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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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값 (우상렬116)
2007년 12월 13일 06시 10분  조회:5115  추천:103  작성자: 우상렬

인물값

우상렬


우리 조선사람은 돈값보다 인물값을 잘 따지는 것 같다. 쩍 하면 인물값을 하라고 하지 않는가? 남자로 태어났다. 그럼 인물값이 무엇이냐? 부엌에 안 들어가기. 옛날 우리 할머니들이 말하지 않았던가? 사내자식 부엌에 들어가면 거시기 떨어진다고. 그리고 우리는 사농공상을 철저히 지켰다. 그러니 장사는 지극히 천한 일. 장사를 하는 것은 인물값이 뚝 떨어지는 차마 못할 일. 그런데 漢族들은 인물값보다 돈값을 더 따지는 것 같다. 그들은 거시기 떨어진다는 얘기 없을 뿐만 아니라 배가 고프면 인물값이고 무어고 다 팽개치고 부엌에 내려가는 것은 약과고 장사든 무엇이든 다 잘 하는 것 같다.

중국 漢나라 때 罷出百家, 獨尊儒術, 유교의 기강이 확립되던 시기다. 그러니 유교에서 말하는 士農工商이요 하는 것도 이때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그런데 바로 이때 유명한 문장가 司馬相如와 새파란 과부 卓文君이 서로 눈이 맞아 私奔을 한다. 그들이 私奔을 해서 온 곳이 지금의 成都다. 그들이 成都에 와서 한 일이 무엇인가 하니 卓文君의 패물을 판 돈으로 술가게를 차렸다. 卓文君은 앞에서 해쭉해쭉 웃으며 손님을 반겨 맞고 주문을 받는 등 시세말로 하면 홀 서비스를 하고 司馬相如는 뒤에서 술이나 퍼주고 그릇이나 씻는 등 뒷바라지를 했다. 이들의 장사는 불티나게 잘 되었다. 미남에 재사 司馬相如와 미인에 과부 卓文君이 하는 술장사라 잘 될 수밖에 없다고 해야 하리라. 그것은 일종 私奔의 낭만적인 사랑이 깃들어진 술타령과 같은 멋이 있었으리라.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두고두고 지금까지도 司馬相如와 卓文君의 私奔 및 그 술장사를 외우고 있다. 成都 시가지 중심에는 바로 司馬相如와 卓文君의 낭만적인 사랑조작상이 있다.

사실 중국 사람들은 士農工商이고 무어고 떠나 분명 장사하는 전통이 있었던 것 같다. 漢나라 賈誼의 『過秦論』과 司馬遷의『史記』의 ‘貨殖列傳’에도 장사치에 관한 얘기가 나오지 않던가. 그런데 그때 이들의 술장사도 분명 인물값에 못 가는 쪽 팔리는 일임에 틀림없다. 인물값을 따지는 卓文君의 아버지가 술장사하는 그들을 차마 보아줄 수 없어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하지 않는가? 

그러면 우리 문학사에 어느 문인 장사했다는 소리 들어보았는가? 없다. 아니, 있기는 있다. 그런데 문인작가는 아니고 문학작품 속의 가상의 주인공이 있다. 바로 허생. 실학이 싹튼 근대여명기에 선각자 박지원의 소설「허생전」에 나오는 주인공. 허생은 처음 인물값을 하느라고 10년 공부를 작심한다. 그런데 마누라의 바가지 긁는 소리가 진절머리가 나서 인물값을 팽개치고 장사---꼴값을 하러 나섰다. 독점 매과점으로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다. 그런데 인물값이 떨어지는 듯 했다. 그래서 가난한 거지들에게 무인도에 살길을 마련해주고 황금흑사심이라 남아도는 돈은 모두 바다에 처넣고 자기는 처음 출발했던 원점으로 돌아온다. 결국 인물값을 따졌던 것이다.

나는 연길이며 우리 조선족이 많이 사는 곳으로 돌아다니다 보면 인물값을 잘 하는 그런 인물들을 참 많이 만나게 된다. 할 일 없으면 사구려 장사나 좀 해보지, 노가다나 뛰어보지… 내가 넌지시 이런 식으로 말을 던져보면 에익, 내가 그런 일을 어떻게 한다고, 그런 일은 漢族들이나 남방쿠리들이나 할 일이지, 나는 죽어도 그런 일을 못한다니까하고 쯔쯔 혀를 다신다. 그래서 백수건달들이 참 많다.

