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력사문화기행]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빛나는 민족단결의 미담
조글로미디어(ZOGLO) 2024년6월4일 10시40분    조회:247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30여년전 골회함 안고 천만리 길 달려왔던 요조당, 림소란 부부를 추억하여

지금으로부터 32년전인 1992년 8월14일이였다. 

당시 화룡시 서성진발행소에서 사업하고 있던 필자는 서성진 서성촌 제3촌민소조에 과거 이 마을에 하향지식청년으로 내려왔던 상해지식청년 부부가 찾아왔으니 가서 취재해보라는 진당위 문서 남분적의 제의를 받았다.  

지체할세라 달려가 보니 40대 중반 쯤 돼보이는 중년부부가 20대 청년과 함께 한 농가의 온돌에 마을사람들과 함께 앉아있었다. 40대 중년부부는 1969년도에 상해에서 서성촌에 하향지식청년으로 내려왔던 요조당, 림소란 부부였고 20대 젊은이는 1971년도에 서성촌에서 출생한 이들 부부의 아들 연민이였다. 알고 보니 이들은 머나먼 상해에서부터 골회함을 품에 안은 채 천만리길을 마다하지 않고 몇날 몇밤을 기차와 뻐스를 번갈아 타면서 동북변강의 농촌마을인 서성촌까지 내처 달려왔던 것이였다. 그들이 골회함을 안고 상해에서부터 천만리길을 달려온 데는 무슨 사연이 있었을가?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56년전인 1969년으로 돌아간다.

변강농촌에서 맺어진 조한 두 민족의 피보다 더 진한 혈육의 정

1969년, 상해지식청년 요조당과 림소란은 하향지식청년으로 대도시 상해에서 변강의 자그마한 농촌마을인 화룡현 서성공사 서성 3대로 오게 되였다. 하향한 이듬해 요조당과 림소란은 백년가약을 맺고 타향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였다. 당시 집체호가 비좁아 신혼집을 구하지 못하게 되자 인품 좋은 서성촌의 촌민 리생금이 그들에게 선뜻이 자기 집 웃방을 내여주었다. 리생금은 남편을 일찍 잃고 자식도 없이 혼자 살고 있었는데 머나먼 상해에서 산설고 낯선 타향에 와서 고생하고 있는 이들 부부의 딱한 사정을 가긍히 여겨 함께 살면서 생활상에서 친자식 못지 않게 생각하고 진심으로 돌봐주었다. 

리생금할머니와 함께 천안문광장에서 남긴 요조당의 가족사진

1971년도에 요조당 부부가 아들애를 낳게 되자 리생금할머니는 마치 친손자를 본 것처럼 기뻐했으며 애를 애지중지 보살펴주었다. 이들 부부는 아들애가 연변에서 태여났고 연변의 백성이라는 의미로 이름을 연민(延民)이라고 지었다. 그 당시 비록 생활은 어렵고 힘들었지만 이들은 한가마밥을 먹으면서 친부모와 자식 못지 않은 가족애로 서로 의지하면서 오손도손 살아갔다. 

그러던 1979년, 지식청년 정책이 시달되여 요조당 부부는 10년 만에 다시 상해로 돌아가게 되였다. 이들 부부는 친혈육이 없이 혼자 사는 리할머니를 홀로 두고 차마 상해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리할머니를 아예 상해에 모시고 가기로 했다. 상해에 계시는 요조당의 부모님들도 그들이 리할머니를 끝까지 모시는 것을 견결히 찬성해 나섰다. 리할머니는 극구 사양했지만 요조당 부부의 진심어린 권고와 끈질긴 청구에 마침내 상해로 가는 것을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살아오면서 고향마을을 멀리 떠나본 적도 없는 리할머니는 이들 부부의 지청구에 못이겨 일단 먼저 몇해 동안만 상해에 가서 살아보고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생각이였다. 그래서 이제 늙어 세상뜨면 입으려고 했던 수의도 고향마을에 두고 갔고 집 판 돈 800원도 고향마을 저축소에 넣어둔 대로 상해로 떠나갔다. 

리생금할머니의 생전 모습

상해에 간 후 리할머니는 요조당, 림소란 부부의 따뜻한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대도회지 생활을 느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상해 대도시의 생활이라 하지만 리생금할머니의 마음만은 그냥 고향마을에 가 있었다. 상해로 가서 5년 철을 잡던 해 리할머니는 고향마을에 대한 사무친 그림움 때문에 연변에 돌아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요조당 부부가 아무리 만류해도 소용없었다. 하는 수 없이 요조당 부부는 리할머니를 모시고 다시 연변에 돌아왔다. 그런데 정작 떠날 때가 되여 다시 리별할라니 정이 들대로 든 이들 부부와 리할머니는 작별인사를 나누기가 정말 힘들었다. 더우기 당시 할머니 품에 안겨서야 잠들군 했던 아들 연민이가 리할머니의 목을 꼭 끌어안고 할머니가 돌아가지 않으면 자기도 상해로 가지 않겠다고 막무가내로 떼질을 쓰는 통에 리할머니는 다시 이들 부부를 따라 상해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15년이 넘는 세월을 리할머니와 요조당 가족은 한집에서 한가마밥을 먹으면서 피보다 진한 혈육의 정으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친혈육’이 되였던 것이다.

