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2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효원힐링센터에서 열린 임종체험 행사에 참여해 입관체험을 하고 있다. ⓒ News1 박세연 기자
"엄마, 미안해. 바쁘다는 핑계로 짜증내고 귀찮아했는데 그럴 때마다 환하게 웃어줘 정말 고맙고 미안해. 좋은 모습만 보여줬어야 했는데 나만 생각해서, 엄마한테 못된 딸이어서 미안해. 나는 이렇게 먼저 가지만 항상 행복하길 바랄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단연 자살률 1위인 한국.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을 등지는 이들의 소식이 들려오는 요즘, 특이하게도 '죽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모였다.
지난 21일 '임종체험'이 시작되는 오후 2시가 되자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효원힐링센터에는 20대 커플부터 50대 남성까지 다양한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스스로 죽음을 경험하기 위해 모인 이들은 센터에 도착하자 마자 옷도 벗지 못한 채 본인들의 영정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간 취업을 위해, 신분증을 위해 찍어온 사진과는 사뭇 다른 '영정사진 촬영'에 참가자들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각자 얼굴이 담긴 영정사진이 인화되자 이들은 '임종체험관'으로 줄지어 이동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얼굴 위에 둘러진 검은 띠에 이들의 입은 어느새 굳게 닫혔다.
체험관에 도착한 이들은 죽어야만 입을 수 있다는 수의를 입고 이승과 연이 끊어져야만 몸을 누일 수 있다는 관을 옆에 둔 채 저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남기는 유언을 적기 시작했다.
암흑 속 희미하게 비추는 촛불에 의지해 유서를 적는 20대 여성과 50대 아버지의 손에는 눈물을 가득 머금은 휴지가 함께 했다.
시민들이 2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효원힐링센터에서 열린 임종체험 행사에 참여해 수의를 입고 있다. ⓒ News1 박세연 기자
세상에 남은 이들을 위해 '마지막 편지'를 낭독한 서주희(27·여)씨는 "엄마, 미안해"라는 말을 내뱉곤 한참이나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바쁘다는 핑계로 짜증내고 귀찮아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에게 환하게 웃어줘서 엄마 정말 고맙고 미안해. 좋은 모습만 모여줘야 했는데 나만 생각해서, 엄마한테 못된 딸이어서 미안해"라고 말했다.
이어 "엄마, 한때 미워했지만 지금은 정말 사랑해. 엄마가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었어. 나는 먼저 가지만 항상 행복하길 바랄게"라고 남은 이들을 위한 편지를 읊었다.
50대 남성이자 우리 시대의 아버지인 조승환(52)씨는 유언으로 그간의 세월에 대한 회환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남겼다.
조씨는 "가장 먼저 내 평생 100억을 모으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금액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평생 목표로 삼았던 것을 지키지 못함에 후회가 밀려온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신혼 시절, 아내의 속을 썩인 것이 미안하다. 지금까지의 고생을 알기에 남은 삶을 위해 내가 노력했어야 하는데"라며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눌렀다.
아버지로서 그는 "큰딸, 성장하며 본인의 꿈을 잘 키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길 바란다"며 평소 보기 힘든 아버지의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내다 이내 아기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또 다른 30대 가장도 역시 "여보, 나 당신 만난 것이 내 생에 가장 큰 축복이었어. 조금만 더 성실하게 살았더라면 당신과 남은 가족 위해 더 많은 것을 남겨 줄 수 있었을텐데. 함께 보낸 소중한 시간들, 감사합니다"라고 생의 마지막 편지를 읽었다.
시민들이 2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효원힐링센터에서 열린 임종체험 행사에 참여해 입관체험을 하고 있다. ⓒ News1 박세연 기자
유언을 작성하며, 읽으며 두 눈이 퉁퉁부은 이들은 "이제 세상과 영원히 작별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죽을 것입니다. 장기의 기능이 서서히 멈추고… 이제 당신은 죽었습니다. 당신의 사체를 담은 관은 화장됩니다"라는 말과 함께 관 속으로 들어가 침묵의 시간을 시작했다.
관 뚜껑이 닫히고 영정사진만이 촛불에 아른거리는 10분 동안 관 속에서는 흐느낌 등이 터져나왔다.
짧기도, 길기도 한 시간이 지나고 "이제 여러분은 새롭게 태어납니다"라는 말이 들리자 이들은 모두 관을 박차고 나와 새로운 삶을 위한 발을 내딛었다.
입었던 수의를 마구 던져 놓고 체험관의 불이 환하게 켜지자 이들의 표정도 역시 환하게 밝아졌다.
관 속에서 시간 동안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는 전용신(57)씨는 "그동안 게으르게만, 두려워만 하면서 살아왔다"며 "그러나 이번 임종체험으로 모든 것을 떨쳐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관 속에서 답답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 지더라"며 "그동안 미워했던 사람, 나를 미워한 사람 모두에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 체험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포부를 밝혔다.
앞서 유언장을 작성하며 참석자 중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 서주희씨는 "사람들이 살면서 '죽고 싶다, 죽고 싶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나 역시 그랬다"며 "그러나 오늘 경험으로 새로 태어난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실제 죽음으로 세상을 등질까 생각했었다는 그는 "체험관에서 저승사자 복장을 한 도우미를 본 순간 가슴이 '쿵'하고 내려 앉았다"며 "생각만큼 죽음이라는 것은 쉽지 않다. 오늘 경험으로 '죽음'에 대한 생각이 모두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남은 삶을 가치있고 뜻 깊게 살아갈 것"이라며 "죽음을 생각한 사람이든, 아니든 모든 사람들이 임종체험을 한 번씩 경험해봤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연인과 함께 손 잡고 임종체험에 임한 정모(21)씨는 "고등학교 수업 당시 임종체험을 접하게 됐다"며 "오늘 경험으로 좀 더 용기있게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정씨의 연인 조모(23·여)씨도 "관 속에서 '잘 난 사람, 못난 사람 모두 죽음 앞에선 똑같다'라는 생각을 했다"며 "연말을 마무리하려는 마음에서 이곳을 찾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참가자 조남철(43)씨는 "최근 힘든 일들이 겹쳤는데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임종체험' 진행을 맡은 정용문 효원힐링센터장은 "자살을 결심하고 실행에 앞서 임종체험을 통해 미리 죽음을 경험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던 40대 여성이 있다"며 "체험 후, 그녀는 '열심히 살아야겠다'며 펑펑 운 뒤 새로운 삶을 다짐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살률이 점차 높아지는 사회에서 이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뿌듯함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센터 관계자는 "센터가 생기고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채 호기심에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면서 "그러나 최근에는 목적을 가지고 임종체험에 임하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부간 문제, 가정불화 등 개인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며 "'임종체험'의 저변이 확대되며 이 체험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올해 초 문 연 서울 영등포구 효원힐링센터는 유서작성·입관체험 등을 통해 죽음을 미리 체험하는 '임종체험' 센터다.
효원상조의 무료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임종체험'에는 현재까지 5300여명의 체험자가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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