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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들다》와 《시집가다》
2013년 03월 16일 22시 20분  조회:4642  추천:0  작성자: 성원
장가들다시집가다
 
전통적으로 혼인의 형식은 크게 취가혼(聚嫁婚)과 초서혼(招壻婚)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취가혼이란 남자집에서 여자를 맞아들이는 혼인인데, 처음부터 여자가 남자집에 들어가서 사는 경우이고, 초서혼은 솔서혼(率壻婚)이라고도 하는데, 여자집에서 데릴사위를 맞아들여, 남자가 여자집에 들어가서 사는 경우를 말합니다.
 
《朝鮮王朝實綠》에서 찾아보면, 우리민족 고유의 혼인풍속에는 “男歸女家”婚이라는 풍속이 있었는데, 초서혼에 해당되는 풍속이였습니다. 남자는 丈人, 丈母가 사는 丈家에 들어가서 그집딸과 혼인식을 치르고, 계속 장가에 눌러앉아 한시기 신혼생활을 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장가를 든다”, 혹은 “장가를 간다”고 하였습니다. 

“男歸女家” 혼인풍속은 고대로부터 전하여 내려온 우리민족 고유의 혼인풍속이 였는데, 중국《三國志 魏書 乌丸鲜卑東夷傳》에 기록되여 있는, 고구려 서옥(壻屋)제라는 혼인풍속이 그 기원인것으로 짐작합니다. 서옥(壻屋)이란 서방(壻房)이란 말과도 통하는데 사위집이라는 뜻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남자집과 혼사말을 정하고, 여자의 부모는 자기집 뒤에 서방(壻房)이라는 작은 신혼방을 꾸며 놓습니다. 저녁녘에 사위 될 사람이 와서 신분을 밝히고, 이집딸과 하루밤 잘것을 청구합니다. 혼인 절차에 따라 두번 세번 청구하면 여자집 부모는 드디여 허락하고, 납채로 가져온 돈과 비단을 받아 놓습니다. 이것으로 혼인이 성사된 셈이죠. 그리하여 우리민족 고유어에서 남자들이 결혼하는 것을 "서방 간다"고도 하였으며, 여자들이 자기남편을 "서방님"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어느정도 성장한 다음에, 장가에서는 자기딸이 와-와- 재롱을 피우는 아이를 업고, 자기 신랑을 따라 시집에 가서 살도록 허락합니다. 지금과는 달리 丈家 주도의 혼인제도였지요.

그런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중국 유가사상이 인입되여 숭상받고, 주자가례(朱子家禮)가 보급되면서, 유가의 엄격한 남존여비 관념에 의하여 “남귀여가” 혼인풍속은 많은 비판을 받게 되였습니다. 그리하여 “남귀여가” 혼인풍속은 얼마간 고집스레 지속되어 가다가, 조선조 제13대 왕인 명종(재위 1545∼1567) 때에 이르러 절충적인 혼인방법이 나오게 되였습니다. 즉 혼례는 예전과 같이 계속 신부집에서 치르되, 삼일만 신부집에 묵고, 삼일후 부터는 신랑집에 가서 사는, 반친영제(半親迎制), 또는 삼일신행제(三日新行制) 혼인방법이였습니다. 이 혼인방법이 실행되면서 후에 점차 관습으로 굳어졌습니다.

지금에는 이런 혼인풍습도 이미 없어졌지만, 요즘의 신혼부부가 결혼하여 신혼여행을 갔다가 돌아와서는, 먼저 신부집에서 하루밤 자고, 다음날 시부모집으로 가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습의 흔적이 아닐가고 생각합니다.
 
“시집가다”에서 “시집”이란 결혼한 남자의 집을 말합니다. 그곳은 바로 시부모가 사는 집이고, 신랑과 함께 사는 집입니다. 여자가 결혼하면 자기가 살던 친정집을 떠나서, 시부모가 사는 시집으로 가서, 신랑과 함께 시부모를 섬기며 산다는 의미에서, 여자가 혼인하는 것을 “시집간다”고 합니다.

