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중공 각급 지도간부
4. 현·구급 중공 지도간부
김동철(金东哲, ?—?): 중공경성특별지부 목란(현)분지부 조직위원
1931년, 중공경성특별지부 목란(현)분지부가 설립되자 조직위원이 되였다.
(자료출처: ≪흑룡강항일투쟁인물록≫)
김두익(金斗益, 1909—?): 중공로투구위원회 조직부 책임자
조선 함경북도 경성 출신으로 1930년 3월 길림성 화룡현에서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했다. 7월에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하였으며 8월에 중국공청단 연화현위원회 위원이 되였다. 같은 시기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12월에 로투구당위원회 조직부 책임자가 되였다.
1931년에 간도반일농민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여 1933년 1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자료출처: ≪한국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
김만성(金万成, ?—?): 중공해룡현위원회 서기
1930년 6월, 중공해룡현당지부가 설립되여 같은 해 12월 중공해룡현위원회로 개편되자 서기가 되였다.
(자료출처: ≪중국공산당길림성조직사자료≫)
김만성(金晩星, ?—?): 중공청원현위원회 선전부 부장
1930년 8월부터 1931년 9월까지 중공청원현위원회 선전부 부장을 지냈다.
(자료출처: ≪중국공산당료녕성조직사자료≫)
김병수(金柄洙, 1901—1933): 중공평강구위원회 서기, 어랑촌혁명위원회 위원장
길림성 화룡현 장인강 출신으로 1930년에 동만에서 조선 광주학생운동을 성원하는 투쟁에 참가했다. 그해 6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장인강당지부 조직위원이 되였다. 7월에 평강구당위원회 조직부 간사가 되고 9월에 평강구유격대와 함께 친일지주를 습격하는 투쟁을 벌렸다.
1931년에 평강구당위원회 서기로 되여 평강구유격대를 재건하였으며 어랑촌유격근거지를 창설했다. 1932년 11월, 어랑촌혁명위원회 위원장이 되였다. 1933년초, 일제의 어랑촌유격근거지에 대한 ‘토벌’에 맞서 싸우다가 다리에 총상을 입었고 3월에 밀정의 고발로 일제에 체포되여 살해되였다.
(자료출처: ≪한국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
/박문봉 편저 《동북항일전쟁 조선족 인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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