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세기 가장 밝은 혜성 '아이손'.. 11월 말 맨눈으로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10월14일 11시57분    조회:4937
1680년 11월 대낮의 유럽 하늘에 커다란 혜성이 나타났다. 어찌나 밝은지 한낮인데도 긴 꼬리가 맨눈으로 선명하게 보였다. 이 신비한 현상을 놓칠 새라 너도 나도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 보던 당시 유럽인들의 모습이 한 네덜란드 화가의 작품에 담기기도 했다. 이 혜성을 처음 발견한 건 독일의 천문학자 갓프리드 키르히지만, 지금은 '뉴턴의 혜성'으로 더 잘 알려졌다. 영국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이 바로 이 혜성을 보고 행성 운동의 규칙을 설명하는 검색하기">케플러의 법칙을 증명했고, 그걸 바탕으로 유명한 만유인력의 법칙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 지난 4일 새벽 4시42분경 경북 영천시 화북면 보현산천문대 전영범·변우원 연구원이 구경 155㎜ 굴절망원경을 촬영한 아이손 혜성

↑ 지난해 12월부터 이달까지 아이손 혜성이 지나온 궤도. 한국천문연구원·미국 고다드우주비행센터 제공

뉴턴의 혜성에 붙여진 공식 이름은 'C/1680 V1'이다. 망원경으로 발견된 최초의 혜성이며, 지금까지 지구에서 관측된 가장 밝은 혜성 중 하나로 꼽힌다. 다음달 인류는 1680년 유럽인들이 맛본 짜릿함을 수백 년 만에 다시 한번 경험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C/1680 V1과 꼭 닮은 녀석이 지구 가까이로 오고 있다.

아이손을 주목하는 이유

이번에 인류와 조우할 행성은 'C/2012 S1'이다. 지난해 9월 러시아가 주도하는 국제 공동 천문연구팀인 '국제과학광학네트워크(ISON)'가 처음 발견했다고 해서 '아이손 혜성'이라고 불린다. 천문학자들이 이 혜성을 주목한 가장 큰 이유는 밝기 때문이다. 지구와 가장 가까워지는 11월 말~12월 초엔 운이 좋으면 1680년 당시처럼 대낮에 맨눈으로도 아이손이 만들어내는 장관을 볼 수 있을 거란 추측이다.

혜성이 다른 천체보다 밝은 이유는 본체인 핵을 둘러싸고 있는 '코마(Coma)' 덕분이다. 혜성은 크게 머리와 꼬리의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머리 중심부에는 암석이나 유기물질로 이뤄진 핵이 있다. 핵 주위는 태양에서 받는 열 때문에 핵 속 물질들이 증발해 만들어진 먼지와 가스가 둘러싸고 있다. 이게 바로 코마다. 코마를 이루는 먼지와 가스 중에는 태양에너지를 받아 빛을 내는 것들이 많다. 코마가 클수록 이런 물질들이 계속 뿜어 나오기 때문에 혜성이 더 밝게 보이게 된다.

천문학자들은 아이손 코마의 지름이 400m~2km 사이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정도면 사실 코마가 대단히 큰 건 아니다. 유명한 검색하기">핼리 혜성의 코마 지름은 약 20km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자들이 아이손 혜성을 "금세기 들어 가장 밝은 혜성"일 것으로 확신하는 이유는 태양과의 거리 때문이다.

코마가 크고 빛을 내는 물질이 상당히 많더라도 태양에서 너무 멀면 에너지를 충분히 받지 못하기 때문에 밝아질 수가 없다. 그런데 아이손은 수많은 혜성 중 태양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는 '선그레이징(sungrazing)' 그룹에 속한다. 다음달 29일(한국시간) 아이손은 태양 중심에서 0.012천문단위(AU, 1AU는 태양에서 지구까지의 거리인 1억5,000만km) 떨어진 위치를 통과한다. 태양 표면으로부터 치면 약 110만km 지점이다. 서울에서 뉴욕까지의 100배 정도니 우주 규모에선 엄청나게 가까운 거리다. 그만큼 태양에너지를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뉴턴의 혜성이 1680년 태양에서 0.006AU 떨어진 곳을 지나갔으니 아이손 역시 당시처럼 아주 밝게 보일 것으로 천문학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최영준 한국천문연구원 천문우주사업본부 선임연구원은 또 "지금까지 나타났던 선그레이징 혜성은 과거 있었던 혜성들에서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크라우츠 그룹)가 대부분이었지만, 아이손은 그 자체가 온전한 하나의 혜성"이라며 "크라우츠 그룹이 아닌 선그레이징 혜성은 1680년 뉴턴의 혜성 이후 아이손이 처음"이라고 소개했다.

천문학자들은 태양에서 대략 5만AU 떨어진, 명왕성보다 훨씬 먼 우주 공간에 수많은 소행성들이 마치 구름처럼 모여 태양계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가설을 처음 제시한 네덜란드 천문학자 얀 오르트의 이름을 따 이 공간은 '오르트 구름'이라고 불린다. 바로 여기가 아이손을 비롯한 많은 혜성의 고향일 것으로 천문학계는 추측하고 있다. 오르트 구름 안에 머물던 천체 일부가 태양을 향해 떨어져 나와 지금의 아이손이 됐다는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

아이손은 이달 1일(한국시간) 화성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를 지나 현재 시속 약 7만7,000km로 태양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요즘도 새벽 해뜨기 직전 동쪽하늘을 직경이 큰 망원경이나 성능이 아주 좋은 쌍안경으로 보면 흐릿한 꼬리 부분을 관측할 수 있다. 점점 밝아지다 태양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11월 29일 전후엔 강한 태양빛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지구와 가장 가까워지는 연말에 다시 해뜨기 전 북동쪽 지평선 근처나 해 진 뒤 북서쪽 하늘에서 맨눈이나 쌍안경으로 관측할 수 있다. 올 초 천문학자들은 사실 아이손이 보름달만큼 아주 밝게 보일 것 같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밝아지는 속도가 주춤해져 지금으로선 금성 정도 밝기로 예상하고 있다.

혜성이 태양에 가까워지면 핵 속 물질들이 폭발적으로 분출돼 나오면서 압력 때문?길게 밀려나간다. 이렇게 해서 혜성의 꼬리가 만들어진다. 그 중 일부 물질은 전자를 잃거나 얻으면서 다양한 색을 내기도 한다. 최 연구원은 "태양을 지나면서 아예 메말라 버리지 않을 만큼 핵이 충분히 크다면 올 연말 파란색, 노란색 꼬리를 길게 늘어뜨린 아이손의 모습도 기대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아이손이 지구에서 점점 멀어지는 내년 초엔 또 다른 장관이 펼쳐질 수도 있다. 아이손이 태양계를 통과하며 지나간 길을 2014년 1월 중순 지구가 지나게 되는데, 이 때 혜성이 뿌려놓은 부스러기들이 지구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유성우(流星雨ㆍ별똥별이 비처럼 쏟아지는 현상)다.

70여 년마다 돌아오는 핼리 혜성과 달리 아이손은 이번에 지구를 스쳐가면 다시는 볼 수 없다. 핼리 혜성은 움직이는 궤도가 타원형인데 비해 아이손은 포물선 모양이기 때문이다. 태양계 밖 더 먼 우주로 사라지기 전 아이손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구에 선사할 장관을 세계 천문학계가 기다리고 있다.

임소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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