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전우들의 피로 물들여진 군복을 입고 정전협정까지 싸웠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24년12월18일 12시59분    조회:138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로병사의 이야기](8)
전우들의 피로 물들여진 군복을 입고 정전협정까지 싸웠다

―항미원조 마지막 전역에 참가했던 김만석의 이야기

71년전의 금성전역을 이야기하고 있는 90세 고령의 김만석로인

1953년 7월, 항미원조 전쟁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정전담판이 진행되고는 있었지만 쌍방은 일부 핵심 문제에서 여전히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보다 유리한 담판지위를 쟁취하고 련합군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중국인민지원군은 조선인민군과 함께 대규모적인 진공전역을 발동하기로 결정했다. 이 전역이 바로 금성전역이다. 

자욱한 포연과 총포의 울부짖음 속에서 

1953년 7월 13일부터 7월 27일까지 2주동안 지속된 금성전역은 항미원조전쟁의 최후의 대규모적인 전역이였을 뿐만 아니라 정전담판의 성공여부를 결정짓는 관건적인 전역이기도 했다.

젊은 시절의 김만석이 어머니와 함께

당시 이 최후의 치렬한 전투에는 19살의 젊은 전사 김만석도 54군 모사의 전우들과 함께 투입되였다.  

그 때를 회상하는 그의 눈에는 절절한 감정이 담겨져 있었다. 

“그날 밤, 미군 비행기의 폭격으로 인해 번진 불빛으로 하늘이 환했고 총포소리에 귀가 먹먹했지요. 나는 전우들과 함께 산등성이의 거대한 바위돌 밑에 은페해 있었어요.” 

갑자기 산을 넘어 날아 폭탄 여러 발이 김만석과 전우들 앞에 터졌다. 그 폭발로 앞에서 지휘하던 련 지도원이 머리에 직접적인 타격을 맞았고 여러 전우들도 쓰러졌다. 김만석과 다른 전우들의 옷과 얼굴도 사상자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김만석이 수여받은 기념장들 

“우리는 전우들의 피로 물들여진 군복을 입고 그들의 유지를 받들고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용감히 싸웠어요.”라며 김만석로인은 그때의 가렬처절했던 장면을 추억한다. 

그때 젊은 김만석의 마음에는 승리에 대한 집념과 전우들의 희생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뿐이였다. 전장의 자욱한 포연과 끝없이 이어지는 총포의 울부짖음 속에서도 그는 마지막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전우들과 어깨 겯고 꿋꿋이 싸워나갔고 결국 정전협정의 체결을 맞이했다. 

나라와 인민 위해 전장에 나간 외동아들

1934년 조선 함경북도의 삼가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여난 김만석은 어릴 때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두만강을 건너 화룡현 역전 근처(현재의 화룡시 역전거리)의 단결촌에 이사왔다. 

김만석(뒤줄 왼쪽 세번째)의 소학교 졸업사진

추위가 매섭던 1951년 12월, 화룡중학교를 졸업한 17세의 김만석은 당과 국가의 호소에 적극 호응하여 항미원조 전선으로 달려나갔다. 당시 집에는 어머니만 홀로 남았지만 외동아들 김만석은 국가와 인민의 안전을 보위하기 위해 입대했다. 그때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장인 주덕해동지가 직접 동원했기에 젊은이들은 참전의 중요성과 절박성을 더욱 명확히 할 수 있었다. 

국경 1주년 맞이 화룡중학교 배구,축구경기 우승 기념촬영 (1950년 10월 1일)

단동에 도착한 김만석은 상황이 긴박하다보니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을 틈도 없이 전장에 투입되였다. 김만석은 처음에 모 군 무공대(武工队) 에 배속되여 조선에 나갔다가 병력보충이 필요한 소속 부대를 따라 잠시 귀국해 정비와 훈련을 받았다. 그후 모 군 정통련(政统连)에 배치되여 다시 전장에 파견되였고 1953년에는 54군 모사에 배치되여 그의 마지막전투인 금성전역에 참가하게 되였다. 금성전역에 파견된 그는 주로 부대 간부들의 통역일을 맡아했다. 그가 속해 있던 54군은 전쟁에서 사상자가 많이 나온 16군을 교대해 출전했다. 전쟁터에서는 이처럼 빈번한 부대교체가 있었는데 이는 당시 복잡한 전쟁 환경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전략적인 결책이였다. 이런 방식은 전선의 지속적인 전투력을 보장했고 전쟁의 최종 승리에 토대를 닦아놓았다. 

