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회로 켜고 끄는 광유전학, 뇌의 판도라 상자 열까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10월23일 11시06분    조회:3955
[한겨레][사이언스 온] 신경세포를 움직이는 빛

로봇 기계들이 끝없이 진화하던 어느 날, 인간과 기계가 전쟁을 벌인다. 전쟁에서 승리한 기계 문명은 인간을 자신들의 '건전지'로 만든다. 인간은 기계 안에서 태어나, 기계 안에서 살아가며, 기계 안에서 죽는다.

하지만 정작 인간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기계가 인간 뇌에 전극을 꽂아 가상현실인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다고 느끼도록 인간의 감각을 조작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실제로는 배양기 안에 떠 있으면서도 자신이 검색하기">맨해튼 거리를 거닐고 있다고 착각한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스테이크의 맛을 느낀다. 영화 <매트릭스>(1999)의 이야기다.

인간 뇌에는 약 1000억개의 신경세포가 있다. 각 신경세포는 수많은 다른 신경세포들과 연결돼 100조건이 넘는 신경 접속을 만들어낸다. <매트릭스>의 세계처럼 우리의 감각 경험은 바로 이 어마어마한 신경회로 안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사건'이다. 전원을 꽂은 컴퓨터에서 수많은 전기회로가 한 편의 영화를 상영하듯이, 우리 뇌 속의 신경회로에 끊임없이 전기가 흐르면서 감각 세계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전기자극 이용' 오랜 인간 뇌 연구 방법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신경회로 조작 기술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힘을 우리는 오래전 발견했을 뿐 아니라 끝없이 진화시키고 있다. 18세기 중반 이탈리아 과학자 검색하기">루이지 갈바니(1737~1798)는 신경과 근육이 전기적 자극에 반응한다는 것을 발견해 보고했다. 이후 19세기 초부터 신경생리학자들은 뇌에 직접 전극을 꽂고 미세 전류를 흘리면서 뇌 기능을 연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특히 간질 치료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수행된 전기적 뇌 자극은 우리 뇌가 기능적으로 분화되어 있다는 결정적 증거가 되기도 했다.

1954년 캐나다 검색하기">맥길대학 제임스 올즈 연구팀의 쥐 실험은 '전기적 뇌 자극'을 보여주는 아주 유명한 일화다. 이들은 쥐 뇌의 쾌락 중추에 전극을 심은 뒤, 쥐에게 스스로 레버를 누르면 전류가 흘러 쾌락이 주어지는 조건을 마련해주었다. 놀랍게도 쥐는 밥도 물도 먹지 않고 죽을 때까지 레버만 눌러댔다. 이 연구 결과는 베르베르 베르나르의 소설 <뇌>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극을 꽂아 직접 전류를 흘려보내는 방식으로는 뇌의 신경회로를 정교하게 조작하기 어렵다. 인간의 뇌 속에는 엄청나게 높은 밀도로 미세한 신경세포들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1㎤의 뇌에는 수천만개의 신경세포가 들어 있어 원하는 신경회로만을 자극하는 일이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고, 전극을 자칫 잘못 꽂았다가는 엉뚱한 신경회로를 자극해 예상치 못한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비유하면, 전기적 뇌 자극 방법은 자극이 가해지는 곳 근처의 모든 전기회로를 켜는 '포괄적 리모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자제품의 전원을 켤 수 있는 능력은 갖추고 있으나, 원하는 전자제품만 선택적으로 켜긴 힘든 기술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티브이를 보려고 리모컨을 눌렀더니 갑자기 세탁기, 에어컨, 청소기 등 집안의 모든 전자기기가 한꺼번에 켜지는 소동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빛 감지해 행동 일으키는
녹조류 유전자 '채널로돕신'
뇌 연구 방법 새롭게 개척중
유전자 이식한 뒤 빛 쪼이면
가짜 기억도 진짜처럼 인식
정신질환 치유 등에 활용 모색


빛에 반응해 신경세포를 활성화

티브이 리모컨이 티브이만 켤 수 있는 이유는 티브이 안에 리모컨 신호에만 반응하는 '수신기'가 내장돼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뇌 속에도 이런 식으로 '리모컨-수신기' 시스템을 작동할 수 있다면 감각과 행동을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2002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그런 힘을 가능하게 할 역사적인 논문 한 편이 발표됐다. 흥미롭게도 이 논문은 신경과학 연구팀이 아니라 미생물을 연구하던 독일의 페터 헤게만과 게오르크 나겔 공동연구팀이 발표했다. 이들은 '검색하기">클라미도모나스'라는 작고 둥근 단세포 녹조류에 주목했다. 이 녹조류는 빛을 쬐어주면 빛을 향해 나아가는 주광성의 성질을 지닌 생물이다.

