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촌은 교하시중심으로부터 불과 7킬로메터, 차로 달리면 15분좌우 거리, 요즘 선호하는 근교려행의 최적지입니다. 주말이나 명절 아이들 방학기간에 태평촌으로 와서 열대어도 보고 록색채소와 과일 채집도 하고, 농가집을 빌려 농촌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태평촌의 관광휴양지로의 변모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교하시 오림조선족자치향 손씨관상어전업합작사 총경리이며 교하시 무아벼전업합작사 대표인 손영군(1983년 출생)이 그려가고있는 태평촌의 미래다.
태평촌에서 태여난 손영군은 소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를 따라 북경으로 이주한다. 고졸후 카나다 류학길에 올라 학업을 마치고 귀국하여 이우로 진출, 이우에서 가방회사를 창업하여 카나다, 일본, 한국으로 수출했다. 수출길이 난항을 겪을즈음 카나다류학시절 동기인 심양에서 열대관상어사업을 하고있는 학우와 만나면서 열대관상어에 관심을 갖게 된다.
면밀한 고찰을 거쳐 열대관상어사업에 확신을 갖고 투자를 결심하게 되며 최종 교하 태평촌을 투자본영 으로 선택하게 된다.
“료녕성 안산화조어시장은 전국에서 3번째 크고 동북지역에서 가장 큰 열대어도매시장입니다. 저희들의 열대어는 안산화조어시장을 상대하고있습니다.”
열대어 양식환경에 가장 중요한 물, 태평촌의 지하수는 검측결과 열대어양식에 적합하다는 판정이다. 심양 파트너의 기술지원에 힘입어 열대어 번식시험에도 성공을 했다. 회사를 설립하고 공장건물을 짓고 열대관상어 양식사업에 뛰여들었다. 3차례에 걸친 재확장을 거쳐 지금은 어항 1000여개를 갖추고 60여종 열대관상어 10만여마리의 양식규모를 갖추었다.
손영군총경리, 요즘, 소비시장은 회복세를 타고 있지만 예전 수준까지는 아직 미달이라면서도 코로나를 극복하고 견지해온 열대어양식자들에겐 미래전망은 여전히 밝다고 락관했다.
“현재 양식규모로 보면 한달에 두세번 출하가 정상입니다. 양력설후면 정상수준으로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있습니다.”
태평촌을 떠난지 20여년만에 다시 찾은 고향, 모든게 낯선 고향에서 창업은 곤난도 많았다. 당시 오림조선족자치향 권길호(현 교하시 선전부 부장)향장을 비롯한 정부일군들이 그의 든든한 뒤심이 되여 봉착하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갔다. 동력전기설치며 창업지원 무리자대출 등 정책지원도 받았다.
손영군은 류학파 귀향창업 청년선봉으로 교하 현지정부의 주목을 받아 선후로 교하시 제14기 정협위원, 교하시 제19기 인민대표로의 영광을 지녔다.
“정부에서 중시하는 만큼 기어코 고향건설의 중임을 저버리지 않을겁니다.”
손영군 총경리의 사업에 대한 집념과 고향애는 갈수록 깊어만 간다.
고향의 맛좋은 록색입쌀을 브랜드화시켜 전국 각지로 판매하고 있는데 특히 손영군총경리가 공장을 했던 이우에서 주문량이 늘어나고있다. 교하입쌀에 대한 신임도 선호도가 갈수록 높아져가고있다.
손영군총경리는 입쌀 판로 확장에 따라 합작사 농업경영규모를 늘리며 유기농의 길을 개척해가고 있다.
마을사람들이 돈벌이 떠나면서 비워놓은 농가들도 수선해서 민박집으로 개조할 타산이다.
지구반바퀴를 돌아서 태평촌 고향으로 환향한 손영군, 이젠 고향건설의 주력군이 되여 태평촌의 미래를 설계해나가고있다.
/차영국 류향휘 권용 기자 문창호 특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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