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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퉁소’와 연변의 백년의 전설
조글로미디어(ZOGLO) 2024년5월27일 07시33분    조회: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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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는 실제로 백년 전의 전설 같은 이야기라고 했다. ‘한퉁소’는 연변퉁소의 제1인자 한신권(韩信权)의 ‘퉁소’의 하늘 같은 지대한 영향력을 이르는 말이다. 한신권은 지난 세기 30년대 부친을 따라 강을 건너 훈춘의 밀강지역에 정착한 이주민이다.

그때 한신권은 잔등에 괴나리보짐을 얹고 어깨에 큰북 하나, 퉁소 하나를 달랑 든 채 아버지를 따라 강을 건넜다고 한다. 그는 나중에 밀강의 이웃 한 마을의 퉁소놀이군과 더불어 3인의 민악악대를 묶었으며 늘 퉁소합주를 공연했다. 그 후 퉁소는 한신권의 이름과 더불어 밀강마을의 전설처럼 되였으며 나아가 중국 변강지역의 연변에서 널리 흥성하고 발전하였다. 그가 정착했던 밀강은 지금도 퉁소의 고향으로 불린다.

공연 중인 연길시민속퉁소협회(가운데 조동수 회장).

“옛날 우리 이곳에서는 녀인들도 거의 다 퉁소를 불 줄 알았어요.”

밀강의 골목길에서 만난 웬 농부의 자랑이다. 밀강은 언제라도 작정만 한다면 곧바로 녀성연주대를 따로 내올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남 앞에 나서지 못하고 혼자만 잘난 척한다”고 해서 ‘방 안의 퉁소’라는 속담까지있지만 퉁소는 종국적으로 ‘밀강’ 한동네에서만 이름을 떨친 게 아니다. 종국적으로 훈춘은 물론 연변 소재지 연길에도 류행,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의 하나로 되였다.

문헌기록에 따르면 퉁소는 한나라 때 강족(姜族)의 악기를 개량하여 이 형태를 완성하였다고 한다. 옛날에는 입으로 부는 악기를 퉁소로 통칭하기도 했다고 하니 퉁소는 분명히 널리 사랑을 받던 악기였다. 조선시대인 세종(世宗)시기 서아시아를 거쳐 반도에 전입되였으며 종국적으로 반도의 제일 대표적인 전통악기로 되였다. 반도의 고대 벽화에는 아직도 ‘퉁소’를 취주하는 장면이 생생히 그려있다.

2008년 6월, 길림성 훈춘시와 연길시가 신청한 조선족 퉁소음악은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에 의해 제2진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명부에 등재되였다.


“농부 일생이 무한이로세

춘경 추수는 년년이로세

허널릴리~상사디아~

그와 놀다 가세~”


2000년대초 밀강에서 답사차로 만난 김관순옹은 어릴 때 한신권에게 귀에 못 박힐 정도로 자주 들었던 <농부가>를 우리에게 퉁소를 불며 들려주었다. 민가 <도라지>, <라질가>, <신아우> 등… 연변 시초의 퉁소음악은 어쩌면 다시 백년 전의 허공 저쪽에서 다시 울려오고 있는 듯하였다.

밀강의 제2대 퉁소 전승인 김관순.

“한씨가 늘 퉁소를 불어서 구경을 하다가 재미로 배웠어요.”

김관순옹은 어릴 때 풀밭에서 갈대를 끊어 퉁소 모양을 만들어 불었다고 했다. 갈대는 사전적인 의미로 외떡잎 식물이라고 한다. 벼과의 여러해살이풀인데 줄여서 갈이라고도 한다. 갈대는 습지나 개가, 호수 주변의 모래땅에 군락을 이루며 자란다. 뿌리줄기의 마디에서 많은 황색의 수염뿌리가 난다. 그리고 줄기는 마디가 있고 속이 비였으며 높이는 3메터 정도이다. 갈대는 마디마디를 뚫으면 진짜 참대로 만든 퉁소의 모양 그대로이다.

“갈대는 모양이 비슷하지만 소리는 퉁소처럼 곱게 안 나요. 그래도 퉁소 모양새를 흉내 낼 수 있었지요.”

김관순옹의 말이다.

