네. 그런 것들은 직업적인
종교 학자가 할 일이지.자네는 내게 이것 아니면 안된다고 강요했
을 때, 나는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다는 걸 이야기할 뿐이야."
"자네가 생각하는 그리스도는?"
나는 재차 물었다.
"어느 곳에 현존하나? "
"글쎄, 그걸 내가 안다면 내가 왜 이렇게 괴로워하는가? "
"자네는 지식인으로서 종교에 접근하길 꺼려하는 것이네. 그러나
종교는 일단 구원이 전제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지식에 앞서 있다
고 믿네. 자네의 지식을 모두 버리고 어린아이가 되었을 때,종교는
자네를 순순히 받아들이게 되네."
나는 그에게 어쩌면 왜곡되었을 성 싶은 그의 이론을 정정해주는
노력을 했다. 그러나 나 역시 내 말에 확신이 서'있지 않았다. 나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이론에 지나지 않았다.
"나무 몇 개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있네,
자네가 참석한 구역모임을 자네는 어떤 회사의 주주 총회를 방불케
했다 치자.
그사람들 모두가 정작 구원보다도 현실에 안주하는 데 만족하여 신
이라든가 하느님은 오히려 그들의 장식물로 여긴다 치자, 또 그
람들 마음 속에 있는 교만과 허영심, 욕심 그 외에 모든 쓰레기
같은 생각들이 곧 하느님의 뜻은 아니지 않나. 그럼 자네는 다른
길로 가면 될 것이 아닌가. 하느님이 기뻐하실 일만 나름대로 챙기
면 되지 않나, 자네가 그들을 질타하고 욕을 하고, 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건 자네가 갖는 또 하나의 오만에
불과하네. 그 오만이 자네를 못쓰게 만들고 있네, 하느님은 침묵을
지키는 사람을 원하거든‥‥‥‥
나는 내가 아는 종교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 즉 교회나 성당이나
절에 출석하는 것이 목사나 신부 또는 스님을 만나기 위해서, 그들
_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내 말에 못마땅한 듯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부정적인 삶보다 긍정적인 삶을 가지라는 이야기지, 그건 누구나
말할 수가 있어. 마치 그건 부모가 자식의 탈선을 막기 위해 이야
기하는 것에 불과하네. 일종의 일반 상식이지. 신앙, 믿음이란 그런
것과는 차원이 틀린 거야. 좀 심각하지.':
그는 신앙뿐만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삶 자체마저 의혹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신앙의 문으로 돌아올 걸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나 나
의 이야기가 그에게 먹혀 들어갈 것 같지 않았다.
"자넨 뭔가 의혹을 갖고 있네.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은 존재하지
않네. 일테면 예수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것을 믿지 않
으면 기독교를 믿을 수가 없네, 그것에서부터 기독교의 신앙은 출
발하네, 만일 자네가 과학자라지만, 예수가 사람이었고, 사람은 죽는
것이고, 죽은 사람은 화장을 하지 않을 경우 일정 기간 유해, 즉
뼈를 남긴다는 것, 그 뼈가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겠지. 성서(聖書)에
대한 의혹이란 한없이 많이 있네. 나도 처음엔 그랬네, 태초에 에덴
동산에 아담과 이브가 살았지. 발가벗고 말일세. 그때는 부끄러움
이란 것이 없었네. 그들에게 카인과 아벨이란 두 아들이 있었는데,
카인이 욕심과 질투 때문에 아벨을 죽였지. 그런데 카인은 남자였
네. 인류의 조상이 카인이라고 하지만, 카인에게 부인이 있어야 할
텐데, 성서에는 카인의 여자 이야기가 나오질 않네. 여자가 있어야
지, 거기서 사람이 번식할 텐데. '그 당시 여자가 어디 있었느냐. 또
그 후에 노아란 사람이 나오네. 세상의 죄악이 하늘에까지 만연해
멸망시키려 할 때, 의인인 노아만을 살려 주기 위해 방주를 만들려
고 했네.·방주란 기관이 딸리지 않고 그냥 떠 있는 배를 말하네. 그
배에 세상에 산(生)것 가운데 암컷과 수컷을 모두 태워 종족을 보존시
키라고 했는데, 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짐승을 태웠느냐, 또 박
테리아나 바이러스, 사랄의 눈에 징그러움을 안겨 주는 지렁이나
뱀, 굼뱅이, 전갈 같은 것을 태웠겠느냐 등등 따지고 들면 한이 없
네."
친구가 내 말을 막았다.