김만석의 제대군인증명서

김만석이 전장에 나가 있는 동안, 고향 화룡에 홀로 남은 어머니는 늘 외동아들이 그리워했고 아들의 안위을 걱정했다. 기차를 며칠씩 타야 당도하는 1,400리나 되는 먼 길이지만 그는 두번이나 단동까지 아들을 보러 갔다. 1953년, 아들 소식이 간절했던 어머니가 단동으로 달려갔지만 그때 김만석이 금성전역 전쟁터에 있다 보니 만나지 못했단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부대를 따라 귀국한 김만석은 1955년 2월까지 학습에 참가했다. 그때 어머니가 두번째로 단동을 찾아왔고 오매불망 상봉이 이루어졌다. 

김만석은 지금도 그날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어머니와의 만남은 3년여만의 그리움과 미안함을 달래주었고 앞으로 어머니께 더 효도해야겠다는 다짐을 더 굳히게 했단다.

사업정진하는 젊은 시절의 김만석

1955년에 퇴역하고 귀향길에 오른 김만석은 수많은 전우들이 목숨바쳐 바꿔온 평화의 소중함을 더 간절히 느끼면서 고향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의 장을 열었다.

제1자동차공장의 ‘황소’

고향인 화룡에 돌아온 21살 청년 김만석은 집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지냈다. 1년뒤, 항미원조 참전 경력이 있는 그는 촌에서 유일하게 당시 설립된지 3년도 안되는 제1자동차공장에 추천받게 되였다. 

제1자동차공장에서 근무하던 나날에 동료들과 함께

김만석의 회억에 따르면 1956년 화룡의 4명을 포함해 연변에서 총 22명이 제1자동차공장에 추천받았다고 한다.

그가 처음 공장에 배치 받았을 때 제1자동차공장은 초창기다보니 조건이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불평 한마디 없이 새 일터에 적응해나갔다. 그는 제1자동차공장 주조공장 실험실에 배치되여 주로 분광분석, 화학분석 등 분석실험을 했다.

“당시 자동차공장에서 일하는 조선족들이 적지 않았어요.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참 재미있게 보냈어요.”라고 처음 공장에 들어와서 조선족들과 함께 보내던 시절을 회억했다.

실험실은 자동차의 품질안전을 보장하는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자동차 생산에 들어가는 모든 철강원자재를 분석해야 하고 검사를 통해 합격 된 원자재만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 자동차의 부품이 만들어지고 자동차가 만들어진다.

가장 책임감이 수요되는 중요한 일터에서 김만석은 능숙한 기술과 사업에 대한 고도로 되는 책임감으로 동료들과 함께 제1자동차공장 실험실의 품질 관문을 지켰다.

김만석은 제1자동차공장에 배치받은 첫해에 새중국의 첫 트럭 해방패의 출시를 지켜보았고 1958년에는 새중국 첫 소형자동차 동풍패, 이듬해에는 새충국 창건 10돐을 맞으며 새중국 첫 고급승용차 홍기패의 출시의 기쁨을 함께했다.  

홍기자동차 품질돌격대가 집체공을 기입받고

김만석의 부인 리옥금(86세)은 수십년을 제1자동차공장의 후근부 식당, 유치원 등 부문에서 근무한 동료이다. 인터뷰 내내 옆에 앉아있던 리옥금은 “저분은 재직시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수십년을 일했어요. 몸이 아파도 나가고, 집안에 일이 있어도 나가고 정말 모범답게 일했습니다. 하여 공장에서 23년 련속 로력모범으로 뽑히면서 ‘황소’라는 별명까지 붙여졌지요. 그리고 제1자동차공장의 일터 기준병으로 당선되여 사진이 공장 영예판에 오른 적도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함께 자동차공장에서 근무하던 시절을 자랑스럽게 회억했다.

김만석, 리옥금 량주

1993년, 37년간 근무한 실험실을 떠나 퇴직한 후 김만석은 제1자동차공장조선족로인협회에 가입하여 30여년째 협회의 각종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면서 만년을 즐겁게 보내고 있다.

