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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의 홍색유전자가 대대손손 전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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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병사의 이야기](12)

아버지들의 홍색유전자가 대대손손 전해지길

―항미원조에 참전했던 두 아버지를 그리는 리호송씨를 만나

연변조선족자치주검찰원에서 근무중인 리호송 검찰관.

본사에서 기획한 [로병사의 이야기] 계렬보도가 한편, 두편 발표되자 아주 ‘특수한 감정’을 안고 한편도 빠뜨리지 않고 정독하는 이가 있다. 바로 연변주검찰원 사건관리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리호송씨(59세)이다. 기사들을 읽으면서 항미원조 참전 로병사인, 이미 작고한 아버지 리금룡과 장인 원진석이 더더욱 그리워지고 수많은 참전 로병사들의 다양한 전투이야기, 혁명이야기를 료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리호송씨는 말한다.

최근, 기자 일행은 연변주검찰원에서 리호송씨를 만나 두 아버지의 혁명이야기를 들었다.

리금룡, 부상병들에게 수혈하고 전쟁터에 나간 번역원

리호송의 아버지 리금룡은 1933년 4월에 연길시 소돈대촌(小墩台村, 지금 연길시인민공원 울안)에서 외동아들로 태여나서 불과 석달만에 아버지를 여의였다. 계부의 손에서 자라면서 연길대화국민우급학교(현재의 중앙소학교)를 다니면서 일본어를 배웠다. 교육열이 엄청 높았던 그의 어머니는 한문을 많이 알아야 유식하다며 리금룡을 길림성성립연길시제2초급중학교(현재의 연길시제2중학교)에 보냈다.

1951년 7월, 동북군구(현재의 북부군구)와 연변행정전원독찰공서(현재의 연변인민정부)가 학교에 와서 항미원조전쟁에 나갈 민정간부와 번역원을 모집했다. 졸업을 앞둔 18세의 리금룡은 용약 입대에 지원하여 지원군 번역원으로 되였다. 형세는 아주 준엄했다. 당장 전선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리금룡은 연길북대영에 위치한 동북군구후근위생원(원래의 일본관동군병원, 현재의 223병원)에 가서 조선전쟁으로부터 실려온 부상병들에게 수혈하라는 상급부문의 명령을 받았다. 리금룡은 그때 한꺼번에 헌혈을 많이 했던 관계로 바로 전선에 나가지 못하게 되였다. 병원에서 료양하며 동북군구 후근위생부 연길간호사학교 간호생들의 관심어린 간호와 도움을 받은 후 1952년 2월 조선전쟁에 나갔다.

  1. 학생시절의 리금룡

이 사실을 알고 있던 리호송은 10월 9일에 발표된 본지의 〈[로병사의 이야기](1)5,000cc 헌혈해 중조 량국 세 전우를 살려낸 소녀간호병〉 기사에 실린 ‘1951년 동북군구 후근위생부 연길간호사학교 제1기생들의 기념사진’을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사진 속 수백명의 젊은 전사들속에 혹시나 아버지 리금룡이 있지 않을가 싶어서였다고 한다.

리호송에 따르면 성격이 강직한 아버지 리금룡은 1남4녀, 다섯 자식에게 어른에 대한 존경과 식사례절, 생활례절 등을 가르쳤단다. 특히 본관과 조상, 고향을 잊지 말고 가족의 력사를 절대 잊지 말라고 아들인 리호송에게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리금룡은 본인의 전투경력을 종래로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이건 전쟁터에서 희생한 전우들에 대한 례의가 아니라며 특히 술을 마시면 순직한 전우들이 생각난다며 평생 술과 담을 쌓고 살았다.

리금룡의 소속부대는 당시 동북군구 번역원 훈련대대가 위치한 심양 북릉에 주둔해 있었다. 인당 과자 10근, 미수가루 5근, 오이지 등을 배급받고 출국한 부대는 선후로 조선 평안북도 청성군과 평안남도 양덕, 개천 등 지역에서 싸웠다. 번역관 리금룡은 길잡이가 되여 앞에서 걸었다. 낮에는 미군 비행기의 정찰과 폭격을 피해 있다가 밤이 되면 강행군했다. 특무활동이 유난히 창궐하던 당시 지원군 전사들이 한어로 말하면 탄로날가봐 조선 백성들의 집에 들지 못하고 로숙해야만 했다. 리금룡은 식량을 얻기 위해 혼자서 집집을 다니면서 쌀을 구했다. 당시 지원군 각급 지휘기관과 기층 전투단위에 모두 번역원을 배치했는데 그들의 신분은 번역원이자 련락원이였다. 한어와 조선어를 능란하게 구사하는 번역원들은 평소 중조부대 사이에 련계를 맺어주고 행군할 때는 길잡이가 되고 직무와 관련되는 사업들을 해나갔는데 지원군에서는 없어서는 안되는 특수한 사명을 짊어진 전투원들이였다.

