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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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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문학살롱》

천재시인 오장환
2014년 08월 28일 06시 35분  조회:1739  추천:1  작성자: 림금산
신—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지난시간에는 30년대 대표적 시인 김기림과 그의 일부
작품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충북이 낳은 천재적인 시인 오장환과 그의 시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부회장 림금산선생님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림—수고하십니다.
 
신—오장환시인은 조선전쟁때 병으로 사망한줄로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문단에서
천재적 기질을 보이던 시인이였는데 아깝게도 34세라는 아까운 나이로 저 세상으로 갔더군요.
먼저 생평에 대해서 소개해주시겠습니까?
 
림-오장환의 생애
오장환은 1918년 5월 15일 충북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140번지에서 오학근의 3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한학수는 오학근의 첩이었기에 그는 서자 출신인 셈이다. 회인공립보통학교를
3학년까지 다니고 1930년(13세), 경기도안성공립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중등학교
속성과 수료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학비를
마련하지 못하고 1933년에는 휴학을 하게 된다. 휘문고보시절에 “휘원”이라는 교지에 시를 발표.
동시도 방정환이 꾸리는 “어린이”지에 동시 “바다” 등 발표.
1933년(16세)11월에 『조선문학』에 시「목욕간」을 발표.
1936년(19세)에 『낭만』『시인부락』 동인으로 참가하게 된다. 한편 이 해 4월부터
 명치대학 전문부 문예과 별과에 수학하게 되지만 1년 만에 제적된다.
1937년(20세),『자오선』동인으로 참가하였으며, 이 해 7월에는 제 1시집
<성벽『城壁』>을 간행하기에 이른다. 이 첫 시집은 발행인이 홍구(洪九)로 되어
있으나 실상은 100부 한정의 자비 출판이었다.
1938년(21세), 에는 부친 오학근이 사망하고, 자신은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
남만서점(南蠻書店)이라는 책방을 낸다. 이는 오장환이 시 쓰기 이외에는
별 다른 직업을 가져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경제적 궁핍에
의해서 호구지책으로 일을 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1939년, 제2시집 <헌사『獻詞』>를 간행하는데 발행인이 자기 자신으로 되어있다.
1945년(28세)에는 신장병으로 병운 입원실에서 해방을 맞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 2월에 <조선문학가동맹>에 참가하여 활동을 하게 된다.
이러한 활동을 하는 가운데 5월에 번역시집『에쎄닌 시집』을 간행하였고,
7월에는 제 4시집 『병든 서울』을 간행하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전개한다.
1947년(30세)에는 장정인과 결혼하였고, 6월에 제 3시집 『나 사는 곳』
을 간행한다. 『나 사는 곳』이 제 3시집인 이유는 1939년부터
해방 때까지 쓴 시들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1937년에 『성벽』1939년 “헌사』두 권의 시집이 발간된 직후 문단에서는
시단의 새로운 왕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한다. 백석, 이용악과 더불어
오장환은 193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해방 직후에도 가장 왕성하게
활동을 한 시인 중의 하나였으며, 그의 시집 『병든 서울』은 해방 직후의
모습을 그 어떤 역사서보다 더 사실적으로 전하고 있는 시집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오장환은 이 시집으로 해방기념 조선문학상 대상 후보작에 오르기도 했다.
 1947년에 정부에서 발행한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그의 시 “석탑의 노래“가 실렸던
것만으로도 그의 문학적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신—오장환시인은 16세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면서요? 동시도 아주 잘 썼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지용시인과도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두분은 또 어떤 사이입니까?
림—네 휘문고보 2학년으로 스승인 정지용에게 글을 배우고 있을 때였다.
당시 정지용은 휘문고보에서 교사.
그가 10대에 쓴 동시도 뛰어나다. “ 눈물은 / 바닷물처럼 / 짜구나 // 바다는 / 누가 울은 /
 눈물인감. 이 동시는 방정환이 운영하던 <<어린이>>에 발표한 「바다」이다.
 이 동시에서 오장환은 눈물을 미각적으로
표현한다. 눈물의 맛이 바닷물처럼 짜다고 한다.  그러다 눈물이 일상의
삶속에서 솟는 것이라면 바다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물이 거기 스며들어가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하여 이 시의 눈물은 개인적인 슬픔에서
측량할수 없이 넓고 큰 슬픔으로 확장된다. 눈물을 흘리며 바다를 생각하고,
바다를 보며 가없는 슬픔을 생각한다.
간결한 방식을 통해 짚어내는 슬픔의 의미가 깊고 크다.그저 월북시인이란
딱지에 갇혀있던 좁은 의미의 오장환시인을
 다시 더 폭넓게 연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가는 비가 내리면/ 송송송/ 물방울이 솟아오르고/ 물고기들은 입을 쳐들며/ 송송송/ 빗방울 받아 먹는다"
오장환의 동시 '가는 비' 전문이다. '바다' '가는 비' '편지' 등 오장환은 동시만 해도 44편을 썼다.
그는 해방 후의 혼란한 현실속에서 미소공동위원회의 합의를 통해 통일될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지지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 일들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문화운동을 하다가 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는 날 새벽 테러를 당해 죽을 정도로 두들겨 맞는다.
 평소에 신장병을 앓고 있어서 병상에서 해방을 맞았던 사람이었는데 테러를 당해 생명이
위험해지자 치료할 곳을 찾아 조선의 남포병원으로 도망쳐 간다. 그리고 거기서도 치료가
되지 않아 모스크바 볼킨병원으로 옮겨가 치료를 받다가 귀국하고 전쟁이 터진 뒤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1951년에 34살의 나이로 죽고 만다. 이민족이 지배하는 시대에 태어나
식민지와 해방과 분단이라는 격동의 시기에 청춘을 보내다 전쟁이 터지면서 죽고만 불행한 시인이었다.
오장환과 정지용은 다가 충북사람이고 다가 휘문고보에 있었고 보은군과 옥천군은
 서로 린접해있는 군이다. 다가 일본에 갔다왔고 다가 조선에로 넘어가서 사망했고
그 구체사망에 대해 불명하다. 이런 면에서 아주 비슷하다. 둘은 또 사제간이다.


