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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좋은 글 233 - '축의금 만 삼천 원'
2015년 12월 11일 12시 38분  조회:3354  추천:0  작성자: 말(話)
"축의금 만 삼천 원" 
 

작가 이철환
 
서울 쌍문동 "풀무야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는 작가 이철환의
"축의금 만 삼천원"이란 글이 있습니다.
오래된 글이지만 짠한 감동이 있기에 다시 올려 본다.
 
"축의금 만 삼천 원"
 
10년 전, 나의 결혼식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예식장 로비에 서서 형주를 찾았지만 끝끝내 형주는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형주 아내가 토막 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급히 올라왔다.
"고속도로가 너무 막혀서 여덟 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어쩌나, 예식이 다 끝나 버렸네..."
숨을 몰아쉬는 친구 아내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왜 뛰어왔어요. 아기도 등에 업었으면서...  이마에 땀 좀 봐요.”
초라한 차림으로 숨을 몰아쉬는 친구의 아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 왔어요. 죄송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덮고 등 뒤의 아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눈물을 글썽이면서 축의금 만 삼천원과 편지 한통을 건네 주었다..
 
 
 
친구가 보낸 편지에는
 
"친구야!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내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함께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야지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카 사과장사가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아기가 오늘밤 분유를 굶어야 한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 삼천원이다.
하지만 슬프지 않다.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너무 기쁘다.
 
개 밥그릇에 떠있는 별이 돈보다 더 아름다운 거라고
울먹이던 네 얼굴이 가슴을 파고 들었다.
 
아내 손에 사과 한봉지를 들려 보낸다.
 

 
 
지난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가서 먹어라.

친구여,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 해다오.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다.
 
해남에서 친구가"
 

 
 
편지와 함께 들어 있던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세 장..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했던 형주가 거리에 서서 한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다.
 
나는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놈, 왜 사과를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 우적 씹어 댔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신랑이 눈물 흘리면 안 되는데...
 
다 떨어진 신발을 신은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 할텐데...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가 가슴 아파 할까봐
나는 이를 사려 물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큰 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어깨를 출렁이며 울어 버렸다.
 
사람들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가운데 서서...
 
 

 
[답장]
 
친구야! 술 한잔하자
우리들의 주머니 형편대로
포장마차면 어떻고 시장 좌판이면 어떠냐?
마주보며 높이든 술잔만으로도 우린 족한걸,
 
목청 돋우며 얼굴 벌겋게 쏟아내는 동서고금의 진리부터
솔깃하며 은근하게 내려놓는 음담패설까지도
한잔 술에겐 좋은 안주인걸,
 
자네가 어려울 때 큰 도움이 되지 못해 마음 아프고
부끄러워도 오히려 웃는 자네 모습에 마음 놓이고
내 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고 말할 땐 뭉클한 가슴.
우리 열심히 살아보자.
 
찾으면 곁에 있는 변치 않는 너의 우정이 있어
이렇게 부딪치는 술잔은 맑은소리를 내며 반기는데...
 
친구야! 고맙다... 술 한잔하자
친구야 술 한잔하자!
 

 
형주는 지금 조그만 지방 읍내에서 서점을 하고 있다.
 
'들꽃서점 '
열평도 안 되는 조그만 서점이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이 편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무 의자가 여덟 개다.
 
그 조그만 서점에서
내 책 '행복한 고물상' 저자 사인회를 하잖다.
 
 
 
버스를 타고 남으로 남으로 여덟 시간을 달렸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서 많은 독자들에게 사인회를 해줄 때와는
다른 행복이었다.
 
정오부터 밤 9시까지 사인회는 아홉시간이나 계속됐다.
사인을 받은 사람은 일곱명이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친구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으로만 이야기했다.
 
"형주야, 나도 너처럼 감나무가 되고 싶었어.
살며시 웃으며 담장 너머로 손을 내미는
사랑 많은 감나무가 되고 싶었어..."
 
- 이철환, '곰보빵' 중에서...
 
 

 
 
이철환 소설가, 공고 졸업, 강원대학교 졸업
출생 1962년 (서울특별시)
저서 반성문, 연탄길, 곰보빵, 행복한 고물상, 행복한 붕어빵
수상 제33회 문화관광부 추천도서 '연탄길'
 
집안 형편 때문에 공고를 나온 뒤 공장에서 일하다 뒤늦게 대학을 졸업한 그는
입시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칠 때 자신의 학력을 선뜻 말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서울대 출신'이라고 생각한 아이들에게 차마 '아니다'고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은
지금도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다.
또 대학 시절 친구들이 독재 타도를 외치며 길거리로 나섰을 때 장학금을 받기 위해 시험을 치렀던 일,
여자의 몸을 훔쳐본 일, 아이 때문에 아내에게 화를 내며 수박을 던져버린 일 등도
너무나 후회스럽다.
 
- 반성문 내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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