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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148] 안해를 읽어가는 인생 려행(2)
조글로미디어(ZOGLO) 2023년7월14일 00시15분    조회:2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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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의 일등 부자인가 착각하겠네

한 가정에서 경제력은 지레대 역할을 한다. 나에게는 대학생이라는 빈껍데기나 다름없는 이름이나 붙었지 결혼할 때까지 털면 먼지 밖에 없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말하자면 안해를 만나고 가시집에서 밀어주었기에 남들이 그처럼 숨 톺던 결혼 3년의 버거운 ‘보리고개’를 헤쳐나가고 연길이라는 도시에 무난히 ‘연착륙’할 수 있었다. 형제들도 돕고 그 힘든 세월도 이를 악물다 싶이 너무 빠듯하지 않게 헤쳐나갈 수 있은 것도 안해 직장의 복리가 로임으로는 견주기 어렵게 풍성했기에 가능했다. 복리라면서 굵직굵직하고 빛갈이 번쩍번쩍하는 덩어리 석탄을 한 트럭씩 실어다가 통째로 와그르 부려놓을 때거나 한 상자에 40근씩 담은 닭알을 비닐상자 채로 집앞까지 날라다 줄 때면 솔직히 이른바 대학생이라는 내가 로임도 장려금도 내밀게라곤 없으니 작아지는 같아 초라해난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이 무상복리였다. 복리네하고 닭알 한근에 1원씩 낮추어 준다해도 입이 함박 만해서 깨질세라 신문지에 돌돌 말아가지고 오거나 제값을 다 내면서도 석탄을 집앞까지 실어다준다고 감지덕지해야 하는 나의 직장 복리와 비기면 하늘과 땅 차이라 어깨가 처질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안해는 한번도 우리 직장 복리를 우습게 보거나 차라리 받아오지 말라고 물 먹인 적이 없었다.

그 무렵 세간에서는 복리를 어쩌면 자존심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직장에 나가면 우리 마누라 직장에서는 어떤 복리를 해줬소, 우리 나그네 직장에서는 어떤 복리를 해줬소 하고 서로 침방울 튕기는 승벽내기가 풍토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마누라 직장의 복리가 여차여차하다고 잔뜩 자랑하다가도 정작 동료 맥주군들을 집에 데려가서는 어깨가 한없이 작아지는 남자들을 볼 때면 솔직히 참담했다.

남자가 기를 못 펴면 가서 술 얻어먹는 식객들까지 비렁뱅이 같아서 내가 집에 술손님을 자주 데려왔는지 모른다. 누구나 어렵게 지내던 그 세월, 자주 식당놀음 하는 건 사치였다. 그만큼 집에 청하는 것도 중용적인 궁여지책이라 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안해를 믿고 가시집을 믿고 동료와 작자, 통신원들을 집에 자주 데려왔다. 세집이 작아서 넘어나면 가시집으로 옮기면서까지 아쉬움 없이 대접하느라고 서성거렸다. 아무튼 안해는 마음을 쓸라치면 의도적인 경계선을 두지 않는 게 편안했다

몇년전 일이다. 우리 직장과 업무 련계를 가지고 있는 국외 회사 일군들과 한창 저녁식사를 하는데 내 옆에 앉았던 손님이 느닷없이 돈지갑을 꺼내더니 거기에 끼여있는 녀자애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제 딸애입니다. 이쁘지요?”

이쁘지 않아도 례의상 이쁘다고 발라맞추어야겠는데 정말 이뻤다.

“참으로 이쁘장하네요, 몇살입니까?”

“네살입니다. 피아노를 배우고 있습니다. 정말 멋지게 치고 있습니다. 언제 오시면 와서 구경하십시오.”

그 나라 사람들의 긍지감과 자존심은 우리가 놀랄 만큼 대단하다. 여기에 약한 것이 우리의 취약점이자 고질이라고 할가….

