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남민족대학 박광성 교수 일행이 7월 4일부터 일주일간 할빈시를 방문하여 민족사회 발전현황을 료해하였다.
고향이 흑룡강성 해림시인 박광성 교수(50세)는 연변대학 력사계를 졸업하고 서울대학에서 사회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2007년부터 2018년 6월까지 북경 중앙민족대학 민족과 사회학학원에서 부교수로 사업하다가 2018년 7월 운남민족대학 고층인재유치, 교육부의 '신세기우수인재지원계획'입선자에 당선되여 정교수로 승진하였고 사회학전업 석사생 도사로 근무하고 있다. 현재 1급사단법인 중국조선족사학회 회장직 중임을 맡고 있다.
4일 오후 2시부터 박광성교수는 할빈시 도리구 안승가에 위치한 할빈시조선민족문화관 3층 회의실에서 할빈시조선족로년문화협회(이하 로인총회로 략칭) 주최의 '30주년 기념책자 발간' 준비회의에 참석하였다. 로인총회 정학철 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준비회의에는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 리춘실 관장, 흑룡강성 조선민족출판사 류상해 사장과 송화강잡지사 리호원 주필, 로인총회 강월화, 최정자 부회장, 최명 비서장, 최귀룡 리사 등이 참석했다.
로인총회 설립 30주년 준비회의에서 박광성 교수(가운데)가 발언하고 있다.
1995년에 설립된 할빈시조선족로년문화협회는 명년에 창립 3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데 할빈시 조선족사회의 든든한 지킴이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로인총회는 창립회장 강동선(작고), 2대, 3대 회장 윤응순(작고), 4대 회장 김우률(작고), 5대 6대 회장 리승권, 7대 회장 최숙진에 걸쳐 금년 5월 31일부터 정학철씨가 제8대 신임회장으로 당선되였다. 정학철 회장은 발언에서 로인총회의 력량을 동원하여 명년에 맞이하는 30주년 행사를 뜻깊게 개최할 결심을 발표하면서 30주년 기념책자 발간식에 사회 각계 조직과 인사들의 많은 협조와 도움을 바란다고 부탁했다. 문화관과 출판사, 송화강 잡지사 책임자들은 최선을 다해 책자발간에 협조할것을 다짐했다. 박광성 교수는 "80년대초에 할빈시리퇴직로년독보조 활동실로 출발한 조직이 현재 30년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소개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면서 "력사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총화하는 것은 우리 세대에서 미룰수 없는 사명감"이라면서 30주년 기념책자 발간에 높은 평가를 주었다.
회의가 끝난후 박광성 교수는 리춘실 관장의 안내로 문화관 1층, 2층에 전시된 '태양을 항하여-인민음악가 정률성 기념관'을 참관하였다. 1914년 8월 13일 한국 전라남도광주에서 탄생한 정률성은 중국 근현대사에서 섭이, 신성해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걸출한 음악가로서 '군가의 아버지'로 불리우고 있다. 올해는 정률성 탄생 11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1939년 정률성은 연안에서 '연안송'을 창작하여 이름을 날렸으며 동시기에 창작한 '팔로군진행곡'이 해방후 등소평 군위주석 명령에 의해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로 반포되였다. 1976년 12월 7일 정률성은 북경에서 뇌출혈로 사망하였으며 팔보산혁명공동묘지에 안장되였다. 2009년 그는 '신중국창건 가장 돌출한 영웅모범 100인'에 선정되였다. 박광성교수는 할빈시조선민족문화관에서 정률성기념관과 인중근기념관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에 깊은 감복을 표시하면서 "개인의 발전을 나라와 민족의 발전으로 하나로 결합하여 시대의 주선률로 되었을때 무궁무진한 에너지와 빛나는 인생궤적을 그려갈수가 있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5일 오전 운남민족대학의 박광성교수와 도자상 교수(묘족), 서홍망 석사연구생(쫭족) 일행은 기차를 타고 이동하여 할빈시 근교에 위치한 아성구 성건조선족촌을 찾았다. 조선족마을의 향촌진흥건설 상황을 료해하기 위해서이다. 성건촌의 진학봉 서기(64세)가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1945년에 설립된 성건촌은 80년대에 인원이 많을때는 1002호에 2434명에 달해 당시 전성 조선족촌 인구수 3위(1위 계림촌 3095명, 2위 삼차구촌 2780명)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6300무 경작지에 11개 소조 6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였다. 현재 85%의 로동력이 외지로 나갔고 15% 정도인 70여호 200명좌우의 인구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진학봉서기는 1997년에 성건촌 촌장에 선거되었고 1999년부터는 마을의 서기까지 겸하여 오늘까지 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부임당시 일인당 년평균 수입이 3000원 미만이던것을 현재 년평균 수입 3만5천원 이상으로 제고시킨 장본인이다. 진학봉서기는 할빈시 교구에서 가장 일찍 농업합작사 운영방식을 실행하고 있는데 현재 6000여무의 논을 48호 농민에게 집중하여 경작하고 있다. 농기계현대화를 실현하였는데 현재 촌에는 4대의 농약사용 무인기, 50마력짜리 트랙터 60여대, 외국에서 수입한 수확기 12대, 이앙기 50여대 및 대형 정미기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땅을 떠난 농민들에게는 무당 800원의 수입을 보장해주고 있다.
운남성에서 계단식 제전을 보다가 조선족촌에서 운영하는 드넓은 수전 경작지를 보면서 설명을 들은 운남민족대학의 도자상 교수와 서홍망 석사연구생은 연신 엄지손가락을 흔들었다.
성건촌 방문을 마친 일행은 아성시에 있는 금나라 유적지 기념관을 참관하였다.
할빈으로 돌아와서는 할빈기차역에 위치한 안중근기념관을 방문하였다. 의사의 충혼이 살아숨쉬는 기념관에서 박광성 교수는 "할빈시야말로 민족의 영웅들을 배출한 영웅도시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면서 방명록에 추모글을 남겼다.
5일 저녁에는 할빈시 조선민족사업촉진회 박태수 회장과 김태현 비서장을 만나 할빈시조선족사회 발전현황에 대해 일층 료해하였다.
박광성 교수 일행은 6일부터 3일간 할빈시 공정대학에서 개최하는 '중국사회학회 2004년 학술년회'에 참석하여 전국에서 온 3000여명의 사회학 종사자들과 폭넓은 교제를 이어갔다.
할빈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곤명으로 돌아가면서 박광성 교수는 "비록 시간이 짧았지만 너무나 강한 인상을 받은 할빈행"이였다면서 자신을 반갑게 맞아준 민족간부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할빈시 민족사업의 무궁한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전해왔다.
/박영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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