륙정산 고분군은 돈화시 남쪽 5키로메터 지점의 륙정산 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부지면적은 약 13만 평방메터에 달한다. Ⅰ묘역과 Ⅱ묘역으로 나뉘며 무덤 235기와 집터 2곳, 석대 11곳이 있다. 밝혀진데 따르면 이 고분군은 주로 발해국 초기 왕실과 귀족의 묘지로서 1961년 국무원으로부터 제1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공포되였다.
기원 698년 속말말갈 수령 대조영은 지금의 목단강 상류에서 돈화 동모산(지금의 돈화 성산자산성에 정권을 세워 ‘진국’이라 불렀다.
돌사자상
기원 713년 당현종은 최흔을 파견해 대조영을 ‘좌효위원외대장군 발해군왕’ 및‘ 홀한주도독’으로 책봉하였다. 이때로부터 말갈이란 명칭을 버리고 국호를 ‘발해’라 불렀다. 가장 강성할 때에는 오경 15부, 62주, 130여 현이 있었다.
정혜공주 묘비의 비문
발해는 당조의 제도를 본받아 중원의 문화를 배웠으며 한때 ‘해동성국’으로 불리웠다. 고왕 대조영이 나라를 세울 때부터 말왕 대인선이 천현(天顯) 원년(기원 926년)료태조 야률아보기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15대를 전했는데 그 력사는 229년에 달한다.
질그릇
당나라 천보(기원 742년—755년)년간 발해는 수도를 중경현덕부(지금의 화룡 서고성)에 옮겼다. 륙정산고분군은 대부분이 발해와 왕도를 중경으로 옮겼을 때의 유물이다.
귀면기와
1949년 돈화현 계동중학교는 Ⅰ묘역에서 정혜공주묘를 발견하였다. 묘에서 묘비 일부와 암수 돌사자 각 1존 등 진귀한 문물이 출토되였다. 비문에는 정혜공주는 발해국 제3대 문왕 대흠무의 차녀라고 기재되여 있었다.
그 후 국가, 성, 시 등 문물부문에서는 여러 차례에 거쳐 고분군에 대한 조사, 발굴 등 작업을 진행해 고분군의 범위와 현황을 철저히 규명하였다. 아울러 묘지의 류형, 년대, 성질을 비롯하여 정치, 경제, 문화 및 족속 구성 등 발해국 초기 연구를 위한 상세하고 확실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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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역: 리은파
来源:敦化博物馆
初审:李银波
复审:尹升吉
终审:金敬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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