신— 오장환시인의 고향에서는 또 오장환을 기념하여 문학제가 해마다 열린다면서요?
 
림—네 오장환시인의 생가와 문학관 오장환시인의 시비  오장환시인의 문학제행사가 16회나
진행됨. 초기엔 도종환시인이 많이 힘썼다. 도종환이 문학관 관장, 명예회장 등
 
신: 오장환시인의 경력에 대해서 깊이있는 연구를 해온 분은 도종환시인이라고 들었습니다.
오장환시인의 많은 자료들을 발굴하는데 큰 공로를 세웠다고 들었는데요. 이 방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소개해주시지요?
 
림:오장환문학제추진위원회위원장인도종환시인은 ‘오장환시연구’(충남대)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도시인은 특히 오장환생가와 함께 개관하는 오장환문학관에 박사학위논문을
쓰며 수집한 관련자료들을 제공하는 한편 새롭게 발굴된 동시 44편을 엮어
시집 ‘바다는 누가 울은 눈물인가”를 펴냈다.
도시인의 논문이 주목받는 이유 가운데는 휘문고보의 교지인 ‘휘문’을 통해
최초의 시가 ‘목욕간’이 아닌 ‘아침’과 “화염’이며 이미 ‘어린이’ 등의 아동문학월간지를
통해 소년시인으로 활동해 왔다는 점이다.
도시인은 천재시인으로 불리며 누구보다 해방공간의 사회상을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한 오장환 시인임에도 조선으로 건너간 작가라는 이유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또한 토로했다.
신장이 좋지 않았던 오장환 시인이 1947년 문화공작대활동 이후 우익의
테러로 두들겨 맞고 병원치료를 받으러 평양남포병원과 소련적십자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은 사실, 이후 조선에서조차 감시를 받으며 병원에서 죽음을
맞아야 했던 비극적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나마도 오장환 시인에 대한 연구 논문이 100여편에 이르는
현실을 도시인은 고무적으로 내다봤다.
오장환백일장, 오장환시그림 그리기 대회, 시 그림전, 시화전,
연구논문, 오장환시집, 오장환전집, 오장환평전, 오장환 사진,
오장환문학제 자료전시 등 다양한 전시행사…
시낭송, 시노래, 달팽이의 합창 등 시와 노래의 향연으로
오장환시인의 문학과 삶을 기렸다.
시낭송대회 입상자 등의 시낭송, 김은정·송문선·이진솔씨의 창작판소리,
김영미·박영옥씨의 경기소리 한마당 등 오장환의 시와 우리 소리가 어우러지는 환상의 무대…
신—네 그럼 시 감상과 함께 오장환시인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장환시인의 대표작 <고향앞에서>입니다.
                                          
