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해의 등에 업혀 장백산에 오른 리명주
지난 여름, 일 때문에 연길에 갔다가 친구의 소개로 한 민박집에 주숙하면서 너무나 감동과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민박집 주인 부부의 이야기에 지금도 감회가 새롭다.
연길에서 민박을 경영하는 리정희와 그녀의 남편 리명주는 1983년에 결혼식을 올리고 이듬해에 떡돌 같은 아들까지 보았다. 그러다가 1991년 가을의 어느날 이들의 가정에 뜻하지 않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남편 리명주가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여 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마치고 의식이 돌아온 후 휠체어 신세로 집에 돌아 왔는데 두 다리는 왠지 꼬집어도 감각이 없었다. 다시 병원에 가서 검사하니 하반신 척주신경을 다쳐서 두 다리가 몽땅 마비가 오고 앞으로 걸어다닐 가능성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이 나왔다.
리명주는 뒤통수를 한대 단단히 얻어 맞은 것처럼 눈앞이 아찔해났다. 도무지 믿겨지지 않았다. 곁에서 말없이 지켜만 보고 있던 안해 리정희도 너무 갑작스런 사고라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소리없이 흐느낀다. 철없는 아들이 아버지를 마구 불러대지만 아예 들었는지 말았는지 무반응이다.
“이러고 살아서 뭘해, 죽는 것이 낫지.”
리명주는 갈기갈기 찢어지는 심신의 고통을 느끼며 식사마저 전페하고 말았다.
“그러지 말고 식사 좀 해요. 제가 있잖아요. 이제부터 제가 당신의 손과 발이 되겠으니 너무 걱정 말고 빨리 몸부터 춰 세워요.”
리명주는 안해의 말을 듣고 한참동안 쳐다보다가 맥없이 “여보 고맙소, 하지만 난 이젠 페물이나 다름없으니 앞으로 어쩌면 좋소?”
“걱정마세요. 제가 한다면 한다는 성격인걸 몰라요!”
리정희는 남편의 손과 발이 되기로 작심했다. 한편으로 남편의 얼어든 마음부터 녹여주려고 따뜻한 대화를 나누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고 내가 있으니 너무 걱정 말아요.”
“살다보면 험한 길도 있지만 우리 부부가 함께 노력해 헤쳐 나가면 되지요.”
말은 비록 그렇게 많이 했지만 결코 쉽지는 않았다. 하반신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남편은 그저 머리만 절레절레 저으며 시원한 대답이 없었고 식사를 하지 않아 얼굴이 창백해졌다.
병문안을 왔던 리명주의 친척들도 희망이 안 보인다며 리정희더러 헛고생 말라고 귀띔해 준다. 그녀는 이들이 다 자기를 위해 걱정해서 하는 말인 줄을 잘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리정희는 남편 곁에 앉아 결혼 전에 있었던 이야기까지 해가며 위로를 했다.
남편이 차츰 식사를 하게 되니 리정희의 마음은 날아갈 듯 기뻤다. 어린 아들을 챙기랴, 남편의 식사부터 대소변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랴... 그녀는 하루하루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냈다. 안해의 얼굴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을 쳐다보며 리명주는 너무 미안하여 그만두라고 했다. 허나 마누라는 외려 “괜찮아요. 자꾸 하면 미립이 터서 더 잘할거예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리정희는 벽에다 시간표를 적어놓고 일분도 놓칠세라 남편의 다리운동을 시켰다. 비록 혈이 통하지 않지만 혹시나 하는 한가닥의 희망을 품고 힘이 자라는 대로 안마를 해주었다. 다리를 들고 아래우로 꺾기도 하고 혈자리를 꽁꽁 주물러 주면서 최선을 다하였다.
‘지성이면 돌 우에도 꽃이 핀다'고 몇달 후 남편은 마누라가 일으켜주면 일어나 앉을 수 있게 되였다. 시간이 좀 더 지나 휠체어도 탈수 있었다. 1992년 여름, 휠체어에 점차 익숙해진 리명주는 집에만 붙어있기 답답하여 장애인예술단에 한번 가볼 생각을 안해에게 말했다.
