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회로 켜고 끄는 광유전학, 뇌의 판도라 상자 열까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10월23일 11시06분    조회:3934
[한겨레][사이언스 온] 신경세포를 움직이는 빛

로봇 기계들이 끝없이 진화하던 어느 날, 인간과 기계가 전쟁을 벌인다. 전쟁에서 승리한 기계 문명은 인간을 자신들의 '건전지'로 만든다. 인간은 기계 안에서 태어나, 기계 안에서 살아가며, 기계 안에서 죽는다.

하지만 정작 인간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기계가 인간 뇌에 전극을 꽂아 가상현실인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다고 느끼도록 인간의 감각을 조작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실제로는 배양기 안에 떠 있으면서도 자신이 검색하기">맨해튼 거리를 거닐고 있다고 착각한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스테이크의 맛을 느낀다. 영화 <매트릭스>(1999)의 이야기다.

인간 뇌에는 약 1000억개의 신경세포가 있다. 각 신경세포는 수많은 다른 신경세포들과 연결돼 100조건이 넘는 신경 접속을 만들어낸다. <매트릭스>의 세계처럼 우리의 감각 경험은 바로 이 어마어마한 신경회로 안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사건'이다. 전원을 꽂은 컴퓨터에서 수많은 전기회로가 한 편의 영화를 상영하듯이, 우리 뇌 속의 신경회로에 끊임없이 전기가 흐르면서 감각 세계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전기자극 이용' 오랜 인간 뇌 연구 방법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신경회로 조작 기술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힘을 우리는 오래전 발견했을 뿐 아니라 끝없이 진화시키고 있다. 18세기 중반 이탈리아 과학자 검색하기">루이지 갈바니(1737~1798)는 신경과 근육이 전기적 자극에 반응한다는 것을 발견해 보고했다. 이후 19세기 초부터 신경생리학자들은 뇌에 직접 전극을 꽂고 미세 전류를 흘리면서 뇌 기능을 연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특히 간질 치료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수행된 전기적 뇌 자극은 우리 뇌가 기능적으로 분화되어 있다는 결정적 증거가 되기도 했다.

1954년 캐나다 검색하기">맥길대학 제임스 올즈 연구팀의 쥐 실험은 '전기적 뇌 자극'을 보여주는 아주 유명한 일화다. 이들은 쥐 뇌의 쾌락 중추에 전극을 심은 뒤, 쥐에게 스스로 레버를 누르면 전류가 흘러 쾌락이 주어지는 조건을 마련해주었다. 놀랍게도 쥐는 밥도 물도 먹지 않고 죽을 때까지 레버만 눌러댔다. 이 연구 결과는 베르베르 베르나르의 소설 <뇌>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극을 꽂아 직접 전류를 흘려보내는 방식으로는 뇌의 신경회로를 정교하게 조작하기 어렵다. 인간의 뇌 속에는 엄청나게 높은 밀도로 미세한 신경세포들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1㎤의 뇌에는 수천만개의 신경세포가 들어 있어 원하는 신경회로만을 자극하는 일이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고, 전극을 자칫 잘못 꽂았다가는 엉뚱한 신경회로를 자극해 예상치 못한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비유하면, 전기적 뇌 자극 방법은 자극이 가해지는 곳 근처의 모든 전기회로를 켜는 '포괄적 리모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자제품의 전원을 켤 수 있는 능력은 갖추고 있으나, 원하는 전자제품만 선택적으로 켜긴 힘든 기술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티브이를 보려고 리모컨을 눌렀더니 갑자기 세탁기, 에어컨, 청소기 등 집안의 모든 전자기기가 한꺼번에 켜지는 소동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빛 감지해 행동 일으키는
녹조류 유전자 '채널로돕신'
뇌 연구 방법 새롭게 개척중
유전자 이식한 뒤 빛 쪼이면
가짜 기억도 진짜처럼 인식
정신질환 치유 등에 활용 모색


빛에 반응해 신경세포를 활성화

티브이 리모컨이 티브이만 켤 수 있는 이유는 티브이 안에 리모컨 신호에만 반응하는 '수신기'가 내장돼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뇌 속에도 이런 식으로 '리모컨-수신기' 시스템을 작동할 수 있다면 감각과 행동을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2002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그런 힘을 가능하게 할 역사적인 논문 한 편이 발표됐다. 흥미롭게도 이 논문은 신경과학 연구팀이 아니라 미생물을 연구하던 독일의 페터 헤게만과 게오르크 나겔 공동연구팀이 발표했다. 이들은 '검색하기">클라미도모나스'라는 작고 둥근 단세포 녹조류에 주목했다. 이 녹조류는 빛을 쬐어주면 빛을 향해 나아가는 주광성의 성질을 지닌 생물이다.