연구팀은 녹조류에는 빛을 '감각'하고 그 빛 쪽으로 나아가는 '행동' 사이를 매개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한가지 단서는 빛을 쬐어주면 클라미도모나스 안에 전류가 흐른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실험을 통해 연구팀은 '채널로돕신'이라는 분자가 빛을 감지해 전류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어 이 녹조류에 있는 채널로돕신의 유전자를 신경세포에다 심으려는 신경과학자들이 나타났다.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학 칼 다이서로스 연구팀이 최초로 포유류 신경세포에서 빛과 채널로돕신을 리모컨과 수신기처럼 사용한 연구 결과를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리모컨 구실을 하는 빛과 수신기 구실을 하는 채널로돕신' 시스템을 통해 신경회로를 조절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빛(opto)과 채널로돕신 유전자(gene)를 결합한 이 기술은 '광유전학'(optogenetics)이라 불린다.(그림 참조)

거식증, 우울증 등 치료 도구 될까

30여년 전인 1979년, 프랜시스 크릭(1916~2004)은 '뇌의 다른 부분을 건드리지 않고 특정 신경세포만 조작하는 것'을 신경과학의 핵심 과제로 꼽았다. 훗날 그는 '빛'이 바로 그런 조절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크릭의 예언을 채널로돕신을 이용해 실현한 칼 다이서로스 연구팀의 논문이 발표된 이후, 신경과학 분야에서 광유전학을 사용한 연구 결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검색하기">신경조직뿐 아니라 꼬마선충이나 초파리처럼 살아 있는 동물에서도 신경과 행동을 조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이 잇따라 보고됐다. 심지어 최근에는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광유전학을 이용해 가짜 기억을 만들어낸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제 광유전학은 약방의 감초처럼 신경과학자들한테 없어선 안 될 핵심 기술로 자리잡았다.

한가지 흥미로운 연구 사례를 소개할까 한다. 2011년 광유전학을 이용해 쥐의 섭식 행동을 연구한 논문 한 편이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됐다. 미국 자넬리아 팜연구소의 스콧 스턴슨 연구팀은 섭식 행동을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진 신경세포(AGRP)에 채널로돕신 유전자를 심었다. 그랬더니 빛 리모컨으로 이 신경세포들을 켤 때마다 쥐들이 밥을 먹어댔다. 비슷한 방식으로 이번에는 섭식을 억제하는 신경세포(POMC)를 광유전학 기술로 켜주자 밥도 적게 먹고 체중도 감소했다.

이 연구 결과는 광유전학이 거식증이나 폭식증 같은 질병 치료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파킨슨병, 우울증, 강박증, 간질 등 다양한 정신질환을 광유전학적으로 연구하고 치료하려는 아이디어가 활발히 제안되고 한창 연구되고 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원하는 신경회로에 채널로돕신 유전자를 심고 빛을 쬐어주는 일이 만만치 않으며, 질병 치료를 위해 알아야만 하는 신경회로에 대해 밝혀진 바도 턱없이 부족하다.

광유전학을 통해 우리는 앞으로 우리 뇌에 대해 더 많이, 더 정확하게 알게 될 것이다. 그 앎은 난치성 정신질환을 극복할 '선한 힘'과 <매트릭스>에서 인간 정신을 통제하는 '악한 힘'을 동시에 가져다줄 공산이 크다. 과연 인간은 그런 앎과 힘을 얻게 될까. 또 얻는다면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대한 서울대 생명과학부 박사과정