"너무 고리타분한 이야기는 않기로 하지."
"자네가 지금 생각하는 종교에 대한 허구를 나는 허구라고 생각
지 않기 때문에 사도신경을 바치고 그것을 믿고 있네. 불신자가 생
각하면 헛된 일인지도 모르지. 그리스도가 어디에 현존하느냐.물론
교회당 안에서, 목사의 설교 때, 미사 예식에서 빵을 나눌 때 그리
스도가 현존한다고 생각지는 않네.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 병든 자를 필요로 하니까 참석한 자들 가운데 가난한 자, 병든
자를 눈여겨 보겠지.자네는 이렇게 말이야.부자나 탐욕이 많은 자,
마음이 깨끗지 못한 자들이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이 가져야 할 그
리스도의 은총을 가로챈다고 말이야,그것 역시 자네가 갖는 질투가
아니겠나."
그는 내 말에 깊은 고뇌의 표정을 지었다.
"만일에 말이야.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고 인도나 스리랑카
에서 태어났다면 힌두교나 불교를 믿었어야 할 거야.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종교를 놔두고 이름과 형식이 그 나라에 맞지 않는 종교가
마음에 와 닿을 턱이 있겠나, 그들이 가톨릭을 믿지 않는 이유는
아주 당연하지.우리가 아프리카의 이상한 종족이 믿는 종교를 믿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겠지. 한국 사람이 일본 종교인 남묘호렝교를
믿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나."
친구는 내가 자기를 설득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빈약한 종교
지식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자네는 신앙이란 걸 갖더니 말이 늘어난 것만 같네."
"아무렇게나 생각해도 좋네. 자네의 영혼이 무척 황폐한 것 같아
서 안타깝네. 우리 나라에 처음 들어온 선교사들, 모방이나 샤스텡
엥베르 같은 사람들이 미개하기만 한 조정의 관리들에게 붙잡혀
목이 날렸네. 그들이 죽으면서 전파해 준 종교가 나는 믿을 수 있
다고 생각했네. 그들이 뭐가 답답해 조선이란 깨이지 않은 나라에
들어와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목숨을 내놓았겠는가. 그들은 문명
국에서 태어나 그들의 눈에 비친 종교의 미개국에서 목숨을 내놓
았네. 자네가 지금 절망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이해가 가네. 그러나
신앙이란 좀더 한 차원 높게 생각할 필요가 있지."
그러자 친구가 내 말에 반박을 했다.
"한 무명의 대학생이 최루탄에 맞아 죽었지. 단지 데모를 했다는
이유로‥‥‥ 대학생이 데모를 한 이유는 불의에 대한 항거였었네.
무명의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한 것처럼,
그 대학생은 민중 속에서 부활했네. 대학생이 불의한 권력 집단에
의해 처단이 되고 나서 민중들이 분노했지. 그때 민중들은 '주여 !
주여 ! 어디로 가시나이까? ' 하고 외치지 않았어. 다만 민중들은
힘을 합쳐 불의한 집단을 향해 소리쳤네 '대학생을 살려 내라! '
하고 말이야. 종교는 그 시간에 저희들끼리 기도를 했고, 여의도에
서 대규모 집회를 가졌네, 그들은 마치 노아의 방주에 탄 자들처럼
종교를 저희들만이 갖는 특권인 듯 울고 불고 손바닥을 치며, 되지
도 않는 간증을 하고 연보 바구니를 돌렸네. 하느님에게 감사한다는
뜻으로 말일세, 그리스도가 그 시각에 나타난다면 어떤 생각을 했
을까? 대학생의 죽음의 현장에 나타날 것인가, 그들의 집단적인
이익의 현장에 나타날 것인가 생각을 해 보게,"
그는 종이곽에 든 소주를 계속 음미하면서 마셨다. 그와의 대화가
조금 지루해졌다. 그가 할 말을 모두 내게 했기 때문에 화제가 빈
곤해졌기 때문이다.
어설픈 종교 이야기 같아서 무료해진 것 같았다.
나와 헤어진 후 어쩐 일인지 그는 무척 상냥해졌다. 종교의 무거
운 의무감에서부터 벗어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역사 소설을 한 권 썼는데, 곧 출판될 예정이라고 했다.
"출판 기념회 때 꼭 와 줘, 어쩌면 이것이 나의 마지막 작품이
될는지 알 수 없네."
"이 사람아, 마지막이라니. 자넨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나."
"아닐세."
그런지 며칠 후 그의 부인이 쥐약을 먹고 자살했다. 그가 쓴 책이
현실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책 한 권을 쓰는 일보다도 경비원 노릇이 더 현실적으로 맞는다
·고 생각한 아내의 비극이었다.


