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전쟁터에서 선혈로 중조 량국 세 전우를 살려낸 소녀간호병
조글로미디어(ZOGLO) 2024년10월9일 13시04분    조회:8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로병사의 이야기](1)

[로병사의 이야기]를 내면서 

9월 29일, 중화인민공화국 국가훈장과 국가영예칭호 수여식에서 습근평 총서기는 "전사회가 영웅을 존경하고 영웅을 따라 배우고 다투어 영웅이 되도록 추동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창건 75주년을 기념하여 본지는 ‘로병사의 발자취를 찾아보고 영웅이야기를 잘하며 홍색정신을 이어가자’를 주제로 한 <로병사의 이야기> 코너를 신설하여 해방전쟁,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하여 혁혁한 공훈을 세운 성내 각 지역의 로병사들을 찾아 그들로부터 혁명이야기를 전해들었다. - 편집부

“가렬처절한 전쟁터에서 적의 총알과 포탄에 맞아 희생한 젊은 전사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70여년전, 항미원조 전쟁터에서 2등공 1차와 3등공 2차를 세운 소녀간호병 권명숙(权明淑)은 지금 90세 고령의 로인이 되였다. 

권명숙 로인

최근, 기자 일행은 연길 ‘로병사의 집’ 당지부 서기 서숙자의 안내로 연길시 북산가 모 아빠트단지에 살고 있는 권명숙 로병사를 만나 항미원조전쟁에서 수많은 전우들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낸 젊은 날 소녀간호병의 장거들을 전해들었다. 

중국 혁명사는 가냘픈 몸으로 남자들 못지않은 불굴의 의지로 가정과 국가의 안전을 위해 중임을 떠메고 나선 녀성들을 기억하고 있다.  

1934년 7월 27일, 동북의 중조변경 마을인 현재의 룡정시 백금향 평정촌에서 태여난 권명숙은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삼촌 집에서 자라면서 어려서부터 남다른 근성과 책임감을 보였다.

그러던 그는 항미원조전쟁이 발발하자 ‘남자만 군대에 갈 수 있나?’라는 생각을 했다. 1950년 12월, 심양군구 간호사학교를 제1기생으로 졸업한 16세의 권명숙은 중국인민지원군 제4분부 27대역 위생대 수술팀의 간호병으로 되여 료녕성 안동(현재의 단동)시를 거쳐 압록강을 건넜다. 소속부대를 따라 자강도를 거쳐 평안북도, 평안남도 등 여러 곳을 전전하던 소녀간호병 권명숙의 임무는 잔혹한 전쟁에서 부상당한 전사들을 구하는 일이였다. 

1951년 연길간호사 학교 제1기 사생들의 기념사진

부상병들은 끊임없이 야전병원에 실려 오고 초저공 비행을 하는 미군 폭격기는 권명숙의 소속부대와 부대의 야전병원을 덮쳐 전사와 의무일군 및 부상병들에게 무차별 기관포 사격을 해댄다. 하지만 그속에서 권명숙은 시종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용감하게 간호병의 책임을 다했다. 

미군의 폭격에 중상을 입은 전우들이 쓰러지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권명숙은 항상 가장 먼저 달려갔다. 160센치메터가 안되는 키에 35키로그람에 불과한 가냘픈 몸으로 권명숙은 부상당한 전우들을 끌어안고 혹은 들춰메고, 혹은 질질 끌어서라도 안전지역까지 이동시키고 응급처치를 해주었다. 본인 체중의 두배 가까이 되는 남자 군인들을 들춰 업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때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생각뿐이였던 그는 더 많은 부상병들을 살리기 위해 두려움을 잊은채 포연속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였다. 

그토록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권명숙은 세차례나 헌혈을 통해 전우들의 목숨을 구했다. 그의 사심없는 기여는 생명에 대한 존중일뿐만 아니라 전우애의 진실한 표달이기도 했다.

간호병 시절의 권명숙 

첫 헌혈은 1951년의 어느 추운 겨울밤에 있었다. 권명숙의 소속부대는 대규모 전투를 치르고 있었는데 주변에 포연이 자욱하고 부상자들이 림시 수술실로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복부를 심하게 다친 한 젊은 전사가 피를 철철 흘리더니 곧바로 중태에 빠졌다. 그는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가늘어 당금 희생될 수 있는 상황이였다. 군의사의 진찰결과 급히 수혈이 필요했다, 하지만 현장에는 마땅한 혈액 공급원이 없었다. 시간은 1분1초 흘러갔고 군의들은 사경을 헤매는 병사를 바라보며 한숨만 쉬고 있었다. 

그 시각, 권명숙은 불타는 사명감을 느꼈다. 

“저의 혈액형이 O형+입니다. 제 피를 수혈해주세요.”

