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반촌 촌부 앞에 설립된 오대징기념비.
청나라 후기 고급관원(1품)이며 민족영웅인 오대징(吴大澂, 1835-1902)은 유명한 금석학가(金石学家)이며 서화가이다. 그는 1880년부터 1886년까지 길림방판으로 있으면서 길림장군을 도와 군대를 훈련시키고 병기공장을 세웠으며 훈춘 등 변경지역에 포대를 건설하고 부대를 파견하여 주둔시킨 외에도 동해에서 30리 떨어진 훈춘의 방천에 ‘토’자비를 세워 짜리로씨야에 점령당했던 흑점자지역의 국토를 수복하고 중국 선박의 두만강 출해권을 쟁취하는 등 후세에 남길 빛나는 업적으로 하여 유명한 력사인물이다.
오대징이 길림방판으로 있을 때 훈춘을 두번 다녀갔는데 현재의 왕청현 지역에 설치된 오인반역참(驿站)에 두번 묵어갔다는 기록이 길림성장백산문화연구회 회장이며 길림성문사연구관원인 장복유에 의해 최근에 고증되였다. 이를 고증하기 위해 장복유는 세번이나 오인반촌과 대감자, 량수진 룡호촌, 훈춘의 동서포대 등지를 찾아 자세한 조사를 진행하였다고 한다.
2019년 9월 15일에 설립된 장복유의 시와 소개비.
이 고증을 기초로 2019년 9월 15일에 왕청현 동광진 오인반촌에서는 오대징의 업적을 기리는 장복유의 칠언률시와 오대징이 다녀간 로정과 과정을 적은 소개비를 설립하였고 올해 7월 1일에는 해당부문의 비준을 받고 촌당지부와 촌민위원회 이름으로 ‘오대징기념비’를 설립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오대징은 1880년(광서6년) 11월 28일에 길림에서 녕안을 경유하여 훈춘으로 가는 도중에 오인반역에 들려 관청덕(关清德)의 집에서 하루밤을 묵었는데 그때 관청덕에게 “청락향”(清樂鄉)이라는 편액을 써주었다고 한다. 두번째는 1886년(광서12년) 2월 29일에 천진에서 떠나 훈춘으로 가는 도중에 오인반역에 들렸는데 관청덕이 새로 지은 “청락향”에 묵어갔다는 기록이다. 관청덕은 낚시를 들고 가야하에 달려가 세린어 두마리를 낚아 오대징을 접대하였는데 흥이 도도해진 오대징이 당장에서 극진한 대접에 감사하다는 뜻의 칠언절구를 써서 답사하였다고 한다.
오대징기념비 설립과정을 소개하는 오인반촌 당지부서기, 촌민위원회 주임 관유씨.
왕청시가지와 동광진정부 사이에 위치한 오인반촌의 당지부서기, 촌민위원회 주임인 관유(만족, 54세)씨는 자기는 관청덕의 4대손이라고 하면서 2019년 7월 17일에 오대징의 현손 오원경(상해해파서화원 원장, 오대징기념관 명예관장)이 고조할아버지가 걸은 ‘황화기정(皇华纪程)’을 다시 걸으면서 오인반촌을 다녀갔다고 소개하여주었다.
오대징이 관청덕에게 써준 칠언절구.
관유는 오인반촌의 력사문화자원을 잘 활용하여 앞으로 오대징의 황화기정을 주제로 한 애국주의교육기지를 건설할 것이라고 표시하였다.
/길림신문 김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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