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역 같은 치명적인 질병이 무덤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USA투데이는 최근 몇년 새 미국 내 홍역 발생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전했다. 18일(현지시간)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해 보고된 전 세계 홍역 발생 건수는 22만9000건으로 전년의 2배를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한때 미국에서 완전 퇴치 선언까지 있었지만 백신 개발(1968년) 반 세기 만에 홍역이 다시 세계인의 걱정거리가 된 것은 예방접종이 제때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예방접종률이 낮아진 이유로는 홍역 백신이 자폐증 원인이란 근거 없는 소문이 백신 반대 운동으로 이어진 점이 꼽힌다.
◆되살아난 공포… 홍역 환자 200만명 시대
WHO는 “지난해 보고된 홍역 발생 건수는 실제의 10분의 1도 안 된다”며 전 세계 홍역 환자가 200만명 이상일 것으로 예상했다.
2018년에 홍역은 유럽에서만 전체의 3분의 1가량인 8만2596건이 보고됐다. 전년(2만5000여건)에 비해 3배 이상 늘면서 72명이 숨졌다. 수년간 이어진 러시아와의 분쟁으로 백신 공급이 어려운 우크라이나에서 5만3000여건이 보고됐다. 세르비아(5076건), 이스라엘(2919건), 프랑스(2913건), 이탈리아(2517건), 러시아(2556건), 조지아(2230건), 그리스(2193건) 등 8개국에서 2000건 이상 발생했다. 전반적으로 예방접종률이 증가했는데도 지역별 편차가 커 홍역 바이러스 유행을 막기 어려웠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홍역 환자가 급증한 필리핀도 연초부터 비상이 걸렸다. 지난 5일까지 수도 마닐라의 산 라사로 병원을 찾은 홍역 환자만 1500여명인데, 이 중 1350여명이 소아·청소년과 환자였고 생후 3개월에서 4세 사이 유아 55명이 숨졌다. 지난해 필리핀 수도권에서 발생한 홍역 환자는 3646명으로 전년(351명)의 10배가 넘었다. 2016∼2017년 뎅기열 백신 접종 후 70명에 가까운 어린이가 숨지면서 예방접종을 꺼리는 분위기가 생긴 탓이다. 240만명 이상의 어린이가 홍역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되면서 필리핀 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인도양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지난해 10월 이후 900명 이상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홍역으로 숨졌다.
미국도 홍역 환자가 급증하면서 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지난달 30여명의 환자가 발생한 워싱턴주의 제이 인슬리 주지사는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홍역은 영유아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고감염성 질병”이라며 “다른 카운티로 급속히 번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공중보건 상태에 놓여 있다”고 우려했다.
베트남의 남부 경제도시 호찌민도 최근 홍역 환자가 급증했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도 지난 2016년 홍역이 확산해 1700명이 발생했고, 이 가운데 14명이 숨졌다.
일본도 홍역 청정지역은 아니다. 지난해 홍역 환자가 100명을 넘어섰는데, 당시 태국을 다녀온 관광객이 홍역에 감염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후 오키나와현을 중심으로 4차 감염자까지 나오면서 환자가 급증했다.
◆‘백신 거부’ 집단서 확산…‘예방접종 의무화’ 목소리 커
홍역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것은 예방접종을 등한시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따른다. 미 인터넷매체 복스(VOX)는 “미국의 주들이 백신 거부를 너무 쉽게 받아들이면서 홍역이 다시 창궐했다”면서 “종교적이든 도덕적이든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것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WHO 유럽사무소도 “지난 2016년 유럽에서 홍역 발생 건수가 최근 10년간 최저치를 기록한 이후 급격히 늘고 있다”며 예방접종 감소를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 일부 선진국에서는 홍역 백신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이 퍼진 게 원인으로 지목됐다. WHO 고위관계자는 “홍역 백신이 자폐증의 원인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면서 백신 반대 운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 홍역이 확산한 카자흐스탄도 일부 학부모가 자녀들의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일이 빈번한 것으로 확인됐다. 접종 거부의 70%는 종교적 이유, 나머지 30%는 개인적 신념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는 어린이 1000명 중 1∼2명이 홍역으로 숨지는 것으로 보고됐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홍역 소멸 선언 이후 홍역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어린이 비율이 1% 이상으로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홍역은 2000년 85만건이 보고됐지만 예방접종 확대로 급격히 감소했다가 지난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전 세계 홍역 예방접종률은 85%가량인데, 백신 수급이 힘든 아프리카 등 분쟁지역에서는 지난해 70%대에 그쳤다.
