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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대에 누운 환자가 코에 튜브를 꽂은 채 바이올린을 켠다. 이 환자는 ‘뇌종양 수술’을 받는 중이다. 그의 이마부터 드리워진 비닐막 뒤에서 의사들은 뇌 속에서 종양을 제거하고 있다.
영국의 킹스칼리지 병원이 공개한 영상에 담긴 뇌수술 장면이다. 미국의 공영라디오 방송 NPR은 19일 ‘뇌수술을 받는 동안 연주를 한 음악가’ 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이 수술에 얽힌 사연을 소개했다.
바이올리니스트 다그마 터너(53)가 그녀의 뇌 속에서 종양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2013년이었다. 지난해 의료진은 이 종양이 커지고 있다면서 터너에게 종양 제거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종양이 오른쪽에 있으니 오른손에는 문제가 없고 왼손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터너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잠깐만요, 그쪽은 제게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요. 전 바이올린을 연주자라고요.” 터너는 활을 쥐고 현을 누르고 미는 등의 작업은 모두 왼손이 수행한다는 걸 의료진에게 상기시켰다.
피아노 연주자이기도 한 의사 키요마르 아슈칸은 터너의 얘기를 듣고 동료 의료진과 고민한 끝에 이색 수술을 계획했다. 수술 중 환자를 깨워 바이올린을 연주케 하기로 한 것이다.
의료진은 수술을 시작하기 전에 2시간에 걸쳐 다그마 터너가 바이올린을 켤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을 세심하게 찾아냈다. 그런 다음 환자를 깨워 바이올린을 연주케 해, 해당 영역의 손상 여부를 확인했다.
“우린 다그마에게 바이올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바이올린 연주에 필요한 섬세한 뇌 영역을 잘 보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다그마 터너의 수술을 집도한 의사 키요마르 아슈칸이 NPR측에 한 말이다.
“전 10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했어요. 바이올린은 저에게 ‘삶의 열정’ 그 자체입니다. 바이올린 연주 능력을 잃는 것이 얼마나 가슴 찢어지는 일인지를 아슈칸 박사가 이해해줬어요. 그 역시 뮤지션이기도 하죠.”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아슈칸 박사는 “종양의 90%를 제거했으며 왼손의 기능은 온전히 보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환자를 깨워 음악 연주를 시키는 뇌 수술은 매우 드물지만 시도된 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NPR에 따르면 2016년 1월 한 음악교사가 뇌 종양 제거 수술을 받으면서 색소폰을 연주한 사례가 있다. 카네기 멜론 대학의 신경과학자인 브래드 마혼이 집도한 수술이었다. 마혼은 NPR에 당시 수술에 대해 “연주 방법은 물론 음악에 대한 이해까지 모두 관장하는 뇌 영역과 관련된 수술이었기 때문에 매우 까다로웠다”고 설명했다. 이때의 수술도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마혼 박사에 따르면, 최근에는 fMRI기법을 통해 뇌 영역의 세부적 기능을 마치 지도를 보듯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됐고, 의료진은 예전보다 더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수술에 임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의료진은 이제 환자의 다양한 요구를 들어줄 수 있게 됐다. 자신의 수학 능력이 온전히 보존된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뇌수술 도중 수학 문제를 푼 회계사 환자 사례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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