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1년간 발생하는 살인사건은 대략 900건. 대부분 사건들은 증거와 주변의 진술로 수일 내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지만, 몇년이 지나도 전모가 드러나지 않는 미제사건들도 다수 존재한다.
2016년 살인사건 공소시효 제도가 폐지되면서 캐비닛 속에 잠들어 있던 장기 미제사건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최근 활발하다. 발달된 과학수사도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하지만, 무엇보다 범인을 잡겠다는 경찰과 주변의 의지가 진실을 밝히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오랜 기간 풀리지 않고 미스터리로 남을 뻔했던 사건의 진실이 어떤 계기로 밝혀졌는지 사례 별로 모았다.
사건 경위 : 1998년 대낮인 오후 1시에 집에 혼자 있던 주부 A(당시 34세)씨가 성폭행을 당한 뒤 목 졸려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A씨 남편의 체크카드로 151만원을 뽑은 뒤 자취를 감췄다. 당시 도봉경찰서가 발칵 뒤집혀 형사·강력팀 전체가 투입된 수사본부가 꾸려졌다. 단서는 현장에 남은 범인의 DNA와 혈액형, 현금입출금기 폐쇄회로(CC)TV에 찍힌 범인의 흑백사진이 전부. 당시 막내로 투입된 김응희 경위도 선배 형사들 심부름하며 수사를 거들었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다. 그는 5개월 뒤 인근 경찰서로 발령 나 사건에서 손을 뗐고, 수사본부도 2년여간 범인을 잡지 못한 채 해체됐다.
어떻게 잡았나 : 2011년 초 강 사장의 형과 친분이 있던 한 형사가 광진경찰서 강력5팀에 합류하면서 재수사가 시작됐다. 수사 기록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중국으로 출국한 양씨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다. 행방을 추적하니 그는 경기도 용인의 한 요양원에 입원 중이었다.
경찰이 찾아간 양씨는 위암 4기로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양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직도 눈만 감으면 (살해한) 사장님 얼굴이 떠오른다. 너무 죄송하다"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경찰은 양씨 자백을 토대로 나머지 공범 서씨와 김씨을 검거했고 주범 양씨는 자백 8일 만에 사망했다.
검거된 서씨와 김씨는 "양씨가 사장을 죽인 건 맞지만 우리는 시체만 옮겼을 뿐 죽이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주범 양씨가 숨지고 공범들은 입을 다물어 버린 상황에서 사건은 또다시 미궁 속으로 빠질 위기였다. 그러나 이 사건 범인들이 구속됐다는 보도를 본 또 다른 공범 1명이 자수했다. 또 다른 김 모 씨는 수사팀에 전화를 걸어 "저도 공모해서 사장님을 죽였습니다"고 범행을 자백했다. 새롭게 나타난 공범 김씨에 함께 폭행으로 강 모씨를 죽였다는 정황을 확보할 수 있었다.
어떻게 잡았나 : 2015년 11월 금융감독원에 "13년 전 의성 교통사고는 아내의 가족들이 보험금을 노리고 한 짓"이라는 제보가 접수됐다. 공범 중 한 사람이 술자리에서 한 말을 어렴풋이 기억한 누군가가 보험 사기라고 제보한 것이다. 이렇다 할 만한 물증은 없었지만 금감원은 이를 경찰에 신고했다. 경북경찰청 장기미제사건팀 최명호 경위는 13년 전 의성 미제 뺑소니 사건 발견했고, 검찰에서 폐기 직전인 사건 기록을 겨우 얻어냈다.
