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 속담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을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적극적 의지가 있을 때, 결국 이루고자 하는 것을 실현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공과대학 졸업생도 아닌 그가 개혁개방의 거점도시인 천진에서 첨단기술분야에 도전하여 천진영휘전자유한회사, 천진영휘전기유한회사, 향항영휘(荣辉)전자유한회사 등 3개의 단독기업과 천진산하(山河)전자유한회사, 천진아시아영휘전자유한회사 두 합작기업을 설립하고 업계에서 손꼽히는 선두기업으로 성장시켰으며 사회공익활동에도 앞장서 한결같은 찬사와 존경을 받고 있다. 그가 바로 천진영휘전자유한회사 리사장이며 천진시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인 렴재윤(57)이다.
'철밥통'을 버리고 간고한 창업의 길에 도전
칠대하시 벌리현 출신인 렴재윤씨는1990년 흑룡강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당시에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철밥통' 단위인 흑룡강성농간총국에 배치되였다. 허나 그때는 개혁개방 열기가 한창이였던 시절이였으며 렴재윤은 이런 편안한 날들에 무의미함을 느끼고 뜻 있는 청년이 이렇게 편안하게만 보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생의 목표와 꼭 이루고자하는 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였으며 그것은 바로 고달프고 힘든 가시밭길일지언정 자기만의 길을 걷고 자기만의 꿈을 펼치는 것이였다.
2년 후, 그는 '철밥통'을 흔쾌히 포기하고 도전의 길에 올랐다. 가족과 주변사람들의 반대에도 그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가슴에 뜨거운 열정과 포부를 가득 안고서 떠난 곳은 바로 개혁개방 거점도시-천진이였다.
1992년 8월에 이루어진 중한수교의 대흐름은 천진에서도 파문을 일으켰다. 그때 개혁개방의 선두지역으로서의 천진은 중한수교의 배경 하에 수많은 한국기업을 유치하였다. 그리고 렴재윤은 지인의 소개로 한국계 전자업체 관리과장으로 입사했다. 3년간 열심히 일한 결과, 그는 외자기업의 선진관리모식을 몸과 마음으로 체득했고 일정한 경력도 쌓게 되였다.
자신보다 먼저 천진에 와서 료식업, 무역업, 물류업 등 사업으로 성공가두를 달리는 고향사람들도 많았던 것을 보아온 렴재윤은 회사에 사표를 내고 용감하게 홀로 서기에 도전했다. 1996년 서른살 되던 그는 오로지 청춘의 패기로 농부산물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1998에 닥친 글로벌 경제위기는 농부산물수출장사에 큰 타격을 주었고 진입장벽이 낮아 많은 사람이 할 수 있던 탓에 첫 창업은 참패로 이어졌다.
침통한 교훈 앞에 그는 창업의 문턱은 반드시 높게 하고 매 눈으로 멀리 바라봐야 한다는 리치를 깨달았다. 고기점 프로젝트는 모험이 크지만 성공할 확률은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리하여 그는 과학기술 함량이 높은 제조업 항목에 착안점을 뒀다. 특히 그는 평소 배우기를 즐기고 새로운 것을 파고 드는 자신만의 독특한 우세를 잘 발휘하여 자석을 생산하는 한국전자회사 관리부장으로 입사했다. 이곳이 바로 자신의 꿈을 펼칠 가장 적합한 곳이라는 것을 직감한 그는 모든 심혈을 희토영자체(희토류영구자석, 稀土永磁体)에 쏟았다. 그는 전업지식을 깊이 학습하고 희토류 영구자석 성능, 용도, 기술, 생산, 공정 등을 둘러싸고 재빠르게업무를 익혔다. 성실한 업무자세를 바탕으로 뛰여난 제품판매 실적을 쌓은 그는 금방 회사책임자의 인정과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2003년에는 천진지역 총경리로 발탁돼 향후 창업의 발판을 본격적으로 닦게 되였다.
직원만 1000여명인 기업에서 총경리 어깨 우의 책임은 실로 무거운 것이였다. 전임들이 남겨놓은 과거의 제품 품질문제, 납품문제 등은 그가 하나하나 개선해나가야 할 숙제였다. 과감히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한 렴재윤은 기업제도, 생산설비, 생산라인, 판매전략 등 방면에서 총괄적이고 체계적인 제도를 구축하였는데 이는 기업의 상황을 재빠르게 호전시켰고 덕분에 회사는 흑자 전환을 가져왔다. 그후에도 그는 끊임없이 제품품종을 확대하고 기술을 혁신하며 질량 개선에 노력하고 기업 신용을 높이는 데에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하지만 필경 리윤만을 추구하는 외자기업의 제한성은 렴재윤의 능력 발휘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래도 외자기업에서의 근무경험은 훌륭한 경력이였다. 덕분에 꿈과도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 2007년 그는 고임금과 우월한 대우의 외자기업 사장직을 과감히 거절하고 2차 창업에 뛰여들었다.
