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옛날보다 풍요로워졌는가?
허연화
10년전에 내가 일본에 왔을 때까지만 해도 중국류학생은 빈곤류학생의 대명사로서 일본어한자로서도 苦学生(고학생)이라고 많이 불리웠다. 헌데 요즘 일본에 오는 중국류학생들을 보면 올 때부터 손에는 아이폰, 공부할 때에는 아이맥을 들고있는 학생도 적지 않다. 조선족의 경우를 봐도 더이상 아르바이트는 생계를 위한 일본에서의 필수 코스가 아니다. 생활비의 해결경로를 물어보면 중국에서 사업하거나 든든한 직업이 있는 부모님, 한국에서 돈벌이하고있는 부모님으로부터 류학비용과 생활비를 받아쓰고있다는 대답을 많이 듣게 된다. 물론 모든 유학생들이 다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더 이상 일본에서의 중국류학생은 빈곤류학생의 대명사는 아니다. 조선족 또한 10여년전처럼 하루에 3시간만 자면서 고향에 류학수속비빚을 보내주고 집살돈 보내느라 개미처럼 살던 생활이 더는 주류가 아니다.
우리 조선족은 흔히 개혁개방이래 격렬한 인구이동에 의해서 우리가 잃은 많은것을 말하고있다. 우리 조선족마을학교들이 하나하나 없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사는 세상을 한탄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이동을 통해서 중국의 어느 소수민족보다도 더 빠르게 소득성장을 달성했다는것 또한 사실이다. 20세기 90년대부터 시작된 중국연해지역의 한국기업, 일본기업에로의 조선족의 취업과, 한국에서의 돈벌이, 현재의 일본, 북미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의 조선족의 활약은 우리의 삶의 수준을 많이 향상시켰다. 이제는 고향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택, 자가용을 소유하고있으며 도시뿐만아니라 농촌의 대부분의 가정에서 텔레비죤, 세탁기, 전화기(핸드폰), 랭장고를 소유하게 되였다.
맑스는 로동계급이 자본가의 착취로부터 자체를 해방시키는 혁명적인 사회변화의 추진력을 만들어낼것이라는 견해의 기초하에 로동계급은 시대의 발전에 따라 점차 늘어날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현재 세계상의 로동계급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있고 육체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 우에서 언급한것처럼 우리 조선족도 90년대전에는 생각지도 못하던 생활소비재를 소유하게 되였듯이 생활수준의 상승은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현재 리용할수 있는 소비재가 증가했다는 사실에서 잘 알수 있다.
로동계급의 풍요는 “중간계급사회”로 갈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을 시사하고있다. 한국에 있는 조선족에 대해서도 요즘은 이주초기의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3D(Dirty, Difficult, Dangerous)업종에서 일하는 육체로동자들이 아닌 학계, 무역업계, 공직자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는 조선족상의 대두를 론하고있다. 중국국내에서도 한국기업에 취직된 조선족이 아닌 기업가, 학자, 예술인 등 다방면의 조선족인물상이 부각되고있다. 즉 우리 조선족사회는 중국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점점 “중간계급화”하고있다는것이다.
실제로 우리 조선족사회가 “중간계급화”하고있는가는 아직 많은 론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로동계급이 점점 풍요로워짐에 따라 사회에 “중간계급”의 층이 두터워진다는것은 사회가 성숙되여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본은 그런면에서 “중간계급”의 층이 두터운것이 특징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도시든 농촌이든 상하수도가 잘 되여있고 거의 집집마다 자가용, 일상 전기용품을 소유하고있다. 일본에서는 고중을 졸업하고 전문학교를 가거나 부모님이 하던 사업을 이어받는 사람도 많다. 그것이 작은 음식점이든 중소기업이든 말이다. 처음에는 일본젊은이들은 리상이 없나보다 하고 생각했었는데 후에 알고보니 작은 가게에서도 샐러리맨정도의 수입을 얻을수 있다는것이다. 물론 사회복리방면에서는 개인부담이 커지지만 전체적으로 먹고 사는데는 큰 문제가 없다는것이였다. 더욱 놀라운건 육체로동중에서도 빡세다고 할수 있는 이사짐센터와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특히 높은 곳에서 작업하는 건설현장의 돈비직(鳶職)의 수입이 일반 샐러리맨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이다. 특히 건설현장의 돈비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부심이 넘쳐있고 건설현장의 작업복은 젊은 남자들의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라웠다. 물론 일본사회에 직업차별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고중졸업한 사람도 수용할 곳이 많다는것, 육체로동이 동경의 대상이 될수 있는것은 사회 자체가 비교적 성숙되였다는 표징이라고 볼수 있다.