연구팀은 녹조류에는 빛을 '감각'하고 그 빛 쪽으로 나아가는 '행동' 사이를 매개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한가지 단서는 빛을 쬐어주면 클라미도모나스 안에 전류가 흐른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실험을 통해 연구팀은 '채널로돕신'이라는 분자가 빛을 감지해 전류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어 이 녹조류에 있는 채널로돕신의 유전자를 신경세포에다 심으려는 신경과학자들이 나타났다.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학 칼 다이서로스 연구팀이 최초로 포유류 신경세포에서 빛과 채널로돕신을 리모컨과 수신기처럼 사용한 연구 결과를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리모컨 구실을 하는 빛과 수신기 구실을 하는 채널로돕신' 시스템을 통해 신경회로를 조절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빛(opto)과 채널로돕신 유전자(gene)를 결합한 이 기술은 '광유전학'(optogenetics)이라 불린다.(그림 참조)

거식증, 우울증 등 치료 도구 될까

30여년 전인 1979년, 프랜시스 크릭(1916~2004)은 '뇌의 다른 부분을 건드리지 않고 특정 신경세포만 조작하는 것'을 신경과학의 핵심 과제로 꼽았다. 훗날 그는 '빛'이 바로 그런 조절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크릭의 예언을 채널로돕신을 이용해 실현한 칼 다이서로스 연구팀의 논문이 발표된 이후, 신경과학 분야에서 광유전학을 사용한 연구 결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검색하기">신경조직뿐 아니라 꼬마선충이나 초파리처럼 살아 있는 동물에서도 신경과 행동을 조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이 잇따라 보고됐다. 심지어 최근에는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광유전학을 이용해 가짜 기억을 만들어낸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제 광유전학은 약방의 감초처럼 신경과학자들한테 없어선 안 될 핵심 기술로 자리잡았다.

한가지 흥미로운 연구 사례를 소개할까 한다. 2011년 광유전학을 이용해 쥐의 섭식 행동을 연구한 논문 한 편이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됐다. 미국 자넬리아 팜연구소의 스콧 스턴슨 연구팀은 섭식 행동을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진 신경세포(AGRP)에 채널로돕신 유전자를 심었다. 그랬더니 빛 리모컨으로 이 신경세포들을 켤 때마다 쥐들이 밥을 먹어댔다. 비슷한 방식으로 이번에는 섭식을 억제하는 신경세포(POMC)를 광유전학 기술로 켜주자 밥도 적게 먹고 체중도 감소했다.

이 연구 결과는 광유전학이 거식증이나 폭식증 같은 질병 치료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파킨슨병, 우울증, 강박증, 간질 등 다양한 정신질환을 광유전학적으로 연구하고 치료하려는 아이디어가 활발히 제안되고 한창 연구되고 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원하는 신경회로에 채널로돕신 유전자를 심고 빛을 쬐어주는 일이 만만치 않으며, 질병 치료를 위해 알아야만 하는 신경회로에 대해 밝혀진 바도 턱없이 부족하다.

광유전학을 통해 우리는 앞으로 우리 뇌에 대해 더 많이, 더 정확하게 알게 될 것이다. 그 앎은 난치성 정신질환을 극복할 '선한 힘'과 <매트릭스>에서 인간 정신을 통제하는 '악한 힘'을 동시에 가져다줄 공산이 크다. 과연 인간은 그런 앎과 힘을 얻게 될까. 또 얻는다면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대한 서울대 생명과학부 박사과정

