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당선인이 선정한 국무총리 후보 김용준이 선정 된지 5일 만에 후보직 사퇴를 선언하였다. 아들의 병역비리, 부동산 투기의 의혹으로 여론이 비등하자 미연에 사퇴를 선언한 것이다. 김용준 본인의 인격과 그에 대한 여야 정당의 평가에 대하여 필자는 별 관심이 없다.
오직 이 소식을 접한 필자의 머리에 ‘오일경조(五日京兆)’라는 중국 고대 장고(掌故)가 떠올랐다. ‘경조’는 ‘경조윤(尹)’의 준말인바 지금의 ‘서울시장’과 비슷한 관직이다. ‘오일경조’는 서울시장을 닷새밖에 못한다는 말이다. 국무총리는 옛날 재상에 해당되므로 필자는 오늘 일어난 사건에 ‘오일재상’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오일경조’의 출처는 <한서장창전(漢書張敞傳)>이다. 장창은 한무제(漢武帝) 때에 경조윤을 하였으며 비상히 총명하였다. 부인의 눈썹을 그려줬으므로 황제가 파직시키려 하였다. 고급관료의 체통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장창은 황제에게 “소인이 알기로는 부부간의 관계에는 눈썹을 그려주는 것보다 더 추잡한 일이 많을 건데요”라고 하니 황제가 말문이 막혔으며 파직처분을 취소하였다.
이렇듯 총명한 장창이 양운(楊惲)의 사건에 연루돼 처벌받을 위험에 임박했다. 장창은 당할 봉변을 모면하기 위해 심복 서순(絮舜)으로 하여금 양운 사건을 담당하게 했다. 그런데 서순은 시간을 끌며 사건 처리를 하지 않았다. 동료들이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며 권하니 “장창은 이제 오일경조가 뻔한데 내가 왜 그를 따르겠나”라며 동료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화가 난 장창은 재빨리 손 써 서순을 처형해버렸다.
이 장고를 중국관료들은 2천여 년 간 내려오며 기억하고 있다. ‘오일경조’는 ‘임직 시간이 짧거나 곧 관직을 떠나다’ 뜻의 사자성구로 고착됐다. 이 성구는 경우에 따라 ‘며칠 안 남았으니 그놈을 따르지 말자’, 또는 ‘며칠 안 남았지만 서둘러 그놈의 비위에 거슬리다가 손해 보지 말자’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 행정부의 관료는 너무 빈번하게 바뀌는 것이 흠이다. 김영삼~이명박 정부의 20년에 바뀐 총리가 16명이나 된다. 거의가 다 ‘오일재상’, ‘오일경조’이다. 대통령 외에는 왜 임기가 없는지? 중국은 건국 63년에 국무총리를 모두 6번 밖에 바꾸지 않았다(주은래, 화국봉, 조자양, 이붕, 주용기, 온가보). 주은래의 종신제 외에는 대체로 임기가 5~10년인데 괜찮은 듯하다.
국회의 인사청문회 제도를 실행한 후 고위층 관료가 오일재상, 오일경조에도 못 미친다. 전 이화여대 총장 장상 여사가 국무총리로 발탁됐다가 20여일 만에 국회에서 그 인준이 부결됐다. 국무총리를 가장 짧게 한 사람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했는데 이번에는 발탁된지 5일 만에 사퇴한 새 기록이 생겼다. 모두 총리를 하루도 해보지 못한 낙태아이이다.
물이 너무 깨끗하면 고기가 없다고 하였는데 한국의 인사제도가 너무 각박한 것이 아닌지, 또는 이런 과정을 거쳐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관료의 나라로 될지 모르겠다. 어쨌든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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