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전쟁터에서 선혈로 중조 량국 세 전우를 살려낸 소녀간호병
조글로미디어(ZOGLO) 2024년10월9일 13시04분    조회:84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로병사의 이야기](1)

[로병사의 이야기]를 내면서 

9월 29일, 중화인민공화국 국가훈장과 국가영예칭호 수여식에서 습근평 총서기는 "전사회가 영웅을 존경하고 영웅을 따라 배우고 다투어 영웅이 되도록 추동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창건 75주년을 기념하여 본지는 ‘로병사의 발자취를 찾아보고 영웅이야기를 잘하며 홍색정신을 이어가자’를 주제로 한 <로병사의 이야기> 코너를 신설하여 해방전쟁,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하여 혁혁한 공훈을 세운 성내 각 지역의 로병사들을 찾아 그들로부터 혁명이야기를 전해들었다. - 편집부

“가렬처절한 전쟁터에서 적의 총알과 포탄에 맞아 희생한 젊은 전사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70여년전, 항미원조 전쟁터에서 2등공 1차와 3등공 2차를 세운 소녀간호병 권명숙(权明淑)은 지금 90세 고령의 로인이 되였다. 

권명숙 로인

최근, 기자 일행은 연길 ‘로병사의 집’ 당지부 서기 서숙자의 안내로 연길시 북산가 모 아빠트단지에 살고 있는 권명숙 로병사를 만나 항미원조전쟁에서 수많은 전우들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낸 젊은 날 소녀간호병의 장거들을 전해들었다. 

중국 혁명사는 가냘픈 몸으로 남자들 못지않은 불굴의 의지로 가정과 국가의 안전을 위해 중임을 떠메고 나선 녀성들을 기억하고 있다.  

1934년 7월 27일, 동북의 중조변경 마을인 현재의 룡정시 백금향 평정촌에서 태여난 권명숙은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삼촌 집에서 자라면서 어려서부터 남다른 근성과 책임감을 보였다.

그러던 그는 항미원조전쟁이 발발하자 ‘남자만 군대에 갈 수 있나?’라는 생각을 했다. 1950년 12월, 심양군구 간호사학교를 제1기생으로 졸업한 16세의 권명숙은 중국인민지원군 제4분부 27대역 위생대 수술팀의 간호병으로 되여 료녕성 안동(현재의 단동)시를 거쳐 압록강을 건넜다. 소속부대를 따라 자강도를 거쳐 평안북도, 평안남도 등 여러 곳을 전전하던 소녀간호병 권명숙의 임무는 잔혹한 전쟁에서 부상당한 전사들을 구하는 일이였다. 

1951년 연길간호사 학교 제1기 사생들의 기념사진

부상병들은 끊임없이 야전병원에 실려 오고 초저공 비행을 하는 미군 폭격기는 권명숙의 소속부대와 부대의 야전병원을 덮쳐 전사와 의무일군 및 부상병들에게 무차별 기관포 사격을 해댄다. 하지만 그속에서 권명숙은 시종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용감하게 간호병의 책임을 다했다. 

미군의 폭격에 중상을 입은 전우들이 쓰러지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권명숙은 항상 가장 먼저 달려갔다. 160센치메터가 안되는 키에 35키로그람에 불과한 가냘픈 몸으로 권명숙은 부상당한 전우들을 끌어안고 혹은 들춰메고, 혹은 질질 끌어서라도 안전지역까지 이동시키고 응급처치를 해주었다. 본인 체중의 두배 가까이 되는 남자 군인들을 들춰 업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때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생각뿐이였던 그는 더 많은 부상병들을 살리기 위해 두려움을 잊은채 포연속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였다. 

그토록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권명숙은 세차례나 헌혈을 통해 전우들의 목숨을 구했다. 그의 사심없는 기여는 생명에 대한 존중일뿐만 아니라 전우애의 진실한 표달이기도 했다.

간호병 시절의 권명숙 

첫 헌혈은 1951년의 어느 추운 겨울밤에 있었다. 권명숙의 소속부대는 대규모 전투를 치르고 있었는데 주변에 포연이 자욱하고 부상자들이 림시 수술실로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복부를 심하게 다친 한 젊은 전사가 피를 철철 흘리더니 곧바로 중태에 빠졌다. 그는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가늘어 당금 희생될 수 있는 상황이였다. 군의사의 진찰결과 급히 수혈이 필요했다, 하지만 현장에는 마땅한 혈액 공급원이 없었다. 시간은 1분1초 흘러갔고 군의들은 사경을 헤매는 병사를 바라보며 한숨만 쉬고 있었다. 

그 시각, 권명숙은 불타는 사명감을 느꼈다. 

“저의 혈액형이 O형+입니다. 제 피를 수혈해주세요.”