첨단기술령역의 신천지를 개척
희토류 영자재료는 중국에서 중점적으로 지원하는 분야이다. 네오디움철붕소(钕铁硼) 영자체(네오디움자석)는 희토류 영자성 재료에서 발전한 최신성과로 각종 전자제품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무한한 풍광은 험준한 절정에 있다고 했던가. 렴재윤은 이 첨단기술업계에서 반드시 자기만의 신천지를 개척해내기로 결심했다.
2007년, 그는 450만원을 투자하여 천진영휘전자유한회사를 설립했다. 창업 초기 기업은 자금난, 시장과 기술인력이 없고 은행대출도 힘든 어려움을 겪었다. 천진 번화가에 있는 가족들의 부동산을 비롯한 친구들의 모든 자원을 끌어모아 겨우 자금난은 해결했지만 거래처 하나 없던 그는 여전히 거래업체를찾아 헤매며 다녔다. 이름만 대면 알수 있는 글로벌 업체들을 찾아 영휘 전자제품의 가격우세와 품질보증을 수없이 설명했던 그는 마침내 승인을 얻어 납품에 성공했다. 직원교육도 직접 조직했으며 처음부터 기술자양성도 모두 직접 해왔다. 한동안의 간고한 분투로 그는 끝끝내 시장에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으며 그해에 이미1000만원 매출 실적을 올렸다.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방법은 실천이였다. 렴재윤은 다년간의 실천에서 글로벌 첨단회사와 장기적으로 협력하려면 자신의 제품을 항상 업계의 최고점에 두며 특히 첨단기술인 네오디움철붕소 희토류 영자석 제품을 끊임없이 혁신해야만이 국내외 치렬한 경쟁에서 살아남을수 있다고 판단했다. 오늘도 그의 네오디움철붕소 희토류 영자체(네오디움자석) 제품은 계측기, 음향전기, 자기 (전자제품, 모터, 핸드폰 등) 설비 및 제품에 널리 적용되며소형화, 경량화, 정밀화를 보장하고 있다.
이 첨단기술연구에 매진한 렴재윤은 생산에서 전통적인 네오디움철붕소(네오디움자석) 대공물을 절단하는 설비와 기술을 발견하였다. 통상적으로 채용되는 것은 내원단두 절편기인데 이는 칼날이 두껍고 공정이 락후해 효률이 떨어지며 특히는 귀중한 희토류 원료의 많은 랑비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방면의 설비와 공법의 과학기술 서적을 많이 연구했고 외국 친구들로부터 첨단기술 자료를 구해와 반복적으로 파고들었다. 결국 일본산 다선 절단기 설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정보를 장악했다.
렴재윤의 거듭되는 요청에도 일본업체측에서는 네오디움철붕소 제품을 가공한 적이 없어 이들의 장비로 실험하는데 동의하지 않았지만 포기를 모르는 렴재윤의 도전정신에 감동하여 공동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단다. 렴재윤의 기술팀은 수정석을 절단하는 다선 절단기를 네오디움철붕소 대공물을 절단하는 다선 설비로 개진함으로써 오랜 기간 네오디움철붕소를 절단 가공하는 기술적 난제를 타파하였다.
이러한 네오디움철붕소 대공물 다선 절단기는 절단날이 얇고 절단면의 평행도가 좋아 절단시 원자재 랑비가 거의 없다. 한대의 다선 절단기 설비는 30대의 원래 절단기의 생산량을감당할 수 있는 높은 효률을 자랑한다. 미세한 탄화규소 과립을 사용하기때문에 제품표면의 광결도가 높고 련삭공정을 진행할 필요가 없어 많은 가공비용도 절감하였다. 네오디움철붕소 다선 절단기개발에 성공하자 렴재윤은 신속하게 1000만원을 투자하여 모든 설비를 다시 갱신하였다. 기업의 생산성은 몇 배 향상되였고 생산 원가는 대폭 절감되였으며 제품품질도 더욱 완벽해졌다. 기업도 전국 동종업계의 선두기업으로 성장되였고 이 연구개발 프로젝트는 일찍 2013년에 국가 발명특허를 획득하며그해 회사의 년매출액 또한 5000만원에서 1억원이상으로 급증했다.