고향 앞에서-
                     오장환
흙이 풀리는 내음새
강바람은
산짐승의 우는 소릴 불러
다 녹지 않은 얼음장 울멍울멍 떠내려간다.
진종일
나룻가에 서성거리다
행인의 손을 쥐면 따뜻하리라.
고향 가까운 주막에 들러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양귀비 끓여다 놓고
주인집 늙은이는 공연히 눈물지운다.
간간이 잔나비 우는 산기슭에는
아직도 무덤속에 조상이 잠자고
설레는 바람이 가랑잎을 휩쓸어 간다.
예제로 떠도는 장꾼들이여!
상고(商賈)하며 오가는 길에
혹여나 보셨나이까.
전나무 우거진 마을
집집마다 누룩을 디디는 소리, 누룩이 뜨는 내음새…….
신: 오장환시인의 시 <고향앞에서>였습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아주
쓸쓸한 심정으로 적었다고 생각되는데 구체적으로 해설 부탁드립니다.
 
림—해설
성격 : 낭만적, 서정적, 감각적, 비극적, 애상적
표현 : 다양한 감각적 표현 
현재형의 사용으로 작품의 사실감 고조
     회한과 자책속에서 쓸쓸하고 애잔한 목소리가 차분히 드러남.
제재 : 고향
주제 : 잃어 버린 고향 앞에서 느끼는 비애와 향수
 
신: 시어와 시구마다 깊은 뜻을 품고있다고 생각되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풀이해주시겠습니까?
 
림  * 흙이 풀리는 내음새 → 봄이 찾아오고 있음을 후각적으로 표현함.
    * 강바람은 / 산짐승의 우는 소릴 불러 → 강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산짐승의 우는 소리가 실려 있음을 표현.
    * 다 녹지 않은 얼음장 울멍울멍 떠내려간다.   → 계절적으론 봄이 왔지만
민족이 간절히 기다리는 상징적인 봄은 아직 멀었다는 것을 의미(해빙기)   
'얼어붙은 시대상'을 암시
    * 울멍울멍 → 얼음이 물에 떠내려가는 모양의 표현이자, 울음이 곧 터질듯한
모양을 나타내는 말로 보면 화자의 쓸쓸한 감정이 이입된 표현으로도 볼수 있음.
    * 진종일 / 나룻가에 서성거리다 → 고향을 앞에 두고 머뭇거리고 있는 화자의 처지
    * 행인의 손을 쥐면 따뜻하리라 → 따뜻하고 정겨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감각적(촉각)으로 표현함.
    *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 예전 고향 모습은 사라지고
황폐화된 고향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면서, 더 이상 고향에 대한 추억을
누구와도 함께 할수 없다는 상실감을 드러냄.
    * 양귀비 끓여다 놓고 → 마약의 원료, 고향에 갈수 없는 아픔을
벗어나려는 주인집 영감의 행위로 해석됨.
    * 주인집 영감 → 동병상련의 대상으로 여겨짐. 화자와 마찬가지로
고향 상실감에 젖어있는 인물
    * 잰나비 우는 산기슭에는 → 청각적 심상을 통해 쓸쓸하고 그리운 분위기를
형성함.(우리 나라에는 흔치 않은 원숭이 울음소리는 보통 한시에서는 쓸쓸한
고향을 나타내거나 고향을 그리워할 때 쓰는 관용적 표현임.)
    * 아직도 무덤속에 조상이 잠자고 → 변함없는 것은 무덤뿐이라는 인식이
담겨있는 표현. 자연속의 고향은 변함이 없음을 나타냄.
    * 설레는 바람 → 고향으로 가고 싶은 설레는 마음을 나타내는 객관적 상관물
    * 예제로 → 여기저기로
    * 상고하며 → 물건을 팔며, 장사하며
    * 장꾼 → 화자는 자신이 그리워하는 고향을 스스로 확인하지 못하고,
장꾼을 통해서 확인하고자 하는 모습에서 화자의 고향 상실감이 더욱 강조됨.
고향의 정취를 확인해 줄 존재들.
    * 전나무 우거진 마을 → 추억속 고향의 시각적 이미지
    * 집집마다 누룩을 디디는 소리, 누룩이 뜨는 내음새  → 지금은 갈 수 없는
예전의 아름답고 평화로왔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감각적(청각, 후각)으로 제시
신: 이 시는 아주 잘 짜여진 시라고 생각되는데 어떻습니까?
 