수사팀은 재수사를 시작하면서 '뺑소니로 위장한 살인 사건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웠다. 하지만 보험금을 노렸다고 의심하기에는 불충분한 점이 많았다. 피해자 김씨의 아내 박씨가 김씨 앞으로 보험 두 개를 가입한 것은 사망 사고 3년 전이었다. 불입액도 많지 않았다. 보험금 수령자인 박씨는 사건 당시 친척 모임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 알리바이가 확실했다.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경찰 내부에서 "여러 정황상 제보가 잘못된 것 같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수사팀은 마지막으로 박씨 여동생에게 '한 수'를 던져보기로 했다. 그녀를 경찰서로 불러 이 사건에 대해 물으면 그녀가 경찰서를 나가 분명히 공범에게 연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조사를 받은 여동생은 경찰서를 나서자마자 헤어진 내연남 최씨에게 연락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경찰은 여동생과 계좌 거래 내역이 있던 최씨가 공범일 수 있다고 추리했다. 경찰은 최씨가 직접 트럭을 운전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최씨를 조사했고 궁지에 몰린 그는 경찰에서 "김씨를 죽인 트럭은 동창인 이씨가 운전했다"고 자백했다. 경찰이 생각지도 못했던 살인범 이씨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기사 더보기
어떻게 잡았나 : 불법체류자였던 강씨는 스스로 불법체류 사실을 신고하면 별다른 처벌 없이 과태료만 내고 출국할 수 있는 출국명령 제도를 이용해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중국 다롄(大連)항으로 달아났다. 강씨는 중국에서 돈벌이가 되지 않자 2004년 브로커를 통해 가짜 신분증을 사고 이름을 이○○ 바꿔 다시 한국으로 밀입국했다. 그리고 2011년 실시한 '재외동포 고충해소'를 통해 합법체류자 자격을 받았다. 한국에서 어엿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회사 대표가 됐고, 결혼까지 했다.
하지만 지난 7월 "이○○이 예전에 사람을 죽이고 중국으로 도망쳤었다"는 내용의 첩보가 경찰에 입수됐다. 강씨가 술을 마시면서 털어놓은 과거 이야기를 누군가 듣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이○○을 붙잡은 경찰이 지문을 채취해 보니, 1997년 호프집 살인사건 용의자 강씨가 자진 출국할 때 찍었던 지문과 일치했다. 경찰이 "당신 강○○ 아니냐" 묻자 처음엔 완강히 부인하던 강씨는 이내 고개를 떨구고 범행을 자백했다. ▶기사 더보기
사건 경위 : 2001년 2월 4일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드들강 유역에서 17살 여고생 박모양이 피살당했다. 발견 당시 박 양은 성폭행 당한 채 알몸으로 강에 빠져 숨져 있었다. 사인은 익사였다. 박 양의 주검에서는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체액도 확보했고 주검에서 범인의 DNA까지 확보했으나, 일치하는 용의자를 찾지 못했다. 이후 해당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가, 2012년에 DNA와 일치하는 인물을 추적, 마침내 용의자를 찾았다.
그러나 용의자로 지목된 김모씨는 성폭행 혐의는 인정했지만 살인 혐의는 부인했다. 김씨는 이미 강도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 중이었다. 김씨의 살인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사건은 다시 미제 사건이 되는 듯했다. ▶기사 더보기
어떻게 잡았나 : 결국 용의자가 성폭행 직후 박 양을 살해했는지가 밝혀내려면 성관계 후 얼마 만에 사망했는지 알아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피해자가 성관계 후 바로 죽었다면 김씨가 피의자인 게 확실해지는 상황이었다. 광주지검은 국내 1세대 법의학자 이정빈 씨에게 이 부분을 의뢰했다. 이 교수는 사건 당시 수사관이 채취한 거즈에서 정액, 혈액이 듬성듬성 섞이지 않은 채 있는 정액을 발견했다.
생리 중이었던 피해자가 성관계 후 움직였다면 정액과 혈액이 뒤섞여 있었을 거란 가설을 세웠다. 위생팩에 아들의 정액을 넣고 주사기로 자신의 혈액을 살살 밀어 넣었더니 6시간 30분 동안 놔둬도 섞이지 않았다. 그런데 걷는 상황을 가정해 좌우로 움직이니 완전히 섞이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박양 몸에서 채취된 것은 정액과 혈액이 분리돼 있었으니 성관계 당시 기절했거나 저항을 거의 못한 상태라고 보고 성폭행 후 바로 죽인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기사 더보기
사건 경위 : 1998년 10월 17일 새벽 5시 10분쯤 대구 구마고속도로 위에서 한 여대생이 23t 화물차량에 치여 숨졌다. 시신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됐다. 이상한 점이 있었다. 시신의 위아래 속옷이 없었다. 전날 밤 10시 40분쯤 대학축제 주막촌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캠퍼스를 떠난 후 연락이 끊긴 계명대 간호학과 1학년 정은희(당시 18세)양이었다.
