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나의 조국 나의 집’(18)그들이 보는 김학철은 정의의 수호자였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22년11월8일 14시44분    조회:275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서광요(徐光耀) 등 문학거장들의 시각으로 보는 김학철

김학철 주요작품:

장편자서전 《최후의 분대장》, 전기문학 《항전별곡》

중단편소설집《군공메달》,《범람》,《고뇌》,《번영》,《무명소졸》,《김학철단편소설집》,《태항산록》,《나의 길》 등.

20세기 50년대초 김학철(뒤줄 오른쪽 두번째)과 서광요(뒤줄 왼쪽 첫사람)가 중앙문학연구소에서 공부할 때 찍은 사진. 서광요한테 안긴 애가 김학철의 아들 김해양이다.

조선족 문학거장 김학철이 타계한 지 20년 남짓하지만 아직도 그를 외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70년전의 그의 지기 서광요(96세)의 우연한 출현이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로 된다.

그는 조선족의 ‘빠웰·꼴챠낀’

중편소설 〈꼬마병사 장알(小兵张嘎)〉(후에 영화로 각색)의 저자 서광요와 김학철은 20세기 50년대초 중앙문학연구소에서 연구원 신분으로 공부할 때의 학우이자 절친한 친구 사이이다.

2021년 7월, 96세의 서광요는 하북성 석가장시 원씨(元氏)현에 ‘김학철항일문학비’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격정에 차넘쳐 당장 가보려고 서둘렀다. 그러나 백세에 가까운 나이가 먼거리 운신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여 직접 가보지 못하는 대신 ‘서광요문학’ 연구학자 은걸(殷杰)과 《석가장일보》 기자이자 홍색문화 권위학자인 왕률(王律)을 파견하여 가보도록 했다. 마침 그들이 호가장 현지에 도착한 그날 촌장으로부터 김학철의 아들 김해양이 전날 다녀갔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그의 전화련락처를 알게 되였다.

이로하여 서광요는 김학철의 아들 김해양과 련계를 달게 되고 서광요와 김학철과의 70년 인연이 연장선을 긋게 되였다.

2021년 10월 17일, 김해양은 석가장에 있는 하북성제8인민병원에서 료양중인 서광요(96세)를 찾아갔다. 그들은 만나자 마자 서로 감격되여 힘있게 포옹했다. 이는 70년을 뛰여넘는 력사적인 포옹이였다.

서광요는 70년전 북경 이화원에서 김학철일가(어린 김해양 포함)와 함께 찍은 사진과 갓 출판한 서적 《빛나는 세월—도편으로 보는 서광요》를 김해양에게 보여주고 옛일을 감회 깊게 회억했다. 그리고 장편기록《서광요일기》를 김해양에게 증정했다.

서광요는 1951년 4월 28일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외다리에 쌍지팽이를 짚고 회의실에 들어선 김학철은 우리와 함께 문학에 대해 많이 담론했다. 제일 탄복할 만한 것은 김학철이《고요한 돈》을 40번이나 읽었다는 점이였다. 《삼국연의》, 《수호전》, 《서유기》 등 서적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는 김학철에 비하면 읽은 책이 너무나도 적었다. 김학철은 그야말로 조선(족)의 ‘빠웰·꼴챠낀’이였다.”

당시 서광요는 외다리로 쌍지팽이를 짚고 왕성한 정력으로 사업에 몰두하고 있는 김학철이 두권의 장편까지 쓰고 있다는 것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광요는 진묘(정령의 비서)를 통해 김학철의 파란만장한 경력을 알게 된다.

김학철(원명 홍성걸)은 1916년에 출생, 1938년에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에 중국 무한에서 조선항일의용대 조직건립에 참여, 1940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한다. 1941년 12월 12일, 태항산기슭 호가장에서 벌어진 치렬한 대일전투에서 김학철(제2분대 분대장)은 다리뼈에 총상을 맞고 일본군에 체포된다. 그리고 석가장헌병사령부의 취조와 일본령사관구치소의 수감을 거쳐 일본 나가사끼(长崎)형무소로 압송된다. 형무소에서 그는 자백서를 쓰라는 감옥의 권유를 거절한 원인으로 3년이 지나도록 부상당한 다리를 치료받지 못해 상처에서 고름이 나고 구데기가 끼여 결국 왼쪽 다리를 절단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1945년 일본이 투항하고 드디여 볕을 보게 된 김학철은 북경에 와서 정령의 수하에 있는 중앙문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게 된다.