“그거 참 너무 좋은 생각이네요, 래일 당장 가보세요!”
이튿날, 리명주가 장애인예술단을 찾아갔다. “환영합니다”, 예술단 단장은 그의 독창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보다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주저심 없이 사회에 진출하겠다는 그 점이 너무 보귀하다며 기꺼이 받아주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리명주는 거울 앞에서 정장에 흰 와이셔츠, 붉은색 넥타이를 매고 선글라스까지 척 건, 아주 그럴듯한 신사멋쟁이로 탈바꿈한 자신을 발견하고 입이 귀에 걸렸다.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안해의 손을 잡고 “여보, 당신이 나를 새 사람으로 부활시켰어, 고마워!”하고 말했다.
리명주는 장애인예술단에서 독창가수로 자기 재능을 발휘하였다. 장애인예술단의 일원으로 여러 곳을 돌면서 순회공연을 하였고 외국 초청 공연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리명주가 생기를 되찾고 리정희도 공부 잘하는 아들애의 뒤바라지를 해주기 위하여 자기 적성에 알맞는 민박집 경영을 시작했다. 물론 남들은 부부 아니면 사람을 고용해서 했지만 그녀는 그럴 형편이 안되여 뭐나 혼자서 했다. 역시 정성은 사람을 알아봐 준다고 열정을 다해서 꾸렸더니 단골손님이 30명까지 늘어났다.
리명주는 안해의 등에 업혀 장백산을 다녀온 이야기를 이렇게 들려줬다.
어느해 이들은 장백산 나들이를 떠났다. 관광뻐스가 지정된 자리에 멈춰서고 여기서부터 천지까지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가파르고 모래언덕이여서 리명주의 쌍지팽이는 무용지물이였다. 리정희는 집에서 미리 준비해온 끈으로 남편의 허리를 동여매고 자기가 앞에서 잡아당겨 보았다. 조금씩 움직여졌다. 리명주는 자기절로 기여 보았다. 역시 좀씩 앞으로 나갔다. 이번엔 또 리정희가 앞에서 당기고 리명주가 뒤에서 기고… 이들 부부는 이렇게 서로서로 안간힘을 다 써가며 끝내 천지까지 올라갔다.
천지를 구경한 후 그들은 내려와서 이번에는 장백산 폭포를 향해 도전했다. 리명주가 폭포 꼭대기를 올려다보니 까마아득하여 전혀 올라갈 자신이 없었다. 그는 안해를 보고 손을 저으며 도저히 안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리정희는 자기의 등을 가리키며 자기가 업고 올라가겠다고 했다.
“여보 안돼, 못 가면 말지. 당신이 혼자 올라가 보고 오면 돼.”
그러나 여기서 물러설 리정희가 아니였다. 그녀는 기어코 남편을 업고서라고 올라가겠다고 우겼다. 결국 리명주는 눈을 질끈 감고 안해의 등에 업히고 말았다. 남편이 안해를 업는 것은 보았지만 안해가 남편을 업는 것은 진짜 천방야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정희는 남편을 업고 그 험한 길을 따라 천천히 조심스럽게 폭포를 향해 오르고 또 올랐다.
함께 올라가던 이들도 이 정경을 목격하고 감동돼 “정말 대단해요. 힘내세요.”라고 고무격려를 보내준다. 한 계단, 두 계단, 세 계단... 리명주는 안해의 등에 업힌 자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게 느껴졌고 그리고 한편으로는 또 오로지 한가족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안해에게 더없이 미안하기도 했다. 이들 부부는 그렇게 두시간의 대장정 끝에 드디여 폭포 아래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강산이 세번 변한다는 그 기나긴 사이 리명주는 안해 리정희의 ‘특급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다. 안해가 고생한 보람으로 아들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좋은 직장에 출근하고 거기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손주까지 보아 천륜지락을 누리게 되였다. 리명주는 이 모든 것이 다 안해의 덕이기에 “나를 팔불출이라 해도 꽃보다 여보 당신”이라고 안해자랑을 한다고 말했다.
/김성옥(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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