림: [시상의 흐름(짜임)]
1연 : 해빙이 될 무렵의 강가의 모습 → 배경제시(고통, 방랑)
2연 :고향 앞에서의 머뭇거림 → 그리운 고향에 가지는 못하고 서성거리고 있음.
3연 : 고향 근처 주막의 쓸쓸함 → 주막집 주인과 고향 상실의 슬픔을 함께 나눔.
4연 : 무덤의 쓸쓸함과 설레는 마음 → 설렘과 쓸쓸함.
5연 : 장꾼을 향한 하소연 → 고향에 대한 그리움
6연 : 그리운 고향의 모습 → 풍요롭고 평화로운 고향의 이미지
이 시는 <향토 망경시(鄕土望景詩)>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가 <고향 앞에서>로
개제(改題)한 작품이다.
고향이 있어도 그 품에 안길수 없는 사람은 고향을 잃은 자나
다름없다. 이 상실감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수 없는 비극적인 것이다. 고향에
대해 가지는 그리움의 정서는 모든 인간에게 가장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정서로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고향은 모든 사람들에게 삶
의 안식처요, 인간존재의 근원이며 포근한 어머니의 품이다. 따라서,
 고향을 눈앞에 두고서도 갈수 없는 화자의 처지는 깊은 회한과 자책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화자는 고향근처의 주막에서 자신이 떠난 동안의 슬픈
고향 소식을 전해 들으며 집집마다 누룩을 띄워 술을 빚는, 전나무 우거진
고향 마을은 이미 이 지상에서 사라지고 없음을 실감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조상의 무덤밖에 없다. “고향은 고향이로되 그리던 고향은 아닌” 것이다.
완전한 고향을 찾지 못하고 고향을 바라보며 떠돌이 장꾼들에게 고향의
정취만이라도 확인하려는 화자의 모습이 눈물겹기만 하다. 독특한 감각적
표현을 바탕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를 잘 형상화한 시다.
고향을 버리고 살아왔기에 고향이 있어도 갈수 없는 화자의 쓸쓸한 모습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고향을 버린자가 느끼는 정신적 상실감이 당시의
시대적 현실과 결부되어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오장환의 시에는
 '귀향 회귀(歸鄕回歸)의 모티프를 가진 작품이 많은데 이 작품도
그 가운데 하나다. 1940년대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버리고 만주와
중국 등지로 떠돌던 우리 민족의 시대적 아픔과 그로 인한 그리움의
정서를 독특한 감각적 표현과 현재법을 사용하여 형상화한 작품이다.
 
