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그때 그 이야기27] “발바닥에 털 나겠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26년5월19일 09시43분    조회:100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한길

물 공급이 하루 끊긴다는 안내문을 보았다. 아마 수도관이 얼어 터진 모양이다. 호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생수를 주문했다. 수도꼭지만 돌리면 언제든 콸콸 쏟아지던 물이 갑자기 끊기니 막막했다. 우두커니 창가에 섰다. 그런데 아파트 창밖 도시 풍경과는 전혀 다른 옛날 기억이 슬슬 떠올랐다.

“집에 수도만 있어도 발바닥에 털 나겠다.”

어릴 적, 우리 동네 어머니들이 입버릇처럼 늘 되뇌이던 말이다.

1960년대, 우리 집은 옛날 식당으로 쓰던 집을 네 가구가 살도록 개조한 맨 동쪽 자리에 있었다. 여느 집과 달리 우리 집은 아래방과 웃방의 출입문이 모두 동쪽으로 나 있어 문을 열면 바로 연길시의 국자거리가 보였다. 국자가 건너편 중앙소학교의 넓은 운동장 너머로는 멀리 동산이 아득히 보였다. 우리 집 울타리 바로 남쪽에는 배구장 크기만 한 공터가 있었다. 그 공터 한가운데는 동네 사람들이 함께 쓰는 공용 수도가 있었다.

가을이 되면 동네 집집의 마당마다 하얗게 빨래한 이불 속겉감들이 빨래줄에 걸려 바람에 펄럭이고 배추와 무우가 쌓여 크고 작은 산을 이루었다. 어머니들은 겨우내내 먹을 김장 준비로 남새들을 다듬고 씻어 소금에 절이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부지런히 수도물을 길어 나르고 구정물을 버렸다.

“집에 수도만 있어도 발바닥에 털 나겠다.”

어머니들의 넋두리 속에 다사한 가을이 지나고 추운 겨울이 왔다.

겨울철, 악몽 같은 물 긷기에 어머니들은 근심이 깊었다. 공용 수도가 있는 공터는 겨울이면 온통 얼음판으로 변했다. 게다가 수도꼭지 주변에는 작은 얼음산이 생겨 우리 아이들에게는 썰매 타기 좋은 놀이터였다. 하지만 물을 길어야 하는 어른들에게는 미끄러워 힘들었다. 어머니들은 물동이나 물통을 머리에 이고 시집가는 새색시처럼 눈을 살포시 내리깔고 마치 곡예사가 줄타기하듯 조심조심 걸어 다녔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마다 저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쥐였다.

“욕심 부리지 말고 물동이에 물을 곯게 담으란데……”

겨울이 되면 할머니가 늘 어머니에게 당부하시던 말씀이다. 그래서 우리 집 부엌에 모셔진 배불뚝이 물 항아리는 여름에는 물을 다섯 동이 먹여도 배불러 땀을 흘리지만, 겨울에는 물을 일곱 동이 먹여도 어찌할 수 없어 배부른 척했다.

“이 동네 사내들 참, 세계혁명을 혼자 다 하는가 보다. 끌끌.”

할머니가 동네 어머니들을 딱하게 여겨 자주 하시던 말씀이다. 그 말을 엿들은 건지, 철이 아버지는 다른 사람과 달랐다. 해마다 직장의 로력모범인 철이 아버지는 동네 골목길도 도맡아 쓸었고 자기 집 물도 열심히 길어 나르군 했다.

어느 날, 눈이 펑펑 내리던 저녁이였다. 늦게 퇴근한 철이 아버지가 욕심스레 물통에 물을 가득 담아 지게 량쪽에 달아 메고 걷다가 그만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철이 아버지는 동네 어른들의 부축을 받아 병원으로 가게 되였고 하얀 석고 붕대를 감게 되였다. 로력모범이 로동현장도 아닌 집의 물을 긷다 다친 일은 꽤 큰 사고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그 이튿날, 간부 한 분이 우리 동네에 와서 집집의 가장들을 우리 집에 불러 모아놓고 회의를 열었다. 그 다음 날 토요일 밤에는 꽁꽁 언 땅에 불을 피워 녹였다. 일요일 아침부터 동네 어른들이 악착같이 곡괭이질을 한 덕분에 마침내 우리 동네 집집마다 수도가 들어가게 되였다.

