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1일 오전, 뻐스 한대가 서서히 연변혁명렬사릉원에 들어섰다. 뻐스에서 내린 16명 로인들이 렬사기념비에 정중히 꽃다발을 증정하였다.이들은 면목모르는 ‘아버지'를 찾으려 온 훈춘시렬사자녀활동실(회장 리영숙)의 성원들이였다.
렬사릉원 렬사들의 이름을 모신 명부앞에 모여선 이들은 해방전쟁시기와 항미원조전쟁시기 렬사명단에서 친인들의 이름 석자를 열심히 찾아 헤맸다.
“찾았소! 찾았소!”
“우리 아버지가 여기 계셨구만!”
아버지 이름자를 찾아내 짚으면서 기쁨에, 슬픔에 눈물 흘리는 로인들, 손에 든 꽃송이를 아버지이름 가까이에 놓고 경의를 드린다.
올해 76세인 박옥순은 아버지 박기수가 항미원조전쟁터에서 희생된 유복자이다. 언니가 세살이고 자신은 어머니 배속에서 아직 태여나지도 않았을때 아버지가 전사했다며 안타까이 눈물을 흘렸다. 항미원조렬사 김시연의 무남독녀인 김학선(77세)은 아버지의 이름을 오늘 처음 명부에서 찾았다며 감격을 억제하지 못했다.
올해 77세인 김호응은 아버지 김창덕이 항미원조전쟁에서 희생된 렬사자녀이기에 1965년도에 자진하여 참군하여 길림성군구에서 열심히 군복무를 하였다고 자랑하였다.
한 할머니는 아버지가 돈화에서 참군하여 길림해방전쟁에서 희생되였는데 길림화피창렬사릉원에도 이름이 새겨져 있다며 렬사증에 깃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6송이 생화가 연변렬사명부앞에 가지런히 놓여지고 모두들 정중한 묵도와 인사를 올렸다.
이어 일행은 ‘로전사의 집'에 모여 16명 참전 로전사들과 련환모임을 가지고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들'에게 춤 노래를 선물하면서 축복울 올렸다. ‘로전사의 집'에서는 그들에게 740페지로 된 《연변렬사영명록》을 선물하였다.
훈춘시렬사자녀 활동실에는 현재 29명의 성원들이 있는데 력사자료수집, 선렬기리기, 렬군속돕기, 후대양성, 홍색가요부르기 등 행사로 사회공익사업에 앞장서고 있다.
/특약기자 박철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