비록 1938년에 혁명에 참가한 서광요는 8년 항전 가운데서 7년의 간난신고를 겪으면서 100여차의 크고 작은 전투를 경험한 로항일투사지만 왜놈들과 피 흘리며 싸우고 포로된 후에도 굴하지 않고 한쪽 다리까지 잃은 억센 사나이 김학철에 대해 경의로 차넘쳤다.

정령은 당시 중국 문학계의 핵심인물중 한사람이였다. 그는 해방 후 장편소설 《태양은 상건하를 비춘다》를 써서 사회주의계렬에서 최고의 문학상인 쏘련 쓰딸린문학상을 수여받았다.

정령은 김학철의 경력과 성격을 아주 좋아했다. 김학철은 정령부부와 3년 동안 이웃으로 북경 이화원에서 함께 지내게 되였다.

50년대에 김학철은 정령의 장편소설 《태양은 상건하를 비춘다》를 번역출판해 원작의 언어와 문학적 숨결이 살아숨쉬게 했다.

후날 서광요는 록화기사에서《빛나는 세월—도편으로 보는 서광요》에 실린 사진 속의 김학철을 가리키며 “김학철은 저명한 작가일 뿐만 아니라 항전영웅”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국가1급미술사 양금상(杨金祥)이 서광요와 김학철의 인연을 그린 그림 10점은 요즘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그림에는 김학철이 외다리로 지팽이를 짚고 중앙문학연구원에서 정령, 서광요와 문학을 담론하는 장면, 서광요와 김학철일가의 환희에 찬 모임, 서광요가 붓으로 ‘김학철기념관’ 현판글을 쓰는 등 장면들이 있다.

김학철 동상

드팀없는 신조

황포군관학교에서 김학철은 맑스주의를 비밀리에 전수받고 평생 맑스주의를 자신의 드팀없는 신조로 고수했다. 부인과 함께 상해에서 각별히 맑스, 엥겔스 동상을 찾아 참배하고 동상을 배경으로 해 찍은 사진이 이를 잘 증명해준다.

김학철은 철저한 맑스주의자로서 사회진보를 위해서라면 인민의 자유와 해방 그리고 민주권리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사명을 시종 잊지 않았다. 그리하여 소설창작외에 잡문, 수필을 무기로 불의에 도전했다.

“편안하게 살려거든 불의에 외면을 하라, 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그에 도전을 하라.”이는 김학철의 명언이다.

김학철문학의 원천은 평생의 꾸준한 독서에서 온 것이다. 김학철의 일생은 끊임없는 열광적인 책읽기로 장식되였다. 소학시절에《세계문학전집》을 통독한 것이 인생의 시작이였다.

김학철은 책장에《로신전집》10권과 홍명희의《림꺽정》6권을 두고 닳도록 읽었으며 《홍루몽》도 외우다 싶이 읽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일반인이 리해하기 힘든 《사기》도 흥미진진하게 읽기를 즐겼다.

김학철에게는 비전통 ‘사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홍명희의 장편소설 《림꺽정》이였다. 김학철은《림꺽정》을 외우다 싶이 탐독하였다. 심지어 편집인들의 물음에 보통 사전에 없는 어느 단어가 몇권 몇페지에 있다고 해답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독서에 대한 넘치는 열정, 문학에 대한 지극한 사랑, 조국과 인민에 대한 충성, 력사에 대한 책임감이 김학철문학의 ‘피와 살’이다.

2005년 8월 5일, ‘김학철항일문학비’ 제막식에 참가한 중국작가협회 주석 철응(铁凝)은 김학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나라 조선족 문학가 김학철이 그토록 중시를 받게 되는 주요한 원인은 바로 그의 민족감정과 용기 그리고 관건적 시각에 정의를 지키는 립장과 정감이 현시대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중국작가협회 당조성원이며 서기처 서기인 지디마카(吉狄马加)는 김학철에 대해 언급 시 “김학철은 중국조선족문학에서 제일 중요한 작가로 볼 수 있다. 김학철의 전부의 작품은 20세기 사회와 인생의 진실한 견증이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중화민족 문학계 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의 중시를 받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신화사의 기록은 이러하다.

“김학철은 중국에서 제일 일찍 조선문으로 장편소설을 쓴 작가이다. 그는 풍부한 문화실천으로 중국조선족문학잡문의 새로운 령역을 개척했으며 로신문학의 전통과 조선족문학의 령혼과 정체를 융합시켰다.”

문학평론가 조성일은 김학철과 그의 문학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김학철은 불굴의 항일투사일 뿐만 아니라 조선족문학의 대부이다. 김학철의 문학은 동아현대사의 문학 축소판으로 되기에 손색이 없다.”

글을 마감하면서 한마디 부언한다.