군의는 신속한 검사를 통해 권명숙의 혈액형을 사용해도 괜찮다고 판단했다. 이어서 권명숙의 가냘픈 팔뚝에서 나온 진붉은 피가 주사기를 통해 한번, 두번, 세번...... 젊은 병사의 체내에 주입되였다. 그렇게 헌혈한 혈액량은 무려 2,000CC에 달했다. 

《중화인민공화국 헌혈법》을 포함한 관련 법률 법규의 규정에 따르면 체중이 60키로그람 미만인 사람의 헌혈량은 200CC, 60키로그람의 이상인 사람의 헌혈량은 400CC를 초과해서는 안된다. 뿐더러 두차례의 채집간격은 6개월보다 적어서는 안된다. 독자들은 한꺼번에 2,000CC를, 법정 헌혈량의 10배를 헌혈한 권명숙의 장거가 얼마나 위험하고 ‘무모한’ 행동이였는지 가늠이 갈 것이다. 하물며 체중이 35키로그람밖에 안되는 권명숙은 자신의 죽음을 각오하고 전우를 구해낸 것이다.  

권명숙은 헌혈과정에 얼굴이 창백해지며 심한 어지러움 증세를 보였지만 끝까지 헌혈을 견지했다. 헌혈을 마친 권명숙은 침대에서 내릴 때 다리에 힘이 쭉 빠졌지만 휴식할 사이도 없이 곧바로 간호일터로 돌아가 다른 부상자들을 돌보았다. 며칠후에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한 그 병사는 권명숙의 두손을 부여잡고 ‘생명의 은인’에게 감사를 전했다.

전선에 나가있다보니 위험상황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다. 첫 헌혈이 있어서부터 몇달후, 권명숙의 소속부대는 다시한번 치렬한 전투를 치러야 했다. 이번에는 다리를 심하게 다쳐 바지가랭이를 온통 진붉은 색으로 물들인 병사 한명이 수술실로 옮겨졌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혈압이 수직 하강하며 위독 증세를 보였다. 군의는 이 병사 역시 수혈이 급히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전투가 치렬하게 진행되고 있고 의료자원 또한 극히 부족헌 현장에서 마땅한 혈액공급원을 찾지 못해 군의들은 조급해났다. 첫번의 헌혈후 혈액량이 정상수준으로 미처 돌아오지 못한 상태에서 권명숙은 재차 팔소매를 걷어붙여 1,500CC를 헌혈하여 또 한명의 젊은 생명을 구했다. 

몇달후 권명숙의 소속부대는 미공군의 야간 기습공격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많은 전우들이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는데 그중에는 가슴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림시수술실로 실려온 조선인민군 중앙회의 간부 한명도 있었다. 대출혈로 인해 조선 군인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자 그동안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권명숙이 또 한번 나섰다. 

“저의 피를 한번 더 뽑아주세요.” 

이번에도 권명숙은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1,500CC를 헌혈했다. 헌혈과정에 심한 어지러움 증상을 느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어지럼증을 억지로 이겨내며 침대에서 내려온 권명숙은 조선 군인의 숨소리가 고르고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서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선후로 3차례에 거쳐 무려 5,000CC나 헌혈한 것은 권명숙 개인의 극한에 대한 고험일 뿐만 아니라 그의 확고한 신념과 헌신정신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헌혈 후에는 휴식을 취하지 않고 곧바로 업무에 복귀해 다른 부상자들을 돌봤다. 그녀의 행동은 모든 전우들을 감동시켰고 그녀는 선후로 3등공 2차와 2등공 1차를 기입 받았으며 소속부대 장병들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백의천사’라고 불리웠다.  

1954년 12월 8일, 권명숙(왼쪽 첫번째)과 부대원들이 함께 찍은 기념사진 

권명숙은 항미원조 전쟁터에서 무수한 생사고비를 넘으면서도 시종 락관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 3개의 군공메달을 가슴에 달고 귀국한 권명숙은 제대하여 선후로 룡정현 동불사진병원과 연길시의약공사에서 맡은바 사업에 혼신의 열정을 불태웠다. 그는 함께 살아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을 기억하며 매년 ‘7.1’ 건당절 때마다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혁명전통을 잘 계승하고 홍색유전자를 이어가도록 자녀와 손자 손녀들을 교육해왔다. 끊임없는 노력을 거쳐 그는 마침내 손녀가 영광스러운 공산당원이 되는 순간을 목격하고 한평생 이루지 못했던 자신의 리상을 대신 실현했다고 한다. 90후의 손녀는 현재 연변주내 모 현급 시의 사업단위에 근무하는데 항상 공산당원의 선봉모범역할을 발휘하기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젊은 세대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부탁합니다.”는 기자의 부탁에 “요즘 젊은이들은 정말 행복합니다.”며 “나의 전투이야기를 공유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평화로운 시대와 강대하고 부강한 조국이 가져다준 행복한 생활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영원히 당을 따라 계속 전진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싶습니다.”라고 전했다. 또한 그는 “조국과 인민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영웅렬사들의 혁명정신은 우리 마음속에 세세대대로 기억될 것이라고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길림신문 유경봉, 오건, 정현관, 리전 기자 