군의는 신속한 검사를 통해 권명숙의 혈액형을 사용해도 괜찮다고 판단했다. 이어서 권명숙의 가냘픈 팔뚝에서 나온 진붉은 피가 주사기를 통해 한번, 두번, 세번...... 젊은 병사의 체내에 주입되였다. 그렇게 헌혈한 혈액량은 무려 2,000CC에 달했다. 

《중화인민공화국 헌혈법》을 포함한 관련 법률 법규의 규정에 따르면 체중이 60키로그람 미만인 사람의 헌혈량은 200CC, 60키로그람의 이상인 사람의 헌혈량은 400CC를 초과해서는 안된다. 뿐더러 두차례의 채집간격은 6개월보다 적어서는 안된다. 독자들은 한꺼번에 2,000CC를, 법정 헌혈량의 10배를 헌혈한 권명숙의 장거가 얼마나 위험하고 ‘무모한’ 행동이였는지 가늠이 갈 것이다. 하물며 체중이 35키로그람밖에 안되는 권명숙은 자신의 죽음을 각오하고 전우를 구해낸 것이다.  

권명숙은 헌혈과정에 얼굴이 창백해지며 심한 어지러움 증세를 보였지만 끝까지 헌혈을 견지했다. 헌혈을 마친 권명숙은 침대에서 내릴 때 다리에 힘이 쭉 빠졌지만 휴식할 사이도 없이 곧바로 간호일터로 돌아가 다른 부상자들을 돌보았다. 며칠후에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한 그 병사는 권명숙의 두손을 부여잡고 ‘생명의 은인’에게 감사를 전했다.

전선에 나가있다보니 위험상황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다. 첫 헌혈이 있어서부터 몇달후, 권명숙의 소속부대는 다시한번 치렬한 전투를 치러야 했다. 이번에는 다리를 심하게 다쳐 바지가랭이를 온통 진붉은 색으로 물들인 병사 한명이 수술실로 옮겨졌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혈압이 수직 하강하며 위독 증세를 보였다. 군의는 이 병사 역시 수혈이 급히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전투가 치렬하게 진행되고 있고 의료자원 또한 극히 부족헌 현장에서 마땅한 혈액공급원을 찾지 못해 군의들은 조급해났다. 첫번의 헌혈후 혈액량이 정상수준으로 미처 돌아오지 못한 상태에서 권명숙은 재차 팔소매를 걷어붙여 1,500CC를 헌혈하여 또 한명의 젊은 생명을 구했다. 

몇달후 권명숙의 소속부대는 미공군의 야간 기습공격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많은 전우들이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는데 그중에는 가슴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림시수술실로 실려온 조선인민군 중앙회의 간부 한명도 있었다. 대출혈로 인해 조선 군인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자 그동안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권명숙이 또 한번 나섰다. 

“저의 피를 한번 더 뽑아주세요.” 

이번에도 권명숙은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1,500CC를 헌혈했다. 헌혈과정에 심한 어지러움 증상을 느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어지럼증을 억지로 이겨내며 침대에서 내려온 권명숙은 조선 군인의 숨소리가 고르고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서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선후로 3차례에 거쳐 무려 5,000CC나 헌혈한 것은 권명숙 개인의 극한에 대한 고험일 뿐만 아니라 그의 확고한 신념과 헌신정신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헌혈 후에는 휴식을 취하지 않고 곧바로 업무에 복귀해 다른 부상자들을 돌봤다. 그녀의 행동은 모든 전우들을 감동시켰고 그녀는 선후로 3등공 2차와 2등공 1차를 기입 받았으며 소속부대 장병들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백의천사’라고 불리웠다.  

1954년 12월 8일, 권명숙(왼쪽 첫번째)과 부대원들이 함께 찍은 기념사진 

권명숙은 항미원조 전쟁터에서 무수한 생사고비를 넘으면서도 시종 락관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 3개의 군공메달을 가슴에 달고 귀국한 권명숙은 제대하여 선후로 룡정현 동불사진병원과 연길시의약공사에서 맡은바 사업에 혼신의 열정을 불태웠다. 그는 함께 살아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을 기억하며 매년 ‘7.1’ 건당절 때마다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혁명전통을 잘 계승하고 홍색유전자를 이어가도록 자녀와 손자 손녀들을 교육해왔다. 끊임없는 노력을 거쳐 그는 마침내 손녀가 영광스러운 공산당원이 되는 순간을 목격하고 한평생 이루지 못했던 자신의 리상을 대신 실현했다고 한다. 90후의 손녀는 현재 연변주내 모 현급 시의 사업단위에 근무하는데 항상 공산당원의 선봉모범역할을 발휘하기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젊은 세대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부탁합니다.”는 기자의 부탁에 “요즘 젊은이들은 정말 행복합니다.”며 “나의 전투이야기를 공유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평화로운 시대와 강대하고 부강한 조국이 가져다준 행복한 생활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영원히 당을 따라 계속 전진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싶습니다.”라고 전했다. 또한 그는 “조국과 인민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영웅렬사들의 혁명정신은 우리 마음속에 세세대대로 기억될 것이라고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길림신문 유경봉, 오건, 정현관, 리전 기자 

