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동북항일련군 녀성 장교와 중공 각급 녀성 지도간부
2. 퇀급 이하 좌급 군관과 위급 군관 및 현•구급 당지도간부
(동북항일련군 재봉대 책임자와 당지부 서기, 련장과 지도원, 중공특별위원회 소속 부녀부 책임자, 현과 구의 당위원회 위원 및 소속 부녀부 책임자)
박록금(朴禄金, 1915—1940): 동북항일련군 제2군 제3사 녀병련 련장
1915년 5월 3일 조선 함경북도 경성군에서 태여났으며 어려서 가족을 따라 길림성 연변으로 이주했다. 1932년에 왕청현에서 구부녀회 주임이 되였으며 같은 해에 왕청현유격대에 입대하였다. 이후 중국공상당에 가입했으며 1936년 4월 동북항일련군 제2군 제3사 녀병련 련장이 되였다.
1937년에 장백현 이십도구 신흥촌에 파견되여 재만조선인조국광복회, 반일부녀회를 조직하는 사업을 벌렸다. 6월에 보천보전투에 참가했고 10월에 지하사업 중 검거되여 1938년 5월 조선 함흥형무소로 송치되였으며 수감중 1940년 10월 16일 옥사했다.
(자료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박영자(朴英子, ?—1940): 중공반석현위원회 부녀회 책임자
1930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고 1931년에 중공반석현위원회 부녀회 간부가 되였다. 그후 남편인 전광(오성륜)을 따라 독립사 지휘부, 제2군 군부 및 제1로군 사령부에서 전투원으로 싸웠다.
1938년 8월,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1방면군 사령부에 전근되여 전투원이 되였다. 1939년 가을부터 1940년 봄 사이 일본군 ‘토벌대’의 이른바 ‘참빗 전술’로 인해 밀림 속을 전전하면서 항전하였다. 4월 하순, 화전현과 몽강현 접경지대에 있는 금은별산밀영에서 체포되여 살해되였다.
(자료출처: ≪근대중국조선족녀걸≫)
박정자(朴贞子, 1907—1933): 중공평강구위원회 농민협회 부녀간부
길림성 연길현 지신 출신이며 1931년에 남편과 함께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입당후 대립자당지부 농민협회 부녀위원을 지냈고 1932년에 약수동으로 가 중공평강구위원회 농민협회 간부가 되였다.
같은 해 중공평강구위원회 서기로 있던 남편이 살해되자 적개심에 불타 만 4살 나는 딸애를 남에게 주고 항일투쟁에 뛰여들었다. 1933년에 유격근거지에 대한 적들의 제2차 ‘토벌’에서 희생되였다.
(자료출처: ≪연길현항일전쟁영웅렬사≫)
/박문봉 편저 《동북항일전쟁 조선족 인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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