‘중국소수민족문학관’에는 조설근, 로사 등 10명 소수민족작가들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그 가운데 유독 외다리에 쌍지팽이를 짚고 멀리 바라보는 김학철 전신 동상이 우뚝 서있다. 이는 우리 민족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길림신문 리영애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4198
  • 아쉬운 패배였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검은 별’ 가나에 접전 끝에 2대 3 한 점 차로 졌다. 16강 진출 여부가 달린 중요한 일전에서 패하면서 벼랑 끝에 몰린 대표팀은 마지막 뽀르뚜갈전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28일 저녁 6시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까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시티 스타디움에서 열...
  • 2022-11-29
  • - 연길시조선족무형문화유산보호중심을 찾아     제6회 ‘무형문화의 메아리' 음악회 한장면. 지난 8월 29일, 행운스럽게도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70주년을 경축하는 주제로 마련된 제6회 ‘무형문화의 메아리’음악회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연길시문화관 극장에서 울려퍼진 음악회는 연길시문화라지오텔레비죤...
  • 2022-11-28
  • ‘일대일로’ 제안의 북쪽 개방의 중요한 노드인 장춘흥륭철도통상구에서는 10월 이후로 총 11편 기차의 550대 바곤이 발차되여 ‘장춘 만주리 유럽(长满欧)’ 화물렬차의 겨울철 정상화 운영을 보장했다. 사진은 통상구의 근로자가 렬차에 컨테이너를 싣고 있는 모습이다. (장야 찍음)
  • 2022-11-28
  • 최근, 〈국가 공업관광시범기지 규범과 평가〉(LB/T 067-2017)와 〈길림성 공업관광기지 관리방법(시행)〉에 따라 관련 시(주) 문화와 관광 행정부문의 추천을 거쳐 길림성문화관광청은 전문가를 조직하여 절차에 따라 종합평정을 한 결과 이하 6개 단위가 길림성 공업관광기지 표준의 요구에 도달했다고 판단하여 길림성 ...
  • 2022-11-28
  • 최근, 중화인민공화국 국가표준 〈관광지 품질 등급의 구분과 평정〉과 〈관광지 품질 등급 관리방법〉에 근거하여 관련 시(주) 문화와 관광 행정부문의 추천을 거쳐 길림성문화관광청은 전문가들을 조직하여 절차에 따라 종합평정을 한 결과 장춘시 신구 청천호 문화관광리조트 등 6개 관광지가 국가 AAAA급 관광지 표준요...
  • 2022-11-28
  • l 1차전에서 스페인에 0대 7로 참패를 당했던 꼬스따리까가 일본을 꺾고 조별리그 첫 승을 올렸다. 27일 오후 6시 꼬스따리까는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까타르 월드컵 일본과 경기에서 후반 36분 터진 풀레르의 결승꼴에 힘입어 1대 0 승리를 거두고 16강 희망을 이어갔다. 일본과 꼬스따리까가(1승 1패, 승점...
  • 2022-11-28
  • 박세룡, 증선된 발전도상국과학원 국내 원사중 최년소 원사    발전도상국과학원(TWAS) 제16차 학술대회 및 제30차 원사대회에서 원사로 증선된 북경대학의 조선족 박세룡교수 46세의 길림성 연변 출신 조선족 박세룡교수가 작년에 중국과학원 원사로 추가 선출된지 1년 만에 또 희소식을 전해왔다. 11월 21일, 발전도상국...
  • 2022-11-27
  • 경준해, 길림성전염병예방통제지도소조(확대)회의서 강조 26일, 성당위 서기 경준해는 화상형식으로 길림성전염병예방통제지도소조(확대)회의를 주재하고 전 성 전염병예방통제 사업에 대해 재배치, 재연구, 재포치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전염병 예방통제와 경제 사회 발전을 고효률적으로 총괄할 데 관한 습근평...
  • 2022-11-27
  • 제2편 중공 각급 지도간부 4. 현·구급 중공 지도간부 김상화(金相和, 1900—1931): 중공왕청현위원회 서기 원명은 김재봉(金在凤)이고 1900년 2월 연길현 광개향 후동(厚洞)촌에서 태여나 1924년 가을 왕청현 하마탕으로 이주했다. 1927년에 조선공산당 엠엘파에 가입하였으며 1928년 여름 하마탕에서 청년회, 소선대, 호조...
  • 2022-11-27
  • 최근 오미크론 코로나19 바이러스 여러가지 아종 변이주가 전세계에서 빠르게 류행되고 있는데 특히 오미크론 BF.7 변이주의 감염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오미크론 BF.7 변이주의 전파로 현재 북경시의 일일 신규 증가 코로나19 보고사례가 지속적으로 증가해 많은 학생들이 온라인학습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였다. ...
  • 2022-11-27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