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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건강 고려해도 엄벌 필요" 총수일가 횡령·증여세 회피 혐의
변호인 "판사 말 못 알아듣는데… 경제 거목 욕되지 않게 해달라"
비자금 못 찾자 탈세로 수사 전환, 혐의 소명 못 해 영장도 기각돼
검찰은 1일 신격호(95) 롯데그룹 총괄회장에게 징역 10년과 벌금 3000억원을 구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신 총괄회장은 범행을 최초 결심하고 지시했다는 점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함께 주범의 지위에 있어 연령과 건강 상태를 고려하더라도 엄정한 형사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해 10월 장남인 신동주(63) SDJ코퍼레이션 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57)씨 모녀에게 회사에 근무하지 않았는데도 508억원의 급여를 주었다는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신 총괄회장은 올해 95세로 중증 치매를 앓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6월 신 총괄회장이 정상적인 의사 결정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판단해 한정 후견인 선임을 확정했다. 이날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출석한 신 총괄회장은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듯 횡설수설했다.
법조계에선 이런 신 총괄회장에게 검찰이 징역 10년의 중형을 구형하는 게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신 총괄회장의 변호인은 "신 총괄회장의 애국심과 경영 철학을 욕되게 하지 말고 경제계 거목이 조용히 물러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지난달 30일 열린 공판에서도 변호인은 "기억력을 거의 상실해 자기 방어 능력이 없는 신 총괄회장을 전과자로 만들지 말아 달라"고 했다.
신 총괄회장은 이날 재판장이나 검사가 말하는 도중에 변호인에게 "지금 뭐 하는 거냐"며 여러 차례 화를 냈다. "지금 재판 중인 건 아십니까"라는 재판장의 질문에는 "잘 모르겠다. 왜 재판을 하는 건가?"라고 되물었다. 변호인이 "회삿돈을 횡령했기 때문에 재판을 받는다"고 하자 "횡령할 이유가 없는데 누가 기소를 해"라며 역정을 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사실상 수감 생활이 불가능한 사람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달 30일 신 총괄회장의 차남인 신동빈(62) 회장에게도 징역 10년과 벌금 1000억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신 회장을 비롯한 롯데 총수 일가(一家)가 상상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기업 재산을 사유화했고, 그 규모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여서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했다.
검찰은 지난해 6월부터 4개월 넘게 롯데그룹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검사 20여 명과 수사관 200여 명을 투입해 10여 차례 압수 수색을 하고 롯데 관계자 400명을 소환 조사했다. 그러나 수사 착수 당시에 타깃으로 꼽았던 총수 일가의 비자금은 찾아내지 못하고 탈세 수사로 방향을 틀었다.
검찰은 신동빈 회장 등 롯데 핵심 관계자 9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6명의 영장이 기각됐다. 법원은 신동빈 회장의 영장을 기각하면서 "범죄 혐의에 대한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수사의 첫 단추인 영장 단계에서조차 범죄 혐의가 소명되지 않은 것이다.
검찰의 구형량은 법원이 재판의 기준으로 삼는 법정형이나 양형기준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다만 법조계에선 수사 결과에 비해 검찰의 구형량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변호사는 "검찰이 재벌 수사에 대한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해 체면을 구기지 않으려 중형을 요청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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