编辑:최승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4588
  • 길림성 대안시에 위치하고 있는 눈강만관광구(嫩江湾旅游区)는 습지생태관광과 나버(捺钵,료나라 황제가 종사한 거란의 유목풍습과 관련된 야영지 이동, 유목 사냥 등 활동) 문화 체험을 통합한 국가4A급관광지이다. 도시와 불과 1키로메터 떨어져있는 이 풍경구의 총면적은 3.5평방키로메터이며 ‘로감자부두’(老坎子码头...
  • 2024-08-27
  • -장춘남호공원, 도시의 록색 호흡공간장춘남호공원은 부지면적이 238.6헥타르인데 그중 호수면적은 92헥타르이고 록지면적은 134.6헥타르에 달하는 초대규모의 도시구역내 원림이고 전국적인 시내공원이다. 장춘남호공원은 북경 이화원(颐和园)에 버금가는 전국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공원이다.1935년에 ‘황룡공원’으로 시...
  • 2024-08-27
  • ‘위챗 아바타’도 같고 ‘이름’도 같을뿐더러 대화풍격까지 비슷했다… ‘복사본 사장’이 위챗으로 업무지시를 보내왔다면 당신은 들을것 인가? 무시할 것인가?최근 장춘신구의 모 회사의 재무일군 리녀사(가명)는 사장으로부터 ‘물건 값을 어떤 사람의 계좌로 이체하라.’는 위챗 지시를 받게 되였다. 리녀사...
  • 2024-08-27
  • 지하철 2호선을 타면 서쪽 종착역인 자동차공원역에 도착한다. 역내에는 홍기 자동차를 원형으로 한 거대한 설계도안이 추상적인 선과 풍부한 색상으로 자동차 설계의 아름다움을 그려내며 승객들을 맞이하고 있다.지하철 2호선 자동차공원역의 홍기자동차를 원형으로 한 자동차 설계 자동차공원역 C출구로 나와 서남방...
  • 2024-08-27
  • 길림성박물원 외관길림성박물원은 길림성문화관광청 소속으로 지난 3월에 국가문화관광청으로부터 국가 1급 박물관으로 선정된, 력사와 예술 박물관이다.  길림성박물원은 중국 동북의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며 현대화도시 장춘에 눈부신 명주처럼 새겨져 있다. 길림성박물원은 길림성, 나아가서는 동북지역의 력사...
  • 2024-08-27
  • 길림시인력자원사회보장국과 길림시상무국, 길림시민정국, 길림시부녀련합회는 련합으로 <길림시 성급 가사써비스일군 평가사업실시방안>을 인쇄발부하여 전 시 범위에서 210명의 성급 가사써비스일군을 평가하고 직업도덕이 량호하고 전문기능이 뛰여난 고품질,고기능 가사써비스일군 대오를 점차 건립하여 가사종사...
  • 2024-08-27
  • 최근, 길림성 제2회 직업기능대회 '백산송수 기능행' 계렬활동이 길림시에서 정식으로 가동되였다.부성장 량인철, 길림시 시장 왕길, 길림시당위 상무위원이며 상무부시장인 무충욱이 개막식에 참석했다.길림성은 국가인력자원사회보장부가 확정한 ‘기능중국행’계렬활동 주관 성의 하나이다.길림성정부의 비준을 ...
  • 2024-08-27
  • 2015년부터 통화현 서강유기농벼재배농장에서는 논밭에 오리농업을 도입하여 토지의 생태환경을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동시에 경제효익도 뚜렷이 높여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 있다. 한여름, 서강유기농벼재배농장의 푸르싱싱한 논밭에서 한무리의 오리들이 풀과 벌레들을 찾아서 먹고 있다.  “오리들은 논...
  • 2024-08-27
  • 금융봉사를 최적화해 보편 혜택성 금융봉사 품질 향상으로 효익 증대에 조력인민은행 길림성분행은 ‘보편 혜택성 금융’총 목표를 참답게 정하고 신용조회 공급 강화에 초점을 맞추어 전국에서 최초로 촌진은행 전반 업무 신용 조회 시스템 전면 접속을 실현하여 길림성에서의 신용조회 시스템의 피복면, 봉사력과 보편 혜...
  • 2024-08-27
  • 《중국 농촌발전보고 2024》 발표회 및 신질생산력으로 향촌 전면 진흥 추진 포럼이 최근 북경에서 개최되였다. 중국사회과학원 부원장이며 당조 성원인 왕창림은 축사에서 “《중국 농촌발전보고 2024》는 신질생산력으로 향촌의 전면 진흥을 추진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고 내용이 전면적이고 체계적이며 비교적 강한 ...
  • 2024-08-27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