홍역은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나 임신부에 치명적일 수 있다. 일본 산부인과의사회는 임신부에게 오키나와·아이치현, 태국, 필리핀,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이탈리아 등 홍역 유행 지역 여행을 피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홍역 유행국가로 여행할 경우 예방백신을 적어도 1회 이상 접종하라고 알리고 있다. 특히 생후 6∼11개월 영아라도 1회 접종 후 출국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바이러스성 질병인 홍역은 호흡기 분비물이나 공기를 통해 감염된다. 7∼21일간의 잠복기 이후 발열, 기침, 콧물, 결막염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대개 회복되지만 설사, 중이염, 기관지염, 기관지 폐렴 등의 합병증이 동반하거나 때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홍역 감염을 막기 위해서는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 최선이다. WHO는 “홍역은 완전히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이라면서 “백신은 안전하고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CDC “유행 지역 여행 후 감염… 예방접종 미흡 지역 통해 확산”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올해 들어 지난 7일까지 미국 10개주에서 101명이 홍역에 걸린 것으로 확인됐다고 18일(현지시간) 밝혔다. 구체적으로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코네티컷, 조지아, 일리노이, 뉴저지, 뉴욕, 오리건, 텍사스, 워싱턴주에서 홍역이 발병했다.
미국은 지난 2010년 홍역이 완전히 퇴치됐다고 선언했지만 다시 고민에 빠졌다. 특히 지난 10년간의 발병 사례를 보면 홍역이 유행하는 지역을 다녀온 여행객을 통해 감염이 시작되고, 예방접종이 미흡한 지역을 통해 확산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CDC는 밝혔다.
지난해에는 뉴욕주와 뉴욕시, 뉴저지주에서 발생한 3건을 포함해 총 17건이 발생했다. 특히 정통 유대교 사회에서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감염이 확산했다. 당시 대규모 발병이 있었던 이스라엘을 여행한 사람들이 옮긴 경우가 많았다. CDC는 “지난해 82명이 다른 나라에서 미국으로 홍역을 옮겼다”며 이는 홍역 퇴치 선언 이후 가장 많은 규모라고 전했다.
2017년 미네소타주에서만 75명이 홍역에 걸렸다. 역시 예방접종에 취약한 소말리아계 미국인 사회가 발병의 중심으로 지목됐다. 2015년에는 캘리포니아의 한 놀이공원과 연계된 대규모 홍역으로 곤욕을 치렀다. 홍역에 감염된 여행객이 이 놀이공원을 찾으면서 바이러스가 퍼져 여러 주로 확산한 것으로 추정됐다.
2014년에는 383명의 홍역 환자가 한 지역에서 발생하는 등 총 23건이 발병했는데,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고 사는 오하이오주의 ‘아미시’ 공동체가 주요 발병 사례였다. 2014∼2015년의 경우 필리핀에서 대규모로 발병한 홍역 바이러스가 미국으로 건너온 것으로 분석됐다.
2011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유럽 30개 회원국 이상에서 홍역 발생이 증가했는데, 특히 프랑스에서 홍역이 대유행했다. 이 시기 미국 내 홍역 발병은 대부분 프랑스에서 넘어온 것으로 조사됐다. 2008년 홍역 발병도 예방접종을 하지 않는 지역사회에서 확산된 사례가 많았다고 CDC는 전했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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