회사는 부동한 가격의 네오디움철붕소 자기계렬 제품을 주로 글로벌다국적회사에 공급하고 있다. 그외 휴대전화, DVD, 컴퓨터, TV 등 통신장비와 가전제품에사용되던 데로부터 랭장고, 에어컨 등에 사용되는 일련의 기술 연구개발 작업을 진행해 이들 전기제품에 사용되는 각종 초소형 네오디움철붕소 제품을 시험 제작하여 국내외 대기업에 납품하는데에 성공하였다. 이로써 렴재윤은 첨단기술로써 글로벌 전자제품 공급망을 확고히 장악하게 되였다.
최근엔 국내외 환경보호 사업이 강화됨에 따라 신에너지 자동차의 발전이 비약적이다. 그는 하루빨리 신에너지차 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신에너지차에 쓰일 각종 네오디움철붕자 제품 개발에 혼신을 쏟고 있다, 해외의 전자기술연구소, 대학교와 오랜 협력관계를 맺어 네오디움철붕소 제품 분야의 과학기술 정보를 교류하고 공동으로 에너지 절약과 신에너지차용 전기 구동 시스템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등 일련의 노력을거쳐 개발에도 성공했다. 렴재윤은 국내외 기술팀을 이끌고 전기차용 고효률 영구자석 동기전기와 인버터(逆变器), 전환기, 감속기 등 네오디움붕소 자기제품공동개발을 이끌었다. 현재 이 첨단 제품들은 끊임없이 국내외의 신에너지 자동차 거래처에 공급되고 있으며 신에너지 자동차 중 네오디움철붕소 제품 제조의 최고점을 찍어 향후 회사의 혁신적 발전을 위해 기선을 마련했다.
품질과 신용은 기업의 '생명', 혁신과 인재는 기업의 '핵심 동력'
'기업의 생명은 바로 품질', 그가 신조처럼 여기는 말이다. 기업이 첨단기술업계에서 발전하려면 반드시 제품의 품질, 기업의 신용을 제1의 생명으로 삼아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일찍부터 렴재윤은 엄격한 품질 방침, 품질 표준, 검측 제도, 상벌 조치를 제정하고 직접감독 및 집행해왔다. 회사 제품은 기술함량이 높아짐에 따라 국내외에서의 지명도도 부단히 높아져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확대된 적이 있었다. 어떤 작업장, 어떤 작업조는 생산물량에만 매달려 제품의 품질을 무시하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한번은 몇만원짜리 생산품의 품질이 다소 떨어진 것을 보고 렴재윤은 이 작업장을 과감히 정리해버렸다. 이에 대해 일부 관리자들은 제품의 품질이 단 한치의 차이도 안났으며 사용에도 지장이 없다면서 반대해나섰다. 그러나 렴재윤은 '빠르기만 하고 조잡해서는 절대로 안된다'며 간상(奸商) 의식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품질은 기업발전의 생명력이라는 인식을 확고히 할 것을 요구했다. 그번 물건들에 대해서는 소각조치를단행했고 관련 책임자들에 대해서도 행정처분, 경제처벌까지 내리며 엄정히 대처했다.
그후부터 각 작업장에서는 생산 단계마다 품질을 '제1 생명'으로 삼아 품질을 확고히 보장했다.
렴재윤은 생산에 있어 인적요인도 중요하지만 생산설비, 가공공정도 제품의 품질을 보증하는 중요한 요소라 말한다. 이때문에 해외 회의 참석, 경제 무역 상담, 선진 기업 시찰 등의 기회를 자주 리용해 네오디움 생산에 림하고 있다. 그는 철붕소 자기제품과 관련된 설비를 조사하여 새로운 설비, 선진공정이 발견되면 적극적으로검토해 구입에 나선다.
현재 기업은 국내 동종업계에서 가장 앞선 3도두(三刀头) 설비 40대와 다선 절단 설비 7대, 레이저가공설비 10대,전자동 도포기(涂布机) 생산라인 1개,추가 자기 생산라인 6개, 자동착자설비를 40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년간생산능력 120t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10여년 동안 렴재윤이 설비 및 공정혁신을 위해 투자한 자금은 수천만원에 달하며 2013년부터는 우수한 제품 품질덕분에매년 생산액은 억원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제품의 검측 수준이 높고 낮은 여부도 직접적으로 품질을 보증하는 중요환절이다. 렴재윤은 2차원, 3차원 수입 자력 검측기, 항온항습 검측기 등 다양한검측설비에만도 수백만원을 투입해 완벽한 품질 검측실를 구축했다. 한 글로벌기업의 관계자가 한번은 "수십년 된 국영 대기업보다제품 품질이 좋고 안정적인데, 무슨 팁이 있어요?"라고 물은 적이 있단다.