编辑:최승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941
  • 길림성 백산변경관리지대와 백산시총공회에서 주최하고 장백변경관리대대에서 맡아한 ‘변경을 지키고 사랑하며 경찰과 지방 녀성청년들 청실홍실 사랑을 맺기’주제활동이 최근 장백조선족자치현에서 진행되였다.이날 장백변경관리대대의 나젊은 경찰들과 장백현내 당정기관, 사업단위, 기업에서 온 40명의 우수한 녀성청년...
  • 2024-08-22
  •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우리 나라에서는 수리건설에 6,894억원의 투자를 실현하여 지난해 동기 대비 12.8% 증가, 그중 국채를 발행하여 배치한 수리건설 대상은 2,585억원의 투자를 완수하였다. 1월부터 7월가지 전국적으로 실시된 수리건설 대상은 4만개로 동기 대비 17% 늘어났는데 그중 새로 착공한 대상이 2만 6,000개로...
  • 2024-08-22
  • 중국경공업련합회가 일전에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경공업의 리윤이 빠르게 증가하고 영리 효과가 지속적으로 개선되였다. 규모이상 경공업 증가치는 전년 동기 대비 5.3% 증가했고 영업수입은 10조 8,000억원으로 동기 대비 2.3% 늘었으며 리윤은 6,575억 7,00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1% 증가, 리윤 ...
  • 2024-08-22
  • 집안시 태왕진 전만촌의 정양효원민박구 집안시 마선향 하활룡촌 관광구 바야흐로 초가을, 집안시 청하진 천교촌의 드넓은 전간이 얼음밀(冰麦) 황금바다를 이룸과 더불어 관광객들이 밀려든다며 천교촌 제1서기 손걸은 “우리는 ‘밀밭 + 생태관광’을 구축하고 생태관광, 밀 수확 체험 등 항목을 연...
  • 2024-08-22
  • 최근 길림중취(中聚)신에너지과학기술유한회사에서 올해 세번째로  리튬배터리 120상자를  유럽으로 발송했다.  이로써 이 회사의  제품 수출량은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30% 증가했다. 순조롭게 통관수속을 마친 데 대해 회사 책임자 묘혜는 장춘해관 소속 료원해관의  효률적인 도움에...
  • 2024-08-22
  • 연길시민정국에 따르면 최근 채택된 <연길시 고령수당 지급 실시세칙>(이하<세칙>) 이 9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는데 앞으로 연길시 호적을 가진 80세 이상의 로인들은 모두 고령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되였다.연길시민정국 관계자는 <세칙>의 시행으로 고령수당의 혜택이 확대되였다고 소개했다.&nbs...
  • 2024-08-22
  • ㅡ전통수제당면제작기술 전승보호단위 왕청현관동분왕식품유한책임회사를 찾아서쫄깃쫄깃한 당면(국수)은 일상생활에서 매우 광범하게 사용되는 식재료의 하나이다.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포함하여 마그네슘, 철, 칼륨, 나트륨과 같은 광물원소가 풍부하며 부착성이 좋아 다양한 식재료와 잘 결합되는 데다 부드럽고 윤활한 ...
  • 2024-08-22
  • 향항특별행정구 정부 북경주재 판사처와 료녕성 주재 련락처가 주최한 ‘향항, 매력이 넘치는 국제대도시 ’순회 전시회가 지난 주 장춘에서 진행되였다.동북 3성 순회 마감 역으로서 장춘에서의 전시회는 경영환경, 인재 이야기, 생활관광 등 주제를 포괄하고 있으며 특색이 있는 여러 향항 원소를 첨가하여 제도, 법치, 경...
  • 2024-08-21
  • G331국도 집안—림강 구간 , 길게 뻗은 길 옆으로 압록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류향휘기자집안—훈춘, G331국도가 길림성을 지나는 1,437키로메터 되는 구간은 수려한 산수풍경, 풍부한 토산물에 독보적인 변강 풍토를 품고 있다.올해 6월, 우리 성에서는〈길림성 변경(沿边)개방관광대통로 관광 발전 계획〉을 발표하여...
  • 2024-08-21
  • 3일 로씨야 하바롭스크와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흑룡강성 무원통상구를 찾은 로씨야 관광객. /신화넷흑하시는 흑룡강을 사이에 두고 로씨야 블라고베셴스크와 마주하고 있다. 2023년 9월 중국과 로씨야간 단체관광 무비자 정책이 재개된 후 흑하시는 다국간 관광이 급증하면서 지역 경제가 활기를 띠고 있다.이제...
  • 2024-08-21
‹처음  이전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