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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판과 샅바,그리고 황소고삐
조글로미디어(ZOGLO) 2024년8월26일 08시59분    조회: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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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가 끝나고 어느덧 해가지면 먼지를 자욱하게 일던 씨름판은 다시 평온을 되찾는다... 마치 새로운 시작을 꿈꾸기 위해 잠드는 듯 싶다."


올해 6월에 열린 '영휘'컵 연변민족식씨름 국제초청대회 현장.

땡볕 아래 씨름장의 모래바닥은 뜨거울 정도로 달아있다. 름름한 체격의 두 힘장사가 샅바를 잡고 마주섰다. 싸움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두 힘장사가 용을 쓰며 몸을 일으킨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두 힘장사는 서로를 탐색하며 몸을 부딪쳤다. 왼쪽 씨름군이 먼저 발을 내딛는다. 모래바닥을 박차고 솟구쳐 오른 그의 몸은 마치 날아오르는 매처럼 위압적이다. 상대방은 재빠르게 왼쪽으로 몸을 틀며 공격을 피한다. 두 사람의 몸이 부딪치는 순간, 모래먼지가 솟구쳐 오르고 관중들이 탄성을 지른다.

서로의 무게를 버텨내는 두 힘장사가 거친 숨을 몰아쉰다. 입술마저 퍼렇게 되여 푸르르 떤다. 그만큼 관중들의 긴박감과 응원도 만만치가 않다. 관중석 칠십 로인의 울대에 퍼런 피줄이 불끈 솟았다.

지지리한 공방전이 거듭되며 두 힘장사가 점차 지쳐간다. 장내도 긴장감에 물 뿌린 듯 조용하다. 씩-씩-내쉬는 두 힘장사의 날숨이 머리끝을 쭈뼛쭈뼛 일어서게 한다…

이 박진감 넘치는 한판 승부는 9.3 명절을 맞으며 2013년에 열린 제1회 ‘주덕해’컵 중국조선족씨름대회 씨름판이였다. 이날 대회에는 주덕해 주장의 장녀인 오영채 녀사와 당년의 씨름왕 마동일 선생 등 인사들도 참석했다.

이해 대회에서 연변성주청소년체육운동구락부의 김해권 선수가 모래판 최강자로 떠오르며 황소고삐를 넘겨받았다.

그리고 조선족씨름 부활을 위해 애면글면하고 있는 연변성주청소년체육운동구락부 리설봉 관장의 마음을 이 경기를 통해 좀 더 가까이에서 읽어볼 수 있었다.

선수시절, 씨름대회에서 1등을 하고 황소를 넘겨받은 마동일.

당시 관중석 가장자리에 앉아 제자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리설봉 관장, 눈시울이 붉어져있었다. 그리고 굳게 다문 입술은 급기야 열리며 울먹이는 목소리가 짧게 흘러나왔다. 제자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였다.

“어린 씨름선수들이 두 눈이 동그래가지고 장래를 근심할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씨름의 부활은 단순히 전통체육을 되살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넋을 되살리는 일입니다.”

당시 취재진 앞에서 리설봉은 제자들이 성장해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선족씨름 대표적인 기능보유자로 현재 주급 전승인인 리설봉은 당시 제1회 ‘주덕해’컵 중국조선족씨름대회 개최를 위해 총기획을 맡고 동분서주했다. 자금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의 끈질긴 의지에 감동된 주덕해 주장의 가족들 그리고 주체육국과 주체육총회가 적극적으로 지지해나섰다.

대회는 로년조 우승과 성인조 62킬로그람 이상급 우승에는 포상금 1만원을, 기타 급별 순위마다에도 상금을 설치해 참가선수들은 물론 씨름인들의 가슴을 뿌듯하게 했다.

씨름선수 출신인 리설봉은 2000년에 주체육학교 유도관(연변성주청소년체육클럽)을 세웠다. 하지만 조선족전통체육 종목이 점점 자리를 잃어가는 형편에서 유도관 운영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선수들이 내는 훈련, 식사 비용으로는 근보 유도관을 운영할 수 없어 유도관 건물을 담보로 은행대출을 받아 유도관 운영과 지도원들의 로임을 지불해오다가 대출상환을 못해 건물이 두번이나 경매에 넘어가 법정피고석에 앉는 쓰라린 아픔도 겪었다.

