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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기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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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조남기-조선전쟁1] 모택동의 아들 모안영과 만나다
2018년 06월 26일 11시 05분  조회:3256  추천:0  작성자: 조선족력사관
 
조남기(1927년 4월 20일-2018년 6월 17일)
 
편자주: 우리민족의 령수인물 조남기 장군의 서거를 추모하여 본 위챗계정은 《조남기전》(곡애국 증범상 지음.연변인민출판사 2004년) 중에서 조남기의 굴곡적 인생사적 몇 단락을 특별 발취하여 련재한다.제목은 편자가 임의로 달았음을 밝힌다.-조글로
 
조선전쟁1
모택동의 아들 모안영과 만나다
 
지원군총지휘부에서
 
    조선전쟁터에 들어선후 조남기는 지원군사령부 작천처에서 참모를 맡았는데 주로 세가지 사업임무를 수행하였다.
 
   첫째는 중조고위급지도자들이 회견할 때 통역을 하는것이였고 둘째는 작전명령을 전달하는것이였다. 그 당시 지원군이 중대한 전역을 벌릴 때는 행동전에 지원군사령부로부터 각군에 중요한 작전명령을 보냈는데 모두 전문인원을 파견하여 송달하였다.조남기는 조선족이여서 조선경내에서의 외출행동이 비교적 편리했기에 늘 이런 임무를 맡아하였다.셋째는 련락사업을 맡는것이였다. 조남기는 중조군대지휘기구간의 정보전달을 책임진외에 조선지방정부와 거래하는 일에도 참여하였다.
 
    혹여 맡은 임무때문인지는 몰라도 조남기는 거처를 정할 때마다 늘 팽덕회가 들어있는 거처옆에 숙소가 마련되여 지원군총지휘부의 로어통역을 하는 동지와 함께 들었다. 조남기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런 배치로 말미암아 한 위인의 후대인 모택동의 큰아들 모안영과도 사귀게 되였던것이다.
 
    몇십년후에도 조남기는 자기와 모안영이 처음 만났을 때의 정경을 그렇게도 똑똑하게 기억하고있었다.
 
    그는 이렇게 회억했다.
 
    《대유동에 도착한후 내가 배정된 방으로 들어갔더니 이미 누군가 자리를 정했더군요.키가 큰 축이고 좀 여윈데다 가른 머리를 했는데 나이가 나와 비슷하여 스무나문살 돼보였습니다. 그러나 행동거지가 단정하고 매우 성숙되였더군요.난 이 동지가 어쩐지 낯익어 보이면서도 어디서 만났던지 인차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이때 그가 주동적으로 나한테 손을 내밀면서 열정적으로 말했습니다.〈자아소개를 하기요. 난 모안영이라고 하오. 총지휘부에서 로어통역을 맡고있소.〉
 
    《〈모안영?!〉 나는 홀제 조선으로 들어오기전에 전하는말을 들은적이 있는지라 시탐조로 물었습니다.〈동무가 혹시… ?〉》
 
    《〈아마 남들한테서 들었겠지. 맞소. 나의 부친이 모주석이요.〉모안영은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조선에서는 모주석의 아들 역시 한갖 평범한 지원군전사라오. 우린 동지요. 우린 서로 도우면서 함께 사업하기요.〉》
 
 
1950년의 모안영
모안영(1922년10월24일-1950년11월 25일)
 
    그들사이의 거리는 순식간에 가까와졌다.그들은 이어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각자의 경력을 들려주었으며 각자의 가정정황을 터놓았다.모안영이 말했다.
 
    《내가 지원군사령부에서 일하다보니 단지 몇몇 지도동지들만 내가 모주석의 아들이라는걸 알뿐이요. 우리가 한방에 들어있는 이상 서로간에 숨길게 뭐겠소.근데 동문 날 위해 비밀을 지켜줘야 하오. 다른것이 아니라 남들돌이 내 신분을  알게 되면 피차간 관계에 영향이 미칠수 있기때문이요.》
 
    함께 생활하고 함께 사업하다보니 조남기는 모안영에 대한 료해가 더욱 깊어졌다.그가 느낀바이지만 모안영은 매우 소박한 사람이였다. 비록 류학을 한데다가 특수한 신분이였지만 생활이 매우 검박했고 자기에 대한 요구가 비상히 엄격했으며 종래로 모주석의 아들이라고 자처한적이 없었다.
 