얼굴 화사하게 화장하고 부티 나는 남자의 애인이나 되어 등이나 쳐 먹자는 새기들을 보고 나는 또 싱겁게 건의한다. 할 일 없으면 양꼬치나 구워 팔든가, 아니면 구두닦는 노릇이나 하지 하면 흥, 사람을 어떻게 보고 하는 얘기예요, 놀려도 분수가 있지, 그래 내가 그런 일 할 사람 같아 보이나요 하며 앵돌아진다. 그래서 백수기생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별로 할 말이 없다. 잘 난 인물값을 하겠다는 데는 말이다. 우리 다들 그래 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漢族들 그리 인물값 하는 거 같지 않다. 나는 현재 거물급의 도시 重慶에 와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단지를 나서 얼마 안 가면 상설 장마당이 있다. 나는 심심하면 여기에 간다. 뭐 물건 사러 가는 것이 아니고 사람 구경하러 간다.

여기는 참 별라별 가관의 장사치들이 다 있다. 너무 괴짜들로 보여 내가 하나하나 인물값을 매겨 주었다. 과학가--안경 알이고 테고 모든 것이 두툼한 안경을 건 훤칠한 중년의 사나이. 인물값을 보면 뛸 데 없는 위성이나 원자탄 쯤 연구해낸 연륜이 지긋한 과학가타입. 어떻게 장사하게 되었는가고 묻자 지난 세기 77년 대학문이 열리자 출세 좀 해 볼가 해서 죽자 공부는 했는데 자꾸만 名落孫三이 되어 자기는 대학 갈 운이 아닌 줄 아고 그때부터 한 노릇이 이 장사라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 운명의 신에게 정배를 당한 ‘우파’ 과학가로 보였다.

화이트칼라--역시 안경을 걸었다. 안경 알이고 테고 모든 것이 얄팍한 신식 안경을 걸었다. 생긴 것도 갸날플 정도로 얄팍하게 생겼다. 인물값을 보면 현대의 전형적인 화이트칼라 스타일. 어째서 장사를 하게 되었는가고 물어보니 역시 몇 번 대학입학시험을 쳤는데 허약한 몸이 자꾸 딸려 실패하고 말았다 한다. 그래서 이 일 저 일 찾던 중 그래도 장사가 자기 적성과 건강 상태에 가장 맞더라는 것이다.

현대 西施--西施 어떻게 잘 생겼는지 잘 모르지만 갸름하게 생긴 것이 여하튼 西施 같았다. 인물값은 두말할 것 없이 경국지색. 모두들 그렇게 말하니 더 같았다. 이 西施는 魯迅의「故鄕」의 두부서시 양얼댁처럼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 아니고 양꼬치를 구워 판다. 해쭉해쭉 웃으며 굽는 양꼬치는 그녀의 웃음이 어려 더 맛있어 보였다. 사람들 맛있게 잘도 사 먹었다. 그녀의 장사사연을 들어보았더니 자기네 집안 내력은 모두 장사할 팔자라서 그런단다.

백설공주--분을 뾰얗게 뒤집어 쓴 듯 천연의 백설공주. 인물값--피부 좋고 부드러운 전형적인 아담사이즈의 남방미인. 그래서 내가 지어준 백설공주칭호. 그런데 나를 지극히 ‘실망’시키는 것은 이 백설공주가 구두닦이를 하고 있다. 그것도 1원짜리 구두닦이 말이다. 우리 연길처럼 2원이나 좀 더 비싼 것이 아니고. 그래 그 잘 난 인물값에 왜 이 별 볼일 없는 구두닦이를 하는가고 물어보았더니 구두닦이 수입이 짭짤하게 괜찮은데 왜 우습게 보는가고 한다. 이외에… 여하튼 여기에는 인물값을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러나 그들은 참 자기 주제에 맞게 인물값을 하며 실속 있게 산다고 생각된다.

우리도 이젠 인물값이요 하는 꼴값 좀 적게 떨고 실속 있게 살아보자.
나는 한국이 참 좋다. 한국은 우리 조선족의 용광로다. 우리 조선족은 한국에 가서 인물값을 그리 따지지 않는 것 같다. 아니 따질려 해도 따질 수 있는 계제가 못 된다. 인물값을 따질 ‘좋은’ 자리는 우리보다 똑똑한 한국 사람이 먼저 다 차지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가서는 노가다고 식당써빙이고 주방일이고 닥치는 대로 잘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새로운 인물값을 매겨 나가는 것 같다. 사실 못해낼 것도 없는 것 같은 일에서 우리의 인물값은 매겨진다.

200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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