※사이언스온 연재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에 실린 글을 필자가 다시 다듬어 썼습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528
  • 에너지 토해내는 블랙홀 [서울신문 나우뉴스]에너지 토해내는 블랙홀의 비밀은? 해외 과학자들이 철과 니켈을 우주 공간으로 쏟아내며 엄청난 우주제트(천체가 폭발할 때 전파나 빛이 거세게 분출하는 현상)를 형성하는 블랙홀을 최초로 발견했다. 유럽우주기관(European Space Agency, 이하 ESA)의 XMM-Newton 우주망원경...
  • 2013-11-23
  • 지난달 말 발생한 톈안먼(天安門) 차량 돌진 사건의 여파로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에 대한 중국 당국의 단속이 강화될 것이란 전망 속에 소수민족 언어로 이뤄지는 통신을 추적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2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새로 개발된 기술은 소수민족 언어로 이뤄지는 음성 통화와 인터넷을 통...
  • 2013-11-21
  • 20일 11시 31분, 중국은 태원위성발사센터에서 장정4호 병 운반로케트로 측지위성 19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으며 위성은 예정궤도에 순조롭게 진입했습니다. 측지위성 19호는 주로 과학실험과 국토자원 보편조사,농산물 생산량추산,재해 방지와 감소 등 영역에 응용됩니다. 이 위성은 장정계렬 운반로케트로 발사한 184번째...
  • 2013-11-20
  •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3단계 태양 흑점 폭발현상이 또 발생했다. 올해 들어 14번째, 최근 한달 사이에만 8번째다. 미래창조과학부 국립전파연구원은 19일 오후 7시 25분께 태양 오른쪽 가장자리에 있는 흑점 1893에서 3단계 태양 흑점 폭발현상이 일어났다고 20일 밝혔다. 폭발은 50분간 지속되다가 오후 8시15분...
  • 2013-11-20
  • 국제 TOP 500 기구가 18일 세계 슈퍼컴퓨터 500위 리스트를 발표했다. 중국 국방과학기술대학에서 연구 제작한 ‘톈허(天河) 2호’는 2위에 오른 미국의 ‘타이탄’보다 배 가까이 빠른 속도로 1위를 차지했다. 미국 전문가는 ‘톈허 2호’가 1년 동안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
  • 2013-11-20
  • 올해 3월 외국 언론은 중국이 해남성 삼아 아룡만 해역에 두번째 항공모함기지를 건설하고있다고 보도했다. 외신은 구글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대형 교량과 제방이 건설중인것으로 확인되였다고 보도하여 새 항공모함기지 건설에 대한 여러가지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그뒤 중국국방부는 소식발표회에서 이 추측에 대응했다...
  • 2013-11-18
  • [서울신문 나우뉴스]은하 곳곳의 초신성 폭발이 마치 불꽃놀이처럼 보인다. 우주가 불꽃놀이라도 하는 것일까. 최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일명 ‘불꽃놀이 은하’로 불리는 NGC 6948의 이미지를 공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공개된 이미지는 NASA의 찬드라 엑스선 관측위성으로부터 관측된 데이터(보라)와 미국...
  • 2013-11-17
  •   (흑룡강신문=하얼빈) ‘놀라운 토성 사진’이 화제다.   12일 미 항공우주국(NASA)은 카시니 우주선이 7월 19일에 촬영한 토성 사진을 공개했다. 카시니 팀은 141개의 광각 이미지들을 찍어 파노라마 사진으로 재탄생시켰다.   사진 속에는 토성의 고리는 물론 지구와 달, 화성, 그리고 금성의 모습이 담...
  • 2013-11-15
  • [아시아경제 노미란 기자] 유럽우주청 GOCE위성의 추락 장면이 포착된 사진이 공개됐다. 지난 11일 GOCE위성이 지구로 추락하는 장면을 포착하는 데 성공한 빌 차터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Cheds23)에 이 사진을 공개했다. 외신에 따르면 유럽우주청은 트위터에 실린 사진 속 위성이 포클랜드 동부에서 지구 대기권에 도달...
  • 2013-11-14
  • 좀처럼 보기 힘든 토성의 신비한 모습들이 등장했다.   씨넷이 12일(현지시간) 소개한 미항공우주국(NASA·나사)의 사진은 놀라운 토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가운데 가장 신비한 것은 토성의 고리는 물론 지구,달,화성,금성이 배경으로 보이는 사진이다. 토성의 이 모습은 65만...
  • 2013-11-14
‹처음  이전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