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의 더위와 청량한 바람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계절이다.
내가 살던 교하시 천강향 홍풍촌 마을 뒤산에 남다른 아이디어로 십여년전부터 지역 실정에 맞게 여러가지 나무며, 약재며, 산나물 등을 심으며 산장을 건설하는 분이 있다.
리대철 사장
홍풍촌은 원래 70여세대가 살았던 마을이였는데 지금은 30여세대가 살고 있다. 이 촌에서 살다가 외지에서 돌벌이 하다 귀향한 리대철(70세) 사장이 이곳에서 산장을 건설한다는 말을 듣고 지난해 9월 3일 미리 예약하고 산장 려행을 떠났다.
고속도로에서 뻐스를 타고 한시간 좀더 가니 천강에 도착했다. 역에는 벌써부터 리대철 사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도 몰 줄 아세요?”
“일하는 데 편리하려고 쉰아홉에 운전면허를 땄어요.” 나이를 잊고 필요로 하는 것이면 배움에 부지런한 매너 넘치는 사장이다. 우리의 상봉은 꼬박 33년 만이다. 인사말을 나누는 사이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와−, 산장 길이 탁 트여 속이 뻥 뚫리네요!”
필자(왼쪽 첫번째)와 리대철(중간) 사장과 그의 아들 리상규
“네, 자비로 이십만원을 들여 닦은 길입니다!” 한시간을 들여 오르내리던 꼬불꼬불한 산길을 십분 거리로 단축시켰으니 탄복이다. 시골 산장은 푸르름이 가득한 숲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건설중이여서 별로 유명세는 타지 않지만 운치가 좋은 곳으로는 손색이 없다. 산 둔덕에 올라서니 한무리의 물오리떼가 푸드득−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 아래로 끝이 가물가물한 련꽃못이 한눈에 안겨온다.
“89년도에 두개 골짜기를 밀어 큰 거는 7,000평방메터, 작은 거는 2,000평방메터로 형제 저수지를 만들었어요. 십년전에 련꽃씨를 뿌렸는데 련잎들이 수면 우를 채우며 밭을 이루었네요.”
내물도 없는 마을 뒤산에 인위적으로 이렇듯 아름다운 ‘련꽃바다’를 일궈냈으니 눈부신 산장의 발전이 한눈에 보인다.
여름 막바지를 보내고 난 련꽃송이들이 피였다 지면서 련밥을 품은 송이들이 련잎 사이로 쏙쏙 내밀고 있다. 빠금히 머리를 내민 련잎 마다는 바람 따라 우아한 너울춤으로 방문객을 반겨준다.
9월에 잡아들어 운이 좋게 어쩌다 채 피지 않은 련꽃송이를 발견하니 여간 반가웁지 않았다. 련꽃 포기마다는 고귀하고 단아한 자태를 뽐내며 산곡 간에 향기가 차넘치게 한다. 련잎에 맺힌 수정 같은 물방울이 예뻐서 들여다보니 날아예는 꿀벌도 있고 련잎 우에 쉼하는 개구리도 있었다.
련못에 비낀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푸른 산을 배경으로 련이어 폰 버튼을 눌렀다. 물속에는 붕어랑 잉어랑 자유로이 헤염치며 날리다.
“어떻게 고기까지 키울 생각을 했나요?”
“한국 제주도 바다고기 양어장에서 일하며 배웠어요. 6년 반을 한국에서 돈벌이 하면서도 마음은 항상 살던 고장에 있었어요.”
그는 중국으로 돌아오기 바쁘게 가가호호에 분배했으나 방치한 산들을 모아 촌당지부의 허락을 받고 밭농사 짓는 한편 산장 건설에 달라붙었다. 마을에서 누군가 꼭 해야 할 일을 리대철이 먼저 시작한 것이다.
산장 건설을 하면서 하는 일마다 순풍에 돛단 것은 아니였다. 육체적인 일은 밥 먹고 힘을 내면 하나하나 추진해나가면 되지만 집안에 들이닥친 우환은 삶을 고단하게만 했다.
