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이 없는 한 소녀가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당당히 서 있다. 곱슬곱슬한 검은 머리카락과 얼굴과 목에 백색 반점을 지닌 또 다른 소녀는 미소를 머금고 있다. 휠체어에 앉거나 의족을 한 소녀도 보인다.
마텔사가 올해 새롭게 선보인 인형 바비. 머리카락이 없는 바비(왼쪽에서 넷째), 백반증을 앓고 있는 바비(맨 오른쪽) 등이 포함됐다. [사진 마텔사]
이 소녀들은 모두 인형 ‘바비(Barbie)’다. 잘록한 허리와 금발, 길고 가느다란 팔·다리와 같이 획일화된 외모의 인형 바비에 익숙한 기성세대에겐 낯설 수 있다. 하지만 1959년 탄생한 바비는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며 계속 진화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장애를 가진 바비가 나오고 있다.
3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마텔사는 지난 28일 이전보다 더욱 다양한 피부 톤과 헤어스타일 등을 지닌 바비를 선보였다. 이번에 처음 등장한 바비 가운데 하나는 백반증을 앓고 있는 인형이다. 백반증이란 멜라닌세포가 결핍돼 피부 곳곳에 하얀 반점들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지난해 2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장난감 박람회에 휠체어에 앉은 바비, 의족을 한 바비, 흑인 바비 등 다양한 바비가 늘어서 있다. [AP=연합뉴스]
‘백반증 바비’의 등장은 환영받고 있다. 미국 백반증 연구재단의 최고 책임자인 스텔라 파블리데스(74)는 “이 질환이 있는 어린이들에게 있어 그들의 얼굴과 같은 얼굴을 가진 인형의 등장은 백반증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22세 때 백반증 진단을 받은 파블리데스는 상점 등에서 물건을 사고 돈 계산을 할 때 점원들이 그의 손을 스치길 꺼려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바비는 인종·신체·장애에 대한 편견에 차례로 도전하고 있다. 우선 1967년 첫 흑인 바비가 등장한 이후 아시안·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바비가 나왔다.
2016년 새롭게 등장한 체형이 통통하거나 키가 작은 바비. [사진 마텔사]
2016년엔 통통한 몸매의 ‘커비 바비(curvy Barbie)’, 키가 작은 ‘프티 바비(petiteBarbie)’ 등 다양한 신체 비율을 가진 바비가 등장했다. 2017년엔 히잡을 쓴 바비도 나왔다. 지난해에는 휠체어를 탄 바비 등 장애를 가진 바비가 탄생했다.
바비의 이같은 진화는 매출 상승을 이끌었다. 마텔사에 따르면 지난해 바비 판매량은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 매주 가장 많이 팔리는 바비는 ‘곱슬머리의 흑인 바비’라고 마텔사 관계자가 뉴욕타임스에 밝혔다.
2017년엔 히잡을 쓴 바비가 나왔다. 이 히잡 바비의 모델인 히잡 쓴 펜싱선수 이브티하즈 무함마드가 ‘히잡 바비’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마텔사의 이런 진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레베카 헤인스 매사추세츠 세일럼 주립대 언론통신학과 교수는 “마텔은 어린이의 50% 이상이 백인 가정 이외의 출신이란 사실을 깨닫고, 시대를 잘 따라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지금과 같은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길 원한다면, 지금처럼 다양한 바비를 선보이면 된다”고 조언했다.
반면 마케팅 윤리 전문가이자 미국 메시아 칼리지의 데이비드 하겐부크 교수는 “마텔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든다”면서도 “여전히 아직도 인구를 진정으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완벽하게 대칭되는 코와 갈대처럼 얇고, 균형 잡힌 몸매는 실제 미국인의 몸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바비는 출시부터 현재까지 전세계에서 약 10억 개 이상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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