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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 같은 몸매’ 하면 어떤 그림이 그려지시나요.
8~9등신의 비율을 자랑하는, 마르고 군살 없는 몸매일 겁니다. 우리가 아는 마네킹은 이렇게 천편일률적으로 다소 비현실적인 모습을 특징으로 하지요. 그런데 최근 세계 최대 스포츠의류 브랜드 중 하나인 나이키가 이런 관념을 당당히 깨 화제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영국 런던의 메인 쇼핑거리인 옥스포드 스트릿에 있는 매장에 뚱뚱한 마네킹을 선보이면서인데요. 나이키의 스포츠 탑과 레깅스 세트를 입고 있는 ‘플러스 사이즈 마네킹’의 등장은 말 그대로 ‘시선강탈’로 반향을 일으키는 중입니다. 언론과 소셜미디어(SNS)상에선 “미(美)의 고정관념을 깼다”는 호평과 “비만을 미화한다”는 비판이 엇갈리고 있지요.
나이키의 이런 움직임은 비만이 많은 미국과 영국 등에서 최근 불고 있는 ‘보디 포지티브’(BodyPositive·신체긍정) 열풍과 맞닿아 있습니다. 노브라, 파운데이션 프리(노메이크업) 등으로 특징되는 ‘탈코르셋’ 운동의 일환이라고도 볼 수 있을 텐데요. 어떤 체형이든 긍정적 생각을 갖자는 인식이 널리 퍼지자 그간 전통적인 미의 기준을 제시해온 패션·뷰티업계도 발맞춰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이번 [알쓸신세-알고 보면 쓸모 있는 신기한 세계뉴스]에선 사회전반에 뿌리 깊게 깔린 외모지상주의에 반기를 선언한 이들의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비만은 뛰지 못한다”에 들고 일어났다
“비만 마네킹은 여성들에게 위험한 거짓말을 팔고 있다.” 지난 9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의 타냐 골드는 이 같은 제목의 칼럼으로 나이키의 새 마네킹을 저격했습니다.
골드는 “나는 비만과의 전쟁이 사라지거나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될까 두렵다”는 말로 시작해 “그녀(마네킹)는 비만이고 나이키의 멋진 옷을 입고 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녀는 달릴 수 없을 뿐더러 당뇨병 환자일 가능성이 높고 고관절 치환술(을 해야 하는) 길로 가고 있다”고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지요. 참고로 영국은 비만을 일으키는 탄산음료에 설탕세를 부과하는 방법으로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골드는 ‘비만’이라는 단어는 “경고가 되어야 한다”며 “이윤을 위해 비만 모델을 잠재적으로 건강할 것으로 취급하는 나이키를 보는 게 우려스럽다”고도 주장했습니다. 비만도 바람직한 상태인양 과체중을 조장할 수 있다는 겁니다. 마치 비현실적인 마른 몸을 이상적이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잔인하다고도 덧붙였지요.
골드의 칼럼은 거센 반발을 불렀습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지는 “그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도대체 그게 왜 문제이냐”는 제목의 반박 기사를 실었는데요. 글을 쓴 소피아 타세우는 “나 자신도 플러스 사이즈 여성”이라며 “대개는 이런 걸 무시하지만 이 비판은 뭔가 끔찍하게 기분이 나빴다”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습니다. 골드에 맞서 “우리는 건강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인식을 왜곡시켰다”며 “나이키 마네킹은 뚱뚱한 몸을 가시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건 훌륭한 조치”라고도 맞받아쳤지요.
“팻포비아(비만공포증)다. 다양한 몸을 배제하는 건 진보와는 정반대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 이스크라 로렌스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렇게 일침을 놨습니다. 그는 “말랐을 때보다 더 건강하다”고도 썼습니다. “마네킹은 다양한 체형을 가진 이들이 건강관리에 참여하도록 장려한다”는 게 로렌스의 주장인데요. 이 게시글엔 16만7691개의 ‘좋아요’가 달렸습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피트니스를 운영하는 사라 테일러 역시 플러스 사이즈 마네킹의 등장이 고무적이라고 말합니다. ”플러스 사이즈 여성은 운동할 수 없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깨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지요. “많은 사람이 플러스 사이즈 몸은 활동적일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플러스 사이즈인) 나는 7일 중 6일을 운동한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스스로를 비만이라 밝힌 한 누리꾼은 골드의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런던 마라톤에 참가한 사진을 올리기도 했지요. 테그웬 터커 역시 트위터에 “타냐 골드가 클릭을 위한 미끼로 아주 멋진 일을 했다”고 비꼬면서 “나는 나이키 마네킹처럼 생겼지만 올해 10㎞와 하프 마라톤에 참가했다. 비만 여성이 달릴 수 없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확실히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온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역도선수, 레슬러, 달리기 선수 가운데 플러스 사이즈라 주장하는 운동선수들도 힘을 보탰지요.