“내가 죽거들랑 꼭 령감의 무덤 옆에 묻어주게”

상해에서 살면서 리생금할머니에게는 한가지 소원이 있었다. 

살아생전 슬하에 혈육 하나 없이 살아왔던 리할머니는 상해에서 친혈육 못지 않은 요조당, 림소란 부부의 보살핌 속에서 만년을 별 걱정 없이 보냈지만 죽어서는 고향마을 뒤산에 묻혀있는 령감 무덤 옆에 묻히기를 바랐던 것이다. “내가 죽거들랑 꼭 령감의 무덤 옆에 묻어주게.”리할머니는 요조당에게 항상 그렇게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1991년 정월, 리생금할머니는 상해에 온 지 꼬박 13년 철을 잡던 해에 91세 고령으로 세상을 떴다. 리생금 할머니가 이토록 장수했고 요조당의 가족과 천륜지락을 누리게 된 데는 이들 부부와 아들 연민이의 민족과 혈연관계를 초월한 따뜻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깊은 정분이 있었기 때문이였다. 

리할머니가 세상을 뜬 이듬해인 1992년 8월, 요조당 부부는 더는 지체할 수 없다고 하면서 만사를 제쳐놓은 채 아들 연민이를 앞세우고 리할머니의 생전 유언에 따라 다시 연변을 찾았던 것이다. 조선족의 민속풍속습관을 잘 알고 있는 요조당 부부는 골회함을 안고 서성촌에 도착하기까지 강을 건널 때면 “할머니 강을 건늡니다.”하고 골회함에 일일이 문안인사를 하면서 달려왔다는 것이다. 

이들은 도착한 그 날로 마을사람들과 함께 리생금할머니를 남편 옆에 고이 묻어주었고 리할머니의 생전 유언을 실천하는 것으로 세상을 감동시키는 미담을 엮었다. 당시 이들 부부가 서성촌을 찾았을 때 서성진에서는 한창 진운동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이들 가족은 운동대회 주석대에 초대되여 상빈 대접을 받았고 당지 사람들의 감탄과 흠모의 눈길을 한몸에 받아안았다.  

“자기 친부모도 아닌 타민족의 년세 많은 로인을 한두해도 아니고 그토록 오래동안 끝까지 모신 것만 해도 대단한데 로인의 생전 유언을 지켜드리기 위해 골회함까지 안고 머나먼 상해에서부터 천만리길을 달려왔으니 정말 조련찮고 대단한 사람들이지요…”당시 이들의 사적을 잘 알고 있는 서성진의 촌민들은 너도나도 엄지손가락을 내밀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연변일보》에 실렸던 당시의 기사 <골회함 안고 천만리>

당시 필자가 이들 부부를 취재해서 쓴 기사 <골회함 안고 천만리>는《연변일보》에서 펼쳤던 ‘세태컵’ 기사 응모 콩클에서 최고상인 1등의 영예를 받아안았다. 글을 잘 써서 최고의 수상영예를 받았다기보다 상해지식청년 부부의 갸륵한 소행이 인심을 감동시키고 세상을 놀래웠기에 《연변일보》에서 최고의 상을 주었다고 굳게 믿고 싶다. 

중화민족공동체 의식 확고히 수립, 세월이 흐를수록 빛나는 민족단결의 노래

요조당, 림소란 부부가 조선족 할머니인 리생금을 상해에 모시고 가서 친어머니 못지 않은 사랑을 주고 또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골회함 안고 천만리길을 걸어온 이야기는 어느덧 30여년전의 아득한 옛말로 되였다. 그러나 중화민족공동체의식을 확고히 수립하는 력사시대적 배경하에서 조한 두 민족 보통 백성들이 엮은 민족단결의 감동적인 노래는 결코 때지난 이야기가 아니며 세월이 흐를수록 반짝반짝 빛나는 감동과 울림이 있는 미담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3월 22일에 소집된 연변주선전사상문화사업회의에서 성당위 상무위원이며 주당위 서기인 호가복은 연변의 력사 속에 묻혀있는 요조당, 림소란 부부가 조선족할머니 리생금을 마지막까지 돌본 감명깊은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연변에 묻혀있는 이러한 훌륭한 민족단결 이야기들을 적극 발굴하고 널리 선전하는 것은 중화민족공동체의식을 확고히 수립하는 데서 매우 가치있는 전형이라고 강조하여 지적했다.

상해에 간 후 요조당 가족과 함께 있는 리생금할머니

《연변조간》신문은 올해 청명절을 맞으면서 요조당, 림소란 부부를 전화취재하고 그들이 이젠 70세를 넘긴 황혼에 들어섰지만 아직도 여전히 청명이나 추석이 되면 세상뜬 리생금할머니를 추모하면서 몹시 그리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월이 아무리 흐르고 기억이 희미해져가도 결코 잊을 수 없고 또 잊어서는 안될 소중한 민족적 우애와 감정, 그리고 요조당, 림소란, 리생금 할머니 등 평범한 보통사람들이 엮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민족단결의 미담들은 날이 갈수록 더 소중한 빛을 발하면서 수천수만의 후대들을 영향주고 또 고무격려하고 있다.