“그러 길 기대하겠습니다.” 막연하더라도 기분을 맞추는게 례의였다. 기실 이 무렵 나는 그보다도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안해가 제일 질색하는 그림이다.

집에 돌아가서 나는 은근히 안해의 감수성을 슬쩍 건드렸다. “오늘 직장에 온 외국 손님이 딸애 사진을 내놓던데 참 예쁘더라고.”

우리 부부는 딸애 비위가 심한 편이다. 안해는 내가 별로 큰 일이나 하는 것처럼 뛰여다니느라 하는 바람에 딸애를 가지지 못했다고 지금도 나에게 원망 다분한 푸념을 쏟을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녀자애들을 유난히 예뻐한다.

“그래서요? 또 뭘 사주고 싶어서 그러지요? ” 첫 마디를 듣고도 안해는 족집게처럼 내 속을 짚어낸다. “면봐로 맞추네, 애를 보니 안 사주고는 못 견디겠는데…”, “그럼 사주면 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옷은 동무가 고르는 눈썰미 있잖아? 난 자신 없는데…”

“또 애매한 돈 팔게 됐네요.”

술군의 뜻은 술에 있지 않다고 내가 왜 능청을 부리는지 안해는 안다. 말하자면 안해의 돈지갑을 넘보아서이다. 이튿날 아침 안해는 툴툴거리면서도 못이기는 척 따라나선다.

서시장 서쪽 켠 아동복장 매대를 찾아갔다. 그때는 늦은가을이여서 먼저 겨울옷을 골랐다. 아무리 서민적인 서시장이라도 근사한 쪽으로 고르니 깎아도 350원이 들었다. 안해는 짐짓 나를 돌아보았다.

“이젠 됐지요?”

나는 고마와 하면서도 난색을 보였다.

“어찌 겨울옷만 보내겠소? 여름옷도 사주면 금상첨화일텐데, 애가 얼마나 신나하겠소?”

“그럴 줄 알고 묻는 거예요. 그저 주자, 주자. 그 주는 병 언제 떨어지겠어요.”

결국 250원을 주고 여름옷 한벌 더 샀다. 안해가 한심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인젠 시름 놓았지요?”

“아무리 그러기로 어찌 옷만 달랑 보내겠소? 단촐하게스리…”

그래도 내가 뭐가 아쉬운 듯 머뭇거리자 안해는 못마땅한 듯 나를 흘겨보았다.

“또 외국식품이겠지요?”

“역시 잘도 맞추네.”

이번에는 외국 상품 부식물 매대를 찾아가 과자사탕을 골랐다. 150원이 들었다.

“세상에 동무 같은 바보는 없을 거예요. 자기 딴에는 똑똑한가 해가지고, 로임 나오면 뽀쑈(报销)해주세요.”

말이 이렇지 그 돈 갚으라고 밉상스레 칭칭거리지 않는다. 그걸 알기에 안해 돈지갑을 여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안해와의 모종 공감을 이뤄내는 과정이야말로 즐거운 체험이다.

선물구럭을 신나게 들고 가는 나를 뒤에서 안해가 빈정거린다.

“콱 인사하세요, 남들이 연길 일등 부자인가 하겠어요.”

나는 분명 부자 아니여도 자기한테 있는 걸 별로 아끼자 안하고 나누어 쓰는 걸 즐기는 편이다. 외람된다만 이런 돈을 쓸 때가 종종 있다. 궁핍하던 1970년, 2학년을 다닐 때 철도가속인 한학급애한테서 3전짜리 알락달락한 닭알노란자위무늬 연필을 공짜로 얻어가지고 신나게 퐁퐁 뛰여서 집으로 갔다가 그애 엄마가 야단치는 바람에 머쓱하게 돌려주고 아버지에 선생이던 큰누님까지 가세해서 육신이 아프게 꾸중받던 아린 기억이 뿌리 내려서인지도 모른다.

