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중공 각급 지도간부
4. 현·구급 중공 지도간부
김영철(金英哲, 1911—1938): 중공연길현월청구위원회 위원
길림성 도문시 월청진 기진 사람이며 일찍부터 혁명사상을 수용하고 항일투쟁에 나섰다. 1930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중공연길현월청구위원회 위원이 되였다.
비밀임무를 수행하다가 일제특무의 밀고로 일제경찰에 체포되였으며 룡정감옥에서 끝까지 당의 비밀을 수호하며 완강하게 싸우다가 1938년 8월 살해되였다.
(자료출처: ≪두만강의 력사의 땅 — 도문은 말한다≫)
김원풍(金元丰, ?—?): 중공해룡현위원회 서기
1931년 8월, 중공해룡현위원회 서기로 되였다.
(자료출처: ≪중국공산당길림성조직사자료≫)
김의재(金義財, ?—?): 중공삼간방구위원회 조직위원 겸 선전위원
원명은 김창수(金昌守)이며 1930년 8월부터 1932년 1월까지 중공삼간방구위원회 조직위원 겸 선전위원을 지냈다.
(자료출처: ≪중국공산당료녕성조직사자료≫)
김일묵(金一黙, 1901—1933): 중공연화중심현위원회 선전부 부장
한별(韓別), 한성(韓星), 박일천이라고도 하며 조선 평안북도 강계 출신이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했으며 1920년에 쏘련으로 망명하여 고려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26년에 연변으로 파견되였고 1927년 5월 조선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0월, ‘제1차 간도공산당 검거사건’을 피하여 북만으로 이동하여 11월에 녕안현 동경성에서 조선공산당 만주총국(화요파) 재결성에 참여하고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 선전부 부장이 되였다.
1929년 11월, 조선공산당 만주총국(화요파) 동만도 조직부 부장이 되였다. 1930년 1월, 조선 3.1운동 11주년 기념 준비위원회의 결성에 참여하고 2월에 국자가와 왕청 지역에서 반일시위 운동을 지도했다.
그해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삼도구, 연길, 왕청에서 기층당지부 조직사업에 종사했다. 8월 13일, 중공연화중심현위원회 선전부 부장이 되였다. 같은 해 11월, 반일무장봉기를 준비하다가 룡정에서 일본총령사관 경찰에 체포되여 서대문형무소로 압송되였다.
1933년 5월, 옥중에서 국제로동절 기념 투쟁에 참가했다가 피살되였다.
(자료출처: ≪연변력사사건당사인물록≫,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
/박문봉 편저 《동북항일전쟁 조선족 인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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