가난한 가정에 년세 많은 부모님과 누이 동생들이 있는 대가정에 흔연히 시집와준 안해가, 남편 일이라면 무조건 나서서 밀어주었고 아들 둘을 낳은 일등 공신인 안해가, 시부모님들이 집안일에 힘들세라 일거리를 앗아 하던 착한 안해가 급작스레 쓰러진 것이다. 젊은 나이니까 병이 나아질 거라는 믿음 하나로 하던 일을 멈추고 안해를 데리고 좋다는 병원은 다 다녀왔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집에 돌아가 지켜보란다.
부모님에, 어린 두 자식의 공부까지… 리대철 사장의 두 어깨를 내리눌렀다. ‘시작한 일을 중도에 그만둘 수는 없어!’ 식구들과 상론하고 간호해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안해를 조건 좋은 길림시조선족양로원에 입주시켰다. 장장 35년, 지금도 양로원에서 보내는 안해를 생각하면 안해 신변에 있어주지 못해 안쓰럽다고 목소리를 낮춘다.
지난 세기 80년대 리대철은 두칸짜리 초가집 한칸에 3백여마리 캉베르 오리를 시험 삼아 사육한 적이 있다. 큰돈을 벌지 못했지만 밑지는 장사는 아니였다. 당시 마을 수의로 있은 리대철은 수의 관련 지식을 더 많이 알려고 자비로 3년 넘게 장춘에 있는 대학에 다니며 수의 공부를 했다.
리대철 사장은 개화 전성기가 지나간 련못에서 몇대의 련밥과 함께 련잎을 꺾어 손수 묶은 꽃다발을 나한테 건넸다. 고향을 잊지 않고 찾아주어 고맙단다. 진심어린 마음을 담은 선물이여서 련밥 송이들을 하나씩 뽑아 곁에 앉은 친구들한테 나눠주며 함께 즐거움을 향유했다. 련잎과 열매의 싱싱한 향을 맡으며 이를 가꾸느라 얼마나 많은 신고를 했을가는 마음에 물음 꼬리가 계속하여 이어졌다.
“산장 건설에 돈이 수태 들어갔겠어요?”
“길림 시내에 있던 아파트가 파가이주하면서 나온 돈까지 몽땅 투자했어요. 부모님들은 생전에 젊어서 하는 고생은 사서 한다고 가르쳤거든요. 지금 하고 있는 일 모두가 고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돈을 은행에 저금해 두기보다는 이렇게 쓰니 보여지는 것들이 있어 좋아요. 짠돌이처럼 돈을 오그려 쥐고 만 있으면 산장에 꿈을 심을 수가 없어요.” 평범한 삶의 일상에서 얻어낸 리대철 사장만의 노하우다.
고맙게도 당년에 같은 사무실에서 출근했던 지기들을 몽땅 불러주어 우리는 사장 말씀에 약속이라도 한 듯 힘찬 박수를 보냈다.
차려준 밥상에는 닭우리에서 금방 가져다 삶은 닭알이며 산장에다 심어 가꾼 인삼을 넣은 삼계탕도 구수한 맛을 냈다. 련근으로 만든 조림, 붕어에 애호박이며 상추를 넣고 얼큰하게 만든 찜까지 … 모두가 산장에서 나는 자연산 료리들이다. 둘러앉은 우리들은 음식을 두고 쉴 새 없이 칭찬했다. 그동안 이어지는 재미있는 우리들의 지난 이야기들은 고무줄마냥 길게 길게만 늘어나고 웃음소리는 산장 안에 듣기 좋게 메아리쳤다.
