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의 저수지' 박쥐가 끄떡없이 진화한 비밀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1월30일 15시26분    조회: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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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병원체가 박쥐에서 발견된 바이러스와 거의 일치한다는 과학자들의 유전체(게놈) 분석 결과가 나오면서 박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02∼2003년 세계 30개국에서 8000명에 발병해 774명의 사망자를 낸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병원체도 코로나바이러스로 관박쥐에서 온 것이었다.

박쥐와 관련이 있는 인수공통감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사스 말고도 헨드라, 니파 바이러스가 확인됐고, 메르스와 에볼라 바이러스 등 세계적으로 파문을 일으킨 감염병의 기원으로 유력하다. 박쥐는 200종 이상의 바이러스가 모인 ‘저수지’이고, 여기서 흘러넘친 바이러스가 세계적인 감염병을 일으킨다. 박쥐는 왜 이렇게 다양한 감염병 바이러스를 보유하게 됐고,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왜 병에 걸리지 않는 걸까.


박쥐가 어떤 동물인지 아는 것이 출발점이다. 박쥐는 포유류 가운데 매우 특별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포유류 가운데 날개를 퍼덕여 나는 유일한 동물인 박쥐는 진화 역사가 가장 오랜 포유류 가운데 하나다. 지난 1억년 동안 극지방을 뺀 세계 곳곳에 퍼져 1200여 종으로 진화했다. 포유류 종의 약 20%를 차지할 만큼 다양하다.

박쥐는 몸집에 견줘 오래 살아 바이러스가 오래 머물 수 있고 종종 거대한 무리를 이뤄, 한 개체에 감염된 바이러스가 쉽사리 다른 개체로 옮아간다. 멕시코꼬리박쥐는 서식지 한 곳에 100만 마리의 큰 무리를 이루곤 하는데, 밀도가 ㎡당 300마리에 이른다. 도시의 건물과 시설물에 깃들고 멀리 날 수 있는 능력도 인수공통감염병을 퍼뜨리기 용이한 특징이다.

특히 비행 능력은 박쥐가 세계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가 다양하게 분화한 원동력이지만 동시에 수많은 바이러스를 몸속에 지니면서도 거의 병에 걸리지 않는 비결과 관련 있다고 과학자들은 본다.

토마스 시어 미국 지질조사국 생물학자 등은 2014년 과학저널 ‘신종 감염병’에 실린 논문에서 ‘날아가는 박쥐의 높은 체온이 다른 포유류가 감염 때 보이는 발열반응과 비슷하기 때문에 병에 걸리지 않고 다수의 바이러스를 보유할 수 있다’는 가설을 제안했다. 연구자들은 나아가 “박쥐에서 다른 포유류로 흘러넘친 바이러스가 강한 병원성을 나타내는 것도 박쥐의 고온 조건에서 생존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과학자들은 단지 체온뿐 아니라 박쥐의 면역체계 자체가 독특하다는 데 주목한다. 비행하려면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고 몸의 신진대사가 빨라져 유해산소도 많이 발생한다. 이런 비행 스트레스 때문에 세포 안에는 손상된 디엔에이(DNA) 조각이 생기는데, 보통 포유류라면 이를 외부에서 침입한 병원체로 간주해 염증 등 면역반응을 일으킨다. 그러나 박쥐는 달랐다.

저우 펑 중국 우한 바이러스학 연구소 미생물학자 등 중국 연구자들은 2018년 과학저널 ‘세포 숙주 및 미생물’에 실린 논문에서 “박쥐는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면역력을 병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약화해 지나치게 강한 면역반응을 피한다”고 밝혔다. 지나친 면역반응은 종종 병으로 이어진다. 박쥐는 면역체계의 과잉반응과 바이러스의 악영향을 동시에 누르는 균형을 절묘하게 잡는다는 것이다.

박쥐의 또 다른 특징은 오래 산다는 것이다. 관박쥐 등은 30년 이상 산다. 이는 일반적으로 몸이 클수록 오래 산다는 포유류의 일반적 경향과 어긋난다. 쥐의 절반 무게이면서 쥐보다 10배 오래 사는 장수의 비결은 무얼까.

안 마태 등 싱가포르 듀크-NUS 의대 연구자들은 지난해 ‘네이처 미생물학’에 실린 논문에서 “박쥐의 면역 억제가 노화를 늦추는 구실을 한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비행에 따른 감염을 억제하는 쪽으로 진화했는데, 그 과정에서 노화를 막는 효과를 부수적으로 얻었다는 것이다.

신종 감염병의 약 75%는 인수공통감염병이고, 야생동물에서 건너오는 신종 바이러스가 늘어나고 있다. 바이러스의 자연적인 저수지 구실을 하는 박쥐에서 비롯하는 감염병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번 우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이 발생하기 전인 지난해 과학저널 ‘바이러스학’에 낸 리뷰 논문에서 왕 린-파 등 싱가포르 연구자들은 “이제까지 검출된 박쥐 바이러스의 엄청난 다양성과 폭넓은 지리적 분포로 볼 때 이들이 일으키는 세계적 발병사태가 점점 더 늘어날 것은 거의 분명하다”며 “박쥐란 생물에 대한 이해가 이제 시작 단계여서 박쥐와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밝혔다.


박쥐는 신종 인수공통감염병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인류에게 꼭 필요한 생태적 기능도 한다. 바나나, 아보카도, 망고 등의 꽃가루받이를 하고 다양한 열대식물의 씨앗을 퍼뜨린다. 훼손된 열대림 복원에 큰 구실을 하며, 많은 양의 농업 해충을 잡아먹기도 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2011년 발간한 박쥐와 신종 인수공통감염병 관련 편람에서 “생태와 보전, 공중보건의 이해 사이에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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