안해는 왜 한사코 중고차에 ‘NO’ 했을가

살면서 생활을 락천적으로 마주하는 안해한테서 나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닮아진 것 같다. 안해는 아무리 어려워도 힘들다는 말을 안하고 돈이 말라도 우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또 장사하면서도 사이가 버성긴다면서 일절 남한테서 돈도 꾸지 않는다. 그러기에 언제나 근심걱정이 없이 여유로와 보인다. 제딴에는 부모를 모시겠노라고 가시집 공짜세집까지 뿌리치고 나오는 바람에 한동안 힘들게 보낸 건 사실이다. 민망하다만 5전짜리 엽전이 큰돈 같아 애지중지 만지작거리던 세월도 있었다. 그래도 안해는 풍족하게 살던 본가집을 떠난 일을 갖고 나하고 낯을 붉힌 적이 없었다. 형제에 조카까지 무더기로 많은 우리 가문에 들어오면 돈이 물처럼 새야 되나 써야할 데라면 안해가 주춤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말하자면 안해는 써야할 돈, 안써도 될 돈에 자신의 똑바른 정의를 가지고 있었다.

2003년에 애 학교근처에 집까지 새로 사놓고 나니 자가용차 비위가 슬슬 나서 차를 사달라고 안해한테 청을 든 적이 있다. 그때 외국에 나가있던 안해는 우리 집의 자금줄이라 할 수 있었다.

솔직히 애가 상학하기 편하게 학교를 지척에 둔 아빠트를 사다보니 학부구역이라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있던 돈을 다 허물어버렸기에 차를 산다는 건 어쩌면 무리수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안해의 대답은 시원했다. 솔직히 나도 안해가 거절하지 않으리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자요, 너무 고급스러운 건 그렇더라도 브랜드는 근사한 걸로 골라요. 돈을 곧 보내주겠어요.”

외국에 나가 있더니 브랜드말까지 슬슬 나온다. 내게 차가 꼭 필수적이여서 그랬다기보다 애를 데리고 집을 지키는 남편이 고마워서 힘내라고 사주자는 마음이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고른 것이 ‘뷰익’브랜드차이다. 차값이 한창 뛸 때여서 지금 같으면 9~10만원으로도 거뜬히 살 수 있는 차인데 당시에는 보험비까지 16만 5,000원이나 뭉청 밀어넣었다. 브랜드는 그렇다 치더라도 수수한 모델의 차였다. 그렇든 말든 설 익은 임자를 만나는 바람에 이때로부터 이 차의 수난시대가 시작되였다.

나는 안해가 썩 오래전에 어데 선가 얻어다 준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었으나 핸들을 잡기는 둘째 치고 시동을 걸 줄조차 도통 모르고 있었다. 그래도 운전은 장난이 아니지 않는가 하면서 안해가 하도 달구치기에 운전학교에 등록했으나 서너번 운전학교를 가네하고는 직장일이 딸려 결국 그만두고 말았다. 핸들 돌릴 줄도 모르는 주제에 언감 차를 사놓았으니 짜장 아이 낳기전에 이름부터 짓는 코미디나 다름없었다. 며칠을 차전문점에 세워두다가 그것도 모양새가 곱지 않아 일군을 보고 몰아달라고 청들어서 아빠트 울안에 가져다 세워두었다. 그리고 개인운전사한테서 10일간 벼락같이 숨차게 운전기술을 배웠다. 이게 전부의 운전 밑천이였다. 공들이지 않는 탑은 흔들리기 마련이다. 제딴에는 그쯤하면 차를 굴릴 수 있겠다고 자신하면서 처음으로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 천천히 후진한다는 것이 웬걸, 후시경으로 펀히 보면서도 운전이 서툴러 뜨락또르 적재함을 치고 말았다. 적재함은 멀쩡한데 내 새 차는 엉성하게 푹 찢어졌다. 기막히게 맹랑했다. 그래도 누구를 탓할 수 없었다. 또한번은 길을 가다가 멀쩡한 정신에 중앙선 세멘트격리대를 쳐놓아 왼쪽 앞바퀴 축까지 떨어져나가버린 아찔한 사고를 저지른 적도 있었다. 그 후에도 크고 작은 사고를 밥먹듯 저지르는 바람에 차는 만신창이 되여버렸고 차츰 차를 보기조차 싫었다.