그의 부인은 처음부터 월급을 꼬박꼬박 가져다 주는 공무원이나
기술자 남편을 얻었어야 행복할 사람이었다.
돈이 되지 못하는 지식과 철학을 그녀는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해가 힘든 오케스트라나 클래식보다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가
더 현실적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장례는 화장으로 치러졌고 벽제 화장장 2번 화구에서 한
줌의 재가 되어 육신의 탈을 벗었다.
그녀가 죽자 두 아들은, 어머니의 죽음이 아버지에게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적개심을 품게 되었다.
"아버진 뭐예요. 어머니를 죽게 하고, 가장이면 가장으로서의 책
임을 져야 할 게 아녜요."
큰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삿대질을 했다. 친구는 그 말에 아
무런 할 말을 못했다.
"그래, 내 탓이다. "
"참 편리한 사고 방식이네요."
둘째 아들이 비아냥거렸다.
아이들은 마침내 가출을 했다.
그 후 그는 매일 술로 보냈다.
그러던 그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 표정은 무척 활기에 차 있었고, 목소리는 희망에 들떴다.
"글을 써야겠어,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영혼의 글을 말이야. 잘
먹고 잘사는 그런 상업적인 글이 아니고, 진정으로 소외되고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되는 글을 써야겠어. 적어도 나는 그 고통을 체험했고,
또 아직까지 그 고통이 진행중이니까, 나는 그들의 심정을 잘 알
수가 있지."
"좋은 생각이야."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보다, 함께 고통을 나누고 해방돼 보자
는‥‥‥‥ 어쩌면 고통도 기쁨의 일종인지 모르네."
"그렇지. 진정한 행복이란 고통 뒤에 오는 것이니까. 고민이 없는
사람이 행복이 무엇인지나 알겠나. 왕궁에서 태어난 왕자에겐 기쁨
도 없는 법일세"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무척 기뻐했다. 옛날의 그로서 돌아가게
할 힘이란 내게 없었다. 그것은 그 자신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야만
했다.
"열심히 해 봐."
"고맙네,"
"자네라면 할 수가 있네."


