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운은 눈섭끝에서 떨어진다고 했던가. 달포전인 4월 3일 오후, 바깥 산책을 나갔던 남편이 갑자기 몸이 불편하여 연변병원급진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다급히 뛰여가보니 진통제 점적주사를 맞고 있는 남편은 식은 땀을 철철 흘리며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진정제 주사를 맞고 얼마간 진정이 되자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날 저녁 11시 경에 남편은 또다시 모진 고통에 모대기게 되였다.
다시 찾아간 급진과에서 진통제 주사를 맞으며 밤을 지새웠지만 병세는 수그러들지 않고 환자는 환자 대로 더 크게 신음하고 있었다. 이튿날 새날이 밝아오자 화험을 한다, 피 검사를 한다 하며 검사라는 검사는 다 받았으나 확실한 진단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담낭에 결석이 있다는 화험결과에 주의를 돌리게 되였으나 그 때문에 이렇게까지 큰 고통이 생길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진단이 확실하지 않는 상황에서 간담이선외과 진료권을 떼려고 하니 급진 진료권 료금이 6원으로 적혀 있었다. 이토록 중병을 앓는 환자를 진료금 6원 하는 새내기 의사한테 맡긴다는 것은 어딘가 무모한 일인 것 같아 한참을 망설이다가 주저주저하며 간담이선외과의 문을 떼고 들어섰다.
화험결과며 증거서류를 낱낱이 훑어보던 나젊은 의사(최빈)는 급기야 얼굴색이 흐려지면서 빨리 환자를 입원시키고 수술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한편 여기저기에 전화련계를 하면서 입원수속을 다그쳐주었고 주치의사며 주임의사들에게 환자의 상황을 보고하는 것이였다.
우리 가족은 처음 본 환자를 마치 자기의 삼촌이나 친척처럼 여기며 일처리를 하는 나젊은 의사에게서 깊은 감동을 받게 되였는데 입원수속을 하고 병실에 들어서니 어느새 주임의사며 주치의사들까지 모두 나와서 환자를 찾아주었고 가족들을 위안하면서 신심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그날 밤, 환자는 체온이 39.8도까지 오르며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이미 포치가 된 수술실로 환자를 실은 침대밀차가 움직이고 있었다. 환자를 실은 침대밀차를 가족과 함께 밀고 가던 나젊은 최빈 의사는 엘레베이터 앞에서 얼레베이터를 기다리는 사이 두 다리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분명 사태는 위험했다. 지체없이 수술은 진행되였고 남편의 담낭관을 막고 있던 주먹만큼 큰 결석이 피 묻은 채로 흰 판자에 담겨 나왔다.
수술을 마치고 입원치료를 하는 동안 담당의사인 최빈선생과 간담이선과 주임인 설광화 부주임의사는 수시로 환자를 찾아 상세히 병정황을 료해하고 약과 주사를 조절해 주면서 마치 가족과도 같은 극진한 배려를 해주었다. 환자의 병은 하루빨리 호전되여 수술을 받은지 7일 만에 퇴원하게 되였다. 조금만 지체를 했어도 환자가 더 버티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하면서 안도의 숨을 내쉬던 최빈 의사며 설광화 부주임의사를 떠올리면 남편에게 새 생명을 안겨준 그분들이 눈물 겹도록 고맙고 또 고맙기만 하였다.
남편이 퇴원하여 한달이 지나면서 최빈 의사며 설광화 부주임의사를 잊을 수가 없어 우리 부부는 “고상한 의덕, 고명한 의술”이라는 고마움을 담은 감사패를 새겨갖고 그분들을 찾아갔다. 그분들은 역시 가족을 대하듯 반갑게 맞아주었고 련계전화번호를 넘겨주면서 앞으로 치료에 관련하여 문의할 일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면 주저하지 말고 제때에 련계를 하면서 가족의 건강을 잘 지켜내자고 약속을 주었다.
참으로 생명에 대한 고도의 책임감을 지니고 의덕과 의술을 련마하면서 무수한 환자들에게 건강과 생명을 안겨주는 최빈 의사와 설광화 부주임의사와 같은 의사분들은 말그대로 환자의 가족이며 또한 시체말 그대로 연변대학부속병원은 참으로 온정 넘치는 따스한 환자의 집이였다.
/환자 가족 안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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