삼계탕에 넣은 인삼을 가리키며 대철 사장은 인삼씨를 뿌려 고스란히 잘 자래우면 산삼에 가까운 량질의 양삼이 된다고 했다. 땅이 진흙 기운이면 싹은 나오다 말고 흙속에서 녹아버리고 만다. 여러해 동안의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터득한 거란다. 지금은 산장에 어떤 나무와 약재, 산나물을 심을 수 있는가를 눈짐작으로도 가능하고 막대기로 자그만치 땅을 뚜져보아도 알 수 있다고 말하며 방금 구입해온 종자를 보여준다.
“이게 무슨 씨지요?”
“명이나물이요.”
“그 귀한 나물을 이곳에서도 먹을 수 있게 된다니 정말 기대가 되네요.”
“지난해에 좋은 약재로 쓰이는 천마 재배도 성공했어요.”
“산장에다 심은 록화용 꽃나무 여러가지를 저희들이 출근하는 천강중심학교와 이웃의 상이소학교에도 증송했어요. 그 일이 있은 뒤로 조선족마을과 한족학교 사이가 더 좋아졌다고 합니다.” 송상순선생님이 자랑스레 하는 말이다.
“어디 그뿐이게? 길림 중학교에도 많은 꽃나무를 선물해서 그곳 학교 교장선생님이 기념으로 리대철 사장님 이름으로 교정의 나무숲 하나를 명명하자고 제의했다지 뭐야! 그런데 사장님이 완곡히 거절하셨어!” 구근옥선생님이 후대양성을 위한 일에 맨발 벗고나서는 리대철 사장을 자랑한다. 지금도 리대철 사장은 고향 마을 사람들중 누구네 집에서 창고를 짓거나 우사에 쓸 재료들을 필요로 할 때면 거뜬히 재목을 가져다 쓰게 한다.
자연의 매력에 빠져 자연을 더 아름답게 하느라 쉼없이 꿈을 향해 도전장을 내민 그가 오늘은 환갑나이를 훨씬 넘긴 할배로 되였다. 그 부친을 도와주려 맏아들 리상규가 나섰다. 한국에서 일하다 안해를 데리고 아버지의 신변으로 온 것이다. 든든한 후계자가 있어서 리대철 사장은 땡볕아래 땀 흘리며 일해도 힘든 줄 모른다고 말한다.
9월말로 잡아들며 련못의 물을 배수하고 고기를 잡아내고 련근을 수확한단다. 지금은 련못에 정자를 세우려 설계도를 작성하고 있는중이고 산에서 자란 탄탄한 참나무들로 두툼하고 넓은 전통 미가 다분한 평상까지 만들어 산장을 찾는 손님들을 맞이하려 한다.
2021년에 깨암나무 1,700그루를 심었는데 활착률이 70% 되며 벌써 한두개씩 열매가 달린 것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산장 주위에 심은 홍송, 락엽송에 잣나무까지 공간을 채워가며 잘 자라고 있다.
“자연에서 가꾸는 모든 식물들과 친구하며 건강과 행복을 얻고 만년에 산장을 찾아주는 좋은 인연의 사람들과도 널리 사귀고 싶어요. 이웃들과 따뜻한 나눔도 하면서요!” 역시 사나이다운 말이다.
밖을 나온 우리는 리대철 사장님의 지휘 하에 못 우를 가로지른 전망대에 올라보았다. 련못의 아름다운 정경이 한눈에 보인다. 창고에는 또 마을 로세대들이 쓰다 버린 돌로 만든 절구며 나무방아도 있는데 앞으로 전시실을 만든단다. 대를 이어 써왔던 민속품들을 후대들에게 보여주며 조상들의 지혜를 터득시키려는 것이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같이 산장 건설에 드바쁜 리대철 사장에게는 무궁한 지혜와 무진한 힘이 있다. 산장 깊은 지하에서 나오는 샘물처럼 리대철 사장의 열정은 마를 줄 모른다.
산장에서 꿈을 심는 사나이의 하루는 충실했다. 앞으로 관광객들은 물론 돈벌이로 떠난 고향 사람들이 멀지 않아 선진지역, 선진국에서 배운 돈벌이 재간들을 갖고 미련없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귀로에 올랐다.
/허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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