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최학송
알다싶이 조선족은 조선반도로부터 이민한 과경민족이다. 지난 19세기 중후반 2백여년간 지속되여온 동북 일대에 대한 청조의 봉금정책의 완화 및 페지 그리고 조선 북부지방을 강타한 홍수, 가뭄, 충해(蟲害) 등의 자연재해로 하여 조선인의 중국 이주가 시작되였다. 이 시기의 이주민은 모두 생계를 위하여 고국을 등진 사람들이였다. 19세기 중엽으로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이 시기를 “국경을 넘어 잠입한 시기”(1860~1904)라고 한다. 1905년의 을사보호조약 체결로부터 1931년의 9.18사변에 이르는 기간 조선은 군대해산(1907), 한일합방(1910), 3.1운동(1919) 등 정치적 대격변을 겪었으며 일제의 토지조사사업 때문에 대량의 농민들이 토지를 수탈당했다. 이리하여 수많은 조선인들이 정치적, 경제적 원인으로 중국에 이주하였다. 이 시기를 “자유 이민 시기”(1905~1931)라 한다. 1932년 위만주국 건국 이후, 일제는 동북을 중국 침략의 전략기지로 구축하면서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조선인을 동북에 이주시켰다. 이때 이주한 대부분의 이주민은 동북 개발을 위한 일제의 이민 정책에 속았거나 혹은 강제로 이주된 사람들이였다. 이 시기는 “강제 집단 이민 시기”(1932~1945)로 불린다. 이러한 이주 결과 1920년 중국의 조선인은 46만명으로 증가하였고 1930년에는 61만명, 1940년에는 140만명, 1945년 일제 패망 직전에는 216만명에 이르렀으며 이들 대다수는 동북에 거주하였다. 당시의 동북 인구가 3,500만명이였으니 동북 거주인 16명당 1인이 조선인이였던 셈이며 조선 인구가 2,500만명이었으니 조선인 11명당 1인이 동북에 이주한 셈이였다.
해방전 동북지역에서 생활한 조선인들중에는 적지 않은 문인들도 포함되여 동북 조선인들의 삶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였다. 이는 본격적인 조선족문학의 전사(前史)라고도 할수 있는것으로서 흔히 재만조선인문학 또는 조선족 이민문학으로 불린다. 조선인의 중국 “이주” 원인과 “정착” 과정은 이 시기 문학의 단골 소재의 하나라고 할수 있다. 최서해, 강경애, 안수길 등 대표적인 작가들은 모두 상기 내용을 소재로 작품을 창작하였다.
최서해는 동북으로 이주한 조선인의 삶에 주목하고 그것을 처음으로 소설의 세계에 끌어들인 사람이다. 1918년부터 1923년까지 6년간 연변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최서해는 대표작 “홍염”(1927)을 비롯하여 도합 11편의 소설을 연변체험을 소재로 하여 썼다.
장백산 아래 백하(白河)라는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홍염”은 중국인 지주 인(殷)과 조선 이주민 문서방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경기도에서 소작인생활을 하던 문서방은 좀 더 나은 삶을 찾아 연변으로 왔지만 이곳에서도 소작인이라는 신분에는 변함이 없다. 조선이나 연변이나 모두 지주 대 소작인이라는 계급적 관계가 존재했으며 문서방은 늘 소작인이라는 피착취의 지위에 처해있었다. 연변에서 빚을 제때에 갚지 못한 문서방은 딸을 지주의 첩으로 빼앗긴다. 문서방은 죽어가는 안해가 딸의 얼굴을 한번만 볼수 있도록 해달라고 네번이나 인가를 찾아가 애걸하였지만 거절당한다. 딸을 보지 못한 문서방의 안해는 정신혼란 증세를 보이더니 끝내는 숨지고 만다. 그리고 이런 안해의 죽음을 목도한 문서방은 지주 인가의 집에 불을 질러 지주를 죽이고 딸을 도로 찾아내온다.
강경애는 동북항일무장투쟁을 가장 생생하게 그려낸 작가이다. 10여년을 동북에서 생활한 강경애는 발표 작품의 절반 이상인 12편을 연변체험을 소재로 하여 썼다. “소금”(1934)은 이중의 대표작이다.
“소금”은 주인공 봉염 어머니의 수난사인 동시에 각성사(覺醒史)이기도 하다. “소금”은 우선 봉염 어머니의 회억을 통하여 봉염이네 가족의 연변 이주 원인과 연변에서의 생활을 그려낸다. 대다수의 농민이 그렇듯이 봉염이네 가족의 연변 이주도 경제적인 원인에 의한것이였다. 고향에서 부치던 밭을 떼이고 연변에 흘러들어 다시 중국인 지주의 땅을 얻어 농사를 하며 살아온 지난 10여년을 봉염 어머니는 “오늘까지 목숨이 붙어 있는것이 기적같다”고 말한다.