그런지 이틀 만에 교통 사고를 당한 것이다. 만취해 육교 밑으로
건너다 승용차에 치인 것이다.
내가 찾아갔을 때 그는 여의도 성모 병원의 중환자실에 누워 있
었다. 목뼈가 부러지고 전신 타박상에다 뇌신경이 손상을 입었던
것이다.
"소생할 수 있겠습니까?"
내 말에 간호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하얀 천장만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모
처럼만에 그의 세례명을 불렀다.
"시몬 형제 ! "
그의 몸을 흔들었으나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그는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뭔가 내게 말을 하려 했으나 입이 움직여 주지가 않
았다. 그 시각에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가 쓰려던
소설의 다음 줄거리를 생각하고 있었을까. 아무리 시와 소설이 큰
가치가 있다고 한들 그의 생명만큼 가치가 있을까. -

나는 내가 잘 아는 사내에게 청원을 해 보기로 했다.

사내는 오래 전 "내 슬픔의 현장"에서 나를 위로해줬던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도 모른체 그저 프란체스코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내와 함께 찾아온 것이다. 사내가 내게 말했다.
"형제여, 친구가 살아나길 소망하오?"
" 예 ,"
"친구가 그걸 원할까요 ? "
" 예 ."
"그럼 가봅시다. "
나는 사내의 뒤를 따라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중환자실은 소독약
냄새로 코를 찌를 것만 같았다. 다섯 명의 중환자가 있었는데, 모
두가 교통 사고였다. 그들로부터 들려 오는 비명은 마치 단말마의
소리 같았다.
우리는 소독된 푸른색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두 번째 침대에 누워 있는 친구에게 다가갔다.
사내가 친구 앞에 서서 잠시 기도를 했다.
"주여 ! 이 불쌍한 영혼을 거두지 마옵소서. 이 형제는 아직까지
할 일이 많은 사람입니다. 순간적인 강퍅한 마음으로 주의 마음을
상케 했지만, 선량하고 착한 사람이옵니다. 주여 ! "
그러자 친구가 눈을 뜨고 사내를 응시했다. 눈동자가 돌아가는
것으로 보아서, 뭔가 그에게 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내가 친구에게 말했다.
"형제여, 지금부터 내가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옳다면 눈을 세
번 깜박거리시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친구는 사내의 이야기가 끝나자 세 번 눈을 깜박거렸다. 사내의
말을 알아듣고 있는 것 같았다.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눈을 한 번 깜박거리시오, 그건 형제의
자유요."
사내는 친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머리는 핏자국이
말라붙어서인지 꺼멓게 변색되어 있었다.
"형제여, 그대는 육신의 부활을 원하시오? 아니면 이 세상이
아직도 살 만한 가치가'있다고 생각하시오 ? "
친구는 그 말에 눈을 세 번 깜박거렸다. 아마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좋소, 형제에겐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또 살아오면
서 많은 빚을 졌으니까. 그 빚을 갚도록 하시오. 지금 그분께서 말
씀하셨소."
내가 사내에게 물었다.
"친구는 가난하게 살았지만 빚은 없는 걸로 알고 있소. 구멍가게
의 소주 외상 값도 모두 갚았소."
사내가 말했다.
"그런 빚이 아니오, 형제에게는 자신의 지식을 이웃들에게 나눠
주지 않은 지식의 직무 유기요, 그것도 일종의 빚이 될 수가 있소.
그것은 가난한 지식인이 갖는 원초적인 오만이라고 할 수 있소. 내
말이 틀렸소, 형제 ?"
친구가 다시 세 번 눈을 깜박거렸다.
"좋소. 형제는 다시 살아난다면 사람을 사랑하겠소?"
이번에도 친구는 세 번 눈을 깜박거렀다.
"사람을 사랑하다니요. ? "
내가 묻자 사내가 말했다.
"이 형제는 오직자신만을 사랑했던 것이오. 현실에 대한 불만이
그것이오. 불만이란 형제의 마음 속에 사랑이 결여돼 있을 때 일어
나는 것이오."
이때 친구의 얼굴에 화기가 돌아왔다. 까무잡잡하지만 그의 얼굴
에 평화스런 빛이 내보이기 시작했다.
"형제여, 지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지식을 갖지 못한 형제들을 사
랑하시오, 그대가 갖는 현실적인 판단에 너무 집착,하지 마시오. 형
제는 지금부터 어린 아기가 되어야 하오.그렇게 할 수가 있겠소?"
친구는 역시 세 번 눈을 깜박거렸다.
"또 한 가지의 죄가 있소. 그것은 옳은 일을 한다고 본인은 생
각했지만, 그것이 반드시 그렇지 않았던 것이오. 그로 인해 형제의
가족에게 고통의 시간을 안겨 주었소. 그것을 깊이 생각할 수가 있
겠소? "
친구는 이번에도 세 번 눈을 깜박거렀다.
사내가 내게 이야기했다.
"형제의 친구는 다시 살아날 것이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를
살리셨소. 물론 나는 그리스도는 아니오. 그리스도의 발가락에 낀
때만도 못한 인물이오, 그러나 그분의 위대한 능력과 사랑은 나 같
은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능력을 주셨소. 시몬 형제는 그가 일찍이
밟았던 땅을 다시 밟을 것이오."
사내는 친구의 이마를 두 손으로 다정히 쓰다듬더니 성호를 그
었다.
"성부와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그러자 침대 모서리에 움였던 그의 손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리고 그의 굳어 버렀던 목이 좌우로 흔들리고, 그의 굳게 닫혔던
입에서 음성이 새어나왔다.
"갑갑해. 나를 풀어 줘."
나는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사가 환자에게 돌변한 사태, 죽음 같
은 것이 오지 않았나 싶어 급히 달려왔다. 사내가 말했다.
"이 형제는 살아났소. 지금 이 형제를 묶은 끈을 풀어 주시오."
간호사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이 우리들을 둘러보았다. 친구가
말했다.
"나를 풀어 주시오. 여기가 도대체 어디요? 통 기억이 없으
니‥‥‥‥
간호사가 놀란 듯 급히 담당 의사에게 뛰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담당 의사를 비롯한 병원의 원로급 의사와 원무과 직원들이 모두
나타났다. 그리고 친구의 침대 둘레에 모여섰다. 모두가 이상한 일
이란 듯 놀란 표정들이었다. 사내가 다시 말했다.
"자애로우신 그리스도께서 이 형제를 사망의 권세에서 살아나게
하셨소. 모두 축하해 주셔야 하오."
원장인 듯한 나이 든 의사가 성호를 그었다.가톨릭 신자였다.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는 환자에게 붕대를 감아 주었을 뿐,
아무런 능력이 없었습니다. 생명을 관찰하시는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의사이십니다. 알렐루야 ! "
간호사가 그의 결박된 두 손과 두 발을 풀어 주었다. 그는 꿈속
에서 깨어난 듯 기지개를 힘껏 켜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침대에
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자기 둘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이상한
듯이 쳐다 보았다.
이때 스피커를 통해 기도문이 들려 왔다.
기도 시간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기도문에 맞춰 성호를 긋기도
했고, 바닥에 엎드려 이 놀랄 만한 기적 같은 사건에 환희에 차
몸을 떨기도 했다.