    뿐만아니라 조직관념이 매우 강했고 자신이 관할해야 할 일은 빈틈없이 해냈으며 자신이 관할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서는 종래로 간섭한적이 없었다. 비록 팽덕회사령원이 자기 자식처럼 모안영을 관심하고 돌보았지만 모안영은 도리여 자기 자신을 줄곧 지원군총지휘부의 보통사업일군으로 간주하였으며 여러 사람들과도 매우 잘 어울렸다. 이 점은 조남기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였다.
 
    하나의 사소한 일이 조남기를 감개무량하게 하였다. 모안영과 조남기는 당시 모두 퇀급간부였다. 규정에 따르면 2명의 퇀급간부한테는 공무원 한명이 책임지고 일상적인 심부름을 해주게 되여 있었다. 그들의 주둔지는 산비탈에 있었기에 산아래에 내려가 물을 길어오자면 왕복에 한시간이 필요되였다.산길이 험한데서 공무원이 매일 물을 긷자면 여간만 신고스럽지 않은데다 적기의 공습문제도 있었다. 조남기는 자기와 주석의 아드님이 한방에 들었기에 응당 먼저 모안영의 생활수요를 만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그래서 물도 각별히 아껴썼다. 이렇게 하면 공무원이 하루에 물 두통만 길으면 되였다.
 
    모안영이 이 정황을 발견한후 처음에는 매우 이상스럽게 생각하였다.자세한 관찰을 거쳐 그속의 심오한 비밀을 알게 되자 모안영은 조남기를 보고 말했다.
 
    《동문 이렇게 할 필요가 없소. 물을 아껴쓰는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인거요.난 여직껏 주의를 돌리지 못했는데 즉시 공무원한테 가서 사과해야겠소.래일부터 우린 서로 감독하면서 하루에 물 한통만 쓰기로 하기요.》
 
    그리하여 그들은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서 한사람이 한  세수대야의 물로 치솔질하고 세수를 했다. 그래서 공무원이  매일마다 물을 한번만 길어오연 수요를 만족시킬수 있었다.
 
(좌로부터) 강청 모택동 리나 모안영 류사제
 
      시간이 길어지자 조남기 역시 모안영의 허다한 비밀을  알게 되였다.이를테면 모안영의 옷옷호주머니에는 언제나 한  녀성동지의 사진이 들어있었는데 모안영은 시간이 있을 때 마다 그 사진을 꺼내들고 보았으며 밤에 잠들기전에는 조심스레 사진을 꺼내서 머리맡에 놓고 잤다.
 
    조남기는 모안영이 이미 결혼한줄 모르고 언젠가 문득 질문을 들이댔다.
   《동무의 배우자요?》
 
    그러자 모안영은 매우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배우자가 아니라 안해요.》
 
    모안영은 그 사진을 조남기한테 넘겨주었다.
    《어떤가 보라구. 이쁘지?》
 
(좌로부터) 류사제 모안영
 
    조남기는 이때야 비로소 모안영이 갓 결혼한 신랑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신부의 이름은 류사제였다.모안영은 매번 류사제의 말을 할 때면 늘 회색이 만면했다.그는 말했다.
 
    《내가 떠나는 날 그는 입원했더랬소.조선에 온 다음 여직껏 그와 련락이 없었소. 지금 그의 정황이 어떤지도 모르고있소. 근심 되오!》
 
    조남기가 말을 받았다.
    《지원군사령부는 국내와 전보래왕이 빈번한데다 국내에서 찾아오는 사람도 적지 않은데 왜 기회를 찾아 물어보지 못하오?》
 
    모안영이 정색하여 대답했다.
    《이렇게 하면 특수화를 부리는것이고 규률을 위반하는것이요.그리고 부친이 알게 되면 한바탕 비판할거요.부친은  늘 이렇게 말했소.전쟁시기에 남녀간이 사랑에 빠지면 대사를 그르칠수 있다고 말이요.》
 