/길림신문 유경봉, 오건, 정현관 기자

编辑:유경봉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5034
  • -서광요(徐光耀) 등 문학거장들의 시각으로 보는 김학철 김학철 주요작품: 장편자서전 《최후의 분대장》, 전기문학 《항전별곡》 중단편소설집《군공메달》,《범람》,《고뇌》,《번영》,《무명소졸》,《김학철단편소설집》,《태항산록》,《나의 길》 등. 20세기 50년대초 김학철(뒤줄 오른쪽 두번째)과 서광요(뒤줄 왼쪽 첫...
  • 2022-11-08
  •   지난 6월부터 10월초까지 연길시공안국 환경범죄수사대대는 연길시 관할구역내 파출소, 연길시시장감독관리국과 련합하여 연길하아침시장, 벽수아침시장, 흥안장터, 조양천장터 등지에 대해 식품약품안전 분야의 돌격검사 전문행동을 전개했다. 검사를 거쳐 도합 6건의 불법보건품 판매사건을 해명하고 범죄용의자 ...
  • 2022-11-08
  • 2022년 전국 청소년U12녀자축구선수권대회(중점도시조)가 11월 12일부터 13일까지 대련시에서 펼쳐지는데 룡정시체육학교의 U12녀자축구팀이 참가하게 된다. 룡정시업여체육학교의 김룡수지도,송광선지도,리광룡지도와 선수 18명이 이번 경기에 참가하게 된다. 전국청소년 U12녀자축구선수권대회(중점도시조) 소조경기는 1...
  • 2022-11-08
  •   경기구에서 훈련하고 있는 연변룡정팀 선수들. 2022년 을급리그 총 결승경기에 참가한 연변룡정팀이 이르면 9일 오후 4시경이면 갑급리그 진출을 확정할 수 있다. 현재 7점으로 순위 1위에 있는 연변팀은 9일 오후 14시부터 제2위인 제남흥주팀과 제4라운드 경기를 치른다. 이제 시선은 갑급리그 승격을 위한 이 관건경기...
  • 2022-11-08
  • 2022년 중국축구협회 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중점도시 남자 U12조)경기가 11월 11일부터 12일까지 대련에서 펼쳐지는데 연변청소년U12팀이 참가하게 된다. 연변U12청소년팀은 단장에 전호, 김청지도(연길), 김성지도(화룡), 박광철지도(훈춘),한종국지도(꼴키퍼 지도)와 선수 26명이 이번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현재 매일 룡...
  • 2022-11-08
  •  11월 7일, 중국공산당 길림성위 당사연구실에서는 장백조선족자치현 정협위원회에 문사자료도서를 기증했다. 올해 장백현정협위원회에서는 문사자료도서실을 새로 건립하고 대량의 문사자료도서를 수집하고 있다. 이 사연을 알게 된 길림성당위 당사연구실에서는 《습근평과 길림》, 《중국공산당 길림집정실록》, 《중국공...
  • 2022-11-08
  • 6일, ‘중학생컵’ 전국 조선족중학생 작문경연대회 시상식이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있었다. 고중조 심시조장을 맡은 연변대학 리봉우교수 초중조 심시조장을 맡은 연변교육출판사 조선어문교재 편집실 김흠 주임 이번 작문경연에는 총 57개 학교에서 예심을 거쳐 보내왔는데 초중조에서 250편, 고중조에서 150편의...
  • 2022-11-07
  • 본상 수상자 김영능시인(가운데). 11월 6일, 연변시인협회 주최로 제6회 “시향만리”문학상 시상식이 연길시 한성호텔에서 개최되였다. 김영능시인이 본상을 수상하고 리종화, 윤수이, 박려정이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연변시인협회 전병칠회장은 개회사에서 김철, 리상각, 김응준 등 선배시인들의 발기하에 200...
  • 2022-11-07
  • 11월 6일,동북조선족축구련의회에서 주최한 2022년 ‘체육복권컵’ 동북조선족축구련의회 40세조, 50세조, 60세조 경기가 룡정해란강축구문화타운에서 결속되였다. 지난 3일 오후부터 시작된 이번 축구경기는 40세조 6개팀, 50세조 8개팀, 60세조 6개팀이 6일까지 각각 경기를 펼쳤다. 해마다 한번씩 펼쳐지고 있는 동북조...
  • 2022-11-07
  • 11월 6일 오전, 2022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제2회 “체육학교컵” 갑조, 을조 축구경기가 연길시 꿈나무체육관에서 결속되였다. 이번 체육학교컵 축구경기는 “중국축구개혁발전총체방안”, “중국축구중장기발전계획(2016-2050)”에 따라 펼쳐졌는제 주체육국과 주교육국에서 주최하고 연변체육운동관리중심, 연변조선족자치...
  • 2022-11-07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