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홍란
한국행 출국을 앞두고 마음이 설레였다. 경기도 오천리라는 시골마을에 있는 400년의 나무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것만 같아 괜히 마음이 급해졌던것이다.
령하 30도를 오르내리는 동북의 엄동설한, 그 긴 겨울나기가 두려워 따뜻한 한국을 찾은 나는 그러나 한국에 도착한 첫날부터 추위에 떨었으며 습도 높은 한국의 기후에 한껏 옹송거린 몸은 후회와 불안속에 잔뜩 위축되여 있었다. 보일러가 있는 방에서 전기장판까지 고온으로 켜놓고도 모자라 이불 네채나 덮고서야 밤을 지낼수 있었으며 두터운 옷을 두겹세겹 껴입고 실내화에 모자로 무장하고도 춥다는 소리를 노래처럼 했다. 그렇게 2,3일을 고투해서야 내 몸은 겨우 이곳 기후에 조금씩 적응하는 조짐을 보였다.
겨울만이 아니다. 지난 여름에도 같은 일을 겪었다. 한여름인 7월에 한국에 도착한 처음은 역시 오한이 든 사람마냥 덜덜 떨었다. 그리고 두달간의 체류가 끝나고 중국에 돌아와서도 또다시 열흘간 고생을 했다. 그러고 보니 내 몸은 자리를 옮길 때마다 낯선 기후에 적응하기 힘들어 했고 거기에 새롭게 적응하느라고 몸살을 앓아왔다.
그렇게 몸살을 겪고 설명절을 쇠고 하느라 20일을 훌쩍 보내고 오늘에야 나는 400년의 나무를 찾아 나섰다.
지난 여름, 여기 오천리 마을 한끝에 자리잡은 놀이터에서 처음 고목을 만났었다. 낮은 산에 기대여 있는 놀이터는 가파른 산자락에 울창하게 서있는 나무들이 그늘을 둥그렇게 만들어주어 서늘하고 아늑했다. 놀이터에는 간단한 운동기구들이 줄지어있고 한켠에 400년의 나무가 긴 가지들을 부채살마냥 휘우듬하니 펼치고 서있다. 덩실허니 큰 고목이 할아버지마냥 수염 어루쓸며 허허 웃는듯 하는데 그옆에 방석 펴고 점잔하게 앉아있는 정자와 졸졸졸 흐르는 시내물이 고목을 400년 벗해온듯 유정해보였다. 그 옛날 정자우에서는 시쓰기 경합이 벌어지고 고목에 매단 그네 타고 아녀자들은 하늘우로 날아올랐을 그림 같은 풍경.
그러나 겨울이 한창인 지금은 어떤 풍경도 읽을수 없다. 놀이터에는 썰렁하니 눈만 덮여있었고 놀이기구들은 누가 찾아주는 이 없이 차갑게 얼어있었다.
드디여 400년의 고목을 마주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고목을 다시 읽었다.
보호수-
수종: 느티나무 / 수고: 20메터 / 나무둘레: 6.0메터 / 수령: 400년 / 지정일자: 1982.10.15 ... ...
엄격하게 말하면 82년도로부터 30년을 넘긴 현재 수령은 430년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고목은 온 겨울 추위에 떠느라 경직된듯 하다. 나는 오랜 지우를 만난듯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고목을 어루쓸었다. 430년이라, 그 오랜 수자앞에 마음이 숭엄해진다. 우리가 몇세대를 거쳐오는 동안 고목은 촌보의 움직임도 없이 이 한 자리를 굳건히 지킨것이 아닌가. 그동안 우리는 수없이 자리를 옮겼는데…할아버지가 남부녀대하여 낯선 곳에 가서 일군 새 터전을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는 너무 쉽게 버리고 또다시 류랑의 길에 올랐다. 거퍼 100년도 안되여 삶의 터전을 잃고 있다. 아니, 버리고 있다. 기후차에 몸이 적응하기 힘들어하듯 새 정착지에 적응을 못해 몸살을 앓으며 우왕좌왕하면서도 말이다.
내 손의 온기가 나무에게 전달되였을까? 6메터 둘레에 내 키의 10배도 훨씬 넘는 나무앞에서 나는 너무 왜소했다. 내 체온의 전부를 준다 해도 고목에게는 간에 기별도 안갈것 같다. 한 나무앞에 선 한 인간이 이처럼 초라할수 있다니. 나무는 내가 반가울가? 나무를 닮고 싶어하는 나를 거부하지 말았으면.
400년 나무의 두리에는 그만한 수령은 안되여도 300년, 200년, 100년은 되였음직한 느티나무 몇그루가 더 있다. 400년 나무의 후대들이고 가족들임이 틀림없다. 수백년동안 느티나무 가족은 흩어지지 않고 한자리에 뿌리내리고 살며 서로 힘이 되고 격려가 되였을것이다. 그들에게는 나처럼 여기저기 옮겨다니느라 기후에 적응 못하고 환경에 적응 못해 겪어야만 하는 몸살 같은건 필요가 없다. 그들은 가족이 같이 하면서 튼튼해져 어떤 추위도 재난도 쉽게 견뎌냈을것이다. 혈육의 정을 나누며 행복했을것이다.
400년의 나무가 말해온다, 이제라도 늦지 않다고, 자기네처럼 한곳에 모여 살아보라고, 한곳에서 뿌리 박고 오래오래 살아보라고.
그래, 어디든 좋으니 이 고목처럼400년이고 800년이고 한번 내린 뿌리 살찌우며 오래오래 살고 볼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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