밀강은 동네이름처럼 골짜기마다 물이 흘러 강이 많고 밀집한 고장이다. 김관순옹은 늘 강에 물고기잡이를 나갔고 이때면 버릇처럼 입가에 ‘퉁소’를 물었다. 어절씨구, 물고기들이 다 퉁소음악을 경청하려고 무리로 한데 모여들었을가 그해 김관순옹은 물고기잡이로 돈을 꽤나 모을 수 있었다. 그래서 작심하고 푼돈 9원 80전을 꼬깃꼬깃 감아쥐고 백화점의 악기매대를 찾았다. 그때는 돼지고기가 한근에 단돈 13전이였으니 퉁소 한대의 가격이 돼지 한마리의 가격과 맞먹었다. 광대 같은 놀이군으로 되고저 값비싼 돼지 한마리를 통째로 악기 한대에 바친 격이였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온 후 엄마 아빠에게 혼쭐나게 욕을 실컷 얻어먹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김관순옹과 같은 퉁소의 극성팬은 마을에 10여명이나 되였다. 그 후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의 퉁소 전승인이 련이어 뒤를 이었다. 와중에는 퉁소를 하도 잘 불러서 예술학교에 추천되였고 뒤미처 한국에 연수를 가게 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김관순옹은 악보는 몰랐지만 노래를 배워주면 곧바로 그걸 퉁소로 불었다고 말했다. 언제나 노래곡에 맞춰 금방 퉁소음악을 흥겹게 불 수 있었다.

“소학교 때 음악교원으로 있었던 리길송을 제외하고 악보는 거의 다 몰랐어요.”

김관순옹이 밝히는 내밀한 이야기이다. 리길송은 김관순처럼 ‘한퉁소’의 초대 전승인으로 역시 밀강마을의 사람이다. 한때는 마을학교의 음악교원으로 있으면서 오선보에 익숙했다. 그러나 그 역시 한신권의 퉁소음악을 하나도 문자자료로 기록하지 못했고 음성자료로 남기지 못한 듯하다

연변대학 예술학원 장익선 교수는 연신 아쉽다고 말꼬리를 달았다. 그는 퉁소의 일종인 단소(短箫)의 길림성 성급 전승인이다. 장익선은 연변조선족전통예술연구회 대표 등 위치에 있으면서 연변 민간의 많은 민속음악음성자료를 수집,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오늘까지 ‘한퉁소’의 음성자료는 끝끝내 단 한수도 기록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한신권이 1950년대에 사망한 후 ‘한퉁소’가 결국 연변의 하나의 신화요, 전설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리유를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일설에 ‘퉁(洞)’은 통(通)이니 밑이 없고 아래우가 통(通)하는 까닭에 ‘퉁소(洞箫)’라고 불린다고 한다. 어찌하든 퉁소는 초보자라도 금방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래우의 년령 제한이 없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퉁소는 지난날 궁중과 민간에서 모두 활발하게 연주되였던 악기이다. 실제로 퉁소가 시초에 훈춘에서 급성장할 수 있은 것은 한신권을 비롯하여 김관순, 리길송 등 제1, 2대 전승인들의 노력과 떼여놓을 수 없다. 또 퉁소가 민간에서 개량 등 여러가지 형태를 통해 쉽게 연주할 수 있는 대중화된 악기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훈춘과 이웃한 연길시문화관도 2009년 ‘조선족퉁소음악’ 종목 보호단위의 자격을 획득했다.

연길에서도 퉁소가 많이 보급, 발전하게 된 현상을 언급하면서 장익선씨는 예전에 이 고장에 자주 있던 많은 퉁소축제를 화제에 올렸다. 정말이지 한때 시내 어디인가 빈터가 있으면 곧 퉁소연주자가 나타났고 시내의 어디서나 퉁소음악이 삘리리~ 울렸다. 퉁소 연주자가 10명 이상 모이면 하나의 연주대를 결성, 많을 때는 연변에 퉁소 연주대가 10여개나 되였다고 한다. 오늘도 훈춘시와 연길시에서는 저마다 퉁소 연주대가 여럿이나 산재한다. 기실 연주대의 일부 연주자는 퉁소를 배운 지 한두해 정도밖에 안되는 ‘초보자’라고 한다.

장익선씨는 퉁소의 보급과 대중화의 흐름에 맞춰야 하며 연주자 모두를 프로 수준으로 요구할 수 없다고 거듭 말한다.

“퉁소 합주는 개개인의 실력보다 팀의 조화로운 협동작업이 중요한 겁니다.” 연길시민속퉁소협회 회장 조동수씨는 그들도 지금은 특정기준에 따라 연주 우렬을 가리기보다는 연주자의 다양한 연주 방식과 개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퉁소 연주인이 연주를 통해 전달하는 감성과 표현력은 제각기입니다. 연주자의 예술적 감각이 매우 중요하다는 얘기이죠.”