※사이언스온 연재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에 실린 글을 필자가 다시 다듬어 썼습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528
  • 가스 방출하는 블랙홀 상상도 [서울신문 나우뉴스]무엇이든 삼켜버리는 블랙홀에서 뭔가가 방출되는 이상한 현상이 관측돼 관심을 끌고 있다. 천문학자들이 허블 우주망원경을 사용해 지구로부터 약 200만광년 거리에 있는 세이퍼트 은하 NGC 5548의 중심에 있는 초대형 질량 블랙홀에서 엄청난 가스가 방출되는 것을 최근...
  • 2014-06-30
  • 러시아 매체의 19일자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모스크바 근교 비행통제센터의 언론대변인은 러시아 연방 우주국의 우주 비행사 2명이 러시아 측 연구 계획에 따라 국제우주정거장을 이탈해 6.5시간 동안 우주유영(Spacewalk)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국제우주정거장의 러시아 우주선 선체 일부의 표면 작업은 러시...
  • 2014-06-23
  • 지난 11일(현지시간)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가 토성의 위성 포이베(Phoebe)의 최근접 사진을 공개해 관심을 끌고있다. 나사와 유럽우주기구(ESA)가 공동으로 개발한 토성 탐사선 카시니호가 최근 촬영한 이 사진은 매우 선명한 화질로 울퉁불퉁한 포이베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있다. 나사 측이 이 사진을 공개한 것은 ...
  • 2014-06-20
  • 토성 위성 타이탄 미국항공우주국(이하 NASA)가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의 대기를 재현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NASA의 고더드우주비행센터의 연구팀은 실험실 내에서 서로 다른 가스를 섞어 타이탄과 가장 유사한 대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타이탄을 감싸고 있는 주된 기체는 질소이며 약간의 메탄이 포...
  • 2014-06-20
  • 태양이 플라즈마 불꽃을 토해내다 다시 삼키는 장면을 미국항공우주국(NASA, 이하 나사)이 16일(이하 현지시간) 공개했다.  태양활동관측위성(SDO)이 지난달 27일 관측한 이 장면은 극자외선(EUV) 영역의 두 파장을 합성한 것으로, 나사의 유튜브 개정을 통해서 영상으로도 공개됐다.  공개된 영상에서 태양은 상...
  • 2014-06-20
  • 밤하늘의 은하수는 언제나 감동을 준다. 끝도 없이 펼쳐진 별들은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다. 그런데 더 아름답고 깨끗한 은하를 보려면 지표면을 떠나야 한다. 각종 공해 때문이다.  미국 항공우주국이 ‘오늘의 천문학 사진’으로 선정된 위 이미지는 약 11.2km 상공에서 촬영한 것이다. 미국의 한 ...
  • 2014-06-20
  •   낚아낸 털코끼리 치아화석 17일, 길림시의 시민 오덕승은 평소처럼 강변공원에 가서 낚시질을 하다 10센치메터길이의 돌덩이를 낚아냈는데 전문가는 이는 고생물시대의 털코끼리치아화석이라고 했다. 오씨에 따르면 돌덩이의 표면이 매끄럽고 미세한 반점들을 보아낼수 있는데 매우 견고, 동물의 치아로 보였다. 전...
  • 2014-06-18
  • ▲명왕성과 달.[사진제공=NASA] 나사, 새로운 가능성 제시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명왕성의 거대한 달인 '카론(Charon)' 표면에 금이 가 있고 내부 온도가 따뜻하다고 가정한다면 카론 내부에 '지하 바다'가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고 미항공우주국(NASA)이 13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나사는 ...
  • 2014-06-16
  • 달의 뒷면 비밀 속에 쌓여 있던 달의 ‘어두운 뒷면’에 대한 미스터리가 마침내 풀렸다. 미국 펜실페이니아주립대의 천체물리학자들이 달의 반대편에 ‘바다’(Maria)가 거의 없는 이유를 밝혀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여기서 달의 바다는 평탄하고 어두워 보이는 지형을 말한다. 연구팀은 달의 뒷...
  • 2014-06-16
  • NASA 연구진이 빛보다 빠른 속도로 항성간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워프’ 기술을 채용한 우주선 모델을 공개했다. 워싱턴포스트기사캡쳐(http://www.washingtonpost.com/news/post-nation/wp/2014/06/11/this-is-the-amazing-design-for-nasas-star-trek-style-space-ship-the-ixs-enterprise/?hpid=z8)(courte...
  • 2014-06-16
‹처음  이전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