“이젠 발바닥에 털 나겠네. 호호호.”

“그러면 발바닥에 털 깎느라 성가셔서 어쩌나. 하하하.”

어머니들은 모두들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다. 그날 저녁, 어머니는 물 항아리 밑바닥까지 깨끗이 씻고 닦으셨다. 이제는 물 항아리를 배불리지 않아도 된다면서 코노래까지 흥얼거리셨다. 그런데 홀쭉해진 물 항아리가 이상하게 쓸쓸해 보였다.

그보다 더 이상한 일이 있었다. 우리 집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나온 지 한참이 지나도 어머니의 하얀 발바닥에는 털이 날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하루만 면도하지 않아도 얼굴에 수염이 텁수룩한데 말이다.

“사람의 발바닥에 어떻게 털이 나니? 그냥 호강하려는 욕심에 하는 말이야.”

할머니는 내가 몰래 어머니의 발바닥을 힐끔힐끔 훔쳐보는 모습을 보고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덧붙이셨다.

“이제 봐라, '집에 하수도가 있으면 진짜 발바닥에 털 난다'고 하지 않나. 끝이 없는 게 사람의 욕심이지, 암 그렇고 말고...”

할머니의 예언은 적중했다.

할머니의 말씀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밖에 하얀 눈이 푹푹 내리던 날이였다. 동네 어머니들이 우리 집에 모여 웃집 누나의 혼수이불을 꾸미며 수다를 떨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하수도 이야기로 넘어갔다.

“집에 하수도가 있으면 정말, 발바닥에 털 나겠다.”

어머니들의 합창이였다.

봄은 용케도 해마다 잊지 않고 우리 동네로 잘 찾아왔다. 이듬해, 뜨락에 살구꽃이 하얗게 피던 해살 좋은 날이였다. 동네 아버지들이 땀을 뻘뻘 흘린 보람으로 집집마다 하수도가 만들어졌다.

나는 어머니에게 바보같다는 타박을 들으면서도, 숙제 검사하듯 어머니의 발바닥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지나도 어머니의 발바닥에는 티끌만 한 털 한대 보이지 않았다. 동네 다른 집 아이들도 나처럼 같은 짓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러 예순이 넘은 지금, 가끔 어릴 적 일을 떠올리며 혼자 웃다가 할머니 말씀을 되새겨 본다.

“사람의 발바닥에 어떻게 털이 나니? 그냥 호강하려는 욕심에 하는 말이야...”

“띵동— 띵동—”

주문한 생수가 도착했다. 창밖에 눈은 부슬부슬 계속 내리고 있다.  예전에 우리 마을 공터 공용 수도 자리에 지금은 생수 배달 오토바이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목이 말랐다. 생수를 한 모금 천천히 마셨다. 생수가 목을 적시며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공용 수도에서 찬물을 길어 오던 고된 일상은 편리한 현대 생활로 바뀌였고 무거운 물동이를 이고 지고 걷던 삶의 무게는 새로운 배달 써비스로 가벼워졌다.

눈은 여전히 창밖에 쌓여 가고 예전의 고된 삶의 흔적은 희미한 추억으로만 남았다. 어머니들의 발바닥에는 끝내 털이 나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사람은 자꾸만 더 갖고 싶어 욕심을 내는지도 모른다.

래일이면 수도물이 다시 잘 나올 것이다. 삶의 지혜를 담은 할머니의 소박한 말씀이 다시금 떠오른다.

“끝이 없는 게 사람의 욕심이지, 암— 그렇고 말고...”