솔직히 그들처럼 퉁소에 아주 숙련된 전문가가 아니라면 퉁소 합주에서 연주자의 우렬을 가리는 게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어찌 되거나 퉁소음악의 리듬과 강약, 숙련도 등으로 연주자의 퉁소 연주 수준을 가려낼 수는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옛날 연주대의 무리에 끼여들어 머리수를 채우던 우화가 있다. 한비자의 내저설(内储说) 제30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정기적으로 퉁소공연을 이어가고 있는 연길시민속퉁소협회.

“중국전국(战国)시대 제(齐)나라 선왕(宣王)은 생황(笙簧, 퉁소의 일종) 연주 듣기를 몹시 즐겼다고 한다. 그래서 늘 생황을 부는 악사를 한꺼번에 300명이나 궁정에 모여놓고 항상 함께 연주하게 했다. 생황을 전혀 불 줄 모르는 남곽(南郭) 처사(处士)는 이 연주인 가운데 끼여들었다. 그는 악사들의 틈에 섞여 생황을 부는 척하며 내처 록봉을 받아먹었다. 악사들이 많았던 탓에 남곽 처사가 생황을 불 줄 모른다는 사실은 탄로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선왕이 세상을 뜨고 민왕(湣王)이 즉위하였다. 민왕은 생황악사가 너무 많다고 여기고 정말로 취주솜씨가 좋은 사람만 남기기로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연주자가 한사람씩 차례로 나와서 생황을 불게 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니 남곽 처사는 좌불안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생황을 불 줄 모른다는 사실이 탄로날가 봐 그의 생황 연주 차례가 오기 전에 도망치고 말았다.”


비록 퉁소를 누구보다 일찍 숙지하고 거의 번마다 연주주자로 뛰였지만 김관순옹은 나중에 퉁소불기를 단념하기로 했다. 사실인즉 퉁소에 그토록 집념했으나 나이가 들면서 퉁소불기가 너무 힘에 겨웠던 것이다. 우리가 김관순옹을 만났던 그해가 2000년대 초반으로 그는 곧 여든고개를 오르는 고령이였다.

그때 그 시절 퉁소행사는 연변에 자주 있었으니 훈춘 한곳만 해도 한해에 20회씩이나 있었다고 한다.

“우리 ‘한퉁소’의 제3대 전승인이 50대 중반이니 퉁소쟁이(꾼)라면 거의 다 ‘아바이(늙은이)’라고 할 수 있지요.”

솔직히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타임머신을 타고 10여년 전으로 다시 돌아간 듯하다. 퉁소 보급과 교육 기회가 부족한 탓으로 오늘날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여전히 로인들이 대부분이다.

“방학을 리용한 학생들의 퉁소 (보급과)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조동수씨는 지금 젊은이들도 동참할 수 있는 퉁소대회를 궁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퉁소 연주의 경력을 통해 쌓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퉁소 (보급과) 교육에 참여해서 젊은 세대에게 우리의 전통음악의 가치를 전달하고 싶다는 것이다.

조동수씨는 연길시민속퉁소협회 회장으로 젊은 계층에서도 퉁소에 관심을 갖도록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곁들이는 등 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는 달리 장익선씨는 아예 단소의 보급과 교육 현장에 직접 나서서 벌써 몸으로 뛰고 있었다. 얼마 전에 그는 연길에서 ‘무형문화유산의 캠퍼스 진출’ 행사를 직접 조직했다. 그의 직접적인 참여하에 2021년 ‘조선족 단소음악’ 전승기지가 연길시 연남소학교에서 제막했다. 퉁소, 이 무형문화유산 종목은 이로써 연변의 캠퍼스에서 처음 전승기지를 세운 것이다.

훈춘시는 일찍 무형문화유산의 캠퍼스 진출 활동을 전개, 퉁소음악을 캠퍼스에 영입했으며 퉁소 전승인과 민간예인을 교외보도원으로 캠퍼스에 파견하였다.

참대의 마디마디가 다 뚫어지여 퉁소로 되듯 퉁소음악은 마침내 우 아래가 통하여 곧 물처럼 다시 악기에 거침없이 흐를 듯한다. 이번에는 퉁소가 정말 ‘방안’을 벗어나서 ‘잘난 척’할 수 있지 않을가?

잠깐, 이번에는 또 어떤 속담이나 우화가 생겨날 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한퉁소’의 백년의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신연희 기자/김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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