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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 세탁기가 귀하디 귀했던 시절 동네 개울가에는 방치 하나만 들고 빨래하러 나온 아주머니들이 수다를 떨며 빨래를 하군 했다.
시골마을이면 의례 한두곳쯤은 꼭 있었던 빨래터는 아주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입담과 방치질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세상 소식과 정보를 공유했던 사랑방이였다. 따라나온 아이들은 엄마들의 시름을 모른채 연신 물장난하기 일쑤였다.
자연과 사람이 적당히 어우러져 나눠 쓰며 함께 공존하던 아름다운 시절이였다. 그랬던 빨래터가 지금은 집집마다 상수도 시설이 놓이고 세탁기를 들여놓으면서 하나둘 추억속으로 사라졌다.
동네 살림살이를 속속이 꿰고있는 곳이며 들일을 마치고 땀에 젖은 옷을 빨면서 하루의 고단함도 함께 헹궈내던 빨래터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일부 마을에 남아있는 빨래터도 대부분 세멘트로 주위를 단장해 옛 정취를 찾아볼수 없다. 현대식으로 수리됐지만 찾는이의 발길이 뚝 끊겼다. 100가구 넘게 살던 마을이 30여가구로 줄면서 로인들만 남다보니 빨래감을 이고 빨래터에 나오는것도 힘에 부쳐 집안에서 세탁기를 돌려 해결한단다.
지금은 단추 몇번만 누르면 “빨래 끝”인 시대에 우리가 살고있다. 살균에다 건조기능까지 빨래를 널지 않고도 바로 꺼내 입을수 있게 된 요즘 우리는 온갖 “호사”를 다 누리고 사는셈이다.
그러나 그 어렵고 불편하던 때가 그리워지는것은 어인 까닭일가? 엄마와 나란히 빨래터에 앉아 빨래하던 시절이 몹시도 그립다.
격이 없이 얘기를 나누다보면 모두가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는 여가의 장소였던 빨래터는 아이들에게도 더없는 놀이터가 되였었다. 나물을 씻고 기저귀를 빨아도 누구하나 탓하는이 없이 세상만사를 토론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옹기종기 모여 이웃간의 정을 나누던 곳이였다.
소박한 뒤담화에 큰 웃음이 서렸던 옛날의 빨래터가 진정 그리운것은 개인화의 물결이 시골에도 엄습한 이 시대의 고독함때문이 아닐가?!
연변일보 7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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