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중공 각급 지도간부
4. 현·구급 중공 지도간부
문일평(文一平, ?—?): 중공길림특별지부 서기
1931년 10월, 중공만주성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중공길림현위원회를 중공길림특별지부로 개편, 결성하는 데 참여하고 서기가 되였다. 서기가 된 후 기층당조직을 건립하고 로동운동과 학생운동을 조직하였으며 대중혁명단체들을 결성했다. 1932년 2월, 중공만주성위원회의 소환을 받아 길림을 떠났다.
(자료출처: ≪중공길림지구사≫)
박강연(朴钢渊, ?—?): 중공삼간방구위원회 위원
1930년 8월부터 1932년 1월까지 중공삼간방구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자료출처: ≪중국공산당료녕성조직사자료≫)
박동환(朴东焕, ?—?): 중공반동구위원회 서기
1931년 2월, 중공반동(磐东)구위원회 서기가 되였다.
(자료출처: ≪중국조선족혁명투쟁사≫)
박문익(朴文益, 1896—?): 중공룡정구위원회 서기
박건(朴建), 박춘식(朴春植)이라고도 했으며 조선 함경남도 흥원에서 출생하여 길림성 연길현으로 이주했다. 1930년 10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룡정구당위원회 서기가 되였다. 11월에 중공룡정구위원회 행동위원회 산하 종업원운동위원회 책임자로 반일폭동에 참가했다가 일본경찰에 검거되여 1933년 12월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자료출처: ≪한국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
박사규(朴四奎, ?—?): 중공청원현위원회 조직부 부장
1935년 7월부터 11월까지 중공청원현위원회 조직부 부장을 지냈다.
(자료출처: ≪중국공산당료녕성조직사자료≫)
박세진(朴世振, 1903—1932): 중공연길현위원회 서기
리삼(李三), 김춘식(金春植), 송일(宋日)이라고도 했으며 길림성 화룡현 약수동 출신이다. 1928년 9월,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엠엘파) 동만도 평강구위원회 간부가 되였고 1930년 8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당해 9월 중공연화중심현위원회 조직부 부장이 되였고 11월에 중공훈춘현위원회의 설립에 참가하였다. 1931년 8월, 중공연길현위원회 조직부 부장이 되였고 1931년 12월 중공연길현위원회 서기가 되였다. 1932년 7월, 연길현 태양 신흥동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자료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박문봉 편저 《동북항일전쟁 조선족 인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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