원진석, 해방전역과 항미원조전쟁 군공메달 수두룩

항미원조전쟁시기, 리호송의 장인 원진석은 사돈 리금룡과 같은 전선에서 ‘다른 신분’으로 싸웠다.

1930년 2월에 안도현 명월구(현재의 명월진)에서 태여난 원진석은 항일전쟁, 해방전쟁, 항미원조전쟁을 다 겪은 로병사이다.

1945년 8월초 15살 어린 나이에 동북항일민주련군 동만지대 호로대(护路队, 철도병의 전신)에 입대했다. 당시 동만(현재의 연변)의 항일활동은 매우 활약적이였는데 주보중 장군이 령도하는 항일조직이 남만과 북만에서도 활동했다. 그들과의 련계를 강화하기 위해 부대에서는 총명하고 학습에 꾸준한 원진석에게 편지 나르는 비밀련락원 임무를 맡겼는데 그는 종래로 적들에게 폭로되지 않았다. 1947년 5월, 당시 동북야전군 철도병 모 지대 기술련 부패장이였던 원진석은 길장선(길림―장춘), 심길선(심양―길림), 사매선(사평―매하구)에서 주력부대와 협동작전하면서 적의 철도선을 파괴하고 통제한 후 적을 시내에 가두어 오갈데 없게 만들었다. 전투 승리후에는 또 철도를 재빨리 복구하여 군수 운수선을 구축했다. 철도는 전 동북을 해방하는 데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중요한 명맥이였다. 전선에서 필요한 무기탄약, 휘발유와 식량 등의 운송은 모두 이 철도를 거쳐야 했다. 원진석은 철도를 목숨으로 사수하며 군수물자의 운수를 보장했다.

1954년, 연변한어사범학교 동창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원진석(뒤줄 왼쪽 두번째)

원진석은 장춘해방전쟁과 사평전역, 료심전역에서 국민당군대의 폭격에 끊어진 철길을 이어나가며 강철의 운수선을 지켜 싸웠다. 료심전역후 원진석은 료심전역 기념메달과 군공메달을 각각 하나씩 수여받았다. 1948년 11월 제4야전군 모 사에 편입된 원진석은 야전군주력으로 승격한 부대를 따라 평진전역에 참가했다. 그후 남하하여 도강전역과 무한해방전역을 거쳐 강서성 구강, 남창까지 진군하여 군공메달을 수여받았다.

그뒤 중앙군위의 명령을 받고 항미원조 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1953년 7월 정전담판이 체결되기 직전까지 개천에서 방위전에 참가했다. 개천은 평안남도의 주요한 도시의 하나로서 교통요도였다. 개천에는 11갈래의 철길이 있어 드나드는 기차가 많았는데 미군의 주요한 공격목표로 되여 빈번한 공습을 받았다.

하루는 밤 9시쯤 폭격기 4대가 공중에서 나팜탄을 떨구며 근 한시간동안 개천역을 폭격했다. 이 공습으로 철도 주간선이 400여메터나 끊기고 다른 간선도 파괴되였다. 철길역에 대피하고 있던 군인들은 폭격이 멎자마자 달려나와 앞에서 폭탄구뎅이를 메우면서 침목을 놓고 철길을 잇고 레루에 못을 박았다. 고공에는 정찰기와 ‘쌕쌕기’(전투기)가 냄새를 맡기라도 하듯 계속 선회하고 있었다. 이럴 때 레루 못을 박다가 한번 빗나가 불꽂이 튕기기라도 하면 목표가 드러나기에 상당한 기술이 필요했다. 밤 12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어둠속에서 4근짜리 망치를 휘두리며 단숨에 천여개의 레루 못을 박고 나서야 원진석과 그의 전우들은 간신히 허리를 폈다. 파괴되였던 철도는 예상보다 먼저 복구되였다.

재직시절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는 원진석

1953년 7월 어느날, 당시 독립운수중대의 중대장이자 총지 서기였던 원진석은“적기가 우리 후방 공급도로를 미친듯이 폭격봉쇄하고 있다. 꼭 공습에 주의를 돌리고 중국인민들이 보낸 위문품을 안전하게 전방에 수송하라.”는 후방 사령부의 명령을 받았다.