"품질을 생명으로 여기는 첨단기술 인재들과 선진적인 생산 및 검측 설비 그리고 혁식정신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만큼 그는 인재와 혁신도 품질과 신용이상으로 틀어쥐였다. 회사에 필요한 인재라면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모셔왔고 기여도에 따른 높은 성과급을 지급했으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제품의 혁신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영휘전자는 이미 다품종, 다규격 네오디움철붕소 제품을 시장에 내놨으며 이미 글로벌 톱기업들 그리고 신에너지 자동차 제조업체들과 장기적인 협력관계를 맺으며 기업의 생명력을 부단히 증강시켰다.
다년간 렴재윤은 과학연구팀을 이끌어오며 국내 공백을 메우는 발명특허인 '네오디움철붕소 다공물 다선절단법'을 업계 최고의 생산공정으로 자리매김시키는데 성공했으며 한국국립인천대학교의 석좌교수로 초빙되여 과학기술 인재들에게 남김없이 관련지식을 전수하고 있다.
고도의 사회적 책임으로 환원하는 기업가
성공한 기업가는 경제효익과 동시에 반드시 높은 책임감으로 사회적환원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렴재윤의 또 다른 신념이다.
2014년, 새로운 국가산업정책과 제조업에 대한 더 높은 요구에 발 맞춰 렴재윤은 기업은 반드시 환경보호 작업을 중시해야 하고 생산의 매 단계마다 절대로 환경을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예리하게 깨달았다. 영휘전자는 2500㎡ 규모의 동려구에 건설된렴재윤의 주된 기업이다. 하지만 국가의 새 정책을 적극 관철하고 환경오염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그는 2014년10월, 1억원을 투자해 천진경제기술개발구에토지 1만1307㎡를 매입, 1만2500㎡ 철근콘크리트 현대화된 공장 건물을 지었다. 신축기업은 건축자재, 생산설비, 생산공정, 안전시설, 직원건강 등 방면에서 국가의에너지 절약, 환경보호, 안전, 건강 관련의 기준을 엄격히 지켰다.
이럿듯 렴재윤은 창업 이래 시종일관 국가의 정책에 발 맞춘 첨단기술로써 개인과 회사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소속기업은 2008년 1월 ISO9002 품질 관리 체계 인증을 통해 2012년부터 련속 다년간 천진시과학기술형중소기업, 천진해양고신구 우수기업으로 선정되였으며 2014년 2월에 ISO14001과 OHSAS18001인증을 획득하였다. 2015년 천진시첨단기술기업 인증서를취득했고 2017년에는 TS16949 체계인증을 취득했다. 제품은 국내뿐 아니라 필리핀, 인도네시아, 한국, 베트남 등 국외에도 많이 수출되고 있다.
그는 다년간 각종 공익활동에도 적극 참가하고 있다. 선후로 빈곤학생 10명을 끝까지 학업을 견지하도록 후원했는데 아이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하여 뒤에서만 묵묵히 도왔다고 한다. 도움받은 학생들은 졸업해서도 후원자에 대해 몰랐다. 천진시조선족로인들의 문화생활을 위해 사비로 '흑룡강신문' 100부를 주문해주었으며 고향의 빈곤학생의 대학등록금도 후원해주었다.그에게 있어 사랑은 그저 사회에 대한 환원이지, 명예나 리익을 챙기려는 수단 같은 것이 아니였다. 그외 그는 장애인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어 회사에 장애인을 우선 채용하기도했다. 전체 직원의 몇프로에 못미치지만 그의 선행은 충분히 고무적이였다.
2022년 2월 그는 만장일치로 천진조선족기업가협회 6대 회장으로 선출되였다. 천진조선족기업가협회의 회원들을 이끌고 지난 1년반동안 회원사 돕기 행사, 천진지역사회의 민족행사는 물론 현지사회의 기부행사에도 적극 동참함으로써 천진조선족기업가협회의 이미지 향상에 큰 기여를 했다. 또한 천진한국인(상)회와 손잡고 제1회중한우호체육대회를 개최해 중한교류에도 일조했다. 정기적으로 회원교류대회를 열어 정부관계부서로부터 기업지원자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정보를 적극 공유하고 관련전문가를 초빙해 강좌도 하며 회원사들의 세무관련, 은행대출, 세관통관, 법률자문 등 면의 애로점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기에 힘썼다.
기업경영에서도 공익사업에서도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과 굳은 뜻을 갖고 있는 그의 무한한 도전과 비약은 래일도 계속될 것이다.
/류설화 진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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