씨름 꿈나무들에게 우승상금을 전달하는 리설봉.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거는 제자 한명을 키워내는 게 꿈입니다. 유도관을 그만둘 수가 없었습니다. 어린아이가 씨름복을 처음 입던 날, 서툴지만 열정적으로 훈련하던 모습, 그 모든 것을 놓아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어려운 형편에서도 유도관은 전국, 성, 주 대회에서 수많은 메달을 따냈고 성민족사무위원회로부터 ‘길림성 민족전통 조선족씨름 훈련기지’로 선정됐다. 리설봉도 2008년 북경올림픽 성화봉송자(연변)로 뽑히는 영예를 안았다.

리설봉의 피타는 노력으로 지금 우리 지역에서는 중소학교 씨름대회가 분기별로 열리고 있고 해당 부문의 지지와 기업가들의 후원으로 단오나 추석이 되면 상금을 내건 씨름대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2011년에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확장종목 명부에 오른 조서족씨름, 왜 우리 민족은 씨름을 좋아하고 씨름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가?

중국의 옛 문헌에 조선민족의 씨름을 ‘료교(撩跤)’라고 했는데 이는 조선민족의 씨름이 중국의 씨름과 다른 특징이 있음을 시사한다. ‘료’는 ‘붙들다’는 뜻이고 ‘교’는 종아리 ‘교’자로 종아리(다리)를 붙들고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놀이라는 뜻이다.

씨름하면서 힘을 겨루는 장면이 가장 뚜렷하게 반영된 것은 고구려의 무덤벽화이다. 길림성 집안시 지역에 분포되여있는 4~5세기 때의 무덤벽화에서 씨름장면이 많이 보인다. 벽화에는 두 씨름군이 서로 대방의 허리를 부둥켜잡고 힘을 겨루고 있으며 그 옆에는 로인 한분이 지팽이를 짚고 서서 심판을 서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고려시기에 씨름은 대중들 속에 널리 보급되면서 씨름을 잘하는 사람을 용사라고 불렀다 한다. 이 시기에 씨름은 단오날의 필수적인 놀이로 행해졌으며 8월 추석에도 반드시 진행되는 경기로 되여있었다. 조선시기에 들어서서도 씨름은 여전히 대중들 속에 널리 퍼졌으며 단오, 백종, 추석에 성행하는 민속놀이로 조선민족의 전통적인 민속체육 종목으로 고착되였다.

그리고 19세기 중반부터 중국 동북지역으로 이주해 정착하면서 민속놀이인 씨름도 전승, 보급되였다.

1923년 6월 18일 단오날에 룡정 동흥중학교의 마당에서 큰 규모의 씨름판이 벌어졌다. 모래불로 만들어진 씨름판 주위에는 7000여명의 구경군이 모여들었고 이날 룡정의 김경준이 1등을 하고 황경식이 2등을 하였으며 조선 종성의 김룡률이 3등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1926년에는 화룡현 현장이였던 류조음이 기층시찰로 합회사 사상봉경에 나갔다가 3000여명의 조선족들이 모여서 벌린 조선족씨름대회를 목격하게 된다. 류조음은 이 대회를 빌어 삼민주의를 선전하고 일제를 반대하여 투쟁하는 조선족인민들의 애국적 행동에 동정을 표하고 적극 지지해 조선족씨름대회는 반일구국의 강연장소로 변했다.

1931년 6월에 룡정 륙안교 부근 해란강 연안의 광장에서 단오날 씨름대회가 열렸다. 그전에 씨름대회에서는 상을 1등에게만 설정했지만 이번에는 1, 2, 3 등에 각기 큰 황소, 중소, 송아지를 내걸어 씨름대회 분위기를 들썽케 했다.

1948년 8.15 해방 경축 제1회 연변종합운동회, 1949년 8.15 해방 경축 4돐 운동대회가 연길에서 성황리에 열렸을 때에도 씨름은 그네, 널뛰기와 같이 민속체육 종목으로 대회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씨름판에는 구경군들이 물샐틈없이 모여서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리고 개혁개방 후 민속체육은 새로운 발전시기를 맞게 되였다. 1989년 8월 15일, 전국 조선족체육초청대회가 연길에서 열렸는데 이는 력사에서 처음으로 전국 각지의 조선족들이 모여서 벌인 대축제였다. 이번 대회에서 씨름은 주요한 체육종목의 하나로 큰 인기를 얻었고 씨름판의 최강자에게는 황소가 상으로 주어졌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씨름판만 봐도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네. 한때 나에게 씨름판은 전쟁터였네, 흙먼지 잔뜩 뒤집어써도 씨름에서 이긴 날은 집안은 물론 우리 마을의 잔치날이였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씨름왕 마동일 선생이다. 옛 영광을 뒤로하고 그는 이제 씨름판을 보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2020년 8월에 제3회 ‘9.3 애심’컵 중국조선족씨름대회 취재 차 들렸던 도문시 월청진 백룡촌의 백년부락에서 여든을 훌쩍 넘긴 마동일 선생을 만났을 때 그 시절의 씨름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날 대회에서 우승을 따낸 김춘일에게 황소고삐를 넘겨주는 마동일 선생의 몸에서는 젊은 시절의 패기를 찾아볼 수 없었지만 씨름에 대한 사랑만은 여전히 읽을 수 있었다.

