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블랙홀'을 학부생이 어떻게 발견했나?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11월13일 13시34분    조회:3330
국내 연구진이 '쌍둥이 블랙홀'을 찾아냈습니다. 쌍둥이 블랙홀이라는 건, 블랙홀 자체가 그렇지만, 참 신비로운 현상입니다. 가까운 두 곳에서 빛을 포함한 모든 물질을 빨아들인다니요, 눈으로 볼 수 없으니 상상도 안 됩니다. 블랙홀 2개가 닮았다는 뜻의 쌍둥이는 아닙니다. 이번에 발견한 건 서로 2,600광년 떨어져 있는데, 지구에서는 45억 광년이나 멀리, 지구적 표현이라 멀다는 느낌이 잘 안 납니다만, 아무튼 어마어마하게 멀리 있어서, 둘을 구분하는 게 어렵고 거의 하나로 보인다는 뜻에서 쌍둥이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형 블랙홀은 태양 질량의 4천만 배, 동생 블랙홀은 태양 질량의 5백만 배입니다. 외국에서는 이런 걸 그냥 binary black hole, 서로 다른 두 개의 블랙홀이라고 부른다니, 쌍둥이 블랙홀은 유독 우리나라에서 사람처럼 의인화된 셈입니다.

쌍둥이 블랙홀의 결정적 단서를 찾아낸 건 대학 학부생입니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3학년 조호진 학생(논문 제2저자)입니다. 지난해 유럽 남천문대의 블랙홀 데이터를 연구하다가 우연히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블랙홀 주변에서는 가스가 움직이는데, 이 가스가 빛을 내고, 지구에서는 그 빛의 세기를 관측할 수 있습니다. 블랙홀은 보통 파장에 따른 빛의 세기 그래프가 좌우 대칭으로 나오는데, 학생이 본 그래프는 완전한 대칭이 아니라 약간 찌그러진 모양이었던 것입니다. 학생은 물리천문학부 우종학 교수(논문 제1저자)에게 이걸 얘기했고, 집중적인 연구 결과 블랙홀은 하나가 아니라 사실 두 개였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지금까지 학계에서 검증된쌍둥이 블랙홀은 단 3개에 불과합니다.

약간 어려운 얘기를 덧붙이자면, 빛의 세기 그래프(흰색)가 찌그러진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주는 지금도 팽창하고 있고, 블랙홀과 지구는 그래서 계속 멀어지고 있으므로, 앞서 얘기한 빛의 파장을 지구에서 관측하면 적색 편이가 나타납니다. 원래 파장보다 긴 쪽으로 그래프가 치우치는 것입니다. 근데 그래프가 찌그러졌으니, 혹시 두 개의 그래프가 합쳐져서 그런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된 겁니다. 분석 결과 그게 맞았습니다. 서로 다른 2개의 블랙홀이, 지구로부터 서로 다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위의 사진에서는 흰색 아래 빨간색 그래프 2개가 서로 다른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걸 넌지시 알려주고 있습니다. 허블우주망원경으로 그곳을 관측한 결과, 두 개의 블랙홀은 서로 다른 두 은하의 중심과 일치했습니다.

사실 유럽 남천문대의 데이터는 특별한 게 아니었습니다. 이미 2006년에 나왔던 자료라고 합니다. 처음엔 그걸 관측한 기관이 정보를 쥐고 있다가, 몇 년이 지나면, 아 별 게 없구나, 일반에 그냥 연구용으로 공개하자, 이렇게 해서 학부생에게 데이터가 넘어간 것입니다. 학생이 유럽에 가서 직접 관측한 자료도 아니고, 지금은 남천문대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공개돼 있습니다. 물론 찌그러진 그래프가 모두 쌍둥이 블랙홀로 직결되는 건 아닙니다. 만일 그랬다면, 데이터를 처음 손에 쥔 외국 연구진이 이걸 그냥 넘어갔을 리가 없습니다. 이 데이터를 처음 관측한 외국 연구진은, 쌍둥이 블랙홀이 아닐 수도 있다는 여러 가정을 내놓았다고 하는데, 속이 좀 쓰렸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단순한 우연에서 시작해, 끈질기게 추적한 집념이, 값진 과학적 성과로 이어진 순간입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영국왕립천문학회지 온라인판에 실렸습니다. 쌍둥이 블랙홀은 이제 막 발표한 상태여서, 아직 학계가 이견 없이 인정하는 단계는 아닙니다.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이 우주에 쏘아 올린 찬드라 X선 망원경으로 촬영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블랙홀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에너지를 내뿜기 때문에 X선 망원경으로 찍으면 하얀 점으로 나타납니다. 인터넷에서 NGC6240 혹은 NGC3393을 검색해보면, 이들 은하 중심의 쌍둥이 블랙홀이 두 개의 하얀 점으로 얼굴을 드러낸 걸 볼 수 있습니다. 한 학생의 '행운+노력'이 조만간 신비로운 우주 사진으로 검증되길 기다려봅니다.


박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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