신-네 오장환시인의 시 <고향앞에서>에 대한 선생님의 상세한 해설을
들었습니다. 그럼 계속하여 오장환시인의 대표적 작품 <병든 서울>입니다.
이 시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도 인용되였다고 하는데요. 함께
감상하고 선생님의 해설을 듣겠습니다.
 
 
()든 서울
 
오장환

8월 15일 밤에 나는 병원에서 울었다.
너희들은 다 같은 기쁨에
내가 운줄 알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일본 천황의 방송도,
기쁨에 넘치는 소문도,
내게는 곧이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병든 탕아(蕩兒)로
홀어머니 앞에서 죽는 것이 부끄럽고 원통하였다.

그러나 하루 아침 자고 깨니
이것은 너무나 가슴을 터치는 사실이었다.
기쁘다는 말,
에이 소용도 없는 말이다.
그저 울면서 두 주먹을 부르쥐고
나는 병원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어째서 날마다 뛰쳐나간 것이냐.
아, 저마다 손에 손에 깃발을 날리며
노래조차 없는 군중이 만세로 노래를 부르며
이것도 하루 아침의 가벼운 흥분이라면……
병든 서울아, 나는 보았다.
언제나 눈물 없이 지날수 없는 너의 거리마다
오늘은 더욱 짐승보다 더러운 심사에
눈깔에 불을 켜들고 날뛰는 장사치와
나다니는 사람에게
호기있게 먼지를 씌워주는 무슨 본부, 무슨 본부,
무슨 당, 무슨 당의 자동차.

그렇다. 병든 서울아,
지난날에 네가, 이 잡놈 저 잡놈
모두 다 술취한 놈들과 밤늦도록 어깨동무를 하다시피
 
아 다정한 서울아
나도 밑천을 털고 보면 그런 놈 중의 하나이다.
나라 없는 원통함에
에이, 나라 없는 우리들 청춘의 반항은 이러한 것이었다.
반항이여! 반항이여! 이 얼마나 눈물나게 신명나는 일이냐
 
아름다운 서울, 사랑하는 그리고 정들은 나의 서울아
나는 조급히 병원 문에서 뛰어나온다
포장친 음식점, 다 썩은 구루마에 차려놓은 술장수
사뭇 돼지 구유같이 늘어선
끝끝내 더러운 거릴지라도
아, 나의 뼈와 살은 이곳에서 굵어졌다.


병든 서울, 아름다운, 그리고 미칠 것 같은 나의 서울아
네 품에 아무리 춤추는 바보와 술취한 망종이 다시 끓어도
나는 또 보았다.
우리들 인민의 이름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힘쓰는 이들을……
그리고 나는 외친다.
우리 모든 인민의 이름으로
우리네 인민의 공통된 행복을 위하여
우리들은 얼마나 이것을 바라는 것이냐.
아,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 나라

8월 15일, 9월 15일,
아니, 삼백예순 날
나는 죽기가 싫다고 몸부림치면서 울겠다.
너희들은 모두 다 내가
시골 구석에서 자식 땜에 아주 상해 버린 홀어머니만을 위하여 우는 줄 아느냐.
아니다, 아니다. 나는 보고 싶으다.
큰물이 지나간 서울의 하늘아
그때는 맑게 개인 하늘에
젊은이의 그리는 씩씩한 꿈들이 흰구름처럼 떠도는 것을……

아름다운 서울, 사무치는, 그리고, 자랑스런 나의 서울아,
나라없이 자라난 서른 해
나는 고향까지 없었다.
그리고, 내가 길거리에서 자빠져 죽는 날,
그곳은 넓은 하늘과 푸른 솔밭이나 잔디 한뼘도 없는
너의 가장 번화한 거리
종로의 뒷골목 썩은 냄새 나는 선술집 문턱으로 알았다.

그러나 나는 이처럼 살았다.
그리고 나의 반항은 잠시 끝났다.

아 그 동안 슬픔에 울기만 하여 그냥 질척거리는 내 눈
아 그 동안 독한 술과 끝없는 비굴과 절망에 문드러진 내 쓸개
내 눈깔을 뽑아버리랴, 내 쓸개를 잡아떼어 길거리에 팽개치랴.
 