“소 한마리가 가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시대에 황소를 건 씨름은 모든 것을 건 호쾌한 승부였네. 구경군들이 개울가 버드나무에까지 기여올라가 손에 땀을 쥐며 응원했었지.”

마동일 선생에게 씨름판은 마을의 자존심을 건 싸움터였다.

1940년에 화룡시 서성향 룡포촌의 한 농가에서 7남매중 셋째로 태여난 마동일은 1962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10돐 기념 대회에서 씨름 우승을 하고 주덕해 주장으로부터 황소고삐를 넘겨받으며 ‘조선족 씨름왕’에 등극했다. 그리고 이듬해 화룡현 운동대회에서 단 두판만 시합을 하고 1등을 했는데 그때 참가선수들이 마동일의 강렬한 힘과 압도적인 기술에 기가 눌려 아예 경기를 포기했다는 후문이다. 당시의 씨름판은 마동일의 독무대인 셈이였다.

마동일 선생이 지금도 기억하는 씨름판의 이야기들도 흥미진진하다.

1987년 9월에 열린 제12차 전 주 체육대회이다. 3년 만에 마련된 힘장사들의 겨룸이라 당시 연변체육관은 초만원을 이뤘다고 한다. 그때 연길의 김림산과 룡정의 최천송, 배영철, 안도의 방상호와 방창호, 도문의 최옥곤 등 한다하는 씨름군들이 참가해 승부를 갈랐는 데 결국 황소고삐의 주인은 안도의 방창호에게 돌아갔다. 방창호는 씨름장사 가족으로 안도현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1967년에 그의 아버지가 안도현 씨름판에서 1등을 한 적 있는 데다 그의 형님인 상호의 씨름성적도 괜찮았던 터라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형님에게서 씨름재간을 배워온 방창호는 일찍부터 전 주 씨름대회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전 주에서도 쟁쟁한 힘장사들이 모인 이번 대회에서 방창호는 치렬한 경쟁 끝에 새로운 황소의 주인으로 됐다.

아버지 뒤를 이어 19살에 황소고삐를 잡은 박홍심의 씨름이야기도 기억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2000년에 연길중국조선족민속관광박람회 조선족씨름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 뒤 2002년 연변중국조선족민속씨름대회에서 또다시 황소고삐를 잡은 박홍심은 그해 19살이였다. 씨름장사로 룡정에서 씨름판을 주름잡았던 아버지의 손에 끌려 12살 어린 나이에 홍심이는 일찍 모래판에 나섰다. 홍심이 아버지는 아예 방 한칸에 모래를 펴놓고 아들만을 위한 씨름판을 만들어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겨울이면 추울 세라 불을 지펴주면서 홍심이의 훈련을 지지해나섰다고 한다.

올해 6월에도 연변성주청소년체육운동구락부에서 주최한 2024년 ‘영휘’컵 연변민족식씨름 국제초청대회, ‘영휘’컵 연변민족식씨름대회 및 연변중소학생 민족식 씨름 대회가 열렸다.

국제초청대회에는 중국, 한국, 로씨야 등 국가의 70여명 선수들이 참가했고 연변민족식씨름대회에는 50여명의 연변의 씨름군들이, 연변중소학생 민족식 씨름 대회에는 연변의 100여명 청소년 씨름선수들이 참가하면서 씨름장은 그야말로 축제분위기였다. 이번 대회에서도 어김없이 황소가 등장했다.

“씨름은 단순히 힘만 겨루는 운동이 아닙니다. 정신력, 인내력, 기술의 겨룸이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씨름은 민족의 정신과 문화가 담겨있는 소중한 유산이지요.”

포기할 줄 모르는 리설봉은 지금도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다. 그는 제자들에게 씨름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대회가 끝나고 어느덧 해가 지면 먼지를 자욱하게 일던 씨름판은 다시 평온을 되찾는다. 관중들의 응원소리와 씨름군들의 치렬한 몸싸움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텅 빈 씨름판만 고즈넉이 어둠을 기다린다. 마치 새로운 시작을 꿈꾸기 위해 잠드는 듯싶다. 

신연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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