이 무렵 안해가 외국으로부터 돌아왔다. 룡정에 가게를 차렸기에 룡정과 연길 사이를 오가자면 차는 절실히 필요한 교통운송도구라 할 수 있었다. 안해도 애물단지 차를 팔아버리자는 데는 동감이였다. 다만 그 다음 어떤 차를 사느냐에서 엇갈렸다. 이제 차에 신물이 날대로 난 내가 돈 팔며 새 차를 사느라 말고 중고차라도 사자고 건성으로 나오니 웬걸 안해는 답지 않게 새 차를 사겠다고 나왔다. 워낙 별로 사치를 부리지 않고 고집도 세우지 않던 안해가 정색해서 나오니 나로서도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안해가 왜 새 차를 우기는지 그 까닭을 말하지 않으니 더구나 답답했다. 안해는 보기와 다르게 내성적일 때가 많다. 쉽사리 자기 속을 털어놓지 않거니와 엄청 말을 아낀다.

티각태각하다가 나의 태도는 이상하게도 ‘사자’는 데로부터 ‘사라’는 쪽으로 돌아섰다. 차가 나와 상관이 없다는 말이 되였다. 차에 관심이 없으면서도 중고차를 사라고 들먹이는 내가 우스워서 외국에 나가있는 아들애 보고 왜 어머니가 기어이 새 차를 사자하는지 까닭을 아는가 넌지시 물었다. 아들애가 퍼즐처럼 널어놓는 함축적인 말들을 요리저리 맞춰보고 나서야 나는 안해가 원인을 밝히지 않는 까닭을 대충 짚어낼 수 있었다.

자가용차를 굴리고 다니는 안해의 친구들은 많았다. 외람된다 만 물론 그속에 외간남자한테서 선물받은 꽤 고급스런 외제차를 굴리고 다니는 친구들도 있었다.

“어머니는 꼭 새 차를 사고 싶어 그러는 게 아닐 겁니다. 그래도 이름이 로반인 데 체면이라도 있어야지 않겠습니까?”

아들애 말을 듣고 나서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그래! 녀자들한테는 그런 승벽이란게 있다. 네가 그러는데 나라고 왜 못 그러겠는가 하는 오기 말이다. 남은 외간남자덕에 외제차까지 굴리고 다니는데 국외에서 돈 벌다가 금방 귀국했고 그것도 떳떳한 제돈으로 사면서 중고차를 굴리고 다니면 남들한테 구차해보이지 않겠느냐는 심리에서였다고 대충 추려낼 수 있었다. 이러고 보면 안해는 남편하고 아들하고 따로 할 말을 가지고 있다. 하긴 여직껏 결혼생활에서 안해가 이렇게 우기기는 처음으로 기억된다. 결국 16만원을 주고 새 차를 사기는 했으나 안해 얼굴에는 새 차를 샀다고 으쓱해하는 표정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2010년 때의 일이다.

세월이 훌쩍 흘러 몇해 지난 얼마전 일이다. 결혼한 아들애 앞으로 집을 사놓았는데 애가 그 쪽에서 취직하게 되니 그냥 비워둘 수 없어서 팔게 되였다. 그간 달마다 내던 대출금까지 다 물고도 얼마간 떨어진 것으로 안다. 그 돈을 보내겠다니 아이는 단통 막았다.

“저한테는 필요 없으니 거기 두십시오.”

“집을 통째로 못 사줘 미안하다마는 전세집이라도 맡아야 할 게 아니야?”

“회사에서 신참 직원들을 배려해서 5년씩 들수 있도록 지은 주택이 특혜로 차례졌으니 그 사이에는 집 걱정을 안해도 됩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아이는 뭔가 떠오른 듯 따로 엄마한테 위챗을 보냈다.