/길림신문 안상근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4612
  • 기자가 4일 연변룡정축구구락부로부터 알아본데 따르면 에스빠냐에서 온 이반 콰드라도(伊班-夸德拉多, Ibán Javier Cuadrado Alonso)가 연변룡정축구팀 감독으로 임명되였다.1979년 2월 21일 에스빠냐 살라만카에서 태여난 이반 콰드라도는 에스빠냐 축구선수로 바르셀로나의 라 마시아 청소년축구학교를 나왔으며 청소년팀...
  • 2024-06-05
  • 성철이는 이제 불과 두해후면 쉰살 고개에 올라선다. 아직 40대 후반인 셈이다. 그런데 건강관리에 문제가 있은 탓인지 아니면 유전인지 그 몹쓸 당뇨병 종합증으로 발가락이 시꺼멓게 썩어들어간다. 냄새까지 지독하다. 성철이는 긴 한숨을 힘겹게 후유~ 하고 내쉰다. 당뇨병으로 허벅지까지 잘라...
  • 2024-06-05
  • 요즘 정년퇴직한 분들의 모임에 참석해보면 낚시 이야기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릴적에 시골에서 산천어 낚시를 하던 일이 어제일처럼 기억에 생생하다.   어릴때나는훈춘현 마적달공사 설대산촌이라는데서 살았는데 산 좋고 물 맑은 아름다운 고장이였다. 마을 동남쪽에 해발...
  • 2024-06-05
  • 항아리입 크고 허리 굵어볼것 없는 몸뚱이조용히 홀로 서서가는 세월 지켜보며우리 집 화목한 얘기 차곡차곡 담아라지게아빠의 친구였지어디가나 업고 다녀뒤등에  얹혀보니땀 냄새가 푹 들었네온가정행복...
  • 2024-06-05
  • 장춘시 록원구에 위치한 궤도전차 주제 장터가 6월 2일 정식 개방되면서 시민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곳에서 낮에는 학생들이 견학을 할 수 하고 밤에는 시민들이 정채로운 공연을 즐기며 맛있는 료리도 맛볼 수 있다. 또한 문화관광구역에서 복고 풍격의 사진을 찍으면서 도시의 력사문화 매력을 한껏 느낄 수...
  • 2024-06-05
  • 연변룡정축구구락부는 6월 4일에 우호적인 협상을 통해 김봉길이 더는 연변룡정팀 감독을 맡지 않는다고 공식 발표했다.연변룡정축구구락부 공식 공고연변룡정축구구락부는 김봉길 감독과 우호적인 협상을 통해 김봉길 감독이 더는 연변룡정축구구락부의 감독을 맡지 않기로 결정했다.2023년 1월, 연변룡정축구구락부 감독에...
  • 2024-06-04
  • 사시‘김희 떡집’의 사장 김혜성2024년 6월 2일, 웃음과 폭죽소리 속에서 장춘시 조양구 건궁남로에 위치한 ‘김희 떡집’이 개업을 알리며 손님들을 맞이하였다. 가게 사장은 90후 김혜성, 상해에서의 고수입 직장을 뒤로 한채 단연 장춘으로 돌아와 창업에 뛰여든 그는 계승과 혁신으로 조선족 음식 문화를 널리 알리고 ...
  • 2024-06-04
  • 일전, 연변주 및 연길시 공안국은 ‘공안복무 령거리, 문턱 없는 인재 정착(公安服务零距离、人才落户无门槛)’ 교정 진입 활동 및 연변대학학구복무소 현판식을 가졌다.소개에 따르면 연변대학학구복무소의 설립은 공안기관과 연변대학이 ‘두가지 융합’의 새로운 기제를 운행하는 효과적인 조치로 새시대 ‘풍교경험’의...
  • 2024-06-04
  • 3일, 길림성정부 소식판공실은 소식공개회를 소집하고 〈2023년 길림성 생태환경 상황 공보〉를 발표했다. 길림성생태환경청 관련 책임자는 〈2023년 길림성 생태환경 상황 공보〉에 대해 해독하고 우리 성의 ‘6.5 환경의 날’활동 관련 상황을 공포했다.2023년, 성당위와 성정부의 강력한 지도하에 전 성 생태환경계통은 ...
  • 2024-06-04
  • 체육절 개막식 현장5월 31일, 제74회 6.1국제아동절을 앞두고 길림성 영길현 조선족실험소학교에서는 ‘민족정을 전승하고 함께 미래를 향해’를 주제로 한 체육절 및 6.1취미운동회가 개최되였다. 운동회에서 각 학급 선수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하나같이 생기발랄, 각자의 풍채를 과시하며 자립자강, 완강한 분투, ...
  • 2024-06-0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