일전에 위챗에 우리말로 된 “어딜가나 대우 못받는 직업”이라는 주제로 만화스토리가 돌았다. 주요한 내용은 음식점배달이라는 “어딜 가나 대우 못받는 직업“에 종사하는 한국의 한 배달부아저씨의 어떤 특별한 하루에 대한것이였다. 깨끗이 씻어서 문앞에 놓여있는 짜장면그릇, 또 그릇밑에 남겨진 “저희가 밥을 따뜻하고 맛있게 먹을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쪽지 하나에 눈물을 흘리는 배달부아저씨의 모습이 그려진 인간애를 담은 이야기였다.
위챗에서 이야기가 돌기 사작하자 연길에 사는 한 친구가 자기눈앞에서 지금 녀대학생이 택배아저씨한테 전화로 소리소리지르고있고 물건이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도 친구들과 수다떨며 늘늘이 움직이고있는 모습과 우의 따뜻한 이야기를 대조하면서 한탄의 메시지를 남겼다.
“못 배우고 무식해서 육체로동하고 산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육체로동하는 사람들을 깔보고 하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중국사회에, 우리 조선족사회에 늘어나고있다는것인가?
농경민족으로서 조선반도에서 중국 동북지역에 넘어온 우리 조선족, 다 같이 없이 살았을 때는 없는게 수치스럽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서 살았어도 우리말 쓰고 말하며 당당히 살았던 우리가, “같은 피”가 흐르는 한국과의 만남에서 계급적으로 부딪치고나서 형언할수 없는 감정을 느끼지 않았던가?! 너무나도 다른 사회에서 살아왔기에 너무나도 달랐던 상식. 중국사회의 “못사는게 수치스러운것이 아니”라는 가치관이, 한국사회의 “못사는건 게으른것이고 못배우고 무식해서이다” 라는 가치관과 부딪치는 순간이였다 할수 있다.
그런데 20년 넘은 세월이 흘러 조선족사회가 경제적으로 발전해온 반면 우리 조선족들한테도 차별의식 특히 직업차별의식이 형성되였단 말인가? 아니면 원래부터 있었던것이 현저해진것인가?
“갑질을 한다”는 말이 한국에서 많이 쓰여지면서 우리는 갑질을 하는 부유층사람들을 비난할 때가 많다. 한편 부유층이 아닌 우리 또한 일상생활에서 “갑질”을 하고있지 않는가 생각해볼바가 있다. 자기가 약자라고 판단한 상대방에게 부당한 행동을 한다는 의미에서는 같은 “갑질”인것이다.
흔히 “갑질”을 하는 사람들, 혹은 권위를 절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권위주의적”이라고 한다. 가부장적제도처럼 사회생활이나 가정생활에서 상하관계가 형성되고 장기적으로 사람을 지배하고 복종시키는 힘이 존재하는 집단이라면 권위주의가치관을 소유하게 된다고 한다. 코리안은 그런면에서 “권위주의”적인 가치관을 가지기 쉬운 집단이라고 볼수 있다.
하지만 우리 조선족은 조선반도에서 중국 동북지역에 이주하여온후 사회주의 남녀평등, 무산계급 이데올로기영향을 받아왔다는 특수한 사회환경이 있었기에 조선반도의 그것과 많이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수 있다. 현재사회에서 직업이 개인의 사회적지위와 생애 기회, 물질적복지 수준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이니 직업차별의식이 생기는건 자연적인것이 아닌가고. 하지만 직업구별과 직업차별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성숙한 사회일수록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다양하게 살수 있는 사회여야 하지 않을가.
단순한 물질적평등화와는 다른, 인간으로서의 평등이야말로 진정한 풍요로운 세상이 아니겠는가고 생각해본다.
【허연화 략력】
소속: 교토대학 문학부 행동문화학과 사회학
전공: 사회학, 지역연구, 이민연구.
학력: 일본 교토대학 석박사
주요 론저:
론문
《이민송출후의 농촌의 사회변화과정》 (2015, 소시오로지) 외 다수 론문을 국외학술지에 발표.
출처 인민넷 11월 22일자 위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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