《東國新續三綱行實圖》에는 “싀집”이라는 어휘가 있는데 "싀집에 가 여러해 돌아오디 아니 더니"하는 구절이 있고, 또 옛 문헌 《五綸》에도 "싀어미 잘 섬기라(善事吾姑)"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때의 “싀”가 후에 와서 “시”로 발음되고, 표기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있는 “싀집”이 바로 오늘 우리가 말하는 “시집”입니다. 이 “싀집”이란 말은 순수한 우리 말인데, 이말을 한자로 표기하게 되면서, 여인은 시집살이 하면서 마음 고생을 많이 한다는 뜻을 살려, 마음思자를 붙여서 시집을 한자로는 “媤家”, 혹은 “媤宅”이라고 쓰게 되였습니다.

우리민족의 전통 혼인형식의 산생과 변화,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초기에는 남자가 장가를 들었고, 후기에 여자가 시집을 가게 되였으며, 이런 양상에 의하여 우리 말에서 혼인에 관하여 “장가들다”와 ”시집가다”라는 어휘가 만들어 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던가? 요즘의 젊은이들은 결혼을 한다 하여도, 남자는 장가 들 필요가 없고, 여자는 시집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부모들이 거금을 내여 따로 마련해 준 신혼집에 가서 처음부터 독립적으로 신혼생활을 합니다. 본질적 의미에서 우리민족 전통적인 시집장가 혼인제도는 이미 기본상 페지되였습니다. 민속학의 견지에서 지금의 결혼과 전통적인 시집장가 혼인제도는 엄격히 구별됩니다. 전통적인 시집장가 혼인제도는 효도에 기초한 혼인이 였지만 지금의 결혼은 완전히 그런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
 
 혼례는 우리민족 기본家禮중의 四禮인 관례·혼례·상례·제례의 하나로서, 남자와 여자가 혼인을 하여 부부가 되는 절차를 규정한 예식입니다. 혼례가 혼인의 절차를 규정한 예식이라면 한자로 응당 “婚禮”라고 표기가 되였어야 하는건데, 가례의 최초 원본인 《朱子家禮》를 포함한 옛문헌에서는 모두 어두울 “昏”자를 택하여, “昏禮”라고 표기가 되여 있습니다. 어두워 지는 황혼무렵에 올리는 예식이란 뜻이 되겠죠. 그럼 옛사람들은 무엇때문에 혼인예식을 어두워 지는 황혼무렵에 올리는 예식이라고 했을가요?
 
혼인이란 통속적으로 말하면 남자와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는 예식인데, 그것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면 음(陰)과 양(陽)이 만나는 것이므로, 혼인예식을 올리는 시간도 낮과 밤이 교차되는 황혼무렵이 합당하다는 취지였습니다. 예서(禮書)에서 말한것처럼 "양이 가고, 음이 오는 까닭을 취한 것(取陽往陰來之義)"이지요.  
 
하루중에 양과 음이 교차하는 시각은 아침과 자녁으로 두번이 있습니다. 혼례에서 저녁을 택하게 된 이유는, 고대에서는 혼인예식 장소가 바로 신랑과 신부가 직접 첫날밤을 지내는 장소였고, 혼인예식이 끝나면 곧바로 첫날밤을 차리는 합궁례(合宮禮)를 치루고 한자리에 들어야 하였으므로, 신부가 부끄럼을 타서 일을 그르칠가봐, 삼라만상이 모두 잠드는 안늑한 밤 환경을 마련해 준다는 취지였을 것입니다.
 
알다싶이 남자와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는 일을 한어로 婚姻이라고 하는데, 婚이 장가든다는 뜻이 되고, 姻이 시잡간다는 뜻이 됩니다.
 
婚이 장가든다는 뜻이 되는 까닭은, 한 여인(女)과 저녁때(昏)에 예식을 올리고, 한자리에 드는 것이 곧 장가드는 것이기 때문이고, 姻이 시집간다는 뜻이 되는 까닭은, 古禮에서는 여자의 집에서 신랑감을 구할때, 반드시 媒婆에 의거해야 했는데, 媒婆(女)의 중매에 인(因)하여 인연을 맺고, 한 남자를 따라 가는 것이 곧바로 시집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혼인은 음과 양이 화합하여, 삼라만상이 창조되는 대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일이며, 대자연의 섭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짝을 찾는 순수한 人情에 맞추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古禮에서는 "천지의 리치에 순응하고, 인정의 마땅함에 맞추는 것이 곧바로 혼인이니라!"고 했습니다.
 
 
현성원 글
2013년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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