신: 이 시는 <오장환 전집>에 실린 시라고 하는데요. 이미 병환에 있으면서
광복을 맞는 시인의 복잡한 심정을 그대로 적고있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좀 구체적으로 해설해주시지요.
 
림— ‘병든 서울’을 지은 오장환은 일제하에서도 친일시를 쓰지 않은 얼마되지
않는 사람중 한명이라고 한다. 그만큼 그의 의지는 곧았고 또한 그의 생각과
사상이 투철한 시를 많이 배출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장환은 전통적인 우리의 생활들, 오래된 인습들을 부정하고 새시대를
지향하는 시를 많이 써냈는데 그렇다고 하여 문명을 예찬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걱정이 많은 시인이며 생각이 많은 시인임에
틀림없다. 그가 원했던 고향, 그가 원했던 시대는 절대 오지 않았고
결국 자신의 원하는 세상을 찾아 월북하게 된 시인인 듯하다.
조선에서 접한 세상 또한 시인이 원하는 세상은 아닐 것이었다는
짐작을 해보지만 그토록 자신이 소망하는 세계관이 강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해방은 도적처럼 왔다고 함석헌은 말했다. 이렇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미처 준비하지 못한채 광복을 맞이했다는 것을 뜻한다.
많은 사람들은 실로 일제가 패망하여 본국으로 돌아갈것을 예상치 못했다.
이때 사람들이 선택할수 있는 삶의 길중 하나가 “병든 탕아”로 살아가는 것이었을 것이다.

「병든 서울」은 해방도시 서울에서 역사적 미래에 대한 희망없이
자포자기적으로 살아왔던 지식인의 참회의 심사를 노래한 시이다.
시는 자기반성으로 시작된다. 해방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채 병든
몸으로 죽어가리라 예감하던 화자의 부끄러움이 맨 먼저 고백된다.
이 고백은 그러나 시적 양심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인데, 왜냐하면
양심적 지식인 뿐만아니라 친일부역자들도 해방이후 애국지사로 변
모하는 실정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적 화자가 택하는 것은 인민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뚜렷한 이념적 지향점이다. 오장환이 왜 조선으로 가게
되였는가를 알려주는 시적 진술인데, 이런 신념이 화자로 하여금
 “맑게 개인 하늘”과 “씩씩한 꿈”을 노래하도록 한다. 그리고
시는 다시 반성으로 끝난다. 잘못된 삶의 “쓸개”와 “눈깔”을 길거리에
팽개치는 것이 화자의 희망이며 이로써 새 현실이 올수 있다고 시인은 외치는 것이다.
신—네 광복을 맞이했지만 남다른 안광으로 현실을  보여주고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럼 계속하여 오장환문학관내에 있고 오장환시비에 새겨진 시 “나의 노래”를
감상하고 해설을 듣겠습니다.
 
나의 노래
오장환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가슴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새로운 묘에는
옛 흙이 향그러

단 한번
나는 울지도 않았다

새야 새 중에도 종다리야
화살같이 날라가거라

나의 슬픔은
오직 님을 향하야

나의 과녁은
오직 님을 향하야

단 한번
기꺼운 적도 없었더란다

슬피 바래는 마음만이
그를 좇아
내 노래는 벗과 함께 느끼었노라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무덤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신: 오장환시인의 시 <나의 노래>였습니다. 오장환시인은 시마다에서 죽음과 련관시키고 있습니다. 
젊어서부터 병환에 계신것만큼 자신의 생을 예견했던 모양입니다. 
이 시도 제목은 <노래>지만 <무덤>이라던가 <묘>같은 시구들을 쓰고있습니다.

림—해설: 
신—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여가는데요 오늘은 한국의 천재적 시인
오장환과 그의 일부 작품을 살펴보았습니다. 또다른 시적 재질을 보여준
천재적시인이 아니였는가 생각합니다. 선생님 오늘도 수고가 많았습니다. .
림—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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