    1950년 11월 24일은 조남기에게 있어서 잊을수 없는 하루였다.이날 아침 조남기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제시간에 일어났다. 그 전날 미군정찰기가 간단없이 대유동상공에서 선회했는데 지원군사령부 수장의 중시를 일으켰다.책임자동지는 아침식사를 한후 일부분 사람들은 산에 오르고 일부분 사람들은 방공굴에 들어가 사무를 보도록 지시룔 내렸다.조남기는 식사후에 물건을 수습하고 산에 올라가 공습을 피했다.    
 
    오전 10시좌우에 경보가 울렸다.미국비행기 4대가 구름층을 뚫고나오더니 대유동을 스쳐지나갔다.적기가 사라진후에도 경보는 여전히 해제되지 않았다.조남기는 의연히 산우에 머무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가 몇분후에 적기들이 갑작스레 되돌아왔는데 그중의 한대가 내리꽂히듯이 급강하하면서 산비탈에 있는 목표를 겨냥하여 수십개의 나팜탄을 투하하였다.
 
    이때 누군가 세찬 블길속에서 뒹굴어나오면서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어서,어서 와 사람을 구해주시오!》
 
     부름소리를 들은 조남기의 뇌리속에는 무서운 생각이 번뜩 스쳐갔다.
    《모안영이 보이지 않는다!혹시 그한테 일이 생긴건 아닐 가?》
     조남기는 허둥지둥 산아래로 달려내려갔다.
 
    그러나 모든것이 늦어진 뒤였다. 조남기와 동지들이 다그쳐 도착했을 때는 나팜탄이 이미 주변의 땅을 불바다로 만들어놓아 근본적으로 가까이 접근할수 없었다. 모안영과 작전처의 고서혼 참모가 불행하게 조난당했다.
 
    지원군사령부의 동지들은 불을 끄고 재더미속에서 두구의 유해를 찾아냈다. 두 렬사의 유체는 불에 타서 근본적으로 신원을 알아낼수 없었다.후에 모안영의 손목시계가 쏘련제라는 이 하나의 단서로 비로소 모안영의 유체를 확인할수있 었다.
 
    황혼무렵 지원군총지휘부의 전체 동지들은 팽덕회사령원의 인솔하에 모안영과 고서흔의 유체를 대유동의 산비탈에 안장하였다.
 
모안영의 무덤
 
    팽덕회는 모안영의 무덤앞에서 점도록 묵도를 드리고나서 말했다.
  《안영은 제일 처옴으로 지원군에 지원하여 참가한 사람입니다. 주석께서 나를 지원군사령원으로 금방 임명하자 안영이 찾아와서 전선에 보내달라고 요구했더랬습니다.얼마나 훌륭한 젊은이라구! 고작해야 스물몇살인데 한창 사업할 때입니다. 지금 그가 희생되였으니 내가 무슨 낯으로 주석께 여쭌단 말입니까!..》
 
    조남기는 그때를 회억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모안영이 희생된후 우리는 너나없이 매우 비통해했습니다.나는 모안영과 조석으로 함께 지내던 나날을 생각하노라니 울음이 터져나왔습니다.그러나 감히 소리내여 울지 못했습니다. 왜냐 하면 팽덕회사령원께서 우리 뒤쪽 방공굴에  계시기에 그이가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그날 팽덕회사령원은 얼굴빛이 새까맣게 흐려서 그 누구와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랬습니다. 그낱 밤 팽덕회사령원의 거처에는 장밤 등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그이께서는 쉴새없이 오락가락하시였는데 이따금씩 장탄식을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이께서는 이렇게 장밤을 뜬눈으로 밝혔더랬습니다.》
 
    1998년 6월 조남기는 중국정협대표단을 인솔하여 조선을 방문했을 때 특별히 지원군렬사릉원에 가서 모안영을 위해 성묘하였다.그는 모안영의 묘비앞에 오래도록 서있었다.
 
    그는 조용히 모안영의 조각상을 어루만지며 하염없이 그리움의 눈물을 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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