이윽고 원진석은 중국에서 보내온 위문품을 기차역에서 자동차 4대에 갈아싣고 전사들을 이끌고 길을 떠났다. 원진석은 제일 앞 차를 몰았다. 운수차대를 발견한 미군 ‘쌕쌕기’가 기관총 소사를 해댔다. 원진석은 적군 비행기를 유인하여 위문품을 구하려고 했지만 자동차가 길옆 구렁텅이에 빠져들어가는 바람에 그만 중상을 입었다.

전쟁력사를 수십년 동안 숨겨온 두 아버지

항미원조에서 돌아온 리금룡은 당과 정부의 추천으로 심양건화중등전문학교에 가서 공부한 후 선후하여 흑룡강성 녕안현과 길림성 서란현에서 교편을 잡았다. 연길시식품공업공사에 전근하여 근무하다가 농촌에 내려가서 생산대 대장, 촌서기 등 직무를 맡다가 다시 직장으로 돌아와서 당무사업을 하다가 1990년에 퇴직했다.


재직시절의 원진석

중상을 입었던 원진석은 후방병원에 호송되여 구급치료를 받다가 1953년 8월에 교하현에 있던 지원군후방병원에서 병치료를 끝내고 중국인민지원군 3등 장애군인의 신분으로 제대했다. 전쟁터에서 혁혁한 군공을 세운 원진석은 선후하여 연변한어사범학교와 길림성위생간부학교를 졸업하고 진인민위원회 선전간사, 현정부위생방역소 소장, 진병원 원장 등 직무를 력임, 당중앙 11기 3차 전원회의후에 길림성석유회사 안도지사 정치사업서기, 주임을 력임하다가 1988년 5월에 리직휴양했다.

리호송의 부친 리금룡은 2015년에 82세를 일기로, 장인 원진석은 10년 앞서 2005년에 75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쳤다.

리호송은 연변조선족자치주당안관에 기증한 부친과 장인의 ‘색바랜’ 사진과 증서 및 군공메달들. 

두 로인은 약속이라도 한듯이 자신의 전투경력을 종래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자랑거리로 삼지도 않았단다.

“왜서 어려운 시기에 정부와 유관부분에 자기의 력사를 말하고 방조를 구하지 않았는가?”라 자식들의 물음에 두 로병사는 “살아 돌아온 것만 해도 행운스러운 일이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고 한다.

연변주당안관에서 리호송에게 발급한 당안자료 징집 관련 서류

2013년, 리금룡은 세상을 하직하기 1년 전쯤에야 비로소 아들 리호송에게 간간히 전쟁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원진석은 1남6녀 일곱 자식들중에서 아들과 딸 한명이 각각 군인 출신이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연변주검찰원에 근무하는 막내사위 리호송에게 전쟁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고 한다. 사돈 리금룡도 항미원조 참전로병사인 까닭이 아닐가 싶다고 리호송은 말한다.

2023년, 리호송은 수십년 동안 소중히 간직해온 부친과 장인의 ‘색바랜’ 사진과 증서, 해방전쟁과 항미원조시절의 군공메달들을 연변조선족자치주당안관에 기증했다.

 

12월 26일, 두 아버지를 그리며 연변혁명렬사릉원을 찾은 리호송

“항미원조전쟁은 중국인민이 조국을 보위하고 세계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정의적인 전쟁이다.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항미원조, 보가위국’의 기치를 높이 추켜들고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은 중국인민지원군 전사들의 영광스러운 혁명력사를 회고하는 것은 젊은 세대들이 홍색유전자를 계승, 발양하는 데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

“아버지들의 인생을 퇴색한 증서나 군공메달로 평가할 수 없다. 그들의 인생은 가시밭길을 헤쳐나가고 마음을 굳건히 다지고 곤난을 전승하고 위기를 넘긴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주어진 위치에서 온힘을 다해 묵묵히 일한 부모님들이야말로 후대들이 따라배우고 전승해야 할 이 시대의 진정한 본보기가 아닐가? 라고 생각한다.”

리호송은 오늘날의 평화로운 조국과 행복한 세상을 위해 가렬처절한 전쟁년대에 피 흘리고 목숨까지 기꺼이 바쳐온 수많은 렬사와 참전로병사 아버지, 할아버지들의 항전정신과 홍색유전자가 대대손손 전해져내려가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길림신문 유경봉, 리전 기자

编辑:유경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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