아들아, 네게 당부해 두겠다.
내가 이 세상에 파견된 것은
하느님의 사랑스런 아들들
모든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사랑이신 아버지께서
진정으로 바라신 것은
자신이 무(無)에서 만들어 생명을 준
지상의 사랑스런 아들들은
단 한 명도 멸망하여 잃지 않고
모든 사람을 영원한 생명에로
인도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행복과 영광에 참여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싫어하는 이를 억지로
영원한 생명에로 인도하는 것은
바라시지도 않으며 또 질 수도 없다.
그래서 내가 왔다.
내가 이 세상에서
아버지와 아들을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손을 내밀고 맞잡아
아버지의 타는 듯한
사랑의 극치를 전하기 위해
나는 이 세상에 왔다.
그러나 나는 놀랐다.
내가 내민 손은 허공에서
언제까지고 보답을 찾지 못한 채
차가웠다.
아무도 이 가난뱅이 목수 아들의
옹이투성이인 손에
눈을 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손을 내민 채
사랑을 찾아 걷고 또 걸었다.
내가 내민 손은
병자를 고쳐 주고
눈먼 이의 눈을 뜨게 하고
말 못 하는 이들 혀를 풀어 주며
나병 환자를 깨끗이 고쳐 주고
죽은 이를 살려 주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참 따뜻한 내 손을 깨닫지 못했다.
내민 내 손가락에
사람들은 왕자의 황금 반지를
끼우려고 했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형제들은
마침내 내 손을 잡았다.
그리하여 그 생명을 건질 수가 있었다.
아멘.

친구는 침대에서 내려오더니, 사내 앞에서 그를 멀거니 쳐다보았
다. 그러다가 물었다.
"꿈에서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
병원 원장이 물었다.
"꿈에서 이 사람을 보았다고요? "
" 예 ."
"이분이 누구인가요 ? "
친구가 대답했다.
"가장 가난한 친구.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앞에 능력을 주
는 분. 그리고 물질 대신 마음 속에 사랑과 평화를 담뿍 담아 절
망하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눠 주는 분입니다. "
"그분이 누굽니까 ? "
원장이 다시 물었다.
"당신을 살려 준 분이 누구요? 이건 의학 지식을 모조리 무식의
소치로 돌려 버린 일대 사건이오. 이 사람은 누구요?"
친구가 말했다.
"프란치스코. 우리들의 가장 가난한 친구입니다.꿈에 보았습니다. "
사람들이 사내의 주위에 둘러섰다.
"선생이 프란치스코요 ? "
사내는 빙긋이 웃었다.
"프란치스코란 영세명은 흔한데,"
이젠 내가 말할 차례였다.
"이분은 진짜 프란치스코입니다. "
그러나 누구의 입에서 먼저 나왔는지,
"프란치스코 만세 ! 프란치스코 만세 ! "
하며 손을 흔들었다.
죽어가는 중환자실의 환자들이 일시에 일어났다. 죽음의 사막에서
죽어가던 사람들은 생명의 오아시스를 찾았던 것이다. 그 오아시스
는 힘센 자, 권력있는 자, 돈있는 자, 오만한 자에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장 힘없는 자, 보잘것없는 자, 약한 자, 그러나 사랑과 평
화가 마음 속에 충만한 프란치스코에게 나왔던 것이다.

 

에필로그

 

20여년전에 친구인 한 가톨릭 신부가 있었다.이 친구는 번역실력이 뛰어나 가톨릭 사전을 비롯해 여러권의

신앙서적을 번역했다.어느날 이 친구가 11세기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 성인에 대해

소설로 써보라고 했다.그는 프란치스코 회 소속 수사신부였던 것이다.그래서 망서리다가 옴니버스 형식을

빌어서 20여편의 단편을 썼다.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소설이다.

그 신부는 몇년후 선종(善終)을 했다.
 

[작가 약력]
 

1944년 서울 용산 출생

중앙대 문리대 국문학과 69년졸업

시와 시론 소설 당선으로 문단데뷰

한국문인협회회원

백두대간, 로만칼라, 소설 윤유일 등 30여권 소설집 발행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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