한길 프로필

1960년 연길에서 출생 

시각디자인업에 종사하다가 퇴직

연변조선족자치주 조선족전통문화발전연구회 회원


编辑:안상근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8043
  • 일전, 길림성부녀련합회는 ‘길가화미’ 계렬 행동을 착실히 추진하고 스승을 존경하며 교육을 중시하는 사회적 풍조를 대대적으로 선양하기 위해 제42번째 교사절을 맞아 ‘교사절 특별 공익활동’을 진행했다.이번 활동은 길림성부녀아동활동중심에서 진행되였으며 현직 및 퇴직 교사들을 위한 체험활동과 교사·자녀 특별...
  • 2026-09-15
  • 11일, 길림신문사는 장춘시 쌍양구 제가진 서광촌 촌민위원회에 도서를 기증했다. 이번 기증은 사회공익 사업을 실천하고 민족문화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길림신문사 도서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기증된 도서는 홍색 고전이야기, 중화 전통문화, 청소년 교양, 민족문화 등 다양한 분야로 구성되였다. 서광촌...
  • 2026-09-15
  • “와, 이 넓은 논밭을 보세요. 노랗게 변하기 시작한 걸 보니 가을이 성큼 다가왔네요.”일전 화룡시 동성진 광동촌에 들어서는 관광객들마다 드넓게 펼쳐진 벼논을 보면서 감탄했다. 가을바람이 논밭을 스치면 ‘황금파도’가 넘실거리는 풍경이 한눈에 안겨온다.“도시에 오래 살다 보면 마음이 답답하고 조급했는데...
  • 2026-09-15
  • 긴 려정에 지치지 않고도 주말이나 짧은 련휴를 리용해 명소를 실컷 둘러보며 몸과 마음을 느긋하게 할 수 있는 ‘짧은 시간, 가까운 거리, 가벼운 휴식’의 미니휴가가 직장인과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 선호하는 새 관광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짜투리 시간을 활용해 여가를 즐길 데 대한 대중의 수요에 부응하고 미니휴가...
  • 2026-09-15
  • 일전 훈춘─하싼(중로) 빈해관광휴양구 마야치노예진 관광종합체 착공식이 로씨야 빈해변강구 하싼구에서 열렸다. 성당위 상무위원이며 연변주당위 서기인 호가복, 로씨야 빈해변강구정부 부주석 히진스끼가 착공식에 참가해 축사를 했다. 로씨야 빈해변강구 립법회의 부주석 잠불라뜨가 착공식에 참가했다.호가복은 길림성...
  • 2026-09-15
  • 장춘의 중경로는 여러 세대에 걸쳐 기억속에 새겨진 도시의 ‘금거리’로 한때 장춘 상업의 중심지로 가장 번창하고 영향력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도시 상권의 변화와 함께 전통 쇼핑거리는 그 옛모습을 점차 잃고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몇년전 중경로는 인기가 줄어들고 활력이 감소해 젊은 층의 매력을 잃은 실상 그...
  • 2026-09-15
  • 14일, 제33회 세계대학생동계운동회(아래 대동회) 대표단 단장 회의가 장춘에서 개최되였다. 국제대학스포츠련맹(FISU) 주석 르노 에데르, 장춘 대동회 조직위원회 부주석 겸 교육부 부부장 왕가의, 장춘시 시장 고강 등이 개막식에 참석했으며 FISU 관계자, 각 국가 및 지역 대표단 단장 및 관계자, 집행위원회 대표 ...
  • 2026-09-15
  • 9월 11일 저녁, 길림성 연변가무단에서 심혈을 기울여 창작한 혁명 소재 민족무용극  <오설장백>이 길림성 대표 극목으로 북경에서 있은 제7회 전국소수민족문예회연에 참가해 첫 공연을 마쳤다. 이로써 연변가무단은 1980년 제1회부터 제7회까지 매회 참가한, 전국에서 몇 안되는 문예단체중 하나로 되였고 작품...
  • 2026-09-15
  • 사람은 흔히 큰비가 쏟아질 때는 우산을 챙기지만 보슬보슬 내리는 가랑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오랜 시간 그 가랑비 속에 서있노라면 어느새 속옷까지 축축하게 젖어있음을 깨닫게 ...
  • 2026-09-15
  • 로년대학 문예공연의 한 장면 9월 10일, 길림시조선족로인협회 로년대학은 길림시화납호텔에서 교사절 기념 문예행사를 개최했다. 행사에는 로년대학 수강생 32명과 길림시조선족로인협회 회원 51명이 참석했고 총 14개의 다채로운 문예 종목을 연출했다.길림시조선족로인협회 상무부회장 황정애는 협회를 대표해 로년...
  • 2026-09-15
‹처음  이전 5 6 7 8 9 10 11 12 13 14 1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