속옷이 없다는 점, 시신 훼손이 심했다는 점 등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지만 당시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해 사건을 종결했다. 유족들은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정은희양 사건'으로 조금씩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이내 영구 미제사건으로 분류돼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졌다.
지금까지 이 사건은… 딸의 죽음을 수긍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생계 수단이었던 채소 장사는 진작에 접었다. 목격자를 찾기 위해 뿌린 전단만 수만장이 넘었고,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전신주에 걸었던 플래카드만 수백장이다. 정씨는 2013년 5월 검찰에 또 고소장을 냈다.
대구지검 형사1부(부장 이형택)는 2010년 DNA법(강력범죄자의 DNA를 채취해 보관하도록 하는 법률)이 제정된 것에 가능성을 두고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과 경찰의 DNA 자료를 뒤져 15년 전 정양 속옷에서 채취한 DNA가 여고생에게 성매매를 권유하다가 붙잡힌 스리랑카인 A(46)의 DNA와 일치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검찰은 3개월여 동안 수사를 벌여, 15년 전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한 A씨 등 스리랑카인 3명이 술에 취한 정양을 고속도로 부근으로 끌고 가 집단 성폭행한 사실을 밝혀냈다. ▶기사 더보기
그러나... 특수 강도·강간 혐의로 기소된 스리랑카인 2015년 A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성폭행 혐의는 정양 속옷에 묻은 DNA가 K씨 것과 일치해 입증이 충분했지만, 특수 강간죄 공소시효가 10년이어서 1998년 발생한 이 사건의 처벌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검찰은 "K씨와 범인들이 정양의 책과 학생증 등 소지품을 빼앗았다"는 다른 스리랑카인들의 진술을 확보해 K씨를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수 강도·강간 혐의로 2013년 기소했다. ▶기사 더보기
하지만 1심과 항소심 재판부 모두 증인으로 나온 스리랑카인들의 진술(소지품 탈취)을 믿을 수 없고, 혐의를 입증하기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2016년 1·2심에서 무죄가 나온 스리랑카인 K(50)씨를 스리랑카 법정에 세워 처벌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6일 밝혔다. 공소시효 문제로 한국에서 처벌이 어렵다면 공소시효가 한국보다 긴 스리랑카에서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스리랑카의 특수강간죄 공소시효는 20년이다. 하지만 이들이 정양에게 가한 범죄 행위는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채 한국 땅에서는 처벌이 어렵게 됐다. ▶기사 더보기
사건 경위 : 2004년 12월 12일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보통리 태봉산에서 뼈가 드러나 있는 시체 한 구가 발견됐다. 시체는 들쥐들에게 갉아먹히고 있었는데 이틀 뒤 국과수의 부검결과 49일 전에 실종된 인근대학에 다니는 여대생 노 양의 시신으로 밝혀졌다. 시신을 찾기 전 주변 지역에서는 노 양의 휴대폰, 속옷, 청바지 등 유류품들이 하나씩 발견됐는데 청바지에는 정액으로 추정되는 액체가 묻어 있었다. 경찰은 '인권침해' 논란에도 주변인물과 화성 일대 4600여명의 택시기사, 전과자들의 DNA 샘플을 검출하여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으나, 어느 하나도 일치하지 않았다. 사건 당일 노 양을 태운 버스기사와 함께 내렸던 여대생에게 최면수사를 실시했으나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 사건은... 12년이 지난 이 사건의 범인을 잡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건의 유일한 단서였던 노양의 청바지에 묻어있던 정액이 2005년 8월 이 DNA는 유전자 분석을 실시하던 국과수 요원의 땀 등에 의해 훼손됐기 때문이다. 공소시효는 폐지됐지만 사건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는 화성 여대생 살인사건과 포천 여중생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없어졌다. 경찰은 이 사건을 포함 2000년 이후 발생한 살인사건 275건을 재수사하기 시작했다. 2000년 이후 15년간 발생한 전체 살인사건의 3.5%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이나 '개구리 소년 사건'처럼 영원히 미제로 남은 사건도 있지만, 대부분의 살인사건은 포기하지 않는 한 범인은 밝혀지기 마련이다. 초동 수사에서 놓쳤던 증거와 인물이, 또는 누군가가 흘린 말 한마디가 십수년이 지난 사건을 밝힌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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