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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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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
2013년 11월 28일 14시 19분  조회:827  추천:0  작성자: 천광일

꽃송이같은 하얀 눈이 저 하늘에서 하염없이 내린다. 해마다 어김없이 맞아오는 첫 눈,그럼에도 올해의 첫 눈은 여느해보다 더 희고 더 포근하고 더 반가운듯 하다.그것은 아마도 늦가을도 훨씬 넘어 겨울의 시작임을 알리는 립동이 퍽 지났음에도 내릴념을 안하다가 세월님의 장단에 맞춰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을 코앞에 두고 찾아온것이 반가웠고 메마른 강풍만 스치며 길손들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초겨울 날씨에 제밖에 없노라 반공중에 떠다니며 숨통을 탁탁 막히게 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어지럽히던 먼지와 지푸라기들을 하늘청소를 하여 청신함을 갖다주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동네의 이곳저곳 페기물들을 살풋이 덮어 아름다운 은백색 세계로 탈바꿈시킨것을 바라보노라니 갑갑하던 가슴이 탁 틔우는듯한 기쁨에서였을것이다.

우리 말에 눈(雪)은 희다거나 하얗다의 어원으로서 본래 희다는 뜻인데도 사람들은 그 인용어가 어덴가 흡족치 않아 한글자 덧붙혀 흰눈이라고 부르면서 그와 같이 결백함을 인정하고 찬미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도 그토록 티없이 새하얗고 깨끗한 하늘의 천사로 내리는 눈을 그 언제나 더없이 반기다보니 내가 이 세상과 더불어 살아온 굽이굽이 수십년의 인생살이에 남겨놓은 기억속에도 흰눈에 찍혀진 옛 추억들이 제일 또렷하다.

해마다 첫눈이 내려 엄마가 메주를 쓸 때면 메주콩이 삶아지는 구수한 냄새를 기꺼이 맡으며 뜨거운 김을 물물 내뿜는 가마를 마주앉아 있다가도 엄마가 바가지에 떠주는 익은 콩알을 실로 꿰여서는 구새목 하얀 눈우에 놓아두어 얼궜다가 한알한알 빼서 입에 넣고 씹을 때면 그것이 그렇게도 고소하고 맛있었다.

해마다 첫눈이 내리면 아버지는 솜옷 두루마기를 껴입으신다음 다리에 각반을 단단히 동이시고 무릎을 치는 눈길을 헤치며 남양동 산골짜기에 올라 능달진 참나무 숲을 찾아서 구름나무를 골라 베여서는 쪽지게에 담고 힘겹게 산을 내려 집으로 돌아오신다.그다음 그 나무가지들을 틀에 올려놓고 구름 칼로 가지를 켠 뒤 노전을 결어 집구들에 펴놓는데 새하얗고 깔끔한 노전은 일시에 어둑시레하던 초가삼간 방안에 밝음과 생기 그리고 포근함을 안겨주군 하였다.

어느 해 첫눈이 내리던 날 외삼촌네가 조선 평양으로 이사간다기에“이번에 떠나면 언제 다시 보겠느냐”며 길 떠나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신선동 고개너머 외삼촌네 집으로 찾아갔다. 무척 반가와하시는 외숙모가 엿을 달여 정주간에서 엄마와 마주 앉아 엿가락을 켠 뒤 칼로 베여 엿사탕을 만들어 놓으면 외사촌 동생 명숙이와 함께 그릇에 담아 뒷울안 눈우에 놓아 얼군다음 하나씩 입에 넣을 때면 그처럼 달콤했다.

그해 첫눈이 내리던 저녁 첫사랑을 속삭이던 처녀와 함께 벽지마을 생산대 년말분배모임에 찾아가서 신용사를 대신하여 사원들의 분배돈을 저금받은다음 그 묵직한 돈가방의 안전이 걱정되여 사락사락 눈내리는 8리 시골길을 걸으며 달콤한 사랑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집까지 무사히 동무해주던 기억들.

그해 첫눈이 내렸던 아침 덜먹총각 나이였건만 오직 공부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대학입시제도 회복후의 첫 시험을 위해 눈길을 헤치며 10리 시골길을 걸어 현성 시험장에 가서 긴장된 마음을 눅잦히며 시험지에 답안을 적어가던 기억도 새롭다.

그처럼 나의 수십년의 인생길에 찍혀있는 첫눈에 얽혀진 스토리들을 돌이켜보노라면 마치도 한편의 인생드라마를 펼치는듯한 감명이 깊어지면서 해마다 속절없고 하염없이 자유롭게 내리는 첫눈을 맞을 때면 더없이 반갑고 마음도 맑아지고 후련해진다

그렇게 해마다 어김없이 내리는 첫눈을 맞으면서 인생을 달리다보니 어느덧 석양이 비낀 산자락까지 다달았다.이제 와서 한걸음 멈추고 뒤돌아보니 비록 화려한 인생은 아니였어도 흰눈처럼 결백하고 정직한 삶을 살아왔고 추호의 게으름없이 나라와 백성을 위해 허리굽혀 일하며 한점의 부끄러움 없이 떳떳한 인생을 살아왔기에 그 이상 더 바랄것 없고 너무도 뿌듯한 심정이다. 누군가가“눈처럼 쌓이고 눈 녹듯 사라지는 인생”이라고 하였다. 나 역시 이제 황혼의 여생을 해마다 저 멀리 하늘에서 내려지는 티없이 맑고 깨끗한 첫눈으로 아름답게 장식하고 차곡차곡 쌓으면서 녹아 사라지는 그 날까지 쉼없이 달려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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