조선에서나 연변에서나 모두 소작인이라는 신분을 벗어날수 없다는 점에서 “소금”의 봉염이네는 “홍염”의 문서방네와 일치하다. 연변에서 봉염이네 가족의 생활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것은 수시로 마을에 들이닥치는 각종 무장세력과 불합리한 사회적 구조이다. 작품의 서두에서 이런 무장세력의 침입에 의한 가정의 파괴를 보여주었다면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봉염 어머니의 수난을 통하여 불합리한 사회적 구조를 그려낸다. 봉염 어머니는 믿고 찾아들어간 지주의 집에서 성적 착취를 당하며 생계를 위하여 자신의 친자식을 떼여두고 남의 자식에 젖을 먹이러 유모로 들어가나 이 자리도 얼마를 견디지 못하고 잃게 된다. 이 사회의 법에 따라 법이 정해준 대로 열심히 살려고 하였지만 사회가 봉염 어머니에게 가져다 준것은 아들의 가출 및 남편과 두 딸의 죽음뿐이였다. 생존을 위하여 봉염 어머니가 최후로 선택한것은 법이 금지하는 소금 밀수이다. 어렵게 소금을 집까지 가져왔으나 그를 기다린것은 집사대였다. 일련의 수난을 통하여 봉염 어머니는 끝내 자신과 같은 가난한 사람의 편에 선것은 공산당이라는것을 알게 되면서 계급적으로 각성한다.
1930년대 중반에 이르러 중국에 조선이주민 자신의 현지문단이 형성되기 시작하는데 대표적 작가가 안수길이다. 중국에서 16년간 생활한 안수길에게 있어서 중국은 말 그대로 “제2의 고향”이였으며 이곳에서의 삶은 일상 그 자체였다.
“새벽”(1935)은 안수길의 첫 발표작품이다. 함경도에서 간도의 M골로 이주해온 창봉이네는 창봉이의 누이를 담보로 조선인 마름 박치만으로부터 빚을 내여 소작인 생활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제시간에 빚을 갚기 위하여 소금밀수를 하며 이를 안 박치만은 집사대(緝私隊)와 짜고 들어 창봉이네 집에 벌금을 안긴다. 제시간에 빚을 갚지 못하도록 하여 담보로 내세운 누이를 첩으로 삼기 위함이였다. 창복이의 아버지는 박치만에게 딸을 빼앗기게 되는 상황에서 중국인 지주 호씨에게 청원하는것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나 1차 청원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 아버지가 2차 청원을 계획하고 있을 때 창복이의 누이가 자살을 하는것으로 갈등이 사라지며 작품도 끝난다.
최서해의 “홍염”(1927), 강경애의 “소금”(1934), 안수길의 “새벽”(1935)은 모두 연변을 배경으로 하며 여러모로 류사점을 갖고 있다. “새벽”에는 이주민이 겪은 고난사의 거의 모든 요소들이 등장한다. 경제적 원인으로 인한 중국 이주, 안해와 딸을 담보로 한 소작문제, 중국인 지주와의 관계문제, 당지 무장세력의 횡포, 소금밀수 등이 그것이다. 이중에서 쪽박 차고 살길을 찾아 간도에 이주 오는 모습, 중국인 지주와의 관계와 소작문제, 딸을 볼모로 중국인 지주에게서 빚을 냄으로써 겪는 불행 등 모티프는 최서해의 “홍염”에도 등장한것이며 쪽박 차고 살길을 찾아 간도에 이주 오는 모습, 중국인 지주와의 관계와 소작문제, 당지 무장세력의 횡포, 소금밀수 등 모티프는 강경애의 “소금”에도 나타난것이다. 물론 조선인의 중국 이주와 정착 과정에 봉착한 문제는 이외에도 많을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를 살아온 대표 작가들의 대표작이 공동으로 다룬 문제라는 점에서 이것이 어느 정도의 대표성을 갖고 있음은 부인할수 없겠다.
세 작품의 공간적 배경이 모두 연변이라면 시간적 배경은 대체로 “자유 이민 시기”(1905~1931)에 해당된다. 세 작품은 20세기 초반 생계형 조선이주민의 중국 정착 과정을 그리고 있다. 또한 이런 힘겹고 눈물겨운 과정을 통하여 정착하였기에 더욱 이 땅을 아끼고 사랑하지 않았나 싶다. 일제의 패망과 함께 조선반도가 광복을 맞이하면서 조선(한국)으로 귀환한 사람이 근 100만이였으며 절반 이상인 130만명 좌우의 조선인들이 중국에 남았다는 사실도 이를 반증하고 있다.
이렇게 중국에 남은 사람과 그 사람들의 후손이 곧 조선족인것이다. 지난 백여년간,참으로 많은 인물과 사건들이 모여 “조선족”이라는 개념을 형성하였다. 이제 우리는 “조선족”이라는 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이 인물과 사건들을 돌이켜보고 핵심적인 내용들은 다시 정리하여 널리 선전함으로써 조선족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이고 사명감을 투철히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것은 조선인의 중국 이주와 정착 과정에 겪은 일련의 아픔에 대한 리해로부터 시작된다고도 할수 있겠다.▣(책임편집/김향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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