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를 드는 행위와 같은 위협을 하지 않았어도 힘으로 상대방을 누르고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면 부부간에도 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지금까지 법원이 유죄로 인정한 ‘부부 강간’ 사건은 남편이 흉기를 들고 아내를 위협하거나 다치게 하고 성관계를 맺은 경우였다. 이에 따라 법원이 부부 강간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광주고법 제주형사부(재판장 김창보)는 지난 7일 외국인 아내 B씨를 강간한 혐의로 남편 A씨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A씨가 상고를 포기해 이 판결은 확정됐다.
A씨는 2012년 국제결혼 중개 업체를 통해 20살 이상 어린 아내 B씨를 만나 결혼했고, 다음해 B씨가 한국에 오면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2013년 5월부터 7월까지 이어진 신혼 생활은 아내 B씨에겐 지옥이었다. 이 기간 10여차례 이상 남편의 강압에 의해 강제로 성관계를 가져야 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몸을 웅크리는 등 싫다는 의사를 계속 전했지만, A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A씨는 아내에게 집에서 옷을 입지 못하게 했고, 휴대전화 카메라로 나체 사진을 찍기도 했다.
A씨는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 아내가 졸고 있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머리를 때리고, 병원에 데려가달라고 하자 뺨을 때리기도 했다. 결국 결혼 생활 두 달 만에 B씨는 가출했고, 여성단체의 도움을 얻어 남편을 고소했다.
A씨는 지난해 9월 제주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김양호)가 진행한 1심 재판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1심 재판부는 부부간에 정상적 성관계를 맺은 것일 뿐 아내를 폭행하거나 협박한 사실이 없다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 당시 피해자를 폭행하고 협박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한 다음 강간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했다.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A씨는 B씨와 합의했다. 이에 따라 광주고법 제주형사부는 지난 7일 A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2013년 대법원이 흉기로 아내를 위협하고 성관계를 가진 남편에게 ‘부부 강간죄’를 처음으로 인정해 징역 3년6월을 선고한 것보다 한 발 더 나아간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이번 판결이 외국인 아내와 한국인 남편 사이에서 발생한 경우여서 법원이 ‘부부 강간’의 범위를 넓게 보기 시작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한 변호사는 “성관계의 강제성을 판단할 때 남편 이외에 기댈 곳이 없는 아내의 처지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법원의 판결로 볼 때 이를 보통의 국내 부부까지 넓혀서 해석하는 문제는 좀 더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래도 이번 판결로 인해 비슷한 피해를 본 결혼이주여성들의 소송이 잇따를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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