“그 떨어진 돈으로 이 참에 차를 새로 바꾸십시오. 20만원이면 괜찮은 거 살 수 있겠는데요. 모자라면 제가 여기서 더 보내드리겠습니다.”

직장을 찾으면 아버지에게 ‘보마’ 아니면 ‘벤츠’를 꼭 사주겠다고 허풍 떨던 녀석이 정작 제 살림 차려서 살아보니 그게 장난처럼 록록치 않아서 잠잠하나 싶었는데 공짜돈 같은 게 불쑥 생기니 전에 한 약속이 불쑥 떠올랐던 모양이다. 제가 번 돈인지 아니면 ‘어시’들이 벌어준 돈인지 애매한 돈이기는해도 아무튼 잊지 않고 약속을 외우기라도 하니 기분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생각 밖에 안해는 시무룩하게 대꾸했다.

“차를 바꿔 뭘해, 있는 대로 굴리고 다니면 되지.”

하긴 어느새 차를 거의 7, 8년 굴렸으니 바꿀 때도 되였다. 새 차로 바꿀가요 하고 요즘들어 자주 속삭이던 안해가 시큰둥하게 나오니 괜스레 이상해보였다.

“사십시오, 뭐 어려운 일도 없는데 뭘 걱정합니까? 저는 제노릇을 할 수 있으니 이젠 좀 아버지와 어머니도 즐기십시오.”

“지금 차로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으니 더 말 마.”

“언제는 새 차를 사겠다고 고집하더니 오늘은 왜 이럽니까?”

“간단하지, 그때는 갓 로반이고 지금은 한물간 로반 아니야? 그런 멋 피워 뭘 하겠니? 나는 싫으니 아버지하고 물어봐라. 아버지가 바꾸겠다면 바꾸든지…”

또 아프고 여린 부위를 살짝 건드린다. 이 말에도 우여곡절이 있다. 안해로서는 내가 차에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워낙 차라면 콤플렉스가 있는 데다 지난해 안해가 국외로 떠난 후 세워두던 차를 굴렸다가 한주일 안에 벌금 소나기를 무더기로 맞고 나서는 차를 보기만 해도 머리가 어지러워난다.

한달간 국외에 가있던 안해가 차년도점검을 받으려고 교통대대를 찾아간다더니 나한테 전화가 왔다.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벌금이 1,500원이나 나왔습니다.”

“무슨 말이야? 시내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금이라니?”

“그게 아니라 몽땅 직장 앞 십자거리 오른쪽 굽인돌이에서 허선지나서 실선을 밟은 채 우회전해서 찍혔습니다. 일곱번이나…”

교통대의 벌칙이라면 흔히 에누리없다. 내가 실수한 게 분명하다. 이런 거야말로 짜장 억수로 재수 없는 악재이다. 한달에 열흘되나마나하게 운전했는데 일곱번 찍혔다고 하니 운전할 때마다 규칙을 어기고 걸려들었다는 말이 된다. 자기로서도 한심해났다.

“되도록 차를 몰지 말라는데 괜히 끌고 나올 건 뭡니까?”

핸드폰에서 안해의 푸념이 들려오자 나는 발끈했다.

“그랜 데는 어쨌단 말이야!”

나한테인지 안해한테인지 모르게 쏟아진 울화이다. 결국 벌금은 안해가 물고 그날 저녁 내내 둘 사이에 말이 오가지 않은 채로 밤을 보냈다.

나의 운전 실력을 알고도 남는 안해는 내가 핸들을 잡는 걸 극도로 꺼린다. 둘이 다닐 때라도 한사코 핸들을 나에게 맡기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팔푼’이 아닌가고 주변에서 은근히 힐끗거리는 눈길들과도 자주 부딪치게 된다. 솔직히 이 같이 궁색한 처지에서 차를 바꾸자고 덤빌 수도 없다.

/리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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