깡마른 모델 전유물이던 패션계에 부는 ‘다양성’ 바람
나이키는 진작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당당하게 표현하자는 ‘보디 포지티브’ 운동의 선두에 서 온 브랜드입니다. 2016년엔 작가이자 플러스 사이즈 모델인 팔로마 엘세서를 모델로 기용해 스포츠 브라를 홍보했습니다. 패션지 코스모폴리탄은 당시 나이키가 ‘별일도 아닌 것처럼’ 이들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며, 이들을 다르게 보지 않은 나이키의 시선에 호평했지요. 최근엔 스포츠 브라 모델로 겨드랑이 털을 그대로 드러낸 나이지라아계 미국인 가수 아나스타샤 에누케를 써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곧 장애를 가진 마네킹도 매장에 세울 계획이라 하지요.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추구하던 보수적 패션계에 다양성을 인정하는 새 바람이 불고 있다는 건 여러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미국 캐주얼브랜드 타미힐피거는 장애인 모델을 앞세우며 장애인이 입을 수 있는 의류라인을 내놨습니다. 백반증 모델 위니 할로우는 차별적 시선에 고등학교를 중퇴해야 했지만, 전 세계 런웨이를 누비며 무대에 섰고 보그나 코스모폴리탄 같은 유명 잡지에서 활약 중이고요.
팝 가수에서 디자이너로 변신한 리한나는 속옷 브랜드 ‘세비지X펜티’에서 다양한 체형의 여성이 착용할 속옷을 선보이며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첫 패션쇼에선 임신부 모델인 슬릭 우즈와 엘세서를 등장시켜 화제를 모았지요. 아메리칸이글의 속옷 브랜드 ‘에어리’는 포토샵 보정을 중단하고 뚱뚱한 여성부터 장애가 있는 여성까지 다양한 체형의 일반인들을 모델로 내세운 결과에 힘입어 지난해 분기 매출이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날씬한 모델들만을 고집하는 ‘빅토리아 시크릿’과는 차별화된 행보이지요. “트렌스젠더를 무대에 세워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우리의 쇼는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최고마케팅책임자(CMO) 에드 라젝은 ‘보디 포지티브’가 업계 화두로 떠오른 상황에서 이 같은 구시대적 입장을 밝힌 뒤 거센 역풍을 맞기도 했습니다. 결국 “경솔한 발언”이었다는 사과문을 발표했지요. 최근 급격한 실적 부진을 겪는 이유와 관련해서도 미 경제 온라인 매체 쿼츠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트렌드는 여성의 권리 신장과 신체 긍정인데도 섹시한 여성 마케팅에 끈질기게 매달려서”라고 쓴소리했습니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은 ‘보디 포지티브’를 널리 전파하는 데 맹활약 중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미국의 에슐리 그레이엄은 ‘두꺼운 허벅지가 생명을 구한다(#thickthighsaveslives)’는 해시태그를 달고 이런 운동에 앞장서고 있지요. 그는 지난 2017년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모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날렵한 턱선과 평평한 복부 등이 돋보이는 사진 한 장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가 “더는 당신의 팬을 할 이유가 없어졌다” 등 불만과 원성을 사기도 했는데요.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통해 많은 이가 대리만족을 해왔음을 보여주는 셈입니다. 그레이엄은 평소 셀룰라이트가 보이는 무보정 사진을 적나라하게SNS에 올려왔는데요. 자신을 본 딴 바비인형을 만들 때도 꼭 지켜야 할 제작 조건으로 ‘인형의 허벅지가 서로 닿아야 한다‘는 요구를 했다고 하지요.
하루 아침에 ‘있는 그대로 괜찮다’고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일 겁니다. 나이키 마네킹 논란에서 보듯 거부감을 표하는 이들도 여전히 많지요. 그럼에도 ‘사회적 시선을 